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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62화 (362/628)

제362화

유적의 모습은 예전에 봤던 때와 다르지 않았다. 바깥 통로보다 네다섯 배는 더 큰 규모의 통로가 문 앞에 쫙 펼쳐져 있는 것도 그랬고, 벽과 천장을 온통 메우고 있는 병정, 골렘, 몬스터의 그림이 통로에 있는 이를 사납게 노려보고 있는 것 또한 같았다.

하지만 걱정하고 있던 존재는 없었다. 라일라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듯 툭 내뱉었다.

“열자마자 그림자들이 쏟아지지 않을까 걱정했어.”

라일라는 지팡이를 꽉 잡고 있었다. 한스와 스녹도 마찬가지. 한스는 잔뜩 긴장한 눈매로 에스텔레이드를 뽑아 든 채 입구를 경계하고 있었고 스녹도 미스릴들을 한가득 바닥에 뿌려놓은 상태였다.

쿠우우우!

노웸도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입구를 노려봤다.

상황을 모르는 엘레나도 주변의 분위기에 지팡이를 꽉 쥐며 긴장한 상태였다.

하지만 문을 열고 그림자의 존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일행은 긴장을 조금 낮췄다.

“그림자? 그게 뭐예요?”

마릴린이 물었다.

“지크가 말했었지? 우리가 예전에 당해내지 못한 위험한 존재가 있다고.”

“그게 그림자라는 존재야?”

“그중 하나지.”

라일라는 마릴린에게 그림자에 대해 설명을 해줬다. 마릴린은 평소답지 않은 진지한 얼굴을 하고는 라일라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지크 일행은 입구로 들어갔다. 벽과 천장에 그려진 무수한 벽화들이 일행을 사납게 겁박한다.

처음 보는 엘레나, 마릴린은 물론이고 두 번째로 보는 다른 일행들도 그 살벌함에 절로 긴장감이 샘솟았다.

“여기가 무덤의 입구인 거야?”

어느 정도 이곳에 대한 얘기를 들었던 엘레나. 하지만 아무리 많이 그리고 자세히 설명을 들었다 해도 역시 직접 본 것만 못하다. 절로 발걸음을 움츠리게 하는 벽화를 보며 그녀가 스녹에게 물었다.

“응, 여기서 쭈욱 통로를 따라가다보면 커다란 문이 보일 텐데, 그 문 너머가 바로 무덤이야.”

스녹의 말대로 일행의 앞에 커다란 문이 등장했다. 지크가 문을 열자 무덤의 모습이 일행에게 드러났다.

“이게….”

“우와아아아아!”

그 압도적이고 웅장한 모습에 마릴린은 할 말을 찾지 못했고 엘레나는 그저 감탄성밖에 내뱉을 수 없었다. 이 모습을 보는 게 두 번째인 일행도 다시 한 번 엄습해오는 압도적인 감정에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단, 감정이 메마른 것 같은 지크는 예외였다. 다른 일행이 무덤의 위용에 압박받고 있을 때, 지크는 터벅터벅 앞으로 걸어가 무덤을 내려다 봤다.

“다행히 석상들도 다 자기 자리로 돌아가 있군.”

그 말에 다른 일행들도 지크의 옆으로 다가왔다. 받침대 위로 올라 묵묵히 서 있는 석상들의 모습에 스녹이 대놓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를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도가 다를 뿐, 석상을 경험한 다른 일행도 안도하긴 마찬가지였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 석상이 저것들이야?”

엘레나가 다시 스녹에게 물었다.

“맞아. 라일라 님의 마법도 통하지 않았으니까 너도 각별히 조심해.”

스승님의 마법도 통하지 않는 적. 석상을 보는 엘레나의 시선엔 긴장감이 넘쳤다.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들은 마릴린이 새삼스레 석상을 내려다봤다.

“…전투 흔적이 있네요.”

무덤 여기저기에 그을리거나 커다란 흠집이 있거나 했다.

“여기서 대판 붙었으니까요.”

“지크 님이 말하신 그 위험한 존재와 말이죠? 그림자가 그중 하나라고 했고, 다른 하나가 저 석상인가요?”

“정확합니다.”

지크가 석상을 쳐다봤다.

