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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27화 (327/628)

제327화

“주인…이라고?”

“그래. 주인.”

지크는 일어나 근처에 나뒹구는 상자 하나를 집었다. 팀 옆에 상자를 놓더니 그 위에 앉았다.

“미래에 말이야, 팀. 너는 어마어마한 악당이 돼.”

과거를 회상하는 노인처럼 지크의 시선이 아련해졌다. 그런 눈을 하기에 지크의 외모는 무척이나 젊었지만 팀은 어쩐지 그 모습이 어색하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내 부하가 되지.”

“…착한 짓을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주제에 악당을 부하로 받는다고?”

“미래에 난 너보다 더 엄청난 대악당이 되거든.”

“헛소리.”

“진짜야. 내가 어째서 너도 알지 못하는 네 버릇이나 능력의 약점 같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그래, 미래에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치자. 그걸 어떻게 알지? 너는 미래의 일을 예지하는 예언자라도 된다는 건가?”

“아니면 미래에서 되돌아온 회귀자인지도 모르지.”

사기꾼 같은 지크의 말에 팀은 적잖게 혼란스러웠다. 지크의 말이 너무도 허황된 것이어서였다.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말이 진실이라면 지크의 말에 설득력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팀은 그 이상의 생각을 포기했다.

어차피 자신은 살아나기 틀렸다. 이제 와서 지크가 미래를 읽는 예언자든, 미래에서 온 회귀자든, 그도 아니면 아예 하늘에서 내려온 악마의 화신이든 알 게 뭔가.

그저 거슬리는 말 하나를 부정할 뿐이었다.

“이봐. 어떤 헛꿈을 꿨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대악당이 되는 미래는 충분히 있을 법해. 아니, 나 정도의 인간이라면 충분히 어마어마한 악당이 되겠지. 그런데 내가 네 부하가 된다고?”

“미래에는 정말….”

“지랄.”

거친 욕설로 팀이 지크의 말을 끊었다.

“나는 너를 절대 따르지 않아. 악당이란 녀석이 왜 착한 놈을 따르겠냐!”

지크의 사고가 멈췄다. 하고 싶었던 말도 대꾸할 말도 생각나지 않는다. 오직 팀이 말한 한 단어가 귀에 걸렸다.

“…착한 놈이라고?”

“그래. 착한 놈. 미래에는 나보다 더한 대악당이 된다느니 소리를 지껄이는데, 지금 네 모습을 보면 나보다 더한 대악당은 둘째 치고 그저 그런 악당이라도 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놈이야.”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나는 착한 놈이 절대….”

“괴상한 놈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특이한 녀석일 줄은 몰랐군. 예전에 내가 그랬지? 네가 나와 같은 부류라고.”

“그래.”

“절대 아니다, 병신아.”

거친 말과는 다르게 차분한 어조로 팀은 그렇게 말했다.

“그건 너도 인정한 것 아니었나?”

“그래. 그랬지. 그러니까 말하는 거다. 겸허하게 내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거야.”

“네놈은 겸허와는 거리가 먼 놈이잖냐.”

“죽기 전에 회개라도 했다 쳐.”

“일단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 자격도 갖고 있다만. 기도라도 올려주랴?”

“…너 같은 놈에게 명예 성기사 자격을 줬다고? 카르위먼 놈들이 드디어 정신이 나갔나?”

아무리 지크를 착한 놈이라고 주장하는 팀이라도 명예 성기사라는 지위엔 어처구니가 없는 모양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한다만, 사실이야.”

지크가 보여주는 카르위먼 명예 성기사의 증표를 보고는 팀은 고개를 저었다.

“세계가 망하려나 보군. 그렇다면 차라리 먼저 가는 게 나을 수도 있겠어.”

망하진 않지만 지옥 같은 세계로 변하긴 한다. 하지만 말을 한 팀이 오히려 그 지옥을 구현하는 쪽이었다는 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였다.

“어쨌든,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까지 갖고 있다면 네놈은 더더욱 나와 같은 부류일 수가 없다.”

“이걸 받은 이유는 내가 착해서가 아니야.”

루벨라를 보호하고 밸리드 놈들을 족친 이유로 받은 것이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네 행동을 생각하면 카르위먼이 오히려 너라는 존재를 잘 알고 있었을 수도 있겠어. 너 자신보다 말이야.”

“누누이 말하지만 난 착한 놈이 아니….”

