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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23화 (323/628)

제323화

그건 분이 머리끝까지 뻗친 팀에게도 당혹스러운 말이었다. 감쪽같이 속인 줄 알았는데, 설마 자신의 꿍꿍이를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다니.

“…나를 속인 거냐.”

팀의 목소리가 낮게 깔린다. 뚜렷한 분노가 느껴졌다.

웃기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본인도 지크를 속이려고 했으면서, 자신을 속였다고 화를 표출하다니.

하지만 저런 놈이니까 팀 플랫이다. 자신이 남에게 가한 피해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당한 피해에는 극명하게 반응한다.

“그래, 속였다. 그게 뭐? 원래 이런 짓은 속는 놈이 멍청한 거 아니냐?”

지크가 팀의 속을 한 번 더 긁었다.

지크도 성깔 더러운 거라면 지지 않는다. 속았다고 분노하는 멍청한 개새끼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길래 속일 거면 좀 제대로 하지 그랬냐. 내가 속아주는 척 하느라 진땀을 뺐어요. 세 살배기 애들도 너한테는 과자 하나 안 빼앗길 거다.”

“…하, 하하, 하하하하하하!”

팀이 웃음을 흘렸다.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소리를 내는 게 마치 실성한 사람 같다.

“너….”

팀이 지크를 쳐다본다. 흔들거리는 앞머리 너머 보이는 팀의 눈이 살벌했다.

“죽어.”

쿠웅!

팀의 주먹이 뻗어 왔다. 방금 전의 기습을 다시 갚으려는 것처럼 그의 몸이 마치 순간 이동을 하듯 지크 앞에 나타났다.

노리는 곳은 얼굴. 그중에서도 턱이다.

후웅!

종이 한 장 차이로 지크가 주먹을 피했다. 주먹으로 인한 풍압이 마치 태풍이 몰아치는 것 같다.

지크는 개의치 않고 윈두르를 휘둘렀다.

콰앙!

검과 주먹이 충돌했다. 지크와 팀 둘 다 몇 걸음씩 물러났다.

“…뭐야, 이거.”

팀이 자신의 손등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손등에 상처가 나 가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칼과 주먹이 부딪친 걸 생각하면 고작 그 정도 상처로 끝났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지만, 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모양은 병신 같지만 꽤 좋은 칼인 모양이군.”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지크는 보란 듯 윈두르를 휘둘렀다. 팀이 이를 드러냈다.

“고작 좋은 칼을 가지고 있다고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

지크의 부정에 팀은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주제 파악은 하고 있던 모양이다.

그러나 지크가 한 부정의 의미는 팀이 생각한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윈두르가 없어도 너 하나 족치는 데는 어려움이 없어. 그러니까 지더라도 괜히 칼 핑계 대지 말자.”

팀의 얼굴이 완전히 굳었다. 그는 한 마디 대꾸도 없이 지면을 박찼다.

평소 조롱과 야유를 꺼리지 않던 그의 입이 닫히며 엄청난 압박감을 뿜었다. 그의 주먹이 마력을 가득 머금은 채 폭풍처럼 몰아쳤다.

쿠쿠쿠쿠쿵!

순식간에 공방이 벌어졌다. 칼과 주먹이 충돌하며 사방으로 충격파를 튀긴다.

주면 건물이 삐걱대고 떨어져 있던 귀금속들이 데굴데굴 굴렀다. 상회의 주인이 본다면 비명을 지를 광경이었다.

그러나 지크고 팀이고 주변의 사정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적을 때려눕힐 생각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콰앙!

지크의 마력 가득한 공격에 팀이 뒤로 물러났다.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 자식, 강해!’

지크의 실력이 예상 이상이었다. 마력으로 강화했지만 그의 손과 팔은 상처투성이였다.

얼핏 새하얀 뼈까지 보일 정도로 깊은 상처도 있었다. 그러나 팀은 신경쓰지 않았다.

스으윽!

상처가 급속도로 아물기 시작한다. 근육이 조여들며 새하얀 뼈가 덮였고 그 위로 새 살이 돋아났다. 작은 상처는 벌써 흔적조차 사라졌다.

‘재생력은 이 시기부터 대단했군.’

지크가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회귀 전, 팀이 다른 세력과 충돌을 할 때마다 선봉으로 선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저 재생력이었다.

