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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46화 (346/628)

제346화

콰앙!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파이넬이 놀라 몸을 돌렸다. 자신의 몸, 정확히 말해 자신에게 이어붙인 자매들의 몸이 산산이 부서져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잔해들 사이로 사람 한 명이 착지했다.

탁!

지크는 가뿐하게 살덩이 위에 발을 디뎠다. 뭉클거리는 감촉이 엄청나게 기분이 나빠 인상을 찌푸렸다.

주변에 튀어나온 팔다리가 버둥댔다. 눈이 지크를 향하고 코가 킁킁거렸으며 입이 비명을 질렀다.

지크는 다짜고짜 가장 가까이에 혹처럼 툭 튀어 나와 있는 고깃덩이를 잘라냈다. 입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지크는 무시했다.

잘라낸 고깃덩이의 크기는 상당히 컸다. 말 그대로 집채만 했다. 지크는 그걸 들었다.

자신을 쥐어뜯으려 뻗는 팔을 마치 나무의 가지를 치듯 벤 후 자신이 뚫어 놓은 구멍을 쳐다봤다. 구멍을 통해 액체 괴물들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이제 여긴 출입금지다.”

낮게 뇌까리며 지크는 그대로 고깃덩이를 구멍에 틀어박았다.

콰지직!

구멍보다 고깃덩이가 훨씬 더 컸지만 구멍을 이루고 있는 바닥이나 지크가 들고 있는 것이나 모두 고깃덩이였기 때문에 억지로 힘을 주자 어떻게든 틀어박혔다.

오히려 그 때문에 물 샐 틈 하나 없이 빽빽하게 메였다.

지크는 이미 안으로 들어 온 액체 괴물들을 모조리 베어 넘긴 후 막아놓은 구멍을 봤다.

‘특성 때문에 상대하기 힘들었을 뿐이지 그다지 힘이 센 녀석들은 아니었으니까, 적어도 금방은 못 들어올 거다.’

콰직!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입을 가볍게 짓밟고 그 옆에 있는 눈에 윈두르를 찔러 넣은 후, 지크는 전면을 쳐다봤다.

“여, 오랜만은 아니지?”

고통에 주변 팔들이 윈두르를 득득 긁어댔지만 웬만한 희귀 금속보다도 단단한 윈두르가 그것에 흠집하나 날 리 없었다.

목표를 바꿔 지크를 노리는 팔들은 지크가 손수 짓밟아줬다.

-너는…!

파이넬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 표정은 정확히 일반인들이 집 안에서 튀어나온 바퀴벌레를 본 표정과 다를 바 없다고 지크는 생각했다. 내기해도 좋았다.

-죽거나 도망친 게 아니었나!

“죽어? 내가? 나를 죽이려면 고작 크라켄 한 마리를 딸려 보낼 게 아니라 깊은 해구 밑바닥까지 처박은 다음 몬스터 수십만 마리로 포위했어야지. 아니, 그런 환경이라도 죽을 자신은 없어. 고작 크라켄이랑 이상한 액체 괴물 좀 딸려 보낸다고 죽을 위인이 아니란 말이지. 나라는 분은.”

지크는 가슴을 펴고 으스댔다.

“그리고 도망을 쳐? 내가 승리 아니면 죽음을 외치는 싸이코는 아니라지만 너 같은 허접한 괴물 한 마리 때문에 도망칠 정도로 겁쟁이도 아니야.”

-주제도 모르고 지껄이기는!

파이넬이 소리치자 주변 공간 전체가 떨어 울렸다. 사방의 입에서 동시에 울리는 음성은 분명 어떠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러나 그딴 건 지크에겐 그저 귓가를 후벼 귀지를 ‘후~!’ 부는 것으로 끝날 만큼 가벼운 것이기도 했다.

“주제를 아는지 모르는지는 생각의 차이라고 해두고 말이야.”

지크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거기 라일라가 있지?”

파이넬의 근처에 고깃덩이가 뭉친 덩어리가 있었다. 어찌 보면 우화를 앞둔 곤충의 고치 같기도 했다.

-눈치는 빠르구나.

“내가 또 눈치 빼면 시체지.”

지크는 칭찬이라도 받은 듯 뻐겼다.

“라일라에게 상당히 대접을 해준 듯한데 말이야. 그 정도면 라일라도 충분하다고 할 것 같거든? 내가 충고하건데 대접을 너무 과하게 해도 이미지에 안 좋아요. 그러니 슬슬 라일라를 놔주는 게 어때?”

-헛소리.

파이넬은 지크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래, 그럴 것 같긴 했어. 너 같은 녀석은 충고를 고이 듣지 않거든. 어렸을 때 어른들 말을 삐딱하게 듣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딱 그런 스타일이야.”

지크는 윈두르를 바닥에서 뺐다.

“그런 놈들에게 효과적인 건, 아쉽게도 폭력뿐이지.”

