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60화 (360/628)

제360화

“졌다아아아!”

얼굴 앞에 드리워져 있는 라일라의 지팡이를 보고, 마릴린이 두 팔을 양옆으로 쭉 편 채 널브러지며 소리쳤다.

하지만 묘하게 개운한 느낌이 전투에 충분히 납득을 한 모양이었다.

라일라가 지팡이를 치우고 손을 내밀었다.

“수고했어요.”

“감사해요!”

마릴린은 라일라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역시 용사님! 강하시네요!”

“프릴 씨도 강했어요. 기술도 세련됐고 임기응변도 좋던 걸요. 마지막에 직접 지팡이를 휘두르려 했던 것도 의표를 찌르는 면에서는 괜찮았고요.”

“하지만 통하지 않았죠.”

“기죽을 것 없어요. 저는 마법사 중에서는 특별한 편이어서요. 어디 사는 어떤 분께서 기본적인 체력은 있어야 한다면서 온갖 단련을 시켰거든요.”

라일라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지크를 째려봤다.

“그래서 마법사치고는 주먹질을 잘하는 편에 속해요. 일반적인 다른 마법사였다면 프릴 씨의 수는 통했을 가능성이 커요.”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조금은 낫네요.”

마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저는 그냥 마릴린이라고 불러주세요.”

라일라는 마릴린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지금껏 그녀는 마릴린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의식적으로 피해왔다. 뭔가 꺼려지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한 번 마법을 겨루자 뭔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라일라는 작은 미소를 띠고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알았어요, 마릴린 씨.”

지크가 다른 일행을 이끌고 둘의 옆에 도착한 것은 그 즈음이었다.

“어디 다친 데는 없어?”

“난 괜찮아.”

그렇게 대답하고 라일라가 마릴린을 쳐다봤다.

“저도 괜찮아요. 등허리가 조금 아프긴 하지만 그 정도야 하루 정도 지나면 낫겠죠.”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신관을 찾아가보면 어떤가요?”

아무리 대련이었다고 해도 그녀를 내던진 사람이 자신이니 라일라는 조금 걱정이 된 모양이다. 마릴린이 어깨를 으쓱였다.

“저도 혼자서 여행을 한 지 꽤 된 여행자예요. 이 정도는 부상 축에도 들지 못하니 괜찮아요.”

“하긴, 그도 그렇군요.”

지크 일행처럼 무슨 부상만 입었다 하면 포션을 물처럼 부어대는 여행자들은 그리 없다. 일행에 신관이 없는 이상은 그저 자연치유에 맡길 뿐이다.

“그보다 제 실력은 어땠나요? 충분히 합격할 만한 실력이던가요?”

마릴린이 기대를 가득 담아 물었다. 지크는 라일라를 쳐다봤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도의 실력이라면 방해는 되지 않을 거야.’

저주술사라는 특성도 장점이 될 것이다.

‘우리 파티는 너무 화력에만 치중되어 있으니까.’

다른 모험자나 여행자들이 각각의 특성을 갖고 있는 동료들을 규합해 일을 헤쳐 나가는 식이라면, 지크 일행은 자잘한 것들을 모조리 압도적인 힘으로 꺾어버리고 가는 타입니다. 한 파티에 그 희귀한 마법사가 둘이나 있다는 것이, 그들의 파티가 초화력 파티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지크 모어의 측근 중 하나였던 만큼 장래성도 높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

“라일라도 찬성이군요. 저도 마릴린 씨의 실력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그럼 정말로 일행이 될 수 있는 건가요?”

“일단 전 긍정적인 편입니다만, 아무래도 일행의 의견을 조금 더 들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해해요.”

“그럼 살고 있는 곳을 알려주시겠습니까? 의견을 들어보고 나중에 연락을 드리죠.”

“아뇨, 제가 며칠 후에 직접 찾아올게요. 한 3일 정도면 의견을 수렴하는 데에는 충분하겠죠?”

“충분합니다.”

“그럼 3일 뒤에 봬요. 그때 꼭 좋은 말이 나오길 기대할게요!”

마릴린이 기대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 * *

“받아들일 거야?”

숙소로 돌아온 라일라가 물었다. 의견을 수렴한다고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지크 파티는 지크의 의견을 따라 움직인다. 거기에 라일라가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정도. 물론 지크가 다른 이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제자들은 보통 지크의 말을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많다.