적들의 공격에 베이고 찔리고 찍히고 꽂혔지만, 그는 언제 상처를 입었냐는 듯 멀쩡히 회복해 전장을 유린했다.

당연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녀석의 상처가 회복되기 전에 더욱 몰아쳐야 했다. 그러나 팀은 요리조리 지크의 공격을 피해 다녔다.

결국 팀의 상처는 모두 사라졌다.

턱!

지크의 공격을 피한 팀이 한 창고 옥상에 내려섰다.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그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이게 뭔 꼴이야!’

자존심이 상했다. 아무리 강하다 해도 자신이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인 줄 알았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속은 것도 전투에서 밀리는 것도 전부 자신이었다.

하지만 불안감은 없었다. 결국 승리는 자신의 것이 될 것이었다.

“우쭐한 낯짝 하지 마, 이 빌어먹…!”

다시 전투를 위해 주먹을 말아 쥐려던 때, 팀은 주변 상황이 이상한 것을 알아챘다.

“…뭐야?”

사방을 둘러보며 주변 상황을 체크한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지금 도시는 혼란에 빠져 있어야 한다. 사방에서 불길이 일고 힘없는 자들의 비명이 들끓으며 도적들의 비열한 웃음소리가 진동을 해야 했다.

하지만 감지된 상황은 전혀 달랐다.

도시를 태우는 불길들이 몇 보이긴 했다. 하지만 그것들의 수가 너무 적었다.

도시를 혼란시키기 위해 도시 곳곳에서 불을 지르려는 계획이었건만. 지금 보이는 불꽃은 계획의 시작을 알렸던, 처음에 솟았던 불꽃과 숫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진압되는지 불꽃 몇 개가 사그라지더니 곧 없어졌다.

귀로는 고함 소리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도시 이곳저곳에서 전투가 일어났는지 사방에서 들려왔다.

계획대로라면 전투는 없거나 적어야 한다. 적어도 이렇게 도시 곳곳에서 전투 소리가 울리면 안 됐다.

‘꼭 도시에 방어 병력이 남아있었던 것 같잖아!’

“궁금해?”

팀의 귀에 지크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어느새 올라온 것인지 지크도 창고 지붕에 발을 딛고 있었다. 팀의 사나운 눈초리가 그를 노려봤다.

“너희들 계획대로 도시를 마음대로 약탈하게 다닐 순 없을 거야. 도시 전체에 병력이 쫙 깔렸거든.”

“……!”

팀의 머릿속에 온갖 물음이 휘몰아쳤다.

대체 어떻게 자신들이 도시 전체를 습격할 걸 알아챈 것일까. 지금 도적들과 싸우고 있는 병력은 정체는 무엇 것일까. 뭘 더 알고 있을까.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이 계획은 실패했다는 걸.

“궁금하면 질문에 대답해 줄 수도 있어.”

승자의 자비를 베푸는 마냥 지크가 느긋하게 말했다.

“물론 그 대신 내가 묻는 질문에도 대답해줘야겠지만.”

“…질문?”

“이 계획. 누가 짰냐?”

순간 지크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도적놈들의 계획이라고 하기엔 너무 치밀해.”

캠벨 후작령과 벰비스가 처한 상황을 완벽하게 알고 있어야만 짤 수 있는 계획이다.

거기에 계획에 이용할 관리들에 대한 약점도 쥐어야 한다.

과연 일개 도적들이 그만한 정보를 얻어낼 정보망이 있을까. 지크는 회의적이었다.

“그렇다고 네가 짜진 않았을 거 아냐. 네 대가리로는 이런 계획을 짤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뭐야!”

팀이 으르렁거렸지만 지크는 자신의 말을 취소할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이런 계획을 앞두고 있으면 쥐죽은 듯 조용히 준비를 하고 있어야지, 제 성격 못 이기고 온갖 행패를 다 부리고 다니다니.’

지크가 팀을 발견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 아니던가.

하지만 지크는 이해했다. 그러니 팀 플랫인 것이다.

“혹시 로브 입은 수상한 녀석들한테 받았냐?”

지크의 질문에 팀의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졌다. 아무도 모를 비밀을 들킨 것 같은 얼굴이다.

‘역시.’

이 계획 또한 녀석들의 소행임이 확실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지크의 마음에도 먹구름이 꼈다.

“…그놈들을 아나?”

