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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44화 (344/628)

제344화

지크가 탄 크라켄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지크는 크라켄의 체내에서 자신이 끌려들어온 길을 더듬어 크라켄의 행동을 연신 유도했다. 바닷속이라 제대로 된 표식도 없는데다, 끌려 들어올 때는 한창 전투 중이어서 주변을 볼 짬도 그다지 낼 수 없었던 터라 지크는 몇 번 길을 헤맸다. 하지만 회귀 전 경험을 십분 살려 그는 결국 유적의 호수로 통하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완전히 바다 밑에 있잖아.’

바다 밑 공간이 출입구가 막힌 것도 아닌데 바닷물이 들어차지 않고 호수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 호기심을 해결할 시간이 아니었다. 게다가 짚이는 게 없는 것도 아니다.

‘그 나무 때문이겠지.’

지크는 호수로 향하는 바다 밑 통로로 크라켄을 유도했다. 액체 괴물들도 끈질기게 크라켄을 따라왔다.

통로는 구불구불했다. 그러나 크라켄은 유연하게 통로를 통과했다. 지크는 자기가 끌려온 거리를 가늠했다.

‘슬슬 도착하겠군.’

하지만 중간에 방해물이 나타났다.

‘이건 뭐야?’

분명 뻥 뚫려 있어야 할 구멍이 무언가로 막혀 있다. 지형으로 막힌 것은 아니다.

‘뭔가 괴상한 기척인데.’

어디선가 느껴 본 기척이었지만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건 일종의 생명체 같았다. 지크는 크라켄에게 그것을 공격하도록 유도했다. 크라켄의 촉수가 그것들을 난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얼마 가지 않았다. 크라켄이 공격을 멈췄다.

‘어라?’

지크는 윈두르를 휘둘러 계속 크라켄에게 고통을 가했다. 크라켄이 구슬프게 울부짖으며 몸을 꼬아댔다. 하지만 그럼에도 길을 막고 있는 것을 공격하진 않았다.

‘확인해야겠어.’

지크는 크라켄의 몸에 길을 냈다. 꿈틀거리는 근육을 해체하며 전진하길 얼마.

퍼엉!

바깥에 길을 낼 수 있었다.

‘금방 확인해야 해!’

아직 액체 괴물의 움직임은 감지된다. 게다가 촉수도 자신의 피부 바깥으로 고개를 내민 기생충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지크는 크라켄의 몸 바깥으로 살짝 고개만 꺼내 방해물을 살폈다.

‘저건…!’

지크는 그 존재를 보고 놀랐다.

‘고기벽?’

사람을 이리저리 섞어 놓은 것 같은 고깃덩이의 결합이 호수를 막고 있는 게 보였다.

‘예전 연구소에서 본 것과 비슷한 것들이야. 그럼 아까 그 고깃덩이가 몸을 늘인 건가?’

어쩐지 예전 유적에서의 기척이나 고깃덩이의 기척과 조금 다르다 했다.

‘어쨌든 제대로 찾아왔다는 소리군.’

그거면 됐다. 지크는 자신을 향해 공격해들어오는 액체 괴물과 크라켄의 다리를 피해 다시 크라켄의 몸 속으로 숨었다.

* * *

어둠이 가득 찬 세계로 하얀 빛이 새어든다. 마치 어둠 그 자체에 작게 균열을 내 빛을 쏘는 것 같다. 제 몸이 타는 것도 불구하고 모닥불 위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나’는 빛을 갈구하며 눈을 떴다.

“성공이야! 눈을 떴어!”

“어이, 누가 소장님 좀 불러와 봐! 반란군 놈들의 실험체가 완성됐어!”

“이걸로 성과급 좀 두둑하게 받을 수 있겠군!”

투명한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하얀 로브를 걸치고 있는 인간들이 두 손을 들고 환호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이 무엇인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 모르는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몰랐고, 왜 ‘나’는 액체가 가득 들어있는 투명한 유리통 안에 들어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누구인지도.

유리벽 너머로 누군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목을 가리는 덥수룩하고 긴, 하얀 수염에 얼굴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맺힌 노인이다. 그는 유리통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유리 너머에 얼굴을 가까이 대 자신을 들여다 봤다.

