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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53화 (353/628)

제353화

“따지자면 화염의 눈물이라고 불러야 할까?”

누구든 쉽게 수긍할 정도로 그것은 호수의 눈물과 닮았다. 안에 거대한 힘이 든 것도 똑같았다. 그저 속성이 정반대였을 뿐.

“불의 나무가 있는 곳에는 호수의 눈물이 있었고, 물의 나무가 있는 곳에는 화염의 눈물이 있다. 우연치고는 무척이나 공교롭군.”

“그런 우연이 있을 리가 없지.”

라일라가 단호하게 답했다.

“뭔가 알고 있어?”

“응. 알게 됐어.”

이번에 갖게 된 파이넬의 기억을 일컫는 것이다.

지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의 나무를 지배하려 자신의 신체에 화염의 눈물을 박아 넣은 것이 파이넬이다. 모를 수가 없다.

“저게 있던 곳은 연구소야. 이 방에 들어오기 전에 여러 통로들과 방을 봤었지? 그곳이 제국의 연구소였어.”

“연구 대상이었나? 아니, 오히려 제국이 만든 것일 수도 있겠어.”

“맞아. 제국이 만든 거야.”

“진짜였냐. 이런 것까지 만들어 내다니. 정말로 어마어마한 저력을 갖고 있던 나라였군.”

만약 그 제국이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었다면 과연 지크를 포함해 마왕들과 마인들이 활개 칠 수 있었을까.

회귀라는 사기적인 능력이 없었다고 해도 제국은 아마 능히 마왕들과 마인들을 제압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인하러 가보겠어?”

“당연히 그래야지.”

지크가 여전히 물의 나무에 관심을 보이는 세 사람을 불렀다. 유적을 들렀다 슬슬 돌아갈 참이었다. 하지만 그를 라일라가 말렸다.

“어차피 다시 오게 될 거야. 가면서 또 할 말도 있고.”

할 말이란 한스와 스녹, 엘레나에게 숨겨야 하는 말일 터.

“괜히 돌아왔군. 아까 나갔을 때 할 일을 모두 처리하고 올걸.”

지크의 투덜거림을 한 귀로 흘리고 라일라가 모인 세 명에게 말했다.

“이 나무에 변화가 생길 거니까 놀라지 마렴.”

그리고 라일라는 지크를 데리고 방을 나섰다.

주 통로를 따라 쭉 걸으니 양옆으로 여러 작은 통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라일라는 망설이지 않고 통로 중 하나를 골라 들어갔다. 얼마 쯤 걷자 커다란 방 하나가 나타났다.

“여기야?”

“그래.”

지크는 방을 천천히 살폈다.

방 전체에 정교한 마법진이 새겨져 있다. 놀랄 일은 아니다. 이미 벽에 새겨진 마법진들을 다른 방에서도 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 방만의 특색도 있었다.

방 가운데에 사람 허리만치까지 솟아 있는 팔각형의 돌기둥. 이것 역시 표면에 빽빽한 마법진이 새겨져 있고 맨 위에는 동그란 홈이 파져 있다.

라일라가 기둥 앞으로 걸어가더니 홈에 화염의 눈물을 올려놨다.

화르륵!

화염의 눈물에서 거친 불길이 치솟는다. 라일라가 세 걸음 정도 물러났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지크에게도 화끈한 열풍이 불어 닥쳤다.

우우우우웅!

방에 있는 마법진이 공명한다. 그것들이 깜박깜박 붉은빛을 내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화염의 눈물에서 치솟은 불꽃이 기둥에 새겨진 마법진을 따라 옮겨 붙기 시작했다. 그건 무척이나 장엄한 광경이었다.

“이거 괜찮냐?”

지크가 라일라에게 가까이 붙어 말했다. 그의 손은 등 뒤에 있는 윈두르를 잡고 있었다. 위급한 사태가 되면 바로 윈두르를 빼 들 심산이었다.

“괜찮아. 마법진으로 뻗어 나온 불꽃은 그리 뜨겁지 않아.”

라일라의 말대로 마법진들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는 작은 불길들은 은은한 열기를 방출할 뿐, 사람을 해할 정도로 강렬한 열기를 뿜지는 못했다.

오히려 방 안을 따뜻하게 만들어 아늑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지크는 윈두르에 올려둔 손을 뗐다.

“돌아가자, 지크. 나무에 변화가 있을 거야.”

