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0화
지크와 팀은 정말로 남들이 본다면 ‘저러다 죽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술을 퍼마셨다.
아무리 수련이 깊어 술에 강하다 해도 그 정도 먹으면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올 수밖에 없다.
지크와 팀이 술집을 나왔을 때, 그들의 상태는 누가 봐도 만취 상태였다.
정보와 돈을 가지고 협상을 할 때의 긴장감은 어디로 갔는지 둘은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꽥꽥 불러댔다.
음정, 박자 하나도 맞지 않는, 말 그대로 만취자들만이 부를 수 있는 그런 노래. 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고 주변에 있는 대로 민폐를 끼쳐댔다.
“어이, 지크!”
“뭐냐, 팀!”
이제는 무슨 어렸을 때부터 쭉 같이 자란 고향 친구처럼 서로의 이름을 스스럼없이 부르고 있다.
“난 말이야! 엄~청 폼 나게 살 거다!”
“그래?”
“그럼! 돈도 갖고! 권력도 갖고! 여자도 갖고! 다 가질 거야! 거기에 방해되는 놈들은 전부 작살낼 거다!”
“꿈이 크네!”
“원래 사람은 꿈을 크게 가져야 하는 거야! 나는 거물이 될 거라고!”
거물이 되긴 한다. 마왕들 중 가장 강한 마왕이었던 지크의 측근 중 한 명이 되었으니, 거물도 그런 거물이 없다.
“크흐! 그럼 열심히 쌓아야겠네! 그게 실력이든 돈이든 인맥이든.”
“그래서 내가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거 아니겠냐!”
그 후로도 둘은 한참 동안 밤거리를 헤집고 다녔다.
“들어가라!”
“그래! 너도 잘 들어가!”
헤어질 때도 친근함이 넘쳐흘렀다. 이 둘을 누가 술을 마시기 전까지 서로에게 잔뜩 경계를 하던 인물들이라고 생각할까.
팀을 보내고 지크는 혼자서 인적 없는 밤거리를 걸었다. 호흡을 할 때마다 술 냄새가 알싸하게 퍼졌다.
‘역시 저 녀석이랑 노는 건 재미있어.’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미래. 힘의 마왕 지크 모어 시절의 향수를 강하게 느끼며 정말로 즐겁게 술을 마셨다.
그렌 제너드에게 팀이 토벌 당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지크가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이, 앞으로 술 마실 때 적적하겠다는 생각일 정도로 둘은 죽이 잘 맞았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밤거리로 스며드는 지크의 발걸음엔 뭔가 울적함이 섞여 있었다.
* * *
그 이후로도 팀은 종종 지크에게 들러 정보를 제공했다. 도적들의 규모와 실력 등등. 굉장히 쓸모 있는 정보들이었다.
“넌 이런 정보를 대체 어디서 얻냐?”
“비밀이다. 네 정체를 알려준다면 금액에 따라서 생각하지 못할 것도 없다만.”
“됐어.”
그러나 지크는 팀이 도적단과 연결되어 있어 이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 팀 플랫이 아무리 내가 준 돈이 많다고 해도 섬세하게 정보를 빼내올 수 있다고? 요하임이나 이블린이라면 모를까, 이 녀석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
하지만 이유야 어떻든 지크는 중요한 정보를 팀에게서 계속해서 제공받을 수 있었다.
아마도 지금 도적들을 제외하고 가장 그들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은 지크일 것이다.
그러나 지크는 팀의 말을 전부 믿지도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말한 것 외에 뭔가 있을 게 분명했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으니 거짓말은 아니야. 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부분만 쏙 말했겠지. 아무리 짐승 같은 녀석이라도 그 정도 머리는 돌아갈 테니까.’
그리고 아마도 그건 치밀하게 머리를 굴려 생각한 것이 아닌, 본능적인 일일 것이다.
늑대는 교활하기 짝이 없는 존재니까.
“그러니까 도적놈들이 도시 안에서 노리는 게 드미로 상회란 거지?”
“그래.”
“간 크게 나왔네, 이 자식들.”
지크가 우스갯소리로 한 시청 습격만큼 정신 나간 짓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드미로 상회란 목표가 가벼운 것도 아니었다.
상업 지구에서도 한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거대한 건물을 갖고 있는 드미로 상회는 그 건물의 규모만큼이나 거대한 상회였다.
캠벨 후작령을 촘촘히 연결하는 물류망을 가지고 있으며 그 물류망의 일부는 다른 영지, 심지어 외국에까지 뻗어있었다.
게다가 주로 취급하는 물건도 귀금속 같은, 도적들이 환장하게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그것들만 털어도 얼마야.’
