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5화
지크의 윈두르가 팀을 향해 똑바로 날아간다. 윈두르의 날이 날카롭게 빛났다. 거기에 대항해 팀은 잡고 있던 기사를 집어 던졌다.
“끄륵!”
기사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해 정신을 반 쯤 잃은 상태지만 그는 제대로 살아 있었다.
팀이 손톱을 바짝 세운 채 힘없이 날아가던 기사의 몸통을 찔렀다. 기사를 던져 지크의 시야를 가리고 몸뚱이를 방패삼아 같이 꿰어 버릴 심산이었다.
아무리 인질을 구할 생각이 없다고 했지만 ‘착한 일’ 같은 헛소리를 하는 놈이니 내던져진 기사를 함부로 하지는 않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착각이었다.
푸욱!
팀이 기사의 몸뚱이를 찔렀다. 기사의 몸에 구멍이 뚫렸다. 그러나 뚫린 구멍은 하나가 아니었다.
‘무슨…!’
기사의 몸을 뚫고 튀어나온 윈두르에 팀이 기겁을 하며 몸을 틀었다.
카드득!
몸에 스치긴 했지만 강철 같은 팀의 털에 윈두르는 이렇다 할 상처를 내지 못했다.
팀이 피하는 바람에 제대로 데미지를 전달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팀의 등허리를 섬뜩하게 하기엔 충분했다.
푸확!
지크와 팀의 공격에 기사의 몸은 허공에서 말 그대로 찢겨나갔다. 피와 살점과 뼛조각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지크와 팀이 거리를 두고 땅에 내려섰다.
“이런 개자식! 착한 일 한다고 하지 않았냐! 그런 놈이 인질을 걸레짝으로 만들어?”
“아까 내가 분명 말했을 텐데. 네놈을 상대로 인질을 신경 쓸 생각은 없다고.”
“그런 놈이 착한 일 운운한 거냐?”
“못하는 건 못하는 거야. 능력이 안 되는 일을 두고 고민하거나 죄책감을 갖는 놈들이 등신인 거지. 게다가 착한 일이라고 해도 나는 악당들 쥐어 패는 전문이거든. 인질을 구하는 건 살짝 전문 범위 밖이야.”
“세상에 그런 착한 놈이 어디 있어!”
“나는 착한 일을 한다고 했지 착한 놈이라고는 한 마디도 안 했어. 나는 나쁜 놈이다.”
‘뭐 이런 엉터리 같은 놈이 다 있어!’
팀은 자신이 굉장히 제멋대로 사는 놈이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스스로를 착한 일을 하는 나쁜 놈이라 주장하는 놈에 비하면, 자신은 그나마 제대로 된 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알겠냐! 내가 하는 착한 일도 평범한 인간들이 보면 제대로 된 일이 아니야! 그저 나쁜 짓의 대상이 악당이 됐을 뿐이지! 그 정도면 너도 할 수 있잖냐!”
지크가 다시 한번 팀을 설득했다. 그러나 팀은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은 나쁜 놈들이 아닌 인간들은 건들지 말라는 뜻이잖아.”
그럴 순 없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세상은 강한 놈이 먹고 약한 놈은 먹히는 게 당연한 거다. 거기에 선과 악을 대입해서 먹잇감을 고르라고? 하핫! 대체 어떤 착한 늑대 놈께서 그딴 빌어먹을 짓을 할까!”
“예전에 술자리에서 얘기를 나눌 때, 너도 옛날에는 그런 약한 놈이었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 그랬었지.”
다른 사람들은 과거의 일을 빛바랬지만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기억할지 모른다. 그러나 팀에게 과거란 지우고 싶은 수치일 뿐이었다.
“그 때의 빌어먹을 정도로 나약한 나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열이 뻗쳐서 누구 하나 죽여 놓고 싶을 정도야. 만약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내 앞에 나타난다면 난 주저 없이 그 놈을 죽일 거다.”
지금껏 지크가 느꼈던 것보다 더 크게, 팀은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에게 있어 가장 증오스러운 존재는 과거의 자신인 것 같았다.
“예전의 약했던 네가 지금처럼 변할 때까지는 많은 사건이 있었겠지?”
“그래.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지. 무척이나 힘든 사건들이었어. 하지만 난 그걸 극복했다! 나약한 자신을 벗어던지고 새롭게 태어난 거야!”
팀은 두 팔을 활짝 폈다. 그리고 마치 세상에 선언하듯,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강하다!”
목소리에 숨길 수 없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리고 그 힘은 로브를 입은 수상쩍은 놈들이 줬을 거고 말이야.”