“착한 놈이 뭐냐.”

팀이 지크의 말을 끊었다.

“무슨 자격이라도 필요한 거냐? 그 자격을 누가 주지? 왕? 신? 아니면 성녀? 대체 누구한테 인정을 받아야 착한 놈이라는 거냐.”

팀이 다시 피를 한 바가지 토했다. 그의 수명이 꺼져가는 증거였다. 하지만 팀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아는 착한 놈이란 빌어먹을 것들은 착한 일을 하는 놈을 말해. 그리고 넌 착한 일을 한다며? 자연스럽게 착한 일을 하는 넌 착한 놈이란 게 되는 거다.”

지크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반론을 하고 싶었지만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껏 지크는 자기는 그저 착한 일을 하는 것일 뿐, 사실은 못돼 처먹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팀의 말은 그런 지크의 생각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었다.

“…내가 착한 놈이라고?”

지크가 상자에서 일어났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가 얼마나 꼬인 놈인지는 너도 잘 알잖아.”

술판에서 팀과 마음이 맞은 이유도 바로 그 개차반 같은 성질 때문이었다. 팀도 그것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 꼬였지. 그래서 순수한 착한 놈은 못 돼. 성질 지랄 맞은 착한 놈 정도 될 거다. 하지만 착한 놈이라는 건 변하지 않아.”

팀이 상체를 일으켰다. 뻥 뚫린 가슴 부위에서 새는 혈액이 한층 더 많아졌다. 그러나 팀은 개의치 않았다. 기도에 찬 핏덩이를 가래 뱉듯 뱉어냈다.

“좀 낫군.”

그의 목소리가 한결 편해졌다.

“고작해야 마음 좀 맞았다고 네가 내 부류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었어. 자긴 나쁜 놈이라고? 자기가 착한 놈이라고 위선 떠는 놈들은 봤어도 자기가 나쁜 놈이라고 주장하는 놈을 직접 본 건 처음이다. 그게 바로 자기비하 어쩌고 그거냐?”

팀은 지크의 얼굴을 쳐다봤다.

“직접 보니 더럽게 기분 나쁘군.”

“…착한 일을 한다고 해봤자 속내는 그렇지 않다.”

“네가 생각하는 착한 놈은 무슨 신이나 성자, 성녀뿐이냐? 착하다고 평가받는 인물들은 매일 매시 선한 생각만 하고 사는 줄 알아? 그놈들도 속으로는 온갖 속된 생각을 하고 있어. 난 잘 알아. 내가 착한 놈이라고 불릴 때 그랬으니까!”

주변에서 부탁을 받을 때는 귀찮았고 나쁜 말을 들으면 후려패고 싶었으며 돈이 보이면 갖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이상한 건 아니다. 그건 인간이라면 당연한 반응이니까.

“그래도 속된 마음을 내비치지 않고 그 착한 일이라는 것만 행동으로 옮겼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은 날 착한 놈으로 보더군. 지금의 너와 무척 비슷하지 않아? 그걸 인정하기 싫다면 역으로 질문 하나 하자. 속내는 착하디착한 놈인데 행동은 나쁜 짓을 하는 놈이 있다고 치지. 그 놈은 착한 놈이냐, 나쁜 놈이냐.”

“…내가 하는 착한 일은 나쁜 놈들을 때려죽이는 일이다. 고작 그걸로….”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불의를 전부 해결하려는 편집증 걸린 새끼들이 얼마나 돼. 나쁜 일 안 하고 적당히 착한 일 하며 살면 착한 놈이지. 게다가 네놈이 하는 나쁜 놈 때려잡는 일은 웬만한 사람들은 어려워하는 일이다. 네놈의 힘이라면 일반인은 제압하기 거의 불가능한 나쁜 놈들을 때려잡고 다니겠고. 그 정도면 사람들에게 칭송받을 정도의 착한 놈이지. 용사 소설이 괜히 인기 있는 줄 알아?”

팀이 크게 숨을 한 번 몰아쉬었다.

“미래에 대악당이든 나발이든 지금의 너를 보면 따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 착한 놈을 따라봤자 무슨 재미가 있겠냐.”

팀의 몸이 휘청였다. 간신히 상체를 세우고 있던 힘마저 빠진 모양이다.

그의 몸이 다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밭은기침과 함께 계속 피가 샜다.

