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55화 (355/628)

제355화

‘큭!’

지크는 급히 정신을 다잡았다.

‘잠깐 정신을 잃었었나?’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었다. 대비를 한다고 했지만 불의 마력과 자신의 마력의 충돌의 여파는 상상 이상이었다.

‘바로 정신이 든 게 다행이군.’

고작해야 찰나라고 해도 될 만큼 짧은 시간 동안 한 기절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 순간마저도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정신이 들자마자 황급히 불의 마력의 고삐를 조이지 않았더라면 지크의 몸은 라일라가 말한 대로 한 줌 잿더미로 변했을 것이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자신이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길을 가는 이유는 승리를 쟁취하기 위함이다. 이런 곳에서 개죽음을 당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목숨을 건 대가는 분명 있었다.

‘풀렸다!’

주인인 지크가 그렇게 어르고 달래도 꿈쩍도 하지 않던 마력의 일부가 산산이 깨져나갔다.

수확할 때를 맞은 밀을 베는 농부처럼, 지크는 그것들을 모두 거둬들였다.

‘좋아!’

그것들은 착실하게 지크의 가용마력으로 변환됐다. 지크는 그것들을 바로 불의 마력을 다루는 데 동원했다.

‘한 번 더 한다.’

지크는 다시 불의 마력을 움직였다. 이번엔 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한층 더 긴장을 했다.

콰아아앙!

‘큭!’

이번엔 의식이 날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직전까지 가기는 했다.

‘역시 쉬운 일이 아냐.’

속으로 투덜대면서도 지크는 다시 깨진 마력을 수확해 자신의 가용마력으로 만들었다.

지크는 또다시 불의 마력을 유도했다.

콰앙!

콰앙!

콰아앙!

계속해서 불의 마력과 지크의 마력이 충돌한다. 그때마다 굳어 있던 마력이 깨져나갔고, 지크는 그것을 열심히 수습했다.

그렇게 몇 번이나 굳어 있는 마력을 깨부쉈을까.

번뜩!

지크가 눈을 떴다. 그의 눈으로 한 줄기 광채가 스쳐 지나갔다. 모두의 긴장된 눈빛이 지크를 향했다.

“후우!”

지크가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 의미가 담긴 한숨이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고통이 끝났다는 기쁨과 온몸이 축축 늘어지는 피로감.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몸에서 가득 느껴지는 마력으로부터 느끼는 기쁨이었다.

“괜찮아?”

라일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몸에 이상은 없어.”

“다행이야.”

그녀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몸의 안부를 확인했으니 다음에 확인할 것은 목적을 이뤘는지다.

“마력은 어때?”

라일라의 질문에 지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온몸에 마력을 돌리며 이번에 얻은 성과를 확인했다.

지크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확실히 성공했다.”

온몸에 끓어 넘치는 마력이 느껴졌다.

* * *

높은 위험부담을 안은 대가로 많은 마력을 얻은 지크였지만, 그렇다고 그게 끝은 아니었다.

위험한 편법을 동원해 짧은 시간 안에 막대한 마력을 얻었다면, 지금부터는 순수한 노력을 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후욱! 후욱!”

지크의 숨이 거칠다. 웬만해서는 숨이 거칠어지지 않는 그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온몸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근육은 계속 비명을 질러댄다.

하지만 지크는 묵묵히 단련을 계속했다. 비명을 지르는 근육을 더더욱 쥐어짰다.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일행이 지켜보고 있었다.

꿀꺽!

누군가 침을 삼켰다. 누군지는 모른다. 혹시 자신이 저도 모르게 삼켰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지크의 훈련은 강도가 높았다.

“…저 반성해야겠어요, 선배.”

“뭘?”

스녹과 한스가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

“지크 님이 저희를 훈련시킬 때마다 ‘가벼운 훈련이다’, ‘쉽지 않냐’ 같은 말을 했을 때 조금 얄미웠었는데, 지금 보니 알겠네요.”

스녹이 한숨 쉬듯 나머지 말을 내뱉었다.

“그 말이 과장이 아니란 걸요.”

쿠우.

노웸이 동의하듯 목소리를 냈다. 한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지크가 하고 있는 훈련에 비하면 정말로 자신들이 받은 훈련은 어린아이의 소꿉장난 같은 것이었다.

우드득!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일행의 안색이 좋지 않아졌다. 무리한 훈련을 감당하지 못하고 지크의 손목이 꺾인 것이다. 소리를 들어보니 뼈까지 부러진 게 분명했다.