‘나’도 그를 자세히 쳐다봤다. 그의 시선은 뜨거움을 가득 담고 있었다. 뺨도 상기된 것이 누가 봐도 잔뜩 흥분을 한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그 눈이 무척이나 차갑다고 생각했다. 노인의 열기와 흥분은 분명 ‘나’를 향한 것이긴 했지만,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곤 절대 생각되지 않은 것이다.

“언제까지 코드명으로 부르는 것도 좀 그러니, 소장님께서 직접 이름을 지어 주시지요!”

“그렇습니다! 최초의 성공체이니 그 정도의 아량은 이 녀석에게도 허락이 될 겁니다!”

주변의 인간들이 노인을 향해 말했다.

“흐음, 그도 그렇군.”

노인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조금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리 중요한 것을 고민하는 태도는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그저 마당에 눈에 띈 꽃 하나에 대충 이름을 붙이려는 가벼운 태도였다.

때문에 노인의 입에서 나온 이름도 정상적인 건 아니었다.

“파이넬. 파이넬은 어떤가.”

“과연 소장님이십니다!”

“이 녀석이 반란군놈들의 실험체라는 걸 생각하면 아주 정확한 작명이십니다.”

“그렇지?”

노인은 껄껄 웃고는 유리에 손을 갖다댔다.

“네 이름은 앞으로 파이넬이다. 그 머리에 깊이 새기도록.”

그렇게 ‘나’는, 제국어로 ‘복종’이란 뜻을 가진 이름이 붙여졌다.

* * *

한동안은 그저 유리통 안에서 지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신기한 듯 ‘나’를 쳐다보고, 나도 그들을 쳐다봤다. 그렇게 서로를 구경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유리통 안에서 나올 수 있었다.

“모든 계측값이 안정적입니다. 이제 실험에도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겁니다.”

한 남자가 노인에게 그렇게 말하는 걸 봤다.

그 이후, 실험이 시작됐다. 간단한 것부터 복잡한 것까지. 여러 가지 실험이 ‘나’에게 행해졌다. 그 중 굉장히 고통스러운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나’는 나름 대우를 받았다. 아마도 호기심의 대상인 ‘나’는 그들에게 꽤 소중한 것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나’의 존재의의를 알게 된 순간, 그 대우는 완전히 바뀌었다.

“이 빌어먹을 것이!”

퍼억!

연구원 한 명이 ‘나’를 걷어찼다.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격한 통증이 느껴졌다.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발길질은 멈추지 않았다.

“그만하게.”

노인의 음성이 들리자 그제야 발길질이 멈췄다. 그러나 노인의 음성도 절대 상냥하지 않았다. ‘나’를 위해서 말렸다기보다는, ‘나’의 존재가 아까워 말렸다는 게 정확해 보였다.

“하지만 소장님! 이 연구값을 보십시오! 이 더럽고 추악한 연구값을! 이 녀석은 감히 황금 황제로 이름 높은 초대 황제 폐하의 공주님이자 제국의 여신으로 추앙받는 분의 기억을 빼내려고 만들어진 녀석입니다! 당장 죽여야 합니다! 이 녀석과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실험체들을 모두 폐기하고 연구 자료도 모조리 소각을 해야…!”

“그만!”

노인의 음성이 쩌렁쩌렁 울렸다. 말을 하던 사람이 말을 멈췄다. 하지만 납득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는 아직도 숨을 거칠게 내쉬고 있었다.

“페하의 명령일세.”

“폐하가 그런 명령을 내리셨단 말입니까?”

말을 하던 사람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말했다. 그건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인지 서로 웅성거렸다.

“폐하께서는 이 녀석을 철저하게 연구하라고 하셨네. 이 녀석의 특성이나 약점 같은 것들을 모조리 알아낼 수 있도록 말이야.”

“그렇군요.”

이제야 납득을 한 듯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이 ‘나’를 쳐다보자, ‘나’는 몸을 더욱 웅크렸다. 노인의 눈에 예전에 보였던 열기와 흥분은 사라져 있었다. 그곳에 대신 들어찬 곳은 시리도록 차가운 한기뿐.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노인의 시선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그에게 ‘나’는 그저 도구일 뿐. 신기하던 물건이 기분 나쁜 물건으로 바뀐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시선과 다른 사람들의 반응으로, ‘나’는 ‘나’ 자신에 대한 미래를 어렴풋하게나마 예측할 수 있었다.

