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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43화 (343/628)

제343화

지크의 잘려나간 다리 부근이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지크는 남은 발에 마력을 실어 강하게 폭발시켰다.

펑!

발 아래로 많은 기포가 생겨나며 지크의 몸이 위아래로 뒤집혔다. 잠시 중심을 잃는 것같이 보이더니 지크는 곧 익숙하게 수중에서 유영을 했다.

‘옛날 생각 나는군.’

정말로 웬만한 전투와 전장을 모두 겪어본 지크인 만큼 수중 전투도 당연히 겪어 봤다. 게다가 지금처럼 한쪽 다리가 없이 전투를 해본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 둘의 악조건이 결합한, 지금 같은 상황도 있었다. 따라서 적응은 금방이었다.

하지만 자유를 얻었다고 좋아할 시간은 없었다. 주변의 적들은 사라진 게 아니었으며, 자신의 부상이 나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다리 하나까지 끊어먹어 버렸다.

물론 지크는 평생 외다리로 살 생각은 없다.

찌이익!

지크가 자신의 가슴 부위의 옷을 찢어냈다. 품 속의 물건을 느긋하게 꺼낼 시간이 없기에 쓴 방법이었다. 지크는 천 조각 사이로 튀어나온 마법 상자를 잡고 다시 한번 발바닥으로 마력을 방출했다.

퍼엉!

지크의 몸이 빠른 속도로 쏘아졌다. 크라켄의 다리를 스쳐 지나갈 때, 지크는 마법 상자를 자신의 잘려나간 다리에 갖다 댔다.

다리가 상자에 빨려들었다.

‘일단 다리는 챙겼고.’

지크는 계속 움직였다. 액체 괴물들이 그 경악스러운 기동력으로 지크를 쫓아 공격을 하고 있었다. 크라켄도 지크를 놓친 걸 알고 다시 다리를 움직이려 들었다.

아무리 자유를 되찾았어도 승산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지크는 후퇴를 생각하지 않았다.

‘크라켄은 죽여야 해.’

나중에 그 고깃덩이와 붙을 때 또 훼방을 놓을 수도 있다. 엄청난 부상을 입긴 했지만 크라켄은 시간만 있다면 저 부상도 전부 회복할 것이다. 실제로 상처 부위가 일부긴 하지만 사라진 걸 지크의 좋은 눈썰미가 포착했다.

지크는 계속 전진했다. 그 와중 덤벼드는 액체 괴물들에 윈두르를 휘두르며 대항했지만 아까처럼 방어에 온 힘을 쏟진 않았다. 방어보다 전진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했다.

그렇게 상처를 더 입긴 했지만, 지크는 목표대로 크라켄의 근처까지 다가왔다. 크라켄의 얼마 남지 않은 다리가 지크를 다시 잡으려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분명 몸이 정상이었을 때와는 분명 달랐다.

지크는 윈두르에 마력을 가득 넣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발바닥의 마력을 분출했다. 그의 몸이 쏘아진 화살처럼 날아갔다. 목표는 고깃덩이의 마법으로 크게 도려내진 머리의 상처였다.

퍼어억!

단단한 외피가 사라져 물렁해진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터라 윈두르의 공격은 크라켄에 커다란 상처를 냈다.

하지만 그뿐, 치명상은 아니었다. 사람 한두 명은 드러날 수 있을 듯한 크기의 상처였지만 크라켄의 덩치를 생각하면 그렇게 큰 상처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크는 만족했다. 고작 칼질 한 방으로 크라켄의 목숨을 끊어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애초에 그가 원하던 것도 이 정도 크기의 상처였다.

후웅!

뒷목으로 짜르르 소름이 돋는다. 액체 괴물의 날카로운 공격이 뒷목을 무척이나 가깝게 스쳐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지크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돌격했다.

퍼억!

그의 몸이 크라켄의 상처 안으로 틀어박혔다. 누가 보면 수중에 익숙하지 않아 움직임을 실수한 것 같았다.

그러나 지크는 잘못 움직인 게 아니었다. 오히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히 목적지에 안착한 것이었다. 그는 상처 안에서 윈두르를 더욱 깊이 찔러 넣었다.

콰아앙!

윈두르 끝에서 방출한 마력이 다시 한번 크라켄의 안쪽으로 폭발하며 더더욱 깊이 틀어박혔다. 크라켄이 몸부림을 쳤다. 그 거체가 난동 부리는 박력에 액체 괴물들조차 쉽사리 접근하지 못했다. 지크는 상처에서 튕겨 나가지 않도록 크라켄 내부에 박혀 있는 윈두르를 꽉 잡았다.

