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3화
마치 라일라가 자신이 생각하는 그 사람이 맞나 확인이라도 하듯 물 덩어리는 고개를 조금씩 움직여 라일라의 몸 전체를 훑었다.
스륵.
물 덩어리의 팔이 움직였다. 액체로 이루어져 진짜 사람의 손처럼 무언가를 쥐거나 할 순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건 오산이었다.
물 덩어리의 손가락이 쫙 펴졌다.
덥석!
라일라의 목을 움켜쥐었다.
“무…읍!”
목을 조이는 축축한 감촉에 눈을 번쩍 든 라일라. 본능적으로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그녀의 입을 물 덩어리의 다른 손이 막았다.
어둠 속이라 상대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입을 막는 상대의 피부 감촉에 라일라는 상대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란 것은 알 수 있었다.
숨이 막히고 정신이 아득해진다. 입과 코가 막혀 소리도 제대로 낼 수 없다. 평범한 사람도 위급한 상황이고, 마법사로서도 최악의 상황이다. 주문을 외울 수 없는 데다가 정신을 집중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라일라는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었다.
두 팔을 상대가 있는 곳을 향하게 했다. 그리고 마법을 발동하려 했다.
‘컥!’
가까스로 다잡은 정신이 흐트러졌다. 코를 통해 물이 왈칵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물은 기도를 넘어 폐까지 침투했다. 아무리 라일라라도 그 상황에 마법을 사용할 정도의 정신을 다잡긴 힘들었다.
그녀의 팔이 허우적거렸다. 자신을 죽이려는 상대를 손으로 두드렸다. 하지만 자신을 향한 공격에는 물이라는 장점을 십분 살리는지, 라일라의 팔은 그것의 몸을 통과하기만 했다. 게다가 그 소용없는 공격마저 짜증 났는지 그것은 라일라의 팔이 자신의 몸에 들어온 순간 몸의 압력을 높였다. 라일라의 팔이 얼음에 갇힌 듯 멈췄다.
그대로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라일라의 숨이 끊길 것 같았다.
콰앙!
방의 벽면이 터져 나갔다. 물 덩어리가 화들짝 놀란 것처럼 고개를 든다. 검은 그림자가 그것을 덮쳤다.
서걱!
날카로운 칼이 그것의 팔을 절단했다. 지금껏 라일라가 아무리 때려도 공격을 통과시키기만 할 뿐, 아무런 타격도 없어 보이던 그것의 몸이다. 하지만 지금의 공격은 효과가 있었다.
철퍽!
그것의 몸통과 팔이 분리됐다. 떨어져 나간 팔 부위는 평범한 물이 되어 라일라의 얼굴과 베개, 침대에 쏟아져 내렸다.
“커헉! 콜록! 콜록!”
라일라가 몸을 뒤집었다. 그대로 기침을 해대며 몸속으로 주입된 물을 토해냈다. 그녀의 앞으로 포션 병 하나가 내밀어졌다. 그녀는 허겁지겁 그걸 잡아 마셨다. 고통이 급격히 가라앉았다.
“괜찮냐?”
라일라 앞을 지키고 선 지크가 물었다.
“괘, 콜록! 괜찮아.”
아직 기도에 남은 물을 기침 몇 번으로 토해낸 라일라가 비틀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빛 덩어리 하나를 띄웠다.
어둠에 뒤덮였던 방이 환해졌다. 라일라는 그제야 자신을 습격한 상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저건 뭐야?”
“글쎄. 나도 저런 건 처음 봐.”
윈두르를 겨눈 채 그것을 견제하던 지크가 대답했다. 회귀 전의 그 난장판을 겪은 지크로서도 눈앞의 것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깔끔한 단면을 내비치며 잘려 있는 팔뚝. 그것이 다시 지크를 쳐다본다. 아니, 그걸 쳐다본다고 할 수 있을까. 눈동자도 없이 그저 얼굴에 뻥 뚫려 있는 눈구멍이 정말로 시각 기관의 역할을 하는지는 판단할 수 없었다.
“너도 몰라?”
“오히려 난 너한테 묻고 싶은데. 누가 봐도 널 노리고 온 녀석 아냐.”
“저런 개성적인 친구라면 분명 기억에 남았을 거야.”
“그것도 그렇군.”