도적놈들 전부 한밑천 단단히 잡고 흩어져도 될 만한 액수가 나올 것이다.
“아직 도적들의 근거지는 모르겠고?”
“정말 잘 숨었더라고. 그 정보를 제일로 두고 찾고 있는데 도저히 잡히는 게 없어.”
“포기하지 말고 계속 찾아 봐. 경비는 넉넉히 줄 테니.”
“걱정 마라! 내가 누구냐! 나중에 거물이 될 남자인 천하의 팀 플랫이라고!”
“거물 운운은 진짜로 거물이 된 후에 해도 충분해, 이 자식아. 그 전에는 그저 허풍이나 치고 다니는 피라미로밖에 안 보여.”
처음 지크와 만났을 때라면 방방 뛰었겠지만 팀은 지크의 조롱을 코웃음을 치며 넘겨버렸다. 둘이 얼마나 친해졌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었다.
“어쨌든 오늘 준 정보도 괜찮았지?”
“그래. 요 근래 받았던 정보 중 최고다.”
지크는 보석 두 개를 팀에게 던져줬다.
“알지? 하나는 수고비. 다른 하나는….”
“앞으로 정보를 얻을 때 쓸 경비 아니냐. 귀에 딱지가 앉겠다.”
“알면 됐어. 앞으로도 쓸 만한 정보 부탁한다.”
“걱정 마라. 내가 언제 너 실망시킨 적이라도 있냐?”
“없지. 아직까진.”
“앞으로도 없을 거다.”
큰소리를 뻥뻥 치고는 팀이 일어섰다. 그의 두 손엔 지크가 준 보석이 꼭 쥐어져 있었다.
“일 끝나면 또 술이나 한잔하자고.”
방을 나가려던 팀이 지크의 말을 듣고 멈칫했다.
“…좋지. 이번에도 네가 사는 거다.”
“걱정 마라. 돈 없는 양아치에게 얻어먹을 생각 없으니까. 게다가 네가 산다고 해도 넌 돈 안 낼 거잖냐. 주인 협박해서 공짜로 처먹을 거면서.”
“크큭! 들켰나?”
뻔뻔하게 대꾸하고 팀은 방을 나갔다.
문이 소리를 내며 닫혔다. 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지크는 아직 팀이 거기 서 있기라도 한 듯 닫힌 방문을 바라봤다.
‘날 보지 않는군.’
일이 끝나고 술이나 한잔하자는 지크의 말에 대꾸할 때, 팀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앞만 보고 있었다.
* * *
팀은 다시 한밤중에, 예전 한심해빠진 동료의 부하를 족치려 했던 상회 건물로 숨어들었다.
과연 팀이 난리를 친 보람은 있는지 예전처럼 시시덕거리며 노는 놈들은 없었다.
물론 녀석들의 정체가 정체인지라 어딘가 어색하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어차피 진짜 경비 같은 움직임은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상회의 부지를 걸었다. 경비들이 그를 알아보고 몸을 꼿꼿하게 세웠다.
그에게 찍힌 동료가 어떤 꼴이 되었는지는, 육신을 잃어버리고 혀를 내민 채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동료의 머리로 확실히 알고 있던 것이다.
팀은 그들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경비들이 숙소로 사용하는 건물로 올라가 어떤 방으로 들어갔다.
“왔냐?”
예전 팀과 충돌했었던 각진 얼굴의 남성이 팀을 게슴츠레 뜬 눈으로 반겼다.
“계획에 대해 할 말이 있어서 왔다.”
“말해 봐.”
“대부분의 인원이 도시에 잠입했다.”
퀴퀴한 악취가 나는 이불에 드러누워 술병의 주둥이를 물고 술을 마시던 남성이 술병을 입에서 뗐다.
입가로 흐르는 독한 술을 소매로 훔치며 그가 이를 드러내곤 웃었다.
“드디어 때가 왔나!”
“계획은 알고 있지?”
“물론이지! 꿈속에서도 이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그렇다면 부하 놈들 관리부터 제대로 하고 있었어야지!’
하지만 팀은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지금 충돌해서 이득 볼 것이 없다. 괜히 얼굴만 붉히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놈들을 잡을 칼은 따로 정해놓지 않았는가.
“당분간 상행위도 멈출 거야. 그러니까 더 이상 부수입도 없어. 그건 알고 있겠지?”
“그거 말인데. 굳이 그래야 하나?”
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각진 얼굴의 남성은 느긋하게 다시 술을 들이켜며 말했다.