* * *

그때부터의 실험은 끔찍했다. 예전의 실험들이 ‘나’를 얼마나 대우해주고 있었는지는, 그 일이 있은 후 행해진 바로 다음 실험에서부터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고통을 주는 걸 즐겼다. ‘나’는 그저 울부짖고 웅크려 최대한 고통을 받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실험의 강도는 점점 올라 갔다. 그리고 ‘나’는 대체 왜 그들이 ‘나’에게 그토록 증오심을 표출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제국을 지탱하는 어떤 시스템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시스템 안에는 어떤 공주님이 잠들어 있었다. 제국을 연 황제이자 가장 존경받는 황제이기도 한 황금 황제. 공주님은 그 황금 황제의 딸이었다.

그 공주님의 인기는 제국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모양이었다. 제국을 지탱하는 축으로서 제국을 수호하는 여신으로까지 불린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인기가 너무도 많아 신성시까지 당하고 있는 공주님의 기억을 빼내기 위해 태어났다는 모양이다.

“이제 알겠냐, 이 빌어먹을 괴물 자식! 너는 존재 자체가 잘못됐어! 이 세상에 태어나면 안 됐을 저주 받을 자식이란 말이다!”

‘나’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한 연구원이 한 말이었다.

“그러니까 실험에 열심히 협조해라! 그 망할 저주받을 운명을 조금은 가치 있게 만들려면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 알게 된 일이지만, 이 연구소에는 ‘나’와 비슷한 존재들이 더 있는 것 같았다. 따지자면 ‘나’의 자매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운명도 나와 비슷했다. 연구실에 끌려들어간 그것들의 비명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실험이 끝나면 ‘나’는 내가 태어난 유리통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강제로 잠이 들었다. ‘나’는 종종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저항해보기도 했다. 실험이 없는 시간을 조금, 아주 조금은 가지고 싶었다. 다시 눈을 뜨면 실험이 시작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무서웠다.

하지만 통 안으로 들어오는 약물에 ‘나’의 시도는 번번이 헛수고로 끝났다.

* * *

와장창!

무언가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몸이 앞으로 쏠리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당황해 눈을 부릅 떴다. 바닥이 ‘나’에게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쿠웅!

- 악!

‘나’는 바닥에 형편없이 나뒹굴었다. 몸 곳곳에 고통이 느껴졌다. 그저 바닥에 떨어져서 그런 건 아니다. 둔탁한 것과는 다른 날카로운 통증이 섞였다.

확인해보니 ‘나’를 가두고 있던 유리통이던 것으로 보이는 유리조각들이 몸에 박혀 있었다.

고통에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도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흥건하게 젖은 바닥과 곳곳에 있는 유리 파편. 뒤를 돌아보니 자신이 있던 유리통이 산산이 깨어진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 때였다.

터벅!

발소리가 들려 ‘나’는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평소와는 달리 어두컴컴한 방 안에 허공에 뜬 불덩이 하나가 조명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 불덩이 아래로 사람 한 명이 보였다.

연구원은 아니었다. 하얀 로브를 입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초상화로는 볼 수 있던 기회가 있던 것이다.

- 공…주…님….

그녀는 연구원들이 그토록 ‘나’를 괴롭힌 이유였던 공주였다. 표정이란 것을 과연 알기나 할까 생각할 정도로 냉막한 얼굴을 하고 있던 공주가 입을 열었다.

“들은 적은 있다. 내 기억, 클로원의 자산을 빼내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

‘나’는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공주가 자신에게 한 발짝씩 다가왔다.

그러다 둘이 동시에 움찔거렸다.

“…과연, 이런 느낌이로군.”

공주가 자신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내가 시스템에 있어야만 빼갈 수 있다고 하던데.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도 기억을 빼가는 방법 중 하나인 모양이야.”

공주가 무릎에 손을 얹고 몸을 구부린 채 ‘나’에게 말했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겠지. 뭘 봤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말하도록.”

-아, 그, 저….

‘나’는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정보가 머릿속에 흘러들어왔기 때문이다.

- 크, 클로원이 멸망했다고….

“그리고?”

- 새로운 문명이 지상에 들어섰고….

“또?”

- 고, 공주님이 원하시는 건….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 클로원의 재건…이라고.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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