-나에게 당해 바다 밑으로 끌려간 놈이 말은 잘 하는구나!

“네가 아니라 크라켄에게 끌려갔지. 너야 말로 기억 안 나냐? 그 커다란 힘을 가지고도 나한테 휘둘려서 크라켄을 불러대던 거 말이야. 동네 형한테 한 대 맞고 울며 엄마를 불러제끼는 건방진 꼬마 같았지.”

지크는 윈두르를 곧추세웠다.

“그런데 이젠 그 크라켄도 없네? 누구한테 이를 거야?”

-고작 한 번 우세를 점했다고 시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군! 그렇다면 덤벼 봐라! 아까의 우연이 두 번은 펼쳐지지 않음을 가르쳐 주마!

“그래그래. 배울 열정은 넘치니까 어디 한번 강의 제대로 해봐. 절대로 엄마는 부르지 말고. 아, 그 전에 한 가지만 묻자.”

지크의 어조가 지금까지와 달리 팍 가라앉았다.

“다른 놈들은 어떻게 됐지? 솜털이 보송보송한 애송이들 셋 말이야.”

-흥! 그놈들은 전부 죽였다!

파이넬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딴에는 지크의 성질을 긁으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나빴다.

“그래? 잘 탈출했구나. 역시 라일라야. 그 정도는 해줄 줄 알았지.”

-내가 죽였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 강의가 모두 끝난다면 이번엔 나한테 거짓말 강의를 좀 받아보지 않을래? 아무리 적이라도 불쌍할 정도로 솔직하다, 너.”

위해주는 듯한 말투였지만 천하의 지크가 그럴 리가. 말을 제외한 어조, 표정, 자세 모든 것을 동원해 파이넬을 극도로 깔아봤다.

-이 개자식이!

파이넬이 분노했다.

지크가 파이넬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바닥에 뻗어 있는 팔들이 지크를 잡으려 한다. 그러나 지크는 오히려 그것들을 짓밟고 달렸다.

물리적으로 대적하기 힘들자 그것들이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익숙한 광경이다.

입들이 각자 다른 주문을 외우며 팔에 마법이 맺힌다. 지크는 각오를 다졌다.

콰콰콰콰쾅!

지크에게 엄청난 마법이 쏟아져 내렸다. 서로 간의 상쇄나 간섭은 신경도 쓰지 않는, 오로지 숫자만을 무기 삼아 퍼붓는 폭격의 향연. 지크는 그 사이사이를 빠져나갔다.

그러나 아무리 지크라도 파이넬 본인이 사용한 마법은 대놓고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칫!”

혀를 차며 날아오는 불덩이를 피하고 발목을 잡으려는 냉기를 박살내며 정면으로 날아오는 번개를 흩어낸다.

콰아아앙!

커다란 굉음. 살덩이로 가득한 공간이 흔들리고 근처 입들이 비명을 질러댄다.

하지만 자신의 육체가 깎이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파이넬은 마법을 쏟아 부었다.

마법이 작렬할 곳의 입과 팔이 마법 장벽을 만들어 육체를 지키고 있는 것도 파이넬이 마법을 아랑곳없이 써대는 이유 중 하나였다.

물론 주 이유는 지크의 위험성을 처절하게 깨달은 것 때문이었다.

아까 목숨의 위협을 받은 것만으로도 지크에 대한 경계심은 굉장히 상승했다. 그것이 라일라의 기억을 빼앗으면서 최고치까지 올라갔다.

미래에 마왕 지크 모어라고 불릴 자.

‘절대로 만만히 볼 수 없어!’

정말로 일절 방심 없이 이를 악물고 파이넬은 마법을 날려댔다.

‘접근하기 힘드네.’

지크는 계속해서 마법을 후려치고 피하며 움직여 다녔다. 수면 위를 뒤덮은 자신의 살덩이 때문인지 물의 힘을 쓰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게 공격을 피해 다니길 얼마, 어느 순간 지크는 물컹거리는 살덩이가 아닌, 딱딱한 무언가에 내려섰다.

‘나무뿌리군.’

섬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거대한 나무. 공간이 모두 살덩이로 뒤덮여 있는 지금도 나무는 그 거대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살덩이의 엄습을 피할 순 없어 뿌리의 많은 부분이 살덩이에 파묻혀 있었지만 드러난 부분도 상당했다.

-거기서 죽어버려!

파이넬의 외침과 함께 나뭇가지에서 다시 물방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액체 괴물들을 다시 생성하려는 모양이었다.

지크가 그것들을 요격하기 위해 윈두르를 꽉 잡을 때였다.

우우웅!

윈두르가 떨렸다. 동시에 지크가 밟고 있는 나무가 가볍게 진동했다.

“응?”

-뭐, 뭐지?

지크와 파이넬, 둘 모두 당황했다.

파이넬로서는 처음 겪는 이상 현상이다. 하지만 지크는 달랐다. 그의 입가가 쭈욱 올라갔다.