“압도적인 체구에서 나오는 거력과 웬만한 칼질로는 끄떡도 않는 단단함. 거기에 마법을 무효시키는 특성까지. 정말로 위험한 순간이었죠.”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저도 쓸모가 없겠네요.”

“일단 통하지 않았다는 건 통상적인 마법입니다. 저주는 또 모르죠. 게다가 적 중엔 그림자도 있으니, 그 녀석들에게 사용해도 됩니다.”

지크 일행은 입구 옆에 지그재그로 나 있는 계단을 따라 무덤 아래로 내려갔다. 바닥에 내려앉은 그들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석상 근처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석상은 움직이지 않았다.

“다짜고짜 검부터 내려치진 않으려는 모양이군.”

“그러게.”

석상의 움직임이 없자 일단 지크와 라일라는 안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언제 석상이 다시 받침대에서 내려와 일행을 모조리 짓이겨 버리겠다고 칼춤을 출지 몰랐다.

“일단 얘기한 대로 피라미드 근처는 나중에 가는 거야.”

라일라가 당부했다.

예전에 그림자가 나타나고 석상이 움직이기 전, 피라미드 위 나무의 진동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진동은 지크가 피라미드에 올라간 후에 윈두르와 공명하며 일어났다.

당연히 예전의 그것들은 윈두르가 나무에 접근하여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 타당했다.

“알았어.”

지크도 그 사실을 알기에 담담히 긍정했다.

일단은 무덤을 뒤져야 했다. 대지의 속성이라 추정되는 나무를 봉인하고 있는 무언가를 찾아 나무를 해방해야 했다. 아마도 호수의 눈물이나 화염의 눈물 같은, 마력이 가득 담긴 구슬의 형태를 하고 있지 않을까 의심됐지만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들이 가장 먼저 들어간 건 황금황제의 무덤이었다. 아무래도 제국을 세우고 제국의 전성기를 일으킨 자이니, 이곳에 뭔가가 있을 확률이 높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예전엔 아무것도 찾지 못했지만, 아무래도 그저 뭐가 있는지 가볍게 둘러보기만 한 그때와 뭔가를 찾으려는 확실한 의지를 가진 지금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황금 황제의 무덤을 가장 먼저 들어간 건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기가 무덤이군요!”

“우와! 우와아!”

처음 석실에 들어온 마릴린과 엘레나가 주변을 둘러보며 놀란다. 하지만 호기심에 잔뜩 들뜬 그녀들과는 다르게 라일라는 이 석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입을 꾸욱 닫고 있었다.

그녀의 기분을 아는지 지크도 그녀의 뒤를 반 발짝 뒤에서 천천히 따르고 있었다.

라일라가 관 앞에 도착했다. 여전히 무덤의 규모에 비해 초라하고 밋밋한 관이었다. 라일라는 관의 옆에 서 조용히 그것을 내려다봤다.

“열어줄까?”

지크가 묻자 라일라가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그그긍!

돌과 돌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리며 관 뚜껑이 서서히 열렸다. 관 안에 잠든 시체 한 구가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황금 황제. 그 거창한 이명이 붙은 황제가 바로 그였다.

그리고 동시에 라일라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마치 잠을 자는 것 같은 노인의 모습. 이렇게 보니 라일라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라일라는 별말이 없었다. 그저 노인의 모습을 뚫어져라 내려다볼 뿐.

“이 사람이 무덤의 주인인가?”

마릴린이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다. 라일라는 답하지 않았다. 계속 시체를 내려다봤다. 대답은 지크가 했다.

“그렇습니다. 고대 제국의 황금 황제라고 하더군요.”

“거창한 명칭이네요. 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나요?”

“예전 동료였던 엘프의 말에 따르면 옛날에 엘프들도 감히 범접 못 할 제국을 세우고 최전성기를 이끈, 엄청난 능력을 가졌던 황제랍니다.”

“그래요?”

마릴린이 놀란 눈으로 시체를 내려다봤다. 그러곤 힐끔 라일라의 눈치를 봤다.

“그런데 라일라는 왜 저러는 거예요?”

“조금 그럴 일이 있습니다.”

지크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괜찮을 겁니다. 당분간은 혼자 내버려 두죠.”