지크는 그것에 한 발짝 다가갔다. 그것은 지크와 라일라를 번갈아 쳐다봤다. 지크는 그것이 자신 쪽으로 얼굴을 향할 때, 자신보다는 윈두르를 쳐다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눈동자가 없는 괴물이 뭘 보는지 알아내는 건 지크도 불가능했다.
그것의 형상이 갑자기 붕괴됐다. 공격을 하려는 셈일까. 지크가 그것에게 뛰어들었다. 라일라도 바로 마법을 준비했다.
촤악!
윈두르가 그것의 몸을 갈랐다.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인간 형태를 잃은 그것이 무너지며 바닥을 적셨다.
지크는 혹시라도 그것이 다시 일어설까 바닥의 물을 경계했다. 그러나 반응은 없었다. 지크가 윈두르로 흠뻑 젖은 바닥을 몇 번 두드려봤다. 그러나 바닥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만 날 뿐, 물이 공격한다든가 하는 반응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때?”
“그냥 평범한 물이다.”
지크가 윈두르를 회수하며 말했다.
“도망갔군.”
* * *
소란이 일자 당연히 숙소의 주인이 올라왔다. 방문 밖을 보니 다른 숙박자들도 무슨 소란인지 방문을 열고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지크는 주인에게 적당히 말을 둘러댔다. 방에서 검을 좀 휘두르다가 잘못 해서 마력이 터져 나갔다며 변명했다.
당연히 주인은 언짢아했다. 하지만 지크가 보상으로 상당한 양의 금액을 내밀자 바로 얼굴을 바꿨다. 주인은 지크를 공손히 대하며 바로 방을 바꿔줬다.
역시 돈의 힘은 엄청났다. 게다가 지크의 행위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이 없는 것도 영향을 끼쳤다.
다만, 그래도 주인 된 입장상 한마디 안 할 수는 없는지 다시는 검을 휘두르지 말라고 지크에게 당부했다.
소란에 달려온 일행을 다시 방으로 돌려보낸 후, 지크와 라일라는 새로 배정받은 방에 모였다.
“왜 그런 거짓말을 했어?”
라일라가 물었다.
“말을 해도 어차피 귀찮아지기만 하지 도움받을 건 없어 보였으니까.”
“하긴, 상대를 생각하면 그렇지.”
라일라는 불빛 아래 드러난 상대를 생각하고는 인상을 썼다. 말 그대로 죽을 뻔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상대의 정체도 문제였다.
“대체 그건 뭐였을까?”
“회귀 전에도 그런 건 본 적이 없어. 물을 매개로 했다는 것 외엔 당장 생각나는 건 없군.”
마지막에 평범한 물로 돌아갔으니 그건 일단 확실할 것이다.
“사람 형태로 변환시킨 뒤 그렇게 강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라. 상당히 골치 아플 것 같아.”
물이 기도를 넘어 폐까지 흘러들어 온 기억이 다시 떠올라 라일라는 몸을 한 번 떨었다.
“생각해볼 건 널 노렸다는 건데.”
지크는 라일라를 의심스럽게 쳐다봤다.
“너, 나 몰래 나쁜 짓 하고 다녔냐?”
“…너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까 분노를 넘어서 인생의 회한까지 느껴져.”
라일라가 지크를 날카롭게 쏘아봤다.
“뭐, 그렇겠지. 네가 남의 원한을 살 만한 성격도 아니고. 나 때문에 일행인 네가 습격당한 것도 아닐 거야. 나도 원한이 남을 일은 기억에 없으니까.”
“네가 원한 살 짓을 하지 않았다고?”
“말은 바로 해. 원한이 남을 일. 내 원한은 남지 않아. 대부분 다 죽여 버리니까.”
“아, 그래.”
당당한 지크의 말에 라일라는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걸리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냐. 어제 네가 바다에서 느꼈다던 시선. 그게 관련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시선? 그건 내가 착각한 거 아냐? 실제로 텅 빈 바다였…!”
라일라가 말을 끊었다. 그리고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빠졌다.
그녀를 습격한 것은 물의 형태를 한 괴물. 그리고 그녀가 시선을 느낀 곳은 물이 가득 들어찬 바다다.
‘그러고 보니 물이 짰었어!’
너무 당황한 나머지 생각나지 않던 기억이 슬쩍 얼굴을 내밀었다.
