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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38화 (338/628)

제338화

윈두르와 괴물의 낫이 충돌했다. 낫을 이루는 물의 압력을 높였는지 괴물의 낫이 윈두르를 막아냈다.

지크는 몇 번 더 검을 휘둘렀다. 괴물도 낫으로 방어했다. 그러나 낫의 움직임이 점점 윈두르를 따라가지 못했다.

서걱!

결국 윈두르에 의해 팔이 잘려나갔다. 공격 수단을 잃자 괴물은 맨 몸으로라도 지크에게 달려들려 했다. 하나, 그 전에 윈두르가 괴물의 목을 잘라냈다.

촤악!

괴물이 물로 돌아갔다.

‘어려운 녀석은 아니군.’

이 정도면 한스와 스녹도 어렵지 않게 놈들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크의 생각은 반만 맞았다.

번쩍!

에스텔레이드가 빛을 뿜으며 괴물의 머리를 잘라냈다. 괴물은 속절없이 평범한 물로 변해 바닥을 적셨다.

거기까지는 지크의 예상대로였다. 그러나 스녹은 달랐다.

“어, 어? 이, 이게 왜 이러지?”

쿠우우우우!

스녹의 당황한 음성에 지크는 스녹이 싸우는 곳을 쳐다봤다.

미스릴이 자유자재로 허공을 유영하며 괴물들을 난타한다. 숫자도 많고 미스릴 특유의 단단함으로 인해 스녹의 공격은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지금껏 스녹이 처치한 괴물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이, 이게!”

약이 올랐는지 스녹이 계속 미스릴을 움직였다. 팔을 변형시킨 무기로 짓쳐오는 미스릴들을 쳐내는 괴물들이었지만 스녹의 집요한 공격에 몇몇 공격을 허용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날아간 미스릴은 머리나 몸통을 가리지 않고 박혀들었지만 괴물의 몸을 통과해버렸다. 괴물은 일절 대미지를 입지 않았다.

“스녹!”

“네, 지크 님!”

“넌 라일라와 엘레나를 지켜라!”

“네, 넷!”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 때문인지 스녹이 풀이 죽었다. 그의 어깨에 올라 타 있는 노웸도 고개를 떨구며 축 늘어졌다.

하지만 지크의 명령은 착실히 실행했다. 미스릴들이 라일라와 엘레나 근처에 모여들며 천천히 회전했다. 두 명은 조금 더 마음을 놓고 마법을 난사했다.

지크는 이번에는 한 번에 세 개의 괴물을 베어 넘겼다. 그것들을 바로 물로 변했다.

‘나와 한스는 죽일 수 있는데 스녹은 불가능하다라.’

척 봐도 괴물들은 물리력에 극도로 강해보이긴 했다. 마법에도 강했다.

지금 라일라와 엘레나가 괴물들을 처치하는 방법은 녀석들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물 자체를 증발시켜버리는 것이다.

다른 마법들은 통하지 않았다. 그걸 생각하면 스녹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다. 지크와 한스가 특별한 것일 뿐.

그리고 그 이유는 쉽게 짐작이 갔다.

‘윈두르와 에스텔레이드.’

두 특별한 검이 괴물들에게 타격을 주는 것이 분명했다.

투확! 투확!

거리가 떨어진 괴물들의 입에서 물이 뿜어져 나왔다. 거센 수압이 지크 일행을 덮쳤다.

주변을 날카롭게 경계하고 있던 스녹이 대항했다. 그의 의지대로 미스릴이 움직였다.

퍼엉!

미스릴 여러 개가 뭉쳐 만들어진 방패를 물줄기들은 뚫지 못했다. 물은 위력을 잃고 평범하게 미스릴을 타고 흘러 아래로 떨어졌다.

그 옆을 라일라의 커다란 불꽃이 스쳐지나갔다.

콰아아앙!

거센 물줄기를 뿜어낸 괴물들에게 불꽃이 떨어졌다. 순식간에 괴물의 몸이 끓어오르며 몸의 상당 부분이 증발했다.

촤악!

형체를 잃고 물이 쏟아진다. 바닥에 떨어진 물도 새하얀 김을 모락모락 내고 있었다.

그렇게 괴물들은 하나하나 스러져갔다. 동료가 죽어나감에도 아득바득 지크 일행을 향해 공격해 들어왔지만 지크 일행의 강대한 화력에 그것들의 공격이 닿는 일은 없었다.

