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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22화 (322/628)

제322화

지크는 순식간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도적에게 달라붙었다.

도적이 기겁했다. 들고 있는 칼을 휘두르려 했지만 이미 윈두르가 그의 목 앞까지 파고든 상황이었다.

서걱!

목 하나가 둥실 뜬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친다. 아직 머리의 부재를 깨닫지 못한 신체가 계속 칼을 휘두르긴 했지만 지크는 이미 그것에겐 관심도 없었다.

너무도 간단하게 칼을 피하고 다음 녀석을 향해 움직였다.

동료 하나가 죽는 걸 봐서인지 다음 녀석의 움직임은 조금 더 좋았다.

하지만 그뿐이다.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도적이 든 칼이 박살난다. 흩날리는 검의 조각들을 뚫고 윈두르는 도적의 몸을 대각선으로 이등분 냈다.

‘다음.’

지크의 눈이 냉정하게 다음 희생자를 찾는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도적의 모습이 보인다.

잔뜩 겁먹은 모습. 흔들리는 눈동자가 정확히 보였다.

자비는 없다. 지크의 윈두르가 섬광같이 쏘아졌다.

콰앙!

커다란 폭음이 일었다. 인체를 가르는 감촉 대신 거센 저항이 느껴졌다.

수월하게 도적을 베어내던 방금과는 달리 윈두르는 웬 커다란 검에 막혀 있었다.

“넌 뭐냐!”

지크의 공격을 막은 각진 얼굴의 남성이 으르렁거렸다.

‘이 녀석은 제법인데?’

검에 담긴 마력이 강하다. 방금 전에 죽인 놈들처럼 쉬운 놈이 아니다.

뒤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도적 둘이 배후를 노리고 있었다.

지크는 팔에 힘을 줘 상대의 검을 밀었다. 각진 얼굴의 남성의 얼굴에서 당황한 감정이 느껴졌다.

‘이 녀석! 뭔 놈의 힘이…!’

그는 지크의 힘에 밀려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지크는 자유로워진 윈두르를 거세게 휘둘렀다. 등에 바짝 다가선 검 두 개가 일제히 튕겨진다. 도적 두 놈의 가슴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 틈을 윈두르가 파고들었다.

“아악!”

“크아악!”

가슴이 쩍 벌어지며 하얀 뼈와 맥동하는 심장이 드러났다.

도적 둘이 비명을 지르며 가슴의 상처를 눌렀지만 그런 단순한 처치로 막을 수 있을 만큼 얕은 상처가 아니었다. 둘이 바닥에 엎어졌다.

“이놈!”

각진 얼굴의 남성이 분노하며 다시 뛰어들었다. 흉흉한 기세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확실히 강한 놈이긴 해.’

아마도 이 상회에 숨어든 도적단의 우두머리 정도가 아닐까 생각됐다.

‘하지만 그뿐이야.’

다른 놈들보다 강할 뿐, 그래 봤자 뜨내기 도적단의 대가리에 불가했다.

턱!

지크가 지면에 발을 단단히 딛고 검의 손잡이를 두 손으로 꽉 잡았다. 그리고 각진 얼굴의 남성을 향해 거세게 휘둘렀다.

콰아앙!

각진 얼굴의 남성이 튕겨져 나갔다. 검을 쥐고 있는 그의 손에서 피가 확 튀었다. 검을 때리는 충격에 손바닥이 찢어진 것이다.

우지끈!

각진 얼굴의 남성은 창고의 벽을 뚫고 바깥으로 날아가다 땅바닥에 추락했다.

“두목!”

“무슨 일입니까!”

바깥에서 소리가 들린다. 소란을 듣고 다른 창고를 털고 있던 도적들이 모여든 모양이다.

적의 숫자가 늘어났지만 지크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기뻤다.

‘벌레들은 도망칠 때가 제일 짜증나.’

지크는 창고에 남아 있는 도적들을 전부 베었다. 그리고 창고 바깥으로 나갔다.

각진 얼굴의 남성이 부하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고 있었다.

‘흐음, 대략 60명 정도 되나.’

상당한 숫자다. 게다가 몇 명은 꽤 강해보였다. 아마도 그들이 도적단의 수뇌부쯤 될 것이다.

하지만 지크는 여전히 위기감 따위 없었다.

“저 자식을 죽여!”

각진 얼굴의 남성이 고함쳤다. 도적들이 우르르 달려 지크를 포위했다.

“녀석의 명줄을 끊는 놈한테는 창고 하나에 있는 물건을 전부 주마!”

“우와아아아!”

각진 얼굴의 남성이 내건 포상에 도적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창고 하나에 있는 물건 전부라니. 귀금속을 유통하는 상회의 창고인 만큼 그 액수는 어마어마하다.

