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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40화 (340/628)

제340화

지크는 그것을 더욱 자세히 뜯어봤다. 눈과 코, 입은 물론 눈썹과 턱선까지 부위 별로 라일라와 대조했다.

닮은 점은 그리 없었다. 그러나 둘이 비슷하단 느낌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공주님과 여신이라니. 우리 라일라가 그렇게 불릴 정도로 굉장히 예쁘긴 하다만, 그래도 아첨이 너무 과한 거 아냐? 아니면 그렇게 부를 만한 다른 이유라도 있나?”

지크는 과장되게 라일라를 한 번 쳐다본 후, 이번엔 한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녀석은 태자라고 불렀었지?”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돌린 후 검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보고는 폐하라고 불렀고. 뭐야, 그럼 한스와 라일라가 내 아들딸이라도 된다는 소리야? 난 자식은커녕 결혼한 상대조차 없는데?”

-세 분의 관계는 잘 모른답니다. 전 그저 제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말하는 것뿐이니까요.

“그거 흥미로운데. 그 지식이란 건 뭐지?”

-글쎄요. 뭘까요?

그것이 웃었다. 호의라곤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더러워지는 웃음이다.

“대가리가 미련한 거야, 아니면 질문을 이해 못 하는 거야? 아, 질문을 이해 못 하는 것도 대가리가 미련한 건가?”

지크의 빈정거림에 그것의 요사스러운 웃음이 사라졌다.

“뭐야, 폐하라고 존중하는 척 빈정대서 제법 능글맞은 녀석이라 여겼는데, 고작 이 정도 도발에 얼굴이 변하는 거야? 말싸움의 즐거움을 모르는 녀석이군.”

경계를 하느라 전면을 보고 있던 일행의 시선이 한순간 지크의 얼굴에 쏠렸다.

말싸움의 즐거움이라니. 지크의 그것은 일방적으로 적을 농락하고 짓밟는 괴롭힘이 아니던가.

“내 일행도 이 미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군. 슬픈 일이야.”

지크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그 지식이란 걸 어느 정도 내뱉어줄 생각은 있나? 아, 혹시 명령 같은 게 필요해? 그럼 황제로서 명령을 내리지. 그 머리에 든 지식이란 걸 어서 뱉어 봐.”

그것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황제의 명령만으로는 안 되나? 혹시 태자의 명령도 필요한가?”

지크가 한스의 어깨를 잡고 앞으로 밀었다. 한스가 당황한 표정으로, 하지만 차마 지크에게 반항을 하지 못하고 주춤주춤 앞으로 밀려 나왔다.

“뭣 하면 공주님도 있어. 아, 여신님이라고도 했지? 그럼 라일라가 가장 끗발이 세나?”

지크가 라일라의 어깨에도 손을 올렸지만 라일라는 그의 손을 탁 쳐냈다. 지크는 아프다는 듯 손을 털었다.

“누구든지 말해 봐. 너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쯤이야 뭐가 어렵겠어. 스스로 노예 근성에 찌든 놈이 그렇게 간곡히 부탁하는데 말이야.”

-…적당히 놀아줬더니 분수를 모르고 내뱉는구나!

그것의 목소리가 험악해졌다. 동시의 그것의 하체가 꿈틀거렸다. 징그러운 고깃덩이가 움직이는 모습이 과히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하하, 그게 본 성깔이냐? 역시 생긴 것처럼 성깔도 더럽기 그지없는 녀석이군.”

언제든지 전투가 가능하도록 지크는 윈두르를 고쳐 잡았다. 하지만 당장 공격할 생각은 없었다. 상대의 전투력이 미지수이기도 하고, 말로 정보를 끌어내기도 해야 했다.

방법은 많았지만, 지크는 지금은 직접적인 방식을 쓰기로 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단 말이야. 왜 너한테서 라일라와 비슷한 느낌이 들까?”

드는 의문을 그대로 내던졌다.

효과가 있었다. 라일라의 당황한 눈빛이 느껴졌지만 지크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저 그것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것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라일라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는 말에 그것은 분명 과민 반응하고 있었다. 그것도 좋지 않은 쪽으로

‘역시 저 녀석이 라일라를 노리는 건 확실하군.’

그때, 지크의 눈에 묘한 것이 보였다.

그것은 옷을 입지 않아 상반신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맨살이 드러난 그것의 왼팔의 피부가 순간 꿈틀거렸다.

일부러 움직이는 것 같진 않다. 근육이 경련하는 것 같지도 않다.

꼭 그 팔의 피부 일부분이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번뜩!