상당한 고통이 있을 법하건만 지크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묵묵히 옆에 준비해뒀던 포션을 들어 손목에 부었다. 부어오르려던 손목이 순식간에 원상태로 회복됐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훈련으로 돌아갔다.

일행이 지크를 질린 눈으로 쳐다봤다.

지크가 그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뭘 구경만 하고 있냐? 너희들은 훈련 안 할 거냐?”

“아, 아뇨!”

“당장 하겠습니다!”

쿠우!

한스와 스녹이 허둥지둥 움직였다. 노웸은 스녹의 어깨 위에 딱 달라붙었다. 엘레나도 슬그머니 라일라의 근처로 가 몸을 움직였다.

구경꾼들을 쫓아낸 후 지크는 다시 하던 훈련을 마저 하기 시작했다.

‘더욱 튼튼한 몸을 만들어야 해.’

거대한 마력은 분명 지크에게 압도적인 힘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아무리 튼튼하게 지어진 요새라도 지반이 무르다면 순식간에 붕괴될 것이다.

몸도 마찬가지. 거대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해도 그 마력을 감당하는 몸이 부실하다면 반동으로 인해 오히려 자신의 육체가 찢길 것이다.

따라서 강한 마력을 얻은 지크에게 필요한 건 더욱 단단한 육체였다.

‘힘들군.’

그럴 수밖에 없다. 벌써 몇 시간째 일절 마력을 사용하지 않고 말 그대로 몸을 학대하고 있다. 절대 좋은 훈련 방법이 아니다. 이런 무리한 훈련은 오히려 몸을 망친다.

하지만 지크는 그 부작용을 포션이라는 사치스러운 방법으로 무시해버렸다.

‘이제 남은 포션도 얼마 없어.’

상당한 양이 있었던 포션도 온갖 곳에 쓰이다 보니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애초에 포션을 물 쓰듯 쓰고 다닌 지금까지가 오히려 더 이상했었다.

‘그래도 비상용으로 어느 정도는 챙겨야 하니 이 수련도 오래는 못 하겠군.’

점점 강해지는 자신의 상태를 즐기던 지크는 못내 아쉬웠다.

‘그래도 어느 정도 힘은 되찾을 수 있을 거야.’

지크는 몸에 마력을 돌렸다. 아직 몸이 적응하지 못해 통증이 밀려왔다.

그러나 마력의 흐름은 끊기지 않았다. 만약 화염의 눈물로 마력을 억지로 깨운 직후 이런 식으로 마력을 운용했다면 어딘가 탈이 나도 단단히 났을 것이다.

무식한 훈련이지만 분명 성과는 굉장했다.

‘여기서 실력을 올릴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올리고 간다.’

지크는 다시 화염의 눈물을 쥐고 라일라가 그려놓은 마법진으로 걸어갔다.

* * *

슈트올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지크 일행은 다시 비올루윈으로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여행은 여느 때와 같았다. 빽빽한 수풀과 험난한 지형을 헤치며 직선으로 향한다. 당연히 밤에는 노숙이었다.

그 짬짬이 지크는 계속해서 화염의 눈물을 운용했다.

처음처럼 막대한 속도로 힘이 늘어나진 않았다. 물의 나무의 곁을 떠난 터라 물의 마력의 백업을 받지 못해 한층 더 조심스럽게 불의 마력을 운용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속도였다.

“후우!”

날숨을 깊이 내뱉고 지크가 눈을 떴다. 한스와 스녹이 신기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게 보였다.

“너희도 해볼 테냐?”

지크가 장난스럽게 화염의 눈물을 내밀었다. 라일라가 타박했다.

“애들 죽일 일 있어? 그런 건 권하지도 마.”

“저, 저희는 괜찮습니다.”

한스가 더듬대며 거부했고 옆에서 스녹이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크도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었는지 별말 없이 화염의 눈물을 회수했다.

“비올루윈인가. 그다지 가고 싶은 곳은 아닌데.”

라일라가 모닥불을 쳐다보며 한탄조로 말했다.

도시에 떡 하니 서 있는 자신들의 동상을 보면 참 뭐라 말할 수 없는 창피함이 몰려든다.

“이번에도 변장을 해야겠지?”

“골치 아픈 일을 피하려면 그렇게 해야지.”

엘레나는 라일라와 지크의 대화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조용히 옆에 있는 스녹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그 도시에서 뭔가 책잡힐 일이라도 있었어?”