대번에 사기가 올랐다. 긴장이나 두려움 따위는 날아가고 욕망에 이글거리는 시선만이 지크를 직시했다.

‘도적놈들이니 당연하겠지.’

그들의 시선을 지크는 이해했다. 동시에 그 어리석음을 조소했다.

‘그런데 보스 놈이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런 엄청난 조건을 내걸진 않았을 거라는 생각은 못 하고 있군.’

각진 얼굴의 남성은 그만큼 지크를 위험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적들은 막대한 보상 때문에 그런 사고를 하지 못 했다.

아니, 놈들의 바보 같은 면면들을 보면 그 이전에 생각이란 걸 제대로 하지 않는 멍청이들일 가능성도 높아 보였다.

도적들이 일제히 지크에게 달려들었다. 혹시나 동료에게 최후의 일격을 빼앗길까봐 서로 경쟁까지 했다.

그러나 각진 얼굴의 남성을 비롯한, 실력이 있어 보이는 자들은 그 무리에 끼지 않았다.

‘내가 지칠 때까지 기다리거나 싸울 때 빈틈을 노리려는 생각이겠지.’

어설프다. 지크와 그들의 힘의 차이는 그런 단순한 전술로 메워질 차이가 아니다.

지크는 윈두르를 들어 올렸다.

카앙!

가장 먼저 찔러 들어 오는 칼을 막고 옆으로 그었다.

서걱!

탐욕어린 얼굴 그대로 도적 하나가 썰려 나갔다.

그렇게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됐다.

* * *

사방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 바닥은 피로 흥건했고 시체들과 그들이 사용하던 무기가 움직임을 방해했다.

“후우! 후우!”

지크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이곳저곳에 검상을 입은 채 피를 흘리고 있긴 했지만 움직임에 지장은 없는 것 같다.

대다수의 도적들을 시체로 만들었지만 아직 남은 적이 있다.

“이 개자식!”

각진 얼굴의 남성이 이를 갈았다. 죽일 듯한 눈으로 노려보지만 지크에게 함부로 접근하진 않는다. 지크의 검에 싸늘한 시체로 변한 부하들이 너무도 많았던 것이다.

‘어디서 이런 괴물이 튀어나온 거야!’

하지만 다행히도 그 괴물은 지쳐보였다. 그리고 남은 건 그의 도적단 중에서도 실력자인 간부들.

‘이길 수 있어!’

각진 얼굴의 남성은 부하들과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 슬금슬금 지크에게 다가갔다.

“죽어어어어!”

각진 얼굴의 남성이 가장 먼저 달려들었다. 부하들은 그를 보조하며 양 옆에서 지크에게 돌격했다.

셋 모두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강자들.

그러나 지크에게 닿기엔 무리였다.

후웅!

각진 얼굴의 남성이 내지른 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한다. 동시에 오른 쪽의 검을 윈두르의 날 하나로 흘려낸 다음 그대로 찔러 넣었다.

“컥!”

상대의 가슴에 틀어박힌 윈두르가 심장을 사정없이 찢어발긴다. 상처에서 피가 세차게 솟구쳤다.

그러나 상대 하나를 죽였다는 안도를 할 새도 없이 지크는 바로 점프했다.

지크가 서 있던 곳으로 검이 스쳐 지나간다. 왼쪽에서 공격을 하던 자의 것이었다.

지크는 피를 흩날리는 윈두르에 마력을 가득 담아 휘둘렀다.

후웅!

마력의 검기가 날아갔다. 아직 검을 회수하지 못한 상대의 어깻죽지에 검기가 직격했다.

“아악!”

팔이 통째로 떨어져 나갔다. 절단면에서 엄청난 출혈이 보였다. 내버려두면 과다출혈로 죽을 것이다.

‘일개 도적놈들이 포션 같은 걸 가지고 있을 리도 없고.’

있어 봤자 두목에게나 있을 거다.

“이, 이 자식…!”

지크가 가볍게 땅에 내려서자 각진 얼굴의 남성은 부들부들 떨었다. 이제 정말로 자신 혼자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터벅!

지크는 남은 적에게 한 걸음 걸어갔다. 각진 얼굴의 남성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지크가 또 한 걸음 다가가자 그도 또 한 걸음 물러섰다.

“오, 오지 마!”

지크에게 칼을 들이대지만 검신이 파르르 떨리는 게 그다지 위협스러워 보이진 않는다.

지크는 표정 변화 없이, 냉정한 얼굴로 적과 거리를 좁혔다.

“으, 으아아아아!”

공포에 감각이 마비된 것일까. 각진 얼굴의 남성은 칼을 높이 들고 지크에게 달려들었다.