‘역시 여기서도 되는군.’

그의 몸 안에서 그리운 마력이 폭풍처럼 치솟고 있었다.

지크가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방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검기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쳐 떨어지는 물방울들을 난도질했다.

물방울들은 괴물로 변하지 못 한 채 그저 나무뿌리나 살덩이에 부딪쳐 산산이 깨어져 나갔다.

파이넬이 입을 쩍 벌렸다. 지금 보인 지크의 힘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러다 문득, 라일라에게서 빼앗은 기억 중 하나가 떠올랐다.

물의 나무와 비슷한 나무들 근처에 있을 때, 지크의 힘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것이.

-젠장!

파이넬이 다시 마법을 퍼부어댔다. 하지만 지크는 그것들을 전부 베고 후려치며 나아갔다. 그럼에도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파이넬은 입술을 깨물었다. 지크와 나무의 관계를 조금 더 일찍 떠올렸다면 지크를 절대 나무 근처에 가지 못 하게 했을 것이다.

‘역시 빼앗은 기억은 제대로 된 정리가 필요 해.’

하지만 이미 상황을 되돌릴 순 없다.

‘어쩔 수 없지.’

지크가 나무 근처로 간 게 처음은 아니다. 애초에 파이넬과 근접해 치고받은 장소도 나무뿌리 부분이 아니었던가.

한데, 그 때 지크에게 힘이 발휘될 낌새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강한 힘을 펑펑 뿌려대고 있다.

생각나는 이유는 하나.

‘나무에 대한 지배력이 약해졌어.’

라일라를 제압하기 위해 나무뿌리로부터 벗어난 것이 문제였다.

파이넬은 살덩이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대로 살덩이를 통로 삼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전부가 그녀의 몸이다. 본체의 위치를 바꾸는 것 따위 쉬운 문제였다.

“거기냐!”

물론 지크도 만만치 않았다. 살덩이 안으로 움직이는 본체를 감지하고 공격을 뿌려댔다.

하지만 살덩이에 붙어있는 다른 팔과 입을 사용해 마법을 뿌리고 장벽을 펼쳐 가까스로 다시 뿌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녀는 우선 힘을 늘리기 위해 주변에 늘여놓은 살덩이들을 상당부분 회수했다.

우우웅!

파이넬이 본격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자 물의 나무의 진동이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동시에 지크의 마력도 잦아들었다. 사라져가는 힘에 지크는 혀를 찼다. 하지만 크게 아쉬워하진 않았다.

‘애초에 늘어난 힘도 얼마 되지 않았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강한 힘이었지만 예전에 휘둘렀던, 모든 마력을 전부 해방했을 때와 비교해 본다면 분명 심한 손색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저 고깃덩이 때문이겠지.’

하지만 괜찮다.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지크는 눈앞의 고기의 벽을 쳐다봤다. 아까 기억에 담아뒀던 이곳의 지형을 떠올려본다면 이곳은 원래 벽이 아닌 뻥 뚫린 공간이 있어야 했다.

그 말은 곧 이곳에 고깃덩이들이 엄청나게 뭉쳐있다는 소리였다.

라일라의 기척은 그 뭉쳐있는 고깃덩이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끌어내야지.’

지크가 벽 안에 윈두르를 겨눌 때였다.

콰아앙!

뒤에서 날아온 마법을 지크가 피했다. 그는 천천히 뒤를 돌아 자신을 공격한 파이넬을 쳐다봤다.

-그 녀석을 풀어주게 둘까 보냐!

“이봐. 집착도 병이야. 혹시 라일라에게 사랑을 느끼기라도 했어? 나는 그런 사랑도 긍정하는 사람이지만, 그것도 상대의 동의가 있어야지. 일방적인 건 사랑이 아니라 범죄라고.”

-사랑이라고? 아무것도 모른다지만 정말로 불쾌한 작자야! 내가 그 녀석에게 느끼는 건 증오밖에 없어!

“그럼 적당히 놓아주지 그래? 불쾌한 걸 왜 자꾸 몸에 품어 두려는 거야.”

-그 녀석은 내 몸이 될 거니까!

뭔가 흥미로운 얘기가 들려왔지만 안타깝게도 흥미를 풀 시간은 없었다. 다시 파이넬의 공격이 시작되려 했기 때문이다.

‘흐음, 녀석의 공격이 귀찮은 건 사실인데. 내가 라일라를 구할 때까지 시간 좀 끌 방법이 없으려나?’

그 때였다. 낯익은 기척이 느껴졌다. 지크의 시선이 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파이넬이 회수한 살덩이 중에는 문을 뒤덮던 것도 있어, 지금 문에는 그 어떤 방해물도 없었다.

문이 열리며 익숙한 인물들이 나왔다.

“지크 님!”

자신을 큰 소리로 부르는 한스와 그 뒤에 있는 스녹, 엘레나를 본 지크가 크게 웃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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