지크와 라일라는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도중에 라일라가 입을 열었다.

“생각해봤던 게 있어. 회귀라는 건 보통 능력이 아니잖아?”

“그렇지.”

세계의 시간을 돌려버리다니. 그 얼마나 엄청난 기적이란 말인가.

“난 아무리 굉장한 능력을 가졌던 제국이라 할지라도 아무런 토대도 없이 회귀 능력을 만들었을 가능성은 적다고 봐.”

제국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회귀란 능력이 터무니없기 때문이었다.

“그 엄청난 능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려면 분명 뭔가 초석이 있었을 거야. 말 그대로 사람의 인식을 벗어날 정도의 뭔가가 말이지.”

라일라가 전면을 바라봤다. 이 통로의 끝에 그 엄청난 나무가 있다.

“난 저 나무들이 의심스러워.”

“회귀 능력을 만들어내는 게 나무들이란 뜻이냐?”

“그래.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만큼 막대한 마력을 품은 나무들. 게다가 우리가 찾은 세 개의 나무 전부 클로원과 관계가 있었어.”

땅의 나무는 제국 황제들의 무덤에. 불의 나무는 제국의 점령지에. 물의 나무는 제국의 연구소에 있었다.

“만약 정말로 회귀 능력의 근간이 있다면 저것들이 가장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어.”

“확실히 그렇군.”

“하지만 엄청난 마력에 자연 그 자체의 속성을 갖고 있는지라 다루기는 어려울 거야. 가공이 필요하지.”

“화염의 눈물이 가공 장치란 뜻이냐?”

“내 생각엔 그래.”

지크는 파이넬을 떠올렸다. 그녀는 화염의 눈물을 이용해 물의 나무를 지배하고 있었다.

하나, 화염의 눈물을 빼앗으니 나무의 막대한 마력을 견디지 못 하고 그대로 터져나가 버렸다.

그걸 생각하면 라일라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무의 힘을 억제하는 장치일 거야. 나무의 힘은 너무도 커서 그 상태론 힘을 컨트롤하지 못할 테니까.”

지크와 라일라는 곧 나무가 있는 방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예전에 봤던 것과 같이, 물줄기는 사라지고 가지마다 물방울들이 달려 있는 물의 나무의 모습을.

* * *

지크 일행은 다시 슈트올로 돌아왔다. 일행은 대부분 여관에 눕자마자 뻗었다.

그다지 긴 모험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받은 정신적 피로는 웬만한 장기 여행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그만큼 파이넬은 강적이었다.

한스와 스녹, 엘레나가 오랜만에 맛있는 밥과 편안한 잠자리에 행복해하며 꿈나라로 빠져든 사이, 지크와 라일라는 다시 한번 방에 모였다.

아까의 이야기를 마저 끝내기 위해서였다.

한스, 스녹, 엘레나는 완전히 곯아떨어져 있어 그들만의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좋았다.

“회귀에 나무들이 관련되어 있을 거라고 했지?”

지크의 관심은 당연히 그것이었다.

솔직히 그렌도 회귀를 했을 뿐만 아니라 몇 번이고 자기 마음대로 회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조금 조바심이 난 것도 사실이었다.

지크 자신이 어떤 수를 내건 간에 시간을 돌려버리면 그걸로 끝이 아닌가.

시간 회귀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지크였다. 그 자신이 시간 회귀의 수혜자였으니까.

그러나 만약 라일라의 주장이 맞다면, 그렌의 시간 회귀를 막을 방도가 생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는 윈두르만 보고 있었는데 말이야.’

밸리드 북부 지부를 괴멸시키고 그렌을 만났을 때, 지크는 그렌도 회귀를 했는지 떠본 적이 있다.

그때 그렌의 반응은 무척이나 옅었다. 때문에 지크는 그렌은 회귀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하지만 지금, 그렌은 무수한 회귀를 반복한 것이 확실해졌다.

그렇다면 그때 그렌은 모른 척 능청을 떤 것인가.

‘아니, 진짜 모를 가능성이 높아.’

지크의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녀석은 왜 회귀 전의 일을 모르는 것일까.

‘녀석이 주가 된 회귀가 아니니까. 그때만큼은 녀석도 휘말리는 측이었던 거야.’

때문에 지크는, 자기가 아는 유일한 회귀의 열쇠인 윈두르에 관심을 가지고 회귀에 대해 해명하려 노력했다.

목적은 그렌이 더 이상 시간을 돌리는 걸 막기 위해서.