남은 다리를 굽혀 크라켄의 살덩이에 발을 박아 넣고 몸을 더욱 상처 안으로 밀어 넣었다. 지크의 몸이 완전히 크라켄의 몸 속으로 사라졌다.

‘좀 살겠군.’

크라켄 내부는 아늑했다. 끈적한 체액과 꿈틀거리는 근육, 지방이 느껴지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늑함과는 하늘과 땅보다도 몇 곱절은 차이날 것 같지만, 방금 전까지 온갖 공격을 당하던 걸 생각하면 충분히 아늑했다.

그러나 공격이 멎은 것도 잠시였다. 지크가 크라켄의 몸속에서 나올 생각을 않자 액체 괴물들이 다시 달려들기 시작했다. 상처를 비집고 지크를 공격하려 했다.

‘나 안 나가. 멍청이들아!’

지크는 마법 상자에서 포션을 잔뜩 꺼내 던졌다. 카르위먼제 최상급 포션이 크라켄의 상처부위에 맞고 깨졌다.

스으윽!

크라켄의 상처가 급속도로 아물기 시작했다. 상처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려던 액체 괴물들이 조여드는 근육과 살점에 밀려 바깥으로 사라졌다. 상처의 회복은 지크에게도 그리 좋은 것이 아니었다. 지크도 엄연한 크라켄의 이물질이었으니까.

지크는 그걸 안쪽으로 더 파고들어 가는 것으로 해결했다.

‘후우!’

그제야 한숨 돌린 지크는 포션을 꺼내 상처에 뿌리고 마셨다. 다리도 잘 이은 후 포션을 뿌렸다. 절단된 사지는 잘못 붙이면 이상하게 붙을 위험이 있지만 지크는 개의치 않았다.

‘한두 번 붙여 보는 것도 아니고.’

그는 깔끔하게 붙은 다리를 만족스럽게 쳐다봤다. 엄지발가락부터 새끼발가락까지 움직여본 후 다시 윈두르를 부여잡았다.

‘회복도 끝냈고. 이제 이놈을 죽여볼까.’

목표는 크라켄의 뇌다. 지크는 금속을 캐내는 광부의 마음으로 윈두르를 휘둘러 크라켄의 내부를 박살 내기 시작했다.

부오오오오오오오!

크라켄이 고통에 몸부림친다. 아픈 부위를 얼마 안 남은 다리로 감쌌지만 속에서 파고드는 지크를 외부에서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지크를 공격하려는 액체 괴물들조차 크라켄을 공격했다. 안으로 들어가 지크를 죽이려는 것이다. 크라켄으로서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크라켄은 반항했다. 크라켄과 액체 괴물들 간의 전투가 벌어졌다. 단일 전투력으로는 역시 아무리 부상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크라켄이 위였지만, 액체 괴물들도 숫자가 많고 죽이기도 힘든 특성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크라켄이 조금 밀리는 형국이었지만 당장의 전세는 비슷비슷했다.

지크는 그 기척을 느꼈다.

‘기대는 했지만 정말로 됐군.’

의미심장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걸린다.

‘역시 적끼리 싸우게 하는 건 즐겁단 말이야.’

아쉬운 건 한쪽은 몬스터, 한쪽은 조종당하는 정체 모를 괴물인지라 서로 간 감정의 부딪침을 느끼지 못 하는 것이었다.

보통은 네가 배신했네, 내가 배신했네 싸우거나,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저주하며 눈물을 줄줄 흘려댔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즐거움을 느낄 수 없었다.

‘뭐, 됐어. 어차피 지금 그런 걸 즐길 여유가 없기도 하니까.’

지크는 다시 윈두르를 휘두르는 데 집중했다.

크라켄의 발광이 더더욱 심해졌다. 크라켄이 크게 옆으로 요동쳤다.

‘응?’

순간 지크는 재미있는 생각이 났다.

‘이거, 잘하면 꽤 편하게 원래 있던 곳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지크는 윈두르를 거뒀다. 고통이 사라지자 크라켄의 움직임이 얌전해졌다. 그저 계속 자신의 몸을 파헤치려는 액체 괴물들을 상대했다. 하지만 곧 지크가 다시 윈두르를 휘두르기 시작하자 다시 발광하며 이리저리 꿈틀거렸다. 얼마 후, 다시 고통이 시작됐고 다시 멈췄다.