“그래.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준 힘은 어디까지나 계기였을 뿐이야. 그 힘을 잘 다듬어 완벽하게 사용하는 건 바로 나 자신이다.”
“네가 겪은 그 사건들도 그 로브 놈들이 일으킨 거라면?”
“…뭐?”
의기양양해 하던 팀의 표정이 순간 무너졌다.
“나는 그놈들을 쫓고 있다. 사람 한 명 콕 집어서 온갖 불행한 사건들을 일으켜 사람을 타락시키는 놈들이지. 그리고 악당으로 만들어. 지금의 너처럼 말이야.”
“…….”
“너는 그놈들의 의도대로 변한 거야. 지금 너의 모습을 보면 녀석들의 계획은 아주 성공적이었겠지.”
“…….”
지크의 말이 계속됨에도 팀은 별 말이 없었다. 지크의 말이 상당히 충격인 것 같았다.
“착한 일을 하고는 있지만, 지금 내 가장 최중요 목표는 그놈들이다. 어때, 나와 함께 그놈들을 쫓지 않겠냐?”
지크가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긴장된 그의 눈이 팀을 쳐다본다.
“…필요 없어.”
돌아온 답은 실망스러웠다. 지크가 주먹을 꽉 쥐었다.
“내 말을 못 믿겠나?”
“아니, 믿어. 솔직히 그놈들, 내가 생각해도 엄청 수상한 놈이었어. 그런 꿍꿍이를 가지고 있을 만해. 새삼 생각해 보면 내게 힘을 준 타이밍도 엄청 좋았고.”
팀이 지크를 쳐다봤다.
“하지만 너랑 손을 잡는 건 다른 이야기다. 그놈들? 짜증 나! 솔직히 말하면 당장이라도 찢어발기고 싶다! 하지만 그놈들을 찾아서 찢어발기는 건 나 혼자서도 충분해! 너와 손을 잡고 길들여진 개새끼처럼 살라고? 그딴 건 사양이다!”
“네 그 성격도 그놈들이 만들어 놓은 거다.”
“상관없어! 과정이 어떻든 이게 지금의 나다!”
지크는 한숨 쉬었다. 역시 자신과 가장 마음이 잘 맞은 녀석이다. 사고방식마저 비슷했다.
과거의 길을 누군가 조작했든 안 했든, 그 선택만은 자신이 한 거라 생각하는 지크와 자신의 지금 모습을 인정하는 팀.
거기에 결과야 어떻든 자신의 인생을 가지고 논 놈들을 모두 쳐 죽여 버리겠다는 의지까지.
지크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 녀석을 설득하는 건 불가능 해.’
팀의 성격이 회귀 전과 똑같다는 걸 안 후에 계속 들던 불안이 적중했다.
‘녀석은 로브 놈들에 의해 완성되어 버렸다.’
일말의 희망을 안고 도시에서 로브 놈들을 찾아 다녔다.
놈들의 행적을 봤을 때, 팀이 완전히 타락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팀의 근처를 맴돌며 사건을 일으키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지크는 로브 놈들을 찾지 못했다. 팀은 요하임, 이블린과는 달리, 마인 웨어 울프로서 완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 알았다.”
지크는 팀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다. 더 이상의 설득은 없다.
남은 건 서로의 생각을 강요하는 전투뿐이다.
팀도 지크의 의도를 알았는지 몸을 낮췄다. 그 모습이 마치 사냥감을 노려보는 늑대 같았다.
투웅!
지크와 팀이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윈두르와 손톱이 충돌했다.
콰앙!
반동으로 윈두르와 손톱이 튕겨나간다. 하지만 둘은 발을 땅에 강하게 붙여 몸이 밀려나가는 걸 막았다.
쾅! 쾅! 쾅!
베고 할퀴고 후리고 찌른다. 한순간에 수십 합의 공방이 오고 갔다.
윈두르의 기괴한 검날이 춤을 추고 팀의 날카로운 손톱이 공간을 찢어발겼다.
후웅!
팀이 무릎을 날렸다. 덩치가 커다랬기 때문에 그의 무릎은 손쉽게 지크의 얼굴까지 닿았다.
맞는다면 코뼈 정도 주저앉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콰앙!
윈두르의 날이 팀의 무릎을 막았다.
툭!
팀은 대지를 디디던 다른 쪽 발로 점프했다. 그대로 공중을 한 바퀴 돌며 지크에게 발길질을 했다. 발에도 날카로운 발톱이 솟아 있었다.