지크는 팀을 쳐다봤다. 그가 익숙한 웨어울프 시절보다 훨씬 젊은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지금이라도 포션을 쓴다면 살릴 수 있을 거야.’

심장이 박살 나는, 다른 사람이라면 즉사할 부상을 입고도 팀은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물론 회복은 불가능하다. 빠른 시간 내로 팀은 죽음에 이를 것이다.

“동정 따위 필요 없어.”

팀이 말했다.

“착한 놈에게 받는 동정이라니, 구역질이 난다. 옛날 그 무능력한 나에게 동정을 받는 느낌이야.”

그건 팀에게 있어 최악의 모욕이었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주저리주저리 떠든 이유가 오직 그 감정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냐.”

“그래.”

“그럼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마지막 가는 길, 말동무 정도는 해주마.”

“젠장할! 나 죽을 때는 으리으리한 집에서 미녀들 사이에 안겨 죽는다고 정해 뒀었는데!”

“이걸로 참아.”

지크는 주변에 굴러다니는 귀금속 몇 개를 던져줬다. 몸에 떨어지는 반지, 목걸이 등등에 팀이 욕지기를 내뱉으며 투덜거렸다.

그러나 거부하진 않았다. 오히려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그것들을 착용했다.

착용한다고 해봤자 이미 인간의 덩치가 아닌 터라 제대로 착용하진 못 했다. 반지는 손톱에 간신히 꼈고 팔찌는 손가락에 얹었다. 목걸이는 팔목에 둘둘 감았다.

가슴에 구멍이 뚫려 죽어가는 늑대형태의 괴물이 온갖 귀금속을 착용한 그 모습은 뭐라 말하기 힘든 분위기를 풍겼다.

“으리으리한 집은 그걸로 됐고, 미녀는 없군. 죽을 때까지 내가 수발이라도 들어줄까?”

“내 몸에 손끝 하나라도 댔다간 어떻게든 네놈을 죽이고 간다!”

“좋아. 마음이 맞았군.”

지크가 다시 상자에 앉았다.

“이젠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봐.”

“없다. 더 이상 시간도 없는 것 같고.”

팀의 상처에서 나오는 피가 꽤 줄어 있었다. 상처가 나은 게 아니다. 이미 대부분의 피가 밖으로 빠져나온 것이다.

지크의 발치에도 이미 팀의 피가 흥건했다.

“유언 같은 건 없나?”

“나 같은 놈이 유언은 무슨. 화려하게 살다 가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지. 죽은 다음이 무슨 소용이야.”

팀은 저런 놈이었다. 회귀 전에도 오로지 현실에만 충실하며 자기가 죽은 이후라는 개념은 아예 머릿속에 담아놓지도 않았다.

그 때문에 팀이 그렌 제너드에게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가 죽기 전 사소한 것이라도 대화를 나눴었으면 좋았겠다고 아쉬워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정작 죽기 직전의 상황에도 대화는 되지 않았다.

“아, 그래도 하나만. 착한 짓 하면 당당하게 착한 놈이라고 해. 괜히 나 착한 짓하는 나쁜 놈이라는 이상한 헛소리 해대지 말고.”

“…네가 마지막 말을 남을 위해 쓰다니, 이것 참 놀랍군.”

“나도 마찬가지야. 젠장, 내가 이럴 놈이 아닌데!”

생각나는 건 두 가지다. 하나는 정말로 지크의 ‘나, 나쁜 놈이요!’ 하는 주장이 짜증 나서였고, 다른 하나는….

‘이래 봬도 같이 세상을 헤집고 다니고 싶던 놈이니까.’

그의 생에 무척이나 희귀한, ‘친구’로 사귈 생각이 들 정도로 짜증 나게 마음에 든 녀석이었던 탓이다.

“내가 싫다면?”

“네 멋대로 쳐 살아, 그럼!”

딱 거기까지였다. 팀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몸을 움직이지도 못 했고 눈을 껌벅이지도 못했다. 이젠 흘러나오는 피도 거의 없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전투의 반향 속에, 지크와 팀의 시체가 있는 곳만 정적이 깃드는 것 같다.

지크는 팀의 시체를 내려다봤다. 이제는 포션을 사용해도 살아나지 못한다.

지크는 상자에서 일어섰다. 아직 전투는 계속되고 있다. 지크는 가장 가까운 전투음이 들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자리엔 팀의 시체만이 덩그러니 놓여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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