그게 수없이 반복되자, 크라켄은 한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어떤 방향으로 향한다면 고통이 생기지 않는다.

크라켄은 액체 괴물들을 무시하며 헤엄치기 시작했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자 그것은 더더욱 빠르게 헤엄쳤다. 지크는 가만히 눈을 감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만.’

퍼억!

윈두르가 꽂히자 크라켄이 다시 발광을 했다. 하지만 이내 학습을 했는지 상하좌우로 계속 움직이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방향으로 헤엄쳤다.

‘좋아, 계속 그렇게 하자. 서로 편해지자고.’

그렇게 지크는 크라켄을 조종해 빠르게 원래 있던 곳으로 귀환하기 시작했다.

* * *

라일라의 주변은 완전히 고깃덩이로 뒤덮여 있었다. 그녀를 지키는 건 그녀가 사방으로 펼친 장벽뿐이었다.

끼긱! 끼기긱!

고깃덩이에서 튀어나온 수많은 팔이 장벽을 긁어댄다. 고작 그런 물리력으로 라일라의 장벽을 깰 순 없다. 그러나 그 모습만으로도 사람을 소름 돋게 만드는 광경이기도 했다.

- 슬슬 포기하는 게 어때?

고깃덩이가 장벽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것은 라일라의 바로 앞까지 와 있었다. 전투를 할 때의 그로테스크한 고깃덩이의 모습을 버리고 다시 처음 만났을 때의 인간 여자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다. 그러나 그것의 하반신은 라일라를 둘러싸고 있는 고깃덩이와 붙어 있어, 여전히 온전한 사람이라고 보이진 않았다.

장벽을 깨고 마법을 날린다면 당장이라도 머리를 날릴 수 있을 것 같지만, 라일라는 그러지 못했다.

상대의 실력은 자신보다 위인 게 분명하다. 마법의 수준은 비슷한 것 같지만 나무의 서포트가 그것에게 엄청난 힘을 주고 있었다.

“그럴 생각 없어.”

- 끝까지 헛된 발버둥을 치려고?

“물론. 게다가 헛된 발버둥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 설마 네 일행을 믿는 거니?

그것이 웃었다.

- 하나는 크라켄에게 바다로 끌려들어갔고 나머지는 도망갔지. 그것들이 널 구해줄 수 있을 것 같아?

“미래는 모르는 법이야.”

- 흐음, 그렇긴 하지. 나도 설마 널 잡을 수 있을 줄은 몰랐거든.

“아직 잡히지 않았어.”

- 네 마음대로 믿으렴. 헛된 희망을 굳이 부술 정도로 나는 잔인하지 않으니까.

고깃덩이는 마치 라일라의 얼굴을 쓰다듬듯 장벽을 쓸어내렸다.

- 하지만 네 과거는 궁금하구나. 대체 어떻게 해야 오로지 시스템의 일부일 뿐이던 네가 이렇게 사람처럼 움직이게 된 걸까?

“…넌 내 과거를 정말 알아?”

- 물론이지. 난 전부 기억하고 있어. 네가 엄청난 몬스터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쳐들어왔던 날과….

쿠웅!

그것이 장벽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 날 죽였던 날을 전부!

그것의 얼굴은 무섭도록 굳어 있었다.

“…내가 널 죽였다고?”

- 그래. 죽기 싫다며 발악하던 나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였지.

그것이 장벽에 얼굴을 바싹 붙였다.

- 그때의 네 얼굴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나. 그리고 그때 네가 한 말도.

그것은 입을 크게 벌려 한 자 한 자 그 말을 내뱉었다.

- 가짜.

그것이 장벽에서 얼굴을 뗐다.

- 하지만 더 이상 내게 그 말을 하지 못할 거야. 난 이제 진짜가 될 거니까.

“…난 기억나지 않아.”

- 그래, 그렇겠지. 아무리 봐도 넌 기억이 리셋된 게 분명하니까. 뭐, 좋아. 내 기억을 줄게.

“…기억을 줘?”

라일라가 놀라 물었다. 고깃덩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것이 어깨를 으쓱일 때 주변 고깃덩이가 일제히 꿈틀거렸다.

- 원래 우리는 그것 때문에 만들어졌으니까. 정확히는 네 기억을 빼오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그래도 이 정도 거리라면 내 기억을 네 안에 심는 것도 가능할 거야.

턱! 턱!

고깃덩이가 장벽에 두 손을 댔다.

- 네가 어떤 녀석이었는지 똑똑히 봐.

순간, 라일라가 휘청거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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