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0화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끄이에아아오어이이이!
형언할 수 없는 괴상한 목소리가 파이넬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녀의 본체는 물론이고 그녀가 끌어모으던 고깃덩이들까지 모조리 부풀어 올랐다.
-끼에아아아아!
다른 입들마저 각자의 비명을 질러댄다.
그것도 잠시. 붙어 있던 눈, 코, 입, 귀에서 푸른색의 빛줄기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건 마력이었다. 그것도 겉잡을 수 없이 압도적인 마력.
그 대단한 지크조차 한 발자국 물러나게 만들 정도로 그 마력은 강대했다.
지크와 라일라의 눈이 마주쳤다.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력의 격류에서 떨어졌다.
‘그 녀석들은….’
지크가 한스, 스녹, 엘레나를 찾았다. 세 명도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꼈는지 자신들이 상대하고 있던 고깃덩이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지크와 라일라는 그들에게 합류했다.
-아아아아악! 아악! 아아아아아아악!
파이넬의 처절한 비명. 듣는 사람조차 아찔하게 만들 비명에 적인 지크 일행조차 표정이 안 좋아졌다.
물론 지크는 예외였지만.
콰아앙!
파이넬의 몸이 폭발했다. 거센 마력의 격류가 그녀의 몸을 갈가리 찢었다.
그녀의 본체는 물론 공간에 퍼져있는 그녀의 다른 몸체까지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터져나갔다.
스윽!
한참을 공간을 헤집던 마력이 사라졌다. 남은 건 나무에서 유유히 뿜어져 나오는 은은하고도 차가운 마력뿐이었다.
“…저게 나무의 본래 모습이구나.”
라일라의 말처럼 나무의 모습은 변해 있었다. 나뭇잎 대신 물방울을 달고 있던 모습은 사라지고, 나무의 가지가지마다 맑은 물줄기를 줄줄 뿜어댔다.
마력이 가득 담긴 그 물줄기는 자신의 뿌리를 거쳐 땅의 굴곡을 따라 호수로 흘러내렸다.
그 모습은 무척이나 신비했다. 나무에서 흩뿌리는 푸른빛도 예전보다 조금 더 밝아진 것 같았다.
“저거 봐, 노웸. 나무에서 물이 나오고 있어.”
쿠!
“나무가 물을 만들어내는 건가?”
“그건 아닐 거야.”
아직 힘이 돌아오지 않아 엘레나의 부축을 받고 있던 라일라가 스녹의 말을 부정했다.
“아마도 주변 호수에서 물을 끌어오고 있는 걸 거야. 그게 그냥 물일지라도 물질을 창조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니까. 아무리 저런 나무라도 그런 걸 할 순 없겠지.”
“그렇군요.”
‘뭐, 쏟아내는 물에 저 정도 마력을 흘려내는 것만으로도 경악스럽지만.’
라일라는 경외에 찬 눈으로 나무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무를 보는 것보다 우선해야 할 일이 있었다.
“엘레나. 저쪽으로 좀 가주겠니?”
“네? 스승님! 저기는….”
라일라가 가리키는 곳을 본 엘레나가 머뭇거렸다. 사랑스러운 제자의 걱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건 라일라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부탁하마.”
스승의 부탁이니 감히 거절할 수가 없다. 엘레나가 지크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다.
“걱정 마. 나도 같이 갈 테니까.”
“감사해요.”
지크가 동행한다면 마음을 놓을 수 있다. 엘레나는 라일라를 조심스럽게 부축해 그녀가 원하는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주변에는 마력 폭주에 의해 터져나간 파이넬의 육편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새까맣게 타버린 그것은 재생할 낌새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라일라가 가기 원한 곳은 일행이 있는 곳과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다.
라일라와 엘레나의 발걸음이 멈췄다. 지크는 그녀들과 반 발자국 떨어진 곳에 섰다.
라일라의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마력에 의해 바짝 타버린 고깃덩이. 파이넬의 육체다. 하지만 다른 파이넬의 육체와는 달리 그건 아직 커다란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다.
-으, 아, 아아….
조금씩 흘러나오는 신음은 그저 관성으로 내는 것일 뿐, 파이넬은 이미 아픔은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그 정도로 신체의 기능 대부분이 정지했다.
“…파이넬.”