“네가 습격을 받았을 때, 나는 어떤 기척도 느낄 수 없었어. 아무리 잠결이라도 네 방에 무언가 침입했다면 뭔가 느끼긴 해야 하는데 말이야.”
“그러면 어떻게 내가 습격받고 있단 걸 안 거야?”
“네가 느꼈다는 시선이 신경 쓰여서 계속 네 방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거든. 갑자기 네 기척이 사라지더군. 네가 뭔가 마법을 사용한 게 아닐까 잠깐 생각했지만 상황상 네가 그럴 리 없잖아. 그래서 돌입했다.”
“…계속 신경 쓴 거야?”
“나는 말이야, 라일라.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네 능력을 높이 평가해. 네가 그렇게 반응할 정도로 뭔가를 느꼈다? 물론 착각일 가능성도 있지. 하지만 의심은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렇구나.”
설마 자신보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 더 높이 평가하다니. 괜한 쑥스러움에 라일라는 괜히 손가락을 옷에 문댔다.
“그 괴물이 기척을 그렇게까지 없앨 수 있었으니, 바다 쪽에서 네가 감지한 시선이 그놈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그럼 날이 밝았을 때 확인해야 할 곳이 정해졌네.”
“그래.”
지크와 라일라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아직 어둠이 사방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쪽 방향에 그것이 있었다.
방대하고 깊어, 안에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커다란 바다가.
* * *
지크 일행은 아침부터 슈트올 아래의 항만이 있는 곳까지 나와 있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그곳은 노동자들과 어부들의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저기쯤일 거야.”
라일라가 자신이 시선을 느낀 곳을 가리켰다. 어제와 같이 그곳에 존재하는 건 파란 바다와 간간이 치는 파도뿐, 뭔가 특이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거리도 상당히 먼 데다가 장소를 특정할 무언가가 없는 바다라는 환경 때문에 라일라가 가리키고 있는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도 제대로 인식하기도 힘들었다. 가리키는 라일라도 어림짐작으로 가리키고 있을 뿐이었다.
“잠수가 필요할까요?”
한스가 지크에게 물었다.
“필요하다면 해야지. 하지만 일단 물 위에서 한번 살펴보자고.”
지크는 어선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적당량의 돈을 줘 배를 빌린 지크 일행은 바다로 나아갔다. 방향은 라일라가 가리켰다.
라일라의 설명은 두루뭉술했지만 선장은 불평 하나 없이 그녀가 가리키는 곳으로 배를 몰았다. 충분한 돈이 그걸 가능케 했다.
“이 근처였던 것 같아.”
라일라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직접 와 보니 그 구역은 상상 이상으로 넓었다.
지크는 바다 아래를 내려다봤다. 검푸른 바닷물이 시야를 가린다. 지크는 머리를 긁적였다.
‘너무 단순한 생각이었나?’
이제 와서 라일라가 느꼈다는 시선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시선만 가지고 바다를 뒤져야겠다는 건 조금 생각이 짧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단서가 이곳만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배를 빌리는 기간을 더 늘린 후에 직접 들어가 봐야겠어.’
바다에 들어가 본 경험은 있다. 마력을 사용한다면 오랜 시간 바다 밑에서 활동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곳 바다는 꽤 깨끗해 시야가 넓을 것이다.
지크가 일행을 불러 모아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 할 때였다.
우웅!
그가 뒤를 돌아봤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시선은 윈두르의 검자루에 꽂혀 있었다.
‘지금 이 녀석이 진동했지?’
갑작스러운 윈두르의 울림에 놀란 것도 잠시. 지크의 시선이 다시 바다 아래로 떨어졌다.
‘이건…!’
지크는 윈두르를 끌어내렸다. 지크의 부름을 듣고 모이던 일행이 그 모습을 보고 놀랐다.
“지크 님! 무슨 일이 있습니까?”
“바다 아래 기척을 느껴 봐.”
한스는 지크의 말대로 바다 아래 쪽에 감각을 집중했다. 잠시 후, 그의 얼굴이 굳었다.
“몬스터군요.”
“이봐요, 선장!”
지크가 크게 소리쳤다.
“당장 배 돌려요! 돌아갑시다!”
지크가 귀항 명령을 내린 지 얼마나 됐을까.
콰직!
바다에서 나온 날카로운 손톱을 지닌 손이 선체를 부여잡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