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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36화 (336/628)

제336화

슈트올이 있는 나라는 제국이 아닌 왕국이다. 당연히 나라를 통치하는 자도 황제가 아니라 왕이다.

나라의 지도자가 언급되는 설화는 몇 개가 더 있었지만 그 설화들은 모두 지도자를 왕이라 칭하고 있었다. 황제라 지칭하는 설화는 그것뿐이었다.

당연히 눈에 띄었다.

물론 확실한 건 아니다. 애초에 옛날부터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다. 정확도를 보증할 리 없다.

따라서 확인을 해봐야 했다.

“가 봐야겠지?”

“가 봐야지.”

라일라와 지크가 번갈아 말했다.

“절벽을 따라 남쪽으로 쭉 가다 보면 있다고 했었지?”

“바닷물이 가득 차 있어 걸어서는 가지 못한다고 했으니 배를 구해야겠어. 뭐, 지금 상황상 구하기 어렵진 않을 거야.”

몬스터들 때문에 많은 뱃사람이 죽었다. 아마 주인 잃은 배가 항구에 잔뜩 있을 것이다.

다른 때라면 그런 배를 사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섰겠지만 몬스터의 습격으로 말미암아 도시에 바다로 나가는 것에 대한 공포감이 깔려 있었다. 배를 팔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만약 그 동굴이 정말로 우리가 찾던 곳이라면 정체가 뭘까?”

라일라가 말했다.

“글쎄. 하지만 설화가 맞다면 상당히 중요한 곳이 아닐까 싶다. 지옥과 연결되어 있다는 소문은 도시의 사람들이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게 퍼뜨린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거든. 게다가 황제가 직접 부하들을 보내 악마들을 처단했다는 소리는 그곳에 직접 뭔가를 챙기기 위해 부하들을 보냈다는 소리로 들려.”

“잘만 풀리면 클로원의 황제가 직접 챙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소리네?”

“어쩌면 비올루윈이나 아드로원 대수림과 비슷한 게 있을 수도 있어.”

“꿈 같은 소리네.”

“꿈 같은 소리지. 너무 희망적인 생각이기도 하고. 하지만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잖냐.”

“그것도 그래. 그럼 지크, 네 생각대로 희망에 부풀어 기대하고 있을게.”

“그래도 너무 많이 갖진 말고. 너무 들떠서 기분만 하늘 높이 올라가 있다가 현실을 깨닫고 떨어지면 무지 아프니까.”

“충고 고마워.”

그 후로도 둘은 잠시 동안 잡담을 나누거나 동굴 탐험에 대한 준비를 토론했다.

* * *

지크의 예상대로 배는 꽤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저렴하게. 지크의 예상보다 바다로 나가길 꺼려 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일 것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정말로 바다만 봐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의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니라면 충격은 시간 속에 차츰차츰 묻혀 간다.

게다가 바다를 삶의 원천으로 삼았던 사람들은 먹고사는 문제 때문이라도 다시 바다로 나올 수밖에 없다.

절대 무역과 어획을 포기할 수 없는 시의 방침도 그 속도를 더욱 가속시키리라.

지크가 구한 배는 돛 없이 노를 저어서 움직이는 작은 배였다. 동굴에 들어가야 하니 쓸데없이 덩치가 큰 배는 필요 없다. 제대로 다루지도 못한다.

지크 일행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적긴 하지만 벌써 바다로 나다니는 배들도 있었다. 계약날짜에 구애받는 상선들이 대부분이었다.

노는 한스와 스녹이 하나씩 잡았다. 뱃머리에 떡하니 발을 걸친 지크의 명령대로 노를 저었다.

단련된 육체에 마력까지 사용하는 그들이다. 고작 다섯 명이 탄 조그마한 배를 모는 데 힘이 들 리 없었다.

“좋아! 그대로 전진!”

해안 절벽을 따라 그들은 쭉 나아갔다. 한스, 스녹의 능력에 힘입어 속도는 빨랐다. 예상보다 일찍 목적지에 도착했다.

“저기가 거기로군.”

지크는 해안 절벽에 뻥 뚫린 커다란 동굴을 쳐다봤다.

규모는 상당히 컸다. 입구부터 웬만한 대저택은 그대로 들어갈 것 같았다. 지크 일행의 작은 배라면 들어가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듣던 대로 물살이 문제였다. 입구부터 거친 물살이 새하얀 포말을 만들고 있었다.