지크는 허리를 뒤로 젖혀 그 공격을 피했다. 그의 얼굴 바로 앞으로 은빛 털에 뒤덮인 발이 지나갔다.
다리 공격을 두 번 다 피했다. 늑대인간이라도 이족보행을 하는 이상 더 이상의 연속 공격은 불가능할 것 같다.
그러나 지크는 방심하지 않았다. 그는 회귀 전의 팀의 전투 방식을 알고 있었다.
콰앙!
지크가 물러난 대지로 꼬리가 떨어진다. 보기에는 푹신해 보이는 꼬리가 만들어낸 흔적은 모골이 송연할 정도였다.
“칫! 그걸 피해?”
나름 자신감 있는 공격이었던지 팀이 혀를 찼다.
지크가 다시 윈두르를 휘둘렀다. 땅에 내려서 능숙하게 균형을 잡은 팀이 요격했다.
또다시 치열한 공방이 펼쳐졌다. 이때 쯤 되어 둘은 어느 정도 상대의 기량을 짐작할 수 있었다.
팀이 히죽 웃었다.
‘역시 이 녀석, 나보다 약해!’
인간 형태일 때는 자신이 밀렸었지만 본래의 힘을 드러내자 순식간에 형세가 역전됐다. 힘, 스피드 등등 대부분의 면에서 팀이 우위를 차지했다.
지크도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이 정도까지 완성되어 있었나?’
검을 쥔 손목이 욱신거렸다. 역시 아무리 엄청난 속도로 강해지고 있는 지크라지만 잘 완성되어 있는 웨어울프를 상대로는 힘이 부치는 감이 있었다.
그러나 지크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전세는 팀의 우위로 흐르기 시작했다. 조금만 지나면 팀의 승리로 막이 내릴 것 같다.
팀도 그렇게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승리를 잡기 위해 한층 거칠게 지크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얼마 뒤, 팀은 얼굴을 일그러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 왜 안 쓰러지지!’
아무리 때리고 걷어차고 할켜 봐도 그의 공격은 족족 막혔다.
분명 자신의 공격은 강하다. 자신의 공격을 막는 지크의 기괴한 검이 조금씩 조금씩 밀렸다.
그러나 그뿐이다. 팀은 지금껏 지크에게 타격을 주지 못했다.
‘이럴, 이럴 리가 없는데!’
마치 갈대를 후려치는 것 같다. 강맹한 공격에 몸을 눕혀도 곧 다시 몸을 일으키는 이미지가 박힌다.
“이런 젠장!”
팀이 더욱 세게 공격했다. 무게 중심을 앞으로 하고 체중을 더 강하게 실었다. 한 대 한 대의 위력이 더 높아졌다.
지크의 방어가 조금씩 밀린다. 팀이 히죽 웃을 때였다.
서걱!
그의 팔 밑을 파고든 윈두르가 옆구리를 스쳤다. 강철 같은 털이 잘리고 질긴 가죽이 찢겼다.
푸슉!
상처에서 피가 튀었다.
“뭣!”
팀은 경악했다.
‘대체 뭐야!’
분명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고 있는 건 자신이었다. 하지만 먼저 피를 본 것도 자신이었다.
“이런 개 같은!”
상처는 별것 아니다. 다른 이였다면 중상까지는 아니더라도 행동에 충분히 방해를 받을 수 있는 상처였지만 그는 막강한 재생 능력을 갖고 있다. 벌써 그의 상처는 희미해져 있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그를 혼란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혼란은 전투에 있어서 절대 좋은 일이 아니다.
‘걸렸군.’
조금이지만 팀의 공격이 무뎌진 걸 확인한 지크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신체 능력은 팀이 우위였지만 지크는 회귀 전 쌓은 경험이 있다. 게다가 싸움 상대는 그의 측근이었던 팀 플랫이다.
그가 어떤 움직임으로 어떻게 싸우는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대련에 어울려준 것만 해도 수백 번은 가볍게 넘으며 같이 전장에 선 수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게다가 육체가 완성되었어도 지금 팀의 움직임은 회귀 전 팀의 움직임보다 어설프다.
때문에 지크는 예상보다도 쉽게 팀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시기의 녀석이라면 더 쉽게 흥분하겠지.’
저 흥분을 고쳐줬던 게 바로 지크다. 당연히 흥분했을 때의 버릇도 잘 알았다.
“으아아아아아!”
분을 못 참고 팀이 폭풍같이 공격을 해댄다. 그에 비해 지크의 눈은 무척이나 냉정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