“지금까지 잘해왔잖아. 들키지도 않았고. 부수입도 짭짤한 데다가 스트레스 해소에도 그만이라 부하들이 정말 좋아해. 그리고 네가 시키는 일도 제대로 잘했고.”
그는 잔인하게 웃었다.
“우리가 여러 도적 떼들의 연합인 걸 알지 못하도록 시체들을 아주 잘게 다지라는 명령 말이야.”
“그건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팀이 그에게 저벅저벅 걸어가더니 술병을 거칠게 빼앗았다.
“너희 같은 쓰레기들은 가만히 있으면 괜히 사고나 치니까 그러지 말라고 어쩔 수 없이 허가해줬을 뿐인 일. 호위로 상행위에 섞여 쉽게 나갈 수 있다고 해도 혹시 걸릴 위험이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네 그 쓰레기 같은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거냐?”
“이봐. 우리가 한 일이 죄다 헛수고는 아니었잖아. 우리가 그런 부수입을 거두면서 겸사겸사 다른 상회의 호위들을 짓뭉갰기 때문에 놈들이 어쩔 수 없이 용병들을 고용한 거라고. 우리 친구들이 그때 용병 흉내를 내며 여러 상회에 잠입할 수 있었던 거고. 그 공로를 잊으면 안 되지.”
“그 정도는 나 혼자서도 충분했어. 아니, 오히려 위험부담도 적고 완벽하게 끝낼 수 있었지.”
“너 혼자서는 무리였어.”
“지금처럼 대규모로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내가 커버할 수 없는 곳에 조금만 보내면 됐어. 그걸 너희들의 등신 같은 인내심 때문에 대규모로 확대해 준 거고.”
“그렇게 움직여도 안 들켰잖아. 그러니 앞으로도 계획이 시작될 때까지 하….”
덥석!
팀의 손이 남성을 향해 뻗었다. 너무도 순식간의 일이었기에 그는 반응조차 하지 못 했다.
지금까지의 능글맞음은 어디로 갔는지 그는 눈을 부릅뜨고 컥컥거렸다.
“어이, 잘 들어.”
남성의 목을 조르는 팀의 손가락이 길어졌다. 눈이 샛노래지며 송곳니가 날카롭게 자랐다.
“더 이상 나를 화나게 하지 마. 이 계획을 가져온 건 나야. 계획에 필요한 상인과 관리의 약점을 제공한 것도 나고. 네 녀석들도 인내심이 바닥이지만, 인내심이 낮은 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런 내가 정말로 온갖 지랄을 다 하면서 인내를 하고 있는 상황이거든? 그런데 그것도 한계가 있어. 수틀리면….”
우드득!
팀이 손에 힘을 더욱 줬다. 남성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나도 더 이상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 할지도 몰라. 알았어?”
남성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팀이 그를 거칠게 침대에 내팽개쳤다.
“쿨럭! 커헉!”
기침을 하며 공기의 상쾌함을 만끽하는 남성을 경멸어린 눈으로 내려다본 팀이 싸늘하게 말했다.
“내일부터 부수입은 없다. 혹시라도 상인들을 건드리는 놈이 있다면 그놈은 내 손에 죽는다. 알았어?”
“아, 알았어.”
그는 더 이상 팀에게 대들 생각을 하지 못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팀은 더 이상 그와 같은 공간이 있기 싫다는 듯 방을 박차고 나갔다.
팀이 떠난 공간엔 한참을 거친 숨소리와 기침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도적들의 계속되는 습격으로 불안감이 퍼져가는 벰비스였지만 그렇다고 그 공포가 사람들의 삶 전체를 짓누르진 못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일상생활을 계속했다.
지크는 어떤 가판대 앞에 섰다. 여러 과일을 파는 가판대였다. 지크는 주먹만 한 과일 하나를 집었다.
“사려고?”
가판의 주인은 주름이 가득한 노파였다.
“두 개만 주세요.”
지크는 값을 치르고 과일을 두 손에 들었다. 소매로 표면을 대충 닦아 낸 후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단맛과 신맛이 조화를 이루며 입을 즐겁게 했다.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주인이 지크의 얼굴을 보고 물었다.
“왜요, 안색이 안 좋나요?”
“그런 건 아닌데, 뭔가 고민이 있는 얼굴이야.”
“찾고 있는 게 있는데, 보이지 않네요.”
“그래? 중요한 거야?”
“네, 무척 중요합니다. 친구와의 인연이 달린 문제거든요.”
“어이구, 그거 중요한 일이구먼. 꼭 찾길 바라네.”
“감사합니다.”
지크가 미소를 짓고 감사 인사를 한 그때였다.
소란이 일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