“알지! 엄청 친해!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야! 그러니까 녀석들에 대한 정보가 있으면 조금 줬으면….”

말을 하던 지크가 멈췄다. 한숨을 한 번 쉬고 팀을 무시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하긴, 녀석들이 너 같은 녀석에게 자기 정보를 들킬 리가 없지. 됐어. 방금 부탁은 없던 걸로 하자고.”

“…하하, 이 빌어먹을 자식이!”

너무도 화가 나서 도리어 침착하게 말이 나왔다.

조금 전까지 휘몰아치던 의문들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남은 건 오로지 지크를 때려눕히겠다는 살의뿐.

그 때였다.

쾅!

드미로 상회의 정문이 거칠게 열렸다. 지크와 팀이 동시에 문을 쳐다봤다.

“저기 있다!”

번쩍거리는 갑옷을 차려 입은 기사 한 명이 지붕 위의 팀을 가리키며 외쳤다. 그 뒤로 병사들 열댓 명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저 멍청이들이!’

지크가 그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는 끼어들지 말라니까!’

그들은 도적들의 계략에 걸려 성 밖으로 나간 병사들 중 일부였다.

병사들이 성 밖으로 나가는 걸 보고 곧 도적들의 습격이 있겠다 싶은 지크는 바로 시장에게 향했다.

정식으로 만난다면 혹시라도 도적과 내통하는 관리가 알 수도 있다는 판단 하에 시장 관저로 침입한 지크.

실력 좋은 병력은 대부분 전쟁에 차출된 것도 있어 침입은 무척 수월했다.

당연히 기겁을 한 시장이었지만 지크의 상냥한 협박과 더불어 백작의 소개장 및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의 표시는 그를 빠르게 진정시킬 수 있게 했다.

지크는 바로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알렸다. 그리고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시장에게 지크는 한 가지 요구를 했다.

적의 계략으로 출진하게 된 병사들의 즉시 귀환이었다.

이미 출발한 지 꽤 시간이 지났던 터라 시장은 난색을 표했지만 지크의 능력은 그들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었다.

다행히 시장은 말이 잘 통하는 상대였다. 말이 통하지 않았다면 다른 방안을 강구했을 테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날 밤. 도적들의 근거지를 털어버리겠답시고 출전했던 병력들은 조용히 다시 벰비스로 귀환했다.

귀환을 숨기기 위해 병사들은 나름 변장을 했다. 하지만 애초에 전투를 위한 준비밖에 없던 병력의 변장이 감쪽같을 리 없었다.

그러나 심야라는 시간과 어둠이라는 원군이 그들의 어설픔을 감싸줬고, 무엇보다 시장이 그들을 숨기려 했기에 들키진 않았다.

시장은 나름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서 내부 내통자들의 견제까지 완벽하게 했다.

남은 건 병사들을 도시 요소요소에 숨겨 두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준비된 병사들은 도적들이 활동을 개시하는 순간 바로 도적 퇴치를 시작했다.

도시 전체에 울려 퍼지는 전투음은 그런 병사들과 도적들의 싸움에 의한 것이었다.

병사들이 도시에 자리를 잡기 전, 지크는 시장에게 한 가지 요구를 했다.

드미로 상회에는 병력을 보내지 말라는 것. 정예병이 빠져나가 수준이 한참 떨어진 벰비스의 병력이 팀을 감당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괜히 사상자만 나올 게 뻔했다.

‘그랬는데 저것들이…!’

시장이 자신의 말을 무시한 것일까.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새삼 생각컨데 시장은 말이 정말로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생각나는 건 단 하나.

‘공에 눈이 멀어 명령을 무시했군!’

안 봐도 뻔했다.

병사들이 건물을 포위했다. 기사가 지면을 박차고 올라 지붕에 착지했다.

“이 도적놈! 네놈의 악행도 여기서 끝이다!”

지크를 무시하고 기사는 팀에게 검을 겨눴다. 지크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기사의 행동이 우습지도 않았다.

하지만 팀이 느끼는 불쾌감과 비교할 순 없었다.

“하하하! 오늘 진짜 참 뭣 같네!”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더니 웬 쓰레기 같은 놈마저 자신을 보고 이를 드러냈다.

이 답답하고 꿀꿀한 기분을 풀려면 한 가지밖에 없다.

파괴!

눈의 착각일까. 팀의 피부가 꿈틀댄 것 같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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