어떤 기세도 기술도 없는, 말 그대로 공포에 질린 멍청한 돌격이다.

지크가 윈두르를 휘둘렀다.

서걱!

육체가 잘리는 소리가 들리고 다시 한번 피가 튄다.

“크헉!”

단말마의 비명이 허공에 퍼졌다. 달리던 각진 얼굴의 남성의 다리가 서서히 풀린다.

털썩!

그가 땅바닥에 엎어졌다. 땅바닥에 흥건히 피가 퍼지기 시작한다. 지금껏 부하들을 닦달하던 입이 움직이지 않는다.

“꺽!”

그게 그가 세상에서 내뱉은 마지막 소리였다.

“후우! 후우!”

지크가 숨을 가다듬었다. 상당히 고되게 움직인 듯 살짝 다리가 풀린 것처럼도 보였다. 방금 전의 전투 때문에 지친 모양이었다.

하지만 전투는 끝났다. 뒤처리를 할 요량인지 지크가 다시 걸음을 내디딜 때였다.

지크가 급히 윈두르를 들어 올렸다.

콰아아앙!

커다란 굉음. 지크의 몸이 붕 날려 옆에 있는 창고의 벽을 뚫고 처박혔다. 상자가 부서지며 온갖 귀금속이 지크의 몸으로 떨어져 내렸다.

“어라? 그걸 막았어?”

태평한 목소리가 들린다. 나무 상자의 파편과 보석들에 파묻힌 채, 지크는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봤다.

창고의 벽에 뻥 뚫린 구멍에서 습격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팀.”

“맞아, 네 친구 팀 플랫이야. 하루 만에 보는구나, 지크.”

팀이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습격을 한 자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친근한 태도였다.

“놀랐어? 그랬으면 좋겠는데. 너를 위한 깜짝 선물이었으니까 말이야.”

지크는 대꾸하지 않았다. 상자의 파편을 치우고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보고 팀이 혀를 찼다.

“일단 상처 큰 거 하나는 먹여주고 시작하려 했는데, 역시 만만찮은 녀석이었어.”

“…일단 확인하건대, 나를 공격했으니 넌 내 적이라고 판단하면 되겠지?”

‘의외로 안 놀라네?’

팀은 평온한 상태의 지크의 얼굴을 보고 약간 의문을 품었다. 자신에게 협력을 하고 단시간 내에 친구라고까지 생각했던 자에게 공격을 받은 상황이지 않은가.

하지만 팀은 그 의문을 내리누른 채 입을 열었다.

“물론이지. 오해도 아니고 뭔가 뒷사정 있는 것도 아냐. 난 내 의지로 널 공격했다.”

“그래?”

지크가 윈두르를 팀에게 겨눴다.

“친구로서의 충고인데 말이야. 고작 저 병신 같은 놈들 처리하면서 숨을 헉헉대는 정도의 실력으로 나한테 맞설 생각은 않는 게 좋을 거야. 난 저런 놈들 따위 그저 운동거리로 삼을….”

팀이 입을 다물고 급히 팔을 들었다. 어느새 그의 바로 앞까지 윈두르의 날이 다가와 있었다.

‘아까보다 훨씬 빠르…!’

생각을 다 마치기도 전에 윈두르와 팀의 팔이 충돌했다.

콰앙!

검과 팔이 충돌했다고는 믿기지 않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번엔 아까와 반대로 팀이 날아갔다.

옆 동 창고의 벽과 충돌해 커다란 구멍을 냈다. 쌓여있던 상자들에 처박혀 파편과 귀금속에 파묻혔다.

아까 지크가 당했던 모습과 똑같았다.

터벅. 터벅.

지크가 창고의 구멍으로 들어갔다. 팀이 신경질적으로 파편과 귀금속을 내던지고 있었다.

“친구로서 충고하는데 말이야.”

지크가 능글맞게, 아까 팀이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했다.

“날 얕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아까는 일부러 힘든 척했던 것뿐이거든.”

“…힘든 척을 했다고?”

“그래. 괜히 내 힘을 전부 보여줘서 네가 겁먹고 도망치면 안 되잖아.”

“겁을 먹어?”

그의 자존심을 제대로 긁었는지 팀이 이를 내보이며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지크는 태연했다.

“그래, 겁. 네가 숨어서 내 전투를 볼 거라는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거든.”

자신의 발치에 있는 창고 벽의 파편을 장난스럽게 팀 쪽으로 걷어찬다. 팀이 신경질적으로 파편을 박살냈다.

“네놈이 내 돈을 노리고 습격할 거라는 건 이미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어, 이 도적 양아치 멍멍이 자식아!”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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