“일이 있었긴 있었지. 하지만 반대야.”

“반대?”

“도시가 우리를 비난하기 때문에 정체를 숨기려는 게 아니라, 너무 환영해서 숨기려는 거야. 예전에 비올루윈에서 일어났던 일, 말해준 적 있지?”

엘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우리가 구해준 후로 도시 자체가 우리에게 상당히 호의적이 됐거든.”

“그럼 좋은 거 아냐?”

“좋지. 좋은데, 그 호의가 너무 부담스러워져서 말이야.”

‘가면 알게 될 거야.’라고 말을 마무리 짓는 스녹에게 엘레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우와아아아아!”

넓은 광장의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는 네 개의 동상을 보고 엘레나가 입을 쩍 벌렸다. 특히 그녀는 라일라의 동상을 보고는 감동받은 태도를 숨기지 않았다. 라일라가 민망해했다.

“그만 보렴!”

하지만 엘레나의 반짝이는 눈빛은 그칠 줄 몰랐고, 지크는 대놓고 낄낄거렸다. 결국 라일라의 손이 지크의 등짝을 가격했지만 지크의 웃음을 멈추지는 못했다.

그게 지크 일행이 비올루윈에 다시 도착한 날 일어난 일이었다.

* * *

“정말로 대단하세요!”

도시에 들어온 후, 엘레나는 정말로 감명을 깊게 받은 모양이었다. 자신의 일행이 자그마치 도시에서 동상까지 만들어 줄 영웅이라니. 슈트올을 구하는 데에는 그녀도 한 손 보태긴 했었지만 이런 엄청난 대접을 받진 않았다.

게다가 비올루윈 곳곳에 보이는, 지크 일행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식물들과 그들은 찬양하는 노랫소리는 그들이 얼마나 이 도시에서 사랑받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거 봐봐, 스녹!”

엘레나가 어떤 노점에서 산 작은 목걸이를 들어 올렸다. 목걸이에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작은 장식이 달려 있었다.

“이 도시를 구한 용사 중 한 명이 길들이고 있던 환수라네?”

쿠?

장난스러운 엘레나의 말에 스녹보다 먼저 노웸이 반응하며 목걸이의 장식을 봤다.

마치 고대의 드래곤이 이렇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미화가 잔뜩 된 자신의 모습에 노웸이 입을 쩍 벌렸다.

쿠!

단호한 노웸의 항의에 엘레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의 어깨에서 작은 난동을 부리는 노웸을 스녹이 달랬다. 그 모습을 보며 엘레나가 더 크게 웃었다.

엘레나는 액세서리를 노웸의 목에 걸어줬다. 겨우 진정했던 노웸이 다시 크게 성을 내며 장식을 이빨로 질겅질겅 씹어댔다.

“아, 안 돼, 노웸! 이상한 거 씹지 마!”

쿠우우!

다시 한번 한 명과 한 마리가 난리를 쳤다.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인 엘레나는 뒤로 슬쩍 빠져 라일라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왜 스승님과 다른 사람들이 변장을 해야 했는지 이젠 확실히 알겠어요. 대단한 인기시네요.”

그녀의 말처럼 엘레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작은 변장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정도의 변장만으로 충분한가요? 그렇게 많이 바뀐 건 없어 보이는데요.”

“어차피 우리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드물어. 광장에 세워져 있는 동상도 우리의 모습을 똑같이 만들었다고 볼 수도 없고. 그리고 사람들은 자기와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의외로 사람을 알아보는 것에 확신을 갖지 못해. 그냥 비슷한 사람이라고 여기겠지. 예전에 두 번째로 왔을 때도 우릴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단다.”

“그렇구나.”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만약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글쎄? 어떤 식으로든 우리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 아닐까? 전투 중에 봤다거나, 도시를 재건할 때 도움을 주기도 했고, 도시의 상층부와는 안면도 있으니까.”

“그렇지 않다면 엄청난 팬이라든가요.”

“그럴지도 모르겠네.”

엘레나의 엉뚱한 말에 라일라는 살포시 웃으며 긍정해줬다.

* * *

지크는 도시의 분위기를 보기 위해 혼자서 행동을 하는 중이었다. 별달리 변한 건 없었다.

‘이 아래에 땅의 나무가 있다고는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 평범함이야.’

하지만 그건 슈트올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돌아다녀도 얻을 건 없다. 지크가 일행에게 돌아가려 할 때였다.

“저, 저기!”

누군가 그를 불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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