한데, 윈두르 외에 회귀와 관련이 있어 보이는 주장이 튀어 나온 것이다.

“신비한 다섯 나무에 대한 이야기, 기억해?”

“아드로원 대수림에서 들은 거로군.”

“맞아. 나는 그 다섯 나무가 우리가 본 나무들이라고 생각해. 아마 나머지 두 그루도 클로원과 관련되어 있는 곳에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다섯 그루가 모여서 회귀 시스템을 지탱하고 있는 거야.”

그 막대한 마력과 힘을 가진 나무가 총 다섯 그루가 동원되어 지탱하는 시스템이라니. 그 정도라면 충분히 시간 회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회귀를 막으려면 그 나무들을 모두 벌목해 버려야 하나.”

“가능하다고 생각해?”

“무리지.”

마왕 지크 모어라 해도 저 나무를 벌목하는 건 불가능했다. 벌목을 시도하다가 오히려 역으로 당할 가능성이 컸다.

나무에게 죽은 마왕이라.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농담이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있을 수도 있어.”

“뭐지?”

“나무들을 찾아 그 억제기들을 해체하고 다니는 거야.”

“자세히 말해 봐.”

“호수의 눈물. 그리고 우리가 화염의 눈물이라고 이름 붙인 것. 그것들은 전부 나무들을 억제하기 위한 것들이야. 그것들의 속성이 나무와 정반대인 것도 그 때문일 거야.”

불의 나무가 있던 곳에는 물의 마력이 깃든 호수의 눈물이 있었고, 물의 나무가 있던 곳에는 불의 마력이 깃든 화염의 눈물이 있었다.

“아마 다른 곳에 있는 나무들도 각자 속성에 반대되는 눈물이 있겠지. 클로원이 이것들을 나무 근처에 둔 이유는 하나일 거야.”

“힘을 억제해 나무를 자기 좋을 대로 이용하기 위해서.”

“그래. 그리고 정말로 회귀 능력이 나무들을 이용해서 만들었다면, 당연히 억제된 나무들을 기초로 시스템이 만들어졌을 거야. 아무리 클로원이라도 나무의 진짜 힘을 다룰 수는 없을 테니까.”

“즉, 우리가 나무들을 찾아 그 눈물들을 회수해 버리면 억제된 나무의 힘을 근간으로 삼은 회귀 시스템 자체가 무너져 내릴 거라는 거군.”

“정확해.”

지크는 턱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원래 불의 나무는 억제기가 제거된 상태 아니었나? 호수의 눈물은 제국의 유적 멘티스가 아닌 엘프, 호수의 일족이 갖고 있었잖아. 내가 처음 불의 나무가 있는 방을 열었을 때도 그건 활활 타오르면서 힘을 계속 뿜고 있었다고.”

“이미 시스템을 구축한 이상 하나 정도 억제기가 해제된다고 해도 돌아가기는 한다는 거겠지. 하지만 분명 삐걱대고 있을 거야.”

“그럼 물의 나무를 해방시킨 걸로 그 시스템은 더더욱 삐걱대겠군.”

“내 생각이 맞다면.”

“한 그루 정도 더 해제하면 시스템은 기하급수적으로 삐걱대겠지?”

“어쩌면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될지 몰라.”

“그러고 보니 우리가 행방을 아는 나무가 한 그루 있었지.”

위로 자란다는 자연의 대원칙을 무시하고 허공에 뿌리를 두고 땅 밑으로 자라는, 비올루윈의 무덤에 있던 나무.

하지만 지크와 라일라 모두 입을 다물었다. 무덤의 적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적할 수 있겠어?”

일단 묻는 라일라였지만,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비올루윈이라는, 확실한 클로원의 유적을 놔두고 슈트올로 온 것도 비올루윈의 적들을 대적하기가 버거웠기 때문이 아니던가.

“라일라, 너 이번에 좀 강해졌지?”

“눈치챘어?”

“그 정도야 눈치채지.”

“파이넬에게 몸을 빼앗기려던 게 오히려 행운이 돼서 돌아온 것 같아. 좋아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라일라는 씁쓸하게 말했다.

“확실히 가용 마력도 높아지고 마법의 위력도 올랐어. 하지만 그렇다고 나 혼자 비올루윈의 적들을 감당하기는 무리야.”

“혼자 감당할 필요는 없어. 나도 어쩌면 수가 날지도 모르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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