지크가 마릴린의 팔을 잡아끌자 그녀는 지크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지크는 다른 이들도 붙잡고 석실을 나섰다.

라일라는 석실에 혼자 남아 한동안 조용히, 자신의 기억에도 없는 아버지를 쳐다봤다.

* * *

석실을 나온 일행은 흩어졌다. 혹시나 있을 상황을 대비해 한동안 뭉쳐 다니던 일행이었지만, 우려하던 습격 같은 것은 없으니 굳이 모여 다닐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지크는 제자들에게 흩어져 수상한 것을 찾으라고 했다. 혹시 예전 같은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들의 실력이라면 능히 지크와 라일라에게 합류할 수 있을 것이다.

지크도 옆 석실에 들어가 주변을 살폈다. 그의 뒤를 마릴린이 졸졸 따라다녔다.

‘눈에 띄는 건 없군.’

지크는 석실을 나왔다. 그리고 피라미드를 쳐다봤다.

‘있다면 저기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피라미드는 당장 확인할 수 없다.

‘헛수고라도 다른 석실들을 일단 모조리 뒤져봐야지.’

지크가 다음 석실로 옮겨가려는 때, 라일라가 황금 황제의 석실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지크와 마릴린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기분은 좀 어때?”

“괜찮아.”

빈말이 아닌 듯 라일라의 어조는 평탄했다.

‘하긴, 아무리 아버지라고 해도 기억 하나 없으니.’

게다가 클로원의 공주라는 자신의 전 신분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라일라다. 그녀의 마음 정리가 빠른 이유가 충분히 납득됐다.

“뭣 좀 찾은 거 있어?”

라일라가 물었다.

“없어. 아무래도 석실들엔 그다지 중요한 게 없을 것 같아.”

“역시 의심되는 건 피라미드인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두 사람이 피라미드를 바라봤다.

“그래도 피라미드는 나중에 가야지.”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혹시 모르니 석실부터 전부 뒤져야지. 혹시 알아? 웬 중요하지도 않은 석실에서 찾던 게 튀어나올지.”

“그래, 잘 생각했어.”

라일라가 지크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나는 석실의 문자들을 해독할게. 그러면 뭔가 얻는 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

“석실의 문자?”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마릴린이 끼어들었다.

“석실에 빼곡히 쓰여 있던 문자들을 말하는 거야?”

“맞아.”

“그걸 해석할 수 있어?”

상당히 놀랐는지 마릴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연찮게 알게 됐어. 주로 사용하는 문자처럼 바로바로 읽을 수는 없지만 해석에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자랑스러운 우리 파티의 마도사시죠.”

지크가 라일라를 띄웠다.

“칭찬해도 나올 것 없으니까 헛소리는 그만해.”

“알았다. 쪼잔한 녀석 같으니. 보통 그런 칭찬을 듣는다면 밥 정도는 사야….”

헛소리를 계속하는 지크를 정강이를 걷어차 쫓아 보낸 라일라는 다시 석실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지크가 떠났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옆에 남아 있는 마릴린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마릴린 넌 지크랑 같이 다닐 거 아니었어?”

“원래는 그랬는데, 네가 석실의 문자를 해독하는 걸 보고 싶어져서 말이야. 아무리 내가 통상 마법과는 다른 마법을 구사하는 저주술사라고 해도 마법사 특유의 호기심은 가지고 있거든.”

“그래?”

라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또한 마법사 특유의 호기심을 갖고 있던 터라 마릴린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했던 것이다.

“별로 볼 건 없겠지만 원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해.”

“고마워, 라일라!”

마릴린이 기뻐했다.

둘은 다시 석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까와는 달리 관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라일라는 벽면에 있는 글자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마릴린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저기 정말 미안한데, 라일라.”

“왜 그래?”

“여기에 써진 문자가 뭔지 혹시 읽어줄 수 있어?”

두 손을 모으고 미안한 티를 내면서 마릴린이 부탁한다. 또다시 마법사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한 모양이었다.

라일라는 거절하지 않고 그 짧은 문장을 읽어줬다. 대단한 글귀는 아니었다. 그저 황금 황제를 찬양하는 문장일 뿐이었다.

“정말로 고마워!”

마릴린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라일라는 괜찮다고 말하고는 계속해서 석실의 글자들을 읽어나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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