서걱!

지크의 일검에 마지막 괴물이 물로 변해 쏟아졌다. 그걸로 끝이었다. 주변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는 물들이 괴물들이 존재했었음을 증명할 뿐이었다.

노웸이 스녹의 어깨에서 툭 뛰어내렸다. 바닥을 적신 물에 코를 대 킁킁 댔다. 괴물들을 이루고 있던 물에 호기심을 느낀 모양이었다.

“절대 마시면 안 돼, 노웸!”

스녹은 노웸이 혹시라도 바닥에 고인 물을 마실까 말했다.

“뭐 알아낸 거 있어?”

라일라가 지크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만큼이나 해치웠으면 뭔가 알아냈을 것도 같은데.”

“자세하게 알아낸 건 없어. 하지만 떠오르는 건 두 개 정도 있더군.”

“나도 그래.”

지크와 라일라는 서로 마주보며 동시에 내뱉었다.

그림자와 플레임 트루퍼.

비올루윈 유적에서 석상과 함께 지크 일행을 습격했었던 그림자와 아드로원 대수림에서 철의 일족이 조종하던 플레임 트루퍼.

그것들은 불, 그림자, 지금 상대하고 있는 녀석들은 물로, 몸을 이루고 있는 속성은 전혀 달랐지만 그 외에 형태라든가 공격 방식 같은 건 정말 비슷했다.

라일라가 말했다.

“만약 우리 생각이 맞다면 생성 원리도 그 두 개와 같을 거야.”

“나무 말인가.”

비올루윈의 유적에서 하나, 아드로원 대수림의 유적에서 하나를 봤다. 만약 여기에 나무가 있다면 세 번째의 나무가 된다.

“여기가 클로원의 유적임이 점점 확실해지는 것 같군.”

“그러게.”

자신들이 찾는 장소일 거라는 확인이 점점 굳어지자 라일라의 기분이 좋아졌다.

“이곳의 나무는 속성이 물이겠지?”

“덤벼온 놈들을 생각하면 그렇지.”

지크는 괴물들의 흔적인 바닥의 물을 보며 대답했다.

“그리고 나무를 이용하는 놈도 있을 테고 말이야.”

“그럴 가능성이 높지.”

비올루윈에 있던 유적처럼 침입자를 퇴치하는 자동 방범 시스템 같은 것일 확률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만약 그렇다면 유적 바깥에까지 나와 라일라를 죽이려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 녀석일까?”

라일라는 상대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적지 않은 호기심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을 죽이려 들었던 이유가 뭔지 듣고 싶었다.

“그거야 아래로 내려가면 알게 되겠지.”

하지만 급하게 내려갈 생각은 없었다. 상대의 전력은 미지수다 딱 괴물들을 움직일 만큼의 힘만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더 높은 능력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몸 상태는 웬만해선 최선으로 유지해야 해.’

마침 주변도 사람들이 머물기 좋은 곳이다. 앞으로 이보다 더 쉬기 좋은 곳이 나오리란 보장은 없다.

지크는 이곳에서 한 번 쉬어, 소모한 힘을 보충하기로 정했다.

지크의 명령에 일행은 쉴 준비를 시작했다. 불을 피우고 모포를 꺼내며 움직이는 일행. 하지만 먼 곳에서 그들을 응시하고 있는 시선이 있다는 걸, 지크조차도 눈치 채지 못했다.

* * *

눈을 떴다.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눅눅한 어둠이 온몸을 옥죄는 느낌에 소름이 돋는다.

라일라는 급히 불덩이를 피워 올렸다. 그러나 빛은 보이지 않았다.

마법이 실패한 건 아니다. 마력은 계속 소모되고 있다. 마법이 성공했을 때의 느낌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붉은 불빛도 화끈한 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주변을 뒤엎은 어둠이 그것들을 모조리 잘라 먹고 있는 것 같았다.

덜컥 겁이 났다. 주변에 같이 잠이 든 일행을 찾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곁에서 잠이 든 엘레나는 물론이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잠자리를 만든 지크, 한스, 스녹까지.

아니, 지금 있는 이곳이 잠이 든 지하 도시가 맞는지조차 의문스러웠다.

아래를 보니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이 공간에 바닥이란 것 자체가 없었다.

발을 버둥거려 봤지만 느껴지는 건 없다. 그저 기분 나쁜 부유감만이 더 또렷이 느껴질 뿐이었다.