무척이나 미세한 변화였지만 지크는 그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자그마한 눈이 꿈틀거리던 피부를 뚫고 튀어나왔다.

바로 주변 살덩이가 그것을 뒤덮어 사라졌지만, 그건 분명 눈알이었다.

‘저건 설마…!’

그것과 비슷한 걸 지크는 본 적이 있다.

‘예전에 연구소 유적에서 봤던 그 고깃덩이!’

사람을 말 그대로 이리저리 뒤섞은 후 바닥, 벽, 천장, 가리지 않고 눌러 붙여 놓은 것 같았던 괴물.

‘그러고 보니 그 고깃덩이도 라일라를 증오했었지.’

설마 저것도 그것과 비슷한 부류의 괴물인 걸까.

‘저게 그 고깃덩이의 완성형인가?’

만약 그렇다면 상황은 더더욱 성가셔진다. 고깃덩이들이 구사했던 엄청난 마법들이 생각났다.

‘저게 그런 마법적 능력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건 순진한 생각이겠지.’

-내가… 비슷하다고? 저 여자와?

그것이 웅얼거린다. 발음이 뭉개지긴 했지만 여전히 그것의 목소리는 잘 들렸다.

그것이 눈을 번뜩였다. 처음 봤을 때의 표면적인 미소는 이미 흔적조차 없었다.

그것의 하반신이 크게 꿈틀거렸다. 핑크색 살덩이 표면으로 우둘투둘 튀어나와 있는, 혈관인지 신경인지 모를 것들이 크게 확장됐다.

쿠웅!

공간이 떨렸다. 나무에 맺혀 있던 물방울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내렸다.

지표면에 안착한 물방울들은 마치 슬라임처럼 뭉쳐 꿈틀거리더니 곧 인간의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건 지크 일행이 싸웠었던, 물로 이루어진 괴물들이었다.

‘저렇게 만들어지는군.’

괴물들이 호수에 발을 디뎠다. 순간 괴물들의 몸이 호수 안으로 꺼지듯 사라졌다. 동시에 지크 일행과 가장 가까운 호숫가에서 괴물이 솟아났다.

‘물에서는 거의 순간이동급의 이동이 가능한 모양이야.’

점점 호숫가에 괴물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일행이 각자의 무기를 들었다.

-그 여자만 내놓는다면 다른 놈들은 살려 줄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만, 생각이 바뀌었어. 그렇게 죽고 싶다면 별수 없지.

“아니, 난 네 성질을 돋우려고 말한 게 아니다만.”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라일라와 비슷하다는 말을 한 것은 정말로 그저 그것의 반응을 보고 싶어서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와 그런 말이 먹힐 리 없었다.

-그래. 생각해보니 이상해. 기분이 좋아서 조금 헛생각이 들었던 거야. 내가 왜 클로원의 잔재들을 내버려둬야 하지?

그것은 더 이상 지크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저 미친 것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클로원 황제의 검도! 태자의 검도! 백업 시스템의 코어도! 전부 부숴버리면 되는 거야!

콰아아아아!

호수가 출렁이며 거센 물결이 인다. 해일처럼 물은 지크 일행이 서 있는 육지를 덮쳤다.

‘장소가 안 좋아.’

누가 봐도 상대의 능력은 물을 특기로 하고 있었다. 이렇게 물이 많은 지역에서는 당연히 일행이 불리하다.

일단 잠시 물러날까 뒤를 힐끔 봤지만 문이 저 혼자 굳게 닫히는 모습이 보였다.

-도망가게 놔둘 줄 알고!

“눈치 한번 빠르긴!”

지크는 앞으로 튀어 나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괴물들에게 윈두르를 휘둘렀다. 윈두르에 적중된 괴물들이 형체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지크가 해치운 괴물들보다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괴물들이 훨씬 많았다.

나무는 계속해서 가지에 물방울들을 맺고 떨어뜨렸다.

‘소모전은 이쪽이 불리해!’

그것을 직접 죽여야 했다.

“라일라! 얼음!”

라일라가 지크의 말을 알아듣고 바로 지팡이를 들어 올려 주문을 외웠다. 지팡이의 머리 부분에서 새하얀 서리가 맺혔다.

공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호수의 물이 일행의 근처까지 접근했다. 지크는 윈두르에 마력을 집어넣어 전면으로 흩뿌렸다.

퍼어엉!

당장 일행을 휩쓸어버릴 것 같던 물이 산산이 부서져 뒤로 튕겨나갔다.