“생각중이야.”

“타락 후일 것 같아 고민인 거지?”

그게 아니면 지크가 그녀의 합류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확실히 고민은 되겠네. 그녀가 타락했다는 증거가 없으니까.”

뱀파이어, 서큐버스, 웨어울프의 능력은 모두 희귀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 능력들은 아마도 로브 놈들에게 받은 것. 따라서 지크의 측근이 회귀 전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로브 놈들의 수작 후라는 간접적인 증거가 된다.

하지만 마릴린의 능력은 아니다. 저주술사가 드물긴 하지만 그렇다고 눈 씻고 찾아도 찾아볼 수 없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통상적인 능력인 것이다.

성격도 마찬가지. 다른 셋은 성격이 완전히 더러운 쪽으로 뒤바뀌어 몇 번 만나다 보면 타락 후라는 걸 알 수 있다. 아니, 몇 번까지 갈 필요도 없다. 그만큼 녀석들의 개성은 나쁜 의미로 끝내줬다.

그러나 마릴린은 위치 시절에도 그 셋처럼 더럽고 특이한 성격이 아니었다.

즉, 지금 마릴린에게 로브 놈들의 수작질이 끝났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로브 놈들의 수작질이 끝난 후라도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위치는 네 말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었잖아? 네가 마왕의 길을 걸었기에 마인이 된 거지. 지금처럼 네가 착한 일을 한다면 오히려 선인이 될 수도 있어.”

“그럼 넌 찬성이란 거냐?”

“정확히는 반대할 이유가 없는 거지.”

하지만 반대할 이유만 없을 뿐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건대 적어도 지금의 마릴린 프릴이란 사람은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왜인지 라일라는 그녀의 합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라일라는 자신의 감정을 묵묵히 누르고 마릴린의 합류에 찬성표를 던졌다.

“우리 실력이 상승했다지만 무덤에 들어가면 또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그걸 생각한다면 전력이 상승하는 건 분명 좋은 일이야.”

“그것도 그렇지.”

지크가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그럼 일단 녀석을 받아들여 보자고. 의심스러운 점은 가까이에서 관찰하면서 알아 가면 되니까.”

결론을 내렸다.

예상됐던 일이다. 하지만 라일라는 복잡해지는 마음을 못내 숨길 수 없었다.

* * *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지크 일행을 앞에 두고 고개를 꾸벅 숙이는, 넓은 챙의 모자를 쓰고 있는 여인. 오늘부터 합류를 하게 된 마릴린이었다.

지크 일행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해가던 마릴린이 라일라의 앞에 섰다.

“잘 부탁드려요, 라일라 씨!”

“저도예요, 마릴린 씨.”

서로간의 손을 맞잡는다. 무척이나 화기애애한 모습이다.

마릴린은 일행 중에서도 특히나 라일라를 마음에 들어 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의 광경만 봐도 절로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역시나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지크였다.

마치 주인을 맞는 강아지처럼 그녀는 지크의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일행에 넣어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저, 정말로 잘할 테니까요!”

“그런 의욕이면 충분할 겁니다, 마릴린 씨.”

그렇게 마릴린은 정식으로 지크 파티에 합류했다.

* * *

일단 지크는 마릴린을 데리고 주변의 몬스터 사냥을 다녔다. 그녀의 실력이 꽤 수준 높다는 건 알았지만, 리더로서 그녀의 능력의 종류와 한계를 명확히 알아야 했다. 위치의 실력은 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회귀 전의 것이다.

크에에에에엑!

근육질의 오크가 더러운 비명을 지르며 땅을 뒹군다. 그 옆으로는 오크 두 마리가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고 있었다. 또 한 마리의 오크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허우적대다가 연신 주변 나무에 머리를 박았다.

전부 마릴린이 쏜 저주의 결과였다.

첫 번째 녀석은 온몸에 쥐어짜는 듯한 고통을 주는 저주에 걸렸고, 두 마리는 아군이 적으로 보이는 저주에 걸렸다. 마지막 녀석은 눈이 머는 저주에 걸렸다.

“일단 간단하게 이 정도예요.”