“전진해.”

지크의 명령이 떨어지자 한스와 스녹이 노를 저었다. 배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동굴에 접근하면 할수록 물결이 거칠어지며 배의 요동이 심해졌다.

라일라가 지크에게 다가왔다.

“그냥 다 얼려버릴까?”

“아니, 뭐가 있는지 모르는데 그렇게 힘을 낭비할 필요는 없어. 여기서는 작전대로 가자.”

“알았어.”

배가 동굴 입구 근처에 다다랐을 때였다.

우웅!

조그마한 울림소리.

하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듣기에는 충분한 소리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리의 주인공, 윈두르에게 쏠렸다.

“…제대로 찾은 것 같군.”

배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캄캄한 동굴 속 어둠이 그들에게 마치 경고를 보내는 것 같다.

“엘레나.”

“네!”

이번 조명 담당은 그녀였다. 라일라는 혹시나 하는 상황을 대비해 전력을 아껴뒀다.

지크와 한스는 조명 따위 필요 없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빛이 있어야 능숙한 행동과 판단이 가능했다.

엘레나가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그녀의 지팡이 끝에서 사람 얼굴만 한 불덩이 하나가 솟았다.

밝은 빛을 뿜는 그것의 존재 덕에 당장이라도 배로 침범할 듯 꿈틀거리던 어둠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지크가 마법 상자에서 기다란 쇠사슬을 꺼내 들었다. 이번에 침몰한 배들 중 닻을 연결하던 쇠사슬을 가져온 것이다. 사슬 끝에 닻을 떼고 커다란 강철 송곳을 달았다.

덜컹!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 본격적으로 동굴의 거친 와류에 배가 휩쓸리기 시작했다.

“노 집어넣어.”

한스와 스녹이 노를 바닥에 내려놨다. 배가 조금 더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주변을 비추고 있는 불덩이가 흔들렸다. 엘레나의 몸이 배가 흔들릴 때마다 이리저리 기운 것이다. 배 바닥에 무릎을 댄 채 지팡이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지만 몹시 불안해 보였다.

“스녹, 엘레나 부축해.”

“네!”

스녹이 엘레나의 어깨를 붙잡았다. 지크, 한스, 스녹은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능숙하게 중심을 잡았다. 지금껏 한 훈련들을 생각하면 고작 이런 흔들림에 중심을 잃는 게 더 이상했다.

라일라는 엘레나보다는 낫지만 그녀도 조금씩 휘청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지크의 어깨를 붙잡고 버텼다.

후웅!

지크가 쇠사슬이 붙은 송곳을 던졌다. 쇠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나며 마치 허공을 나는 뱀처럼 쇠사슬이 똑바로 날아갔다.

콰직!

송곳은 동굴 벽에 깊이 틀어박혔다. 지크는 반대 방향 벽에 또 하나의, 쇠사슬과 연결되어 있는 송곳을 던졌다.

콰득!

그것도 만족스러운 깊이로 박혔다. 지크는 뱃머리에 발을 단단히 고정하고 양손으로 쇠사슬을 힘껏 잡아당겼다.

쿠웅!

쇠사슬이 팽팽해지며 격류에 휘말린 나뭇잎처럼 제멋대로 움직이던 배가 일순 멈췄다.

격류가 계속해서 배를 밀어내려 했지만 배는 마치 튼튼한 바위 위에 얹혀지기라도 한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크는 쇠사슬을 당겼다. 배가 전진을 시작했다. 동시에 두 개의 사슬을 당기는 것이 불편하긴 했지만 지크는 묵묵히 사슬을 감아올렸다.

사슬이 박힌 곳에 배가 접근하자 지크는 사슬 하나에 마력을 집어넣었다.

쾅!

송곳이 박혀 있던 벽이 쇠사슬을 통해 주입된 마력에 터져 나갔다. 박혀 있던 송곳이 떨어졌다.

지크는 송곳을 회수해 동굴 더 깊은 곳에 있는 벽에 박아 넣었다. 다른 송곳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다시 배를 끌었다.

동굴은 굉장히 깊었다. 디딜 땅도 없이 그저 험한 물길이 계속 이어졌다.

다행히 조금 더 가자 동굴의 끝이 보였다. 그러나 그다지 좋은 끝은 아니었다.