어마어마한 위력. 당장 일행이 호수로 빨려 들어가는 위험은 벗어났지만 위기가 끝난 건 아니었다.

스윽! 스윽!

땅에 점점이 고인 물에서 괴물들이 솟아난다. 동시에 호수에서 거대한 용오름이 솟았다.

콰아아!

용오름이 허리를 굽히며 지크 일행을 덮쳤다.

“스녹!”

지크의 부름에 스녹이 대지를 일으켰다. 흙덩이들이 일행의 머리 위를 막아섰다. 용오름이 흙벽에 부딪쳤다.

콰앙!

“크윽!”

스녹이 신음을 흘렸다. 용오름의 어마어마한 위력에 당장이라도 얇은 흙벽이 무너질 것 같았다.

스녹은 급히 마법 상자에서 미스릴들을 꺼내 흙 속에 박아 넣었다. 단단하고 마력을 품기 쉬운 금속이 들어가자 흙벽의 강도가 놀랍도록 올라갔다.

하지만 상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쾅! 쾅! 쾅! 쾅!

용오름 네 개가 추가됐다. 다시 흙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흙이 물에 쓸려가며 골격으로 사용한 미스릴이 노출됐다.

그때 엘레나가 지팡이를 흔들었다.

화르륵!

흙벽의 바깥으로 불꽃이 솟았다. 용오름의 강대한 기세에 불꽃이 스러져갔지만 엘레나는 계속해서 마력을 투입해 불꽃을 유지했다.

그 강렬한 열기에 용오름을 이루고 있던 물이 증발되어 용오름의 위력이 약해졌다. 덕분에 흙벽은 용오름의 공격에 버틸 수 있었다.

라일라의 주문이 끝났다. 그녀의 지팡이에 막대한 마력이 몰아쳤다.

그녀가 지팡이를 뻗는다.

순간 세계가 멈췄다.

무수한 숫자를 바탕으로 일행을 압박하던 괴물들도, 흙벽을 계속해서 뚫으려 하던 용오름도, 다시 한번 기세를 뿜으며 몰려오던 파도도, 모조리 얼어붙었다.

심지어 그들을 보호하던 흙벽도 얼어붙어 엘레나의 마법조차 일순 소멸됐을 정도였다.

같은 마법사인 엘레나는 물론, 같이 여행을 다닌 지 오래되어 이젠 그녀의 실력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한스, 스녹조차 일순 놀라 얼어붙었다.

그 정도로 그녀가 만든 얼음의 세계는 충격이었다.

그러나 지크는 달랐다. 그는 계속 이 상황만 기다리고 있었다.

탓!

그가 전면으로 뛰었다. 얼음 석상으로 변해 있는 괴물들을 피하고 성난 기세로 일어선 파도를 뛰어넘어 거센 물살이 얼어붙은 호수를 건넜다.

순식간에 지크는 나무가 있는 섬에 도착했다.

그의 눈에 얼어붙어 있는 나무의 뿌리 부분과 적의 모습이 보였다. 지크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것이 박혀 있는 나무뿌리로 올라가 윈두르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내려쳤다.

콰앙!

거대한 폭음. 주변으로 산산이 깨진 얼음 조각들이 흩날린다.

그건 나무, 정확히 말해 나뭇가지에 달린 물방울들에서 새어 나오는 푸른빛을 반사해 무척이나 아름답게 반짝였다.

그러나 지크는 그 아름다움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즐길 수가 없었다.

윈두르를 어떤 손이 막아내고 있었다.

정상적인 손은 아니었다.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손가락만 여덟 개.

그것도 손끝에만 돋아난 게 아닌, 손바닥, 손등 같은 손가락이 날 리가 없는 곳에도 자리 잡고 있다.

피부는 찰흙을 질서 없이 이곳저곳 붙여놓은 듯 울퉁불퉁하다. 그 징그러운 피부는 손을 넘어 손이 연결된 팔까지 이어졌다.

팔의 주인은 지크가 공격하려던 그것이었다.

팔은 그것의 얼굴을 뚫고 나와 있었다.

번뜩!

순간 팔에서 눈알들이 돋아났다. 그것들이 일제히 지크를 째려봤다.

“눈알 아무 데나 달고 다니며 못 볼 꼴 많이 보지 않냐?”

지크가 빈정거리자 팔의 빈 공간에 이번엔 입이 생성됐다. 그리고 동시에 말했다.

-최소한 네 죽음은 잘 볼 수 있겠지!

콰앙!

그것의 피부에 붙어 있던 모든 얼음들이 박살 나 흩어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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