마릴린이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하지만 지크 일행, 정확히 세 명의 제자는 저주의 위력에 전율했다.

저번 대련은 라일라가 내내 압도를 했던 터라 마릴린의 실력이 제대로 드러나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녀의 특기인 저주가 라일라에게 모조리 격추당했기에 더더욱 그런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오크 같은 몬스터에게 그녀의 저주가 닿자 그 효과는 놀랍고 끔찍했다.

“저주를 한번 경험해 보고 싶은 사람 있냐?”

지크의 질문에 세 사람은 짠 것처럼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저주에 걸린 오크를 다시 한번 쳐다봤다.

고통의 저주에 걸린 오크는 스스로 자해해 절명해 있었고 서로 싸우던 둘은 모두 깊은 상처를 입은 것이, 승자가 누가 되든 살아남는 녀석은 없을 게 분명했다. 눈이 먼 오크도 당황해 몸부림치다 커다란 바위에 머리를 박아 쓰러져 있었다.

“마법보다 화려하진 않지만 마력의 소모도 적고 훨씬 빠르게 구현할 수 있으며 적중률도 높아요. 저주는 저주의 장점이 있는 법이죠.”

마릴린이 장난스럽게 으스댔다.

“그 모든 게 라일라에게 박살났지만요.”

“그건 라일라 씨가 너무 강했던 거예요! 저주를 번개로 요격했을 때는 정말로 심장이 주저앉는 줄 알았다니까요! 마법을 가만히 있는 목표에 제대로 꽂는 것도 힘든데 날아가는 저주를 명중시키다니요! 그것도 그 다루기 어렵다는 번개의 마법으로요! 저주의 빛은 그렇게 덩치가 크지도 않았다고요!”

지크의 소매를 흔들면서 마릴린이 징징댔다. 라일라의 실력은 충분히 그럴 만했다.

그 이후로도 마릴린은 한참 지크에게 투덜거렸다.

그 모습을 옆에서 라일라가 묘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 * *

지크 일행은 몇 번 더 몬스터들을 찾아 마릴린과 합을 맞췄다. 그 동안 일행은 마릴린과 한결 더 친해졌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친해진 둘이 있었다. 한 명은 당연히 지크, 다른 한 명은 라일라였다.

마릴린은 일행으로 받아들여진 뒤 지크 일행이 있는 숙소로 옮겼다. 그리고 일행과 어울려 다녔다.

볼일이 있어 라일라가 잠시 외출을 하고 들어올 때였다. 누군가 뒤에서 그녀를 꽉 껴안았다.

며칠 전 같으면 놀라 당장이라도 들고 있는 지팡이를 사용해서 머리부터 후려갈겼을 것이다. 하지만 짐작 가는 사람이 있어, 라일라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말았다.

“그렇게 달라붙지 말라고 했잖니, 마릴린.”

“그치만 라일라의 뒷모습을 보면 이렇게 달려들지 않고는 못 견디는걸!”

“변태니?”

“음, 라일라에 한해서는 부정할 수 없을지도.”

“그런 건 걱정 않게 확실히 부정을 해줬으면 했어.”

마릴린은 라일라의 등에서 떨어져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서로 이름을 부르며 말까지 놓은 둘의 모습은 마치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 같은 모습이었다.

“원하는 건 찾았어?”

“아니. 솔직히 별 기대는 안 했어. 비올루윈은 관광도시니까 마법에 관한 물품이나 정보 같은 게 많이 있을 리 없으니까. 그냥 산책 겸 해서 돌아다닌 거야.”

“머리 식히러 간 거구나? 얼마 뒤에 간다는 중요한 곳에 대비해서 말이야.”

“그래.”

얼마 뒤, 지크 일행은 다시 한 번 클로원 황제들의 무덤을 공략하기로 했다. 아직 마릴린에게 정확한 정보를 준 건 아니고, 중요한 곳에 간다는 정도로 말을 해뒀다.

둘은 거리를 걸으며 계속 대화를 했다.

무척이나 시시콜콜한 이야기. 하지만 그것도 곧 끝을 맺었다.

“아, 지크 님!”

숙소 앞에 지크가 나와 있는 것을 본 마릴린이 그에게 뛰어갔다. 그 모습을 라일라는 뒤에서 지켜봤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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