“막혔네?”

“막혔군.”

앞에 등장한 동굴 벽을 보며 라일라와 지크가 내뱉었다.

그들이 들어온 통로를 제외하면 어디도 지나다닐 만한 통로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물이 계속 와류를 치는 걸 보면 수면 아래에 물이 흘러가는 수중동굴이 있지 않을까 추정될 뿐이었다.

사람이 디딜 만한 땅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그들의 앞길을 막은 벽면에 붙어 있는 평평한 땅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다지 넓지 않아 사람이 열 명 정도 올라간다면 꽉 들어찰 것 같았다.

‘수중동굴을 찾아봐야 하나.’

지크는 고민했다.

각오는 했었다. 이런 해식동굴 중 수면 아래의 수중동굴과 연결된 곳도 있다는 걸 지크는 알고 있었다.

탐사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귀찮고 위험하고 번거로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크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우웅!

마치 지크의 고민을 해결해 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윈두르가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지크가 윈두르를 들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윈두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지크가 윈두르를 앞으로 내밀었다. 울음이 조금 더 강해졌다.

지크는 배를 전진시켰다. 윈두르의 울음소리도 점점 더 커져갔다.

배가 땅에 부딪혀 덜커덕 소리를 냈다. 지크는 그 조그마한 땅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벽 이곳저곳을 살폈다. 그러다 어느 지점 앞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뭔가 있어?”

배에서 발 하나만 내놓은 채 라일라가 물었다.

“있다. 아주 익숙한 게.”

지크는 윈두르의 끝을 전면으로 향하고는 수직으로 세웠다. 정답이라는 듯 윈두르의 떨림이 더 심해졌다.

지크는 윈두르를 천천히 밀어 넣었다. 목표는 방금 발견한, 벽면의 틈이었다.

윈두르는 틈 안으로 부드럽게 들어갔다.

철컥!

윈두르의 검신이 벽면 안으로 완벽히 사라진 순간, 동굴 안으로 무언가 맞물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지크는 윈두르를 돌렸다.

끼기기긱!

어떤 장치가 작동하는 소리가 벽 너머에서 또렷하게 들려왔다. 윈두르가 반 바퀴를 회전했을 때였다.

쿠쿠쿵!

동굴에서 약간의 진동이 일었다. 윈두르가 꽂힌 곳을 중심으로 벽이 조금씩 움직였다.

마치 돌덩이를 뒤쪽에서 하나하나 옮기듯 벽에 구멍이 숭숭 뚫리더니 어느 순간 그들 앞에 통로 하나가 나타났다.

엘레나가 침을 삼켰다. 그녀는 이런 광경을 처음 봤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달랐다.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라일라는 배에서 내렸다. 나타난 통로 앞으로 가 안을 쳐다봤다. 동굴보다도 더 어두운 어둠이 안에서 똬리를 틀고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 같다.

“…클로원의 유적.”

그것이 분명했다.

“당첨인 모양이야.”

문을 열고 침묵한 윈두르를 다시 등에 매며 지크가 기분 좋게 말했다.

* * *

지크는 배를 마법 상자 안에 집어넣은 후 일행을 데리고 새로 나타난 통로 안으로 진입했다. 통로는 누가 봐도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었다. 바닥, 벽, 천장 모두가 깔끔히 다듬어져 있었다.

“여, 여기가 그 클로원의 유적이란 곳이야?”

불덩이를 피운 지팡이를 품에 꼬옥 안은 채 엘레나가 사방을 둘러봤다.

마법사 특유의 지적 호기심에 힘입어 그녀의 눈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스녹이 대답했다.

“아마 그럴 거야. 예전에 이 비슷한 유적이 두 개나 있었거든. 예전에 말해줬지?”

“응.”

하지만 과연 듣는 것과 보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예전에 들었을 때도 직접 보고 싶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과연 범상치 않았다.

‘할아버지한테 얘기해주면 좋아하실 거야.’

“구경은 나중에 해. 지금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집중하는 게 좋아.”

스녹의 충고에 엘레나가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스녹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지팡이를 힘주어 잡으며 눈을 부릅떴다.

엘레나에게 주의를 주려던 라일라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그렇게 일행이 얼마쯤 걸었을까. 그들의 눈앞에 땅 깊은 곳까지 뻥 뚫려 있는 구멍 하나가 나타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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