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7화
“…도적?”
팀이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난데없는 말을 들어서일까? 그게 아니라면….
‘도적놈들과 관련이 있는 걸까.’
지크는 팀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했다.
“음, 그러고 보니 이 근처에서 요새 도적 떼가 출몰했다는 소리는 들었어.”
자신은 모른다는 투다. 하지만 과연 그게 사실일까.
“그럼 넌 모른다는 건가?”
“그렇지.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나는 그저 뒷골목을 전전하는 평범한 양아치라고. 그런 무서운 놈들이랑은 비교가 안 되지.”
팀이 너스레를 떨었다. 지크가 피식 웃었다.
“자신이 양아치인 건 자각하고 있나 봐?”
“크큭! 우리 같은 놈들이라고 자신이 어떤 놈인지 모르겠냐? 오히려 주제 파악 못 하는 다른 놈들보다 훨씬 더 자신을 잘 파악하고 있어. 물론 내가 말하는 것과 남에게 듣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지만.”
그리고 지크를 노려보는 게 양아치 소리를 듣는 건 싫은 모양이었다.
지크는 화내지 않았다. 저런 놈이니까 양아치인 것이다.
“흘러 다니는 뜬소문 같은 것도 듣지 못했나?”
“글쎄….”
팀이 팔짱을 끼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지크는 아까 품속에 집어넣었던 보석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팀이 눈을 번들거리며 보석을 쳐다봤다.
“대가를 주지 못한다면 이걸 주긴 힘든데 말야.”
팀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누가 봐도 빈정이 상한 모양새다.
지크가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으니 대가를 받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지크는 절대 팀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자기가 보석을 받는 건 이미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겠지. 내 질문은 보석을 주지 않으려는 간악한 계획이자 방해물이라고 생각할 테고.’
산속 깊숙이 흐르는 맑은 개울물이라도 녀석의 마음보다는 들여다보기 어려울 것이다.
휙!
지크가 팀에게 보석을 던졌다. 팀은 허겁지겁 보석을 받아들었다.
어둠 속에서도 확실히 보이는 광택에 헤벌레 웃음 지은 것도 잠시. 그가 지크를 쳐다봤다.
“대가 없인 주지 않기로 한 거 아니었나?”
“선불이다.”
“선불?”
“네 인맥을 총동원해서 도적들에 대해 알아와. 정보의 중요도에 따라서 돈을 더 주지.”
“…내가 알아오지 못하면?”
“당연히 돈은 없다. 단, 지금 준 건 선불이니 돌려줄 필요는 없어.”
팀은 자신이 들고 있는 보석을 잠시 바라보다 품속에 집어넣었다.
“거래가 받아들여졌다고 봐도 될까?”
“…정보를 알았을 때 어디로 가면 되지?”
지크는 자신이 묵고 있는 숙소의 이름과 장소를 말했다.
“찾아올 때는 저녁 시간 때 찾아와. 낮에는 나도 바쁘거든.”
“도적들을 찾느라?”
“그렇지.”
“도적들을 왜 찾는지 물어봐도 될까?”
지크는 피식 웃었다.
“그런 쓰레기들을 왜 찾겠어? 당연히 잡아 족치려고 찾지.”
“피해를 입은 모양이군.”
“그렇진 않아. 하지만 그런 쓰레기들 족치려는 사람들이 피해자만 있는 건 아니지.”
“설마 시에서 고용된 건가?”
“줄 수 있는 정보는 여기까지야. 그리고 네가 알 바도 아니잖아? 상관도 없고. 넌 그저 도적들의 정보를 주고 나한테 돈을 받아 가면 되는 거야. 간단하지?”
“그렇군. 좋아, 한번 수소문해보지. 뭔가 알아낸 게 있으면 찾아가마.”
“조언을 하나 해주자면 최대한 빨리 알아 와야 할 거야. 나도 놀고 있지만은 않을 거니까. 정보원도 너 하나만 있는 게 아니고.”
“명심하지.”
팀은 몸을 돌렸다.
“아, 한 번 더 묻는데, 정말 도적에 대해 모르나?”
팀이 발을 멈췄다.
“…내가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지. 그저 다시 한번 확인한 것뿐이야. 가도 돼.”
“실없는 놈.”
팀은 가래침을 한번 뱉고는 골목을 나갔다.
혼자 남은 지크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의 눈에 커다란 달이 들어왔다.
‘저건 이때부터 이미 그랬군.’
거짓말을 하거나 뭔가 켕기는 짓을 했을 때, 팀은 오른손 검지를 꿈틀대는 버릇이 있었다.
눈썰미 좋은 사람이라도 제대로 감지 못 할 작은 움직임이지만, 이미 회귀 전 오랜 세월을 같이 보내 온 지크는 알고 있었다.
‘팀 녀석은 확실히 도적들과 관련되어 있어.’
하지만 과연 어느 선까지 관련되어 있을까. 그걸 알아야 했다.
이윽고 지크도 팀이 사라진 길을 따라 어둠 속으로 몸을 감췄다.
* * *
지크는 며칠 동안 계속 조사를 이어나갔다. 도시 안에서 도적들에 대해 수소문하기도 하고 습격 현장을 잡을 수 있을까 도시 주변을 사정없이 뛰어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도적들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도적들의 습격이 멈춘 것도 아니었다. 도적들은 꾸준히 도시로 향하는 상단들을 습격하고 있었다.
‘역시 이 녀석들, 도시 안에 근거지를 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도적들이 아무리 도시에 조용히 잠입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렇게 제집 드나들듯 드나들 순 없다.
‘남들이 모르는 개구멍 같은 걸 발견했다면 모르지만, 성문으로 나다니고 있다면 분명 관리들 중 내통자가 있을 거야.’
그걸로 자신의 신분을 도시에 알리겠다는 생각은 조금 더 멀어졌다.
관리 중 내통자가 있다면 지크가 무슨 계획을 세우든 도적들에게 흘러들어갈 우려가 있다.
역시 당분간은 물밑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게 나을 것이다.
팀을 미행할까도 생각했지만 그 방법은 떠올리는 즉시 폐기했다.
팀은 