이쯤 되자 라일라의 위기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입이 들썩거렸다. 온몸에 마력이 순환하며 손끝으로 모여들었다.

옆에 놔둔 지팡이는 보이지 않아 평소보다 마력의 운용이 힘들었지만, 애초에 지팡이를 쓴 시절보다 쓰지 않은 시절이 긴 라일라다. 물론 그녀가 기억을 하고 있는 시절 안에서지만.

중요한 건 지팡이를 들지 않은 라일라도 무척이나 강하다는 것이다.

마법은 빠르게 완성되어 갔다. 하지만 라일라는 아미를 찌푸렸다.

지금 그녀가 준비하고 있는 마법은 번개 마법이다. 원래라면 번개 특유의 빛과 폭음이 주변을 휘젓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차라리 마법이 무효화되고 있다면 이해라도 가련만.

라일라의 주문이 끝났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마법을 쐈다. 강대한 마력을 머금은 번개가 날아갔다.

그러나 의미 없었다.

번개는 어둠을 찢지 못했다. 오히려 어둠에 가려져 존재가 먹혀버렸다.

라일라는 온갖 마법을 발사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주먹을 휘두르고 발을 구르며 악을 써봤지만 변화는 없었다.

그저 끝없는 어둠뿐.

거칠어진 호흡을 주체하지 못한 채 라일라가 주변을 미친 듯 둘러볼 때였다.

뭔가 보였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등장한 그것에 당연히 라일라의 시선이 쏠렸다.

반갑게 그것을 보는 라일라. 하지만 그녀의 얼굴이 굳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혹시 지크나 다른 동료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새롭게 나타난 것은 동료가 아니었다.

눈.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 동그랗고 새하얀 구에 검은 색의 원이 눈동자처럼 박혀 있다. 원의 주변으로는 가느다란 붉은 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핏발이 바짝 선 눈알. 나타난 것은 그것이었다.

라일라가 주춤 물러섰다.

또 하나의 눈이 원래 있던 눈 옆에 나타났다. 그리고 또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고 또 하나, 또 하나.

전면부에 나타난 엄청나게 많은 눈알에 라일라조차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눈알은 계속해서 세력을 확장해갔다. 그녀를 포위하듯 양 옆은 물론 위, 아래, 뒤까지 나타났다.

어떤 방향 어떤 장소에 나타난 눈알이라도 그 시선만은 정확히 라일라를 향하고 있었다.

그 소름 돋는 광경에 라일라가 무의식적으로 마법을 준비할 때였다.

유일하게 눈알의 세력이 침식하지 않은 공간에 새로운 눈알이 하나 나타났다.

그건 거대했다. 웬만한 산 하나 정도의 크기는 되어 보였다. 그 박력에 라일라가 주춤했다.

라일라와 그것의 시선이 마주쳤다.

입도 얼굴도 없는, 그저 눈알뿐인 존재. 하지만 라일라는 그것이 자신을 보고 웃고 있다고 느꼈다.

음습하고 잔인하게.

* * *

“어이, 라일라!”

귀에 낯익은 음성이 꽂힌다. 라일라가 눈을 번쩍 떴다.

“정신이 들었군. 괜찮아?”

지크가 라일라의 눈 앞으로 손을 휘휘 내저어본다. 라일라의 눈동자가 그것을 따라 움직였다.

보였다. 주변을 뒤덮은 어둠은 사라지고 자신을 쳐다보던 눈알들도 온데간데없다.

라일라는 벌떡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 봤다. 자신이 잠이 든 지하 도시의 전경이 보였다.

“악몽이라도 꾼 거냐? 아주 온몸이 땀에 절었네.”

지크의 말에 라일라는 이마에 손을 대 봤다. 한가득 맺힌 땀이 느껴졌다. 옷도 축축했다.

하지만 그 감촉이, 그 시야가 너무도 기쁘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없는 어둠의 공포가 아직까지도 생생했다.

“진짜 괜찮은 거냐?”

라일라의 상태가 정말로 심각하다고 느꼈는지 지크가 조금 심각하게 물었다.

라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그저 악몽을 꾼 것뿐이야.”

그래, 그건 그저 악몽일 뿐이다. 그래야만 했다.

“무슨 악몽을 꿨기에 그렇게 심한 몰골이 되는 거냐?”

“그러게.”

힘 빠진 목소리로 라일라가 말했다.

“그건 대체 뭐였을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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