라일라가 이제 머리와 가슴께밖에 남지 않은 파이넬의 이름을 불렀다.
‘저게 저 녀석의 이름인가?’
지금껏 저것, 혹은 저 녀석, 혹은 고깃덩이 등등으로 불렀던 지크가 파이넬의 이름을 정식으로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저 조용히 라일라가 하는 양을 쳐다볼 뿐.
-…너…어어….
파이넬이 바닥에 파묻힌 얼굴을 들었다. 새까맣게 탄 얼굴이 보인다. 코가 날아가고 눈 하나도 짓뭉개져 있다. 간신히 살아남은 눈 또한 시력을 거의 잃었다.
그나마 청각이 기능을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도 성능이 무척이나 떨어져 있었다.
-…네…네 녀…어언….
몸이 완전히 불타버렸어도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증오의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하나 남은 눈이 라일라를 노려본다. 그러나 시력을 거의 잃은 파이넬의 눈동자는 라일라를 비스듬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거…끝…아…니….
죽어가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그녀는 저주를 토했다.
-회귀…더 일어나면…그 때…반드…시…자…유….
“…파이넬.”
파이넬의 얼굴이 더욱 험악해졌다.
-날 그 이름…으로…부르지…마…!
피를 토하며, 마지막 힘을 짜내 그녀가 외쳤다.
-난 복종이 아…!
털썩!
더 이상의 말은 없다. 파이넬의 얼굴이 바닥에 그대로 처박혔다. 그녀의 움직임이 완전히 멎었다.
죽은 것이다.
지크는 윈두르를 들고 파이넬에게 걸어갔다. 확인사살을 하려는 것이다. 라일라가 급히 그를 불렀다.
“지, 지크! 굳이 그럴 것까진…!”
“네가 혼자 남았을 때 이 녀석과 어떤 관계가 된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이 녀석은 우리의 적이라는 거야. 그것도 아주 강력한. 죽었는지 아닌지 확인은 해야 해.”
지크는 단호하게 라일라의 말을 끊었다. 라일라는 입을 다물었다.
뭔가 말을 하고 싶은 듯 입을 달싹거렸지만 곧 지크의 말에 수긍한 듯 입을 다물었다.
푸욱!
윈두르가 파이넬의 몸을 찔렀다. 파이넬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라일라가 고개를 돌렸다.
지크는 몇 번을 더 찔러봤다. 하지만 파이넬의 움직임은 여전히 없었다.
지크는 윈두르를 빼내며 덤덤하게 선언했다.
“끝났다.”
* * *
전투가 끝나고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자 지크 일행은 주변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한스와 스녹, 엘레나가 몸에 포션을 뿌려 상처를 치유했다.
지크도 자신의 몸을 째서 박아 넣은 포션들을 하나하나 꺼냈다.
그 모습을 다른 일행이 질린 듯 쳐다봤다. 하지만 그저 질려하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위급할 땐 괜찮은 방법 같아.”
“확실히 그러네요. 문제는 ‘포션병을 어느 부분에 박아 넣어야 효과가 좋을까’와 ‘포션병을 박아 넣은 채로 얼마나 원래의 움직임을 낼 수 있느냐’ 정도일까요?”
지크의 저 미친 짓을 진지한 전술로 토론하는 한스와 스녹을 엘레나가 경악한 눈으로 쳐다봤다.
쿠우!
‘노웸마저!’
자신도 이 집단에 있으면 저렇게 되는 걸까. 갑자기 엘레나는 자신의 미래가 무척이나 걱정되기 시작했다.
라일라는 어느 정도 힘이 돌아왔는지 자신의 힘으로 서 있었다.
하지만 아직 평소처럼 행동하는 건 무리였다. 한발 한발 걸음을 내딛는 게 살얼음판 위를 내딛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몸으로 라일라는 계속 파이넬의 곁에 붙어 있었다.
“마음 정리는 다 했냐?”
피부에 묻은 자신의 피를 벅벅 닦으며 지크가 다가왔다. 라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은.”
“그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겠냐?”
“그래.”
어차피 지크에게 숨길 생각은 없었다. 라일라는 지크에게 따라오라 손가락을 까닥였다.
지금부터 나올 이야기는 회귀에 관한 이야기다. 한스나 스녹, 엘레나에게는 비밀이었다.
따라오려는 제자들을 지크가 손으로 만류했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걷는 라일라의 팔을 잡아 부축했다.
“고마워.”
라일라는 지크의 호의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크에게 반쯤 기댄 채 걸었다.
한스와 스녹, 특히 한스의 귀가 엄청나게 밝은 연유로 그들은 상당히 거리를 벌려야 했다.
나무가 있는 공간의 문을 지나 통로로 상당히 먼 거리를 걸었다.
“이쯤이면 한스 녀석에게도 들리지 않을 거다.”
“그래?”
라일라는 근처에 우뚝 솟은 바위에 걸터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지?”
지크의 질문에 라일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미 생각의 정리는 끝마친 상태다. 그녀의 목소리에 머뭇거림은 없었다.
라일라는 지크가 크라켄에 의해 호수 아래로 끌려 들어갔을 때부터 일어난 모든 일을 설명했다.
그리고 파이넬의 이름과 그녀의 정체, 그녀가 자신을 노린 이유, 그리고 자신의 정체와 그 외 자잘한 것들까지 전부.
“흐음.”
지크는 턱을 쓰다듬었다.
‘일단 의문 몇몇 개는 속 시원하게 해결됐군.’
지크는 얻은 정보들이 기뻤다. 하지만 축 늘어진 라일라를 보면 그녀는 지크와는 생각이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그래, 클로원의 공주님. 왜 그렇게 기운이 빠지셨지?”
“그렇게 부르지 마.”
“그럼 여신님이라고 불러드릴까?”
라일라가 도끼눈을 뜨고 노려본다. 하지만 지크란 인간이 어디 그게 통할 인간이던가. 과장되게 뒷걸음치며 낄낄거리는 게 한 대 확 패주고 싶었다.
“자기가 클로원의 높은 사람이었단 것에 불만을 가진 것 같진 않고. 그 파이넬인가 뭔가 하는 녀석에게 동정이라도 품은 거야?”
“동정. 그래, 맞아. 그 녀석이 불쌍하다고 느꼈어.”
“뭐, 네 말을 들으면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녀석은 맞지.”
실험체로 태어나 학대를 당하다가 결국은 남에게 살해당했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비극적인 삶. 하지만 지크는 거기에 그다지 의미를 닮지 않았다.
‘회귀 전에 그런 녀석은 말 그대로 도시 하나를 채울 정도로 있었으니까.’
하지만 라일라에게 자신과 같은 감성을 가지라 하는 게 무리라는 건 지크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파이넬의 비극적인 삶에는 라일라의 몫도 있지 않은가.
“죄책감도 느껴?”
“응.”
라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로 말을 이었다.
“기억을 잃기 전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대충 나온 것 아냐? 차갑고 냉정하며 클로원의 부활을 위해 앞을 막는 건 모조리 부수고 학살하는 마왕.”
라일라가 몸을 움찔 떨었다.
“그게 마음에 걸리는 거냐?”
“…그래.”
지크는 라일라의 상태를 온전히 눈치챌 수 있었다.
‘파이넬이란 녀석에 대한 동정, 죄책감에 기억을 잃기 전의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거겠지.’
지크 자신이라면 일고의 가치도 없이 무시할 것들이지만 라일라는 자신과 다르다. 그리고 평균적으로 라일라의 감성이 정상에 가까울 것이다.
‘게다가 나도 무시 못 할 일 정도는 있으니까.’
지크는 라일라의 앞에 털썩 앉았다. 맨바닥에 주저앉았기에 바위에 걸터앉은 라일라를 올려다보는 구도다.
하지만 라일라가 미묘하게 눈을 내리깔고 있었기에 이편이 눈을 맞추기에는 좋았다.
“뭐, 이해한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받아들일 수 없는 끔찍한 모습은 확실히 상상 이상의 충격이니까. 네가 얻은 정보에 따르면 브레이브라는 성을 쓰는 나의 존재도 거의 확실시 된 것 같으니, 네 감정 충분히 이해해.”
그건 지크에게 악몽과도 같은 충격이었다. 스물스물 올라오는 혐오감을 있는 대로 인상을 찌푸리는 것으로 표현했다.
그 모습은 우울해하던 라일라의 얼굴에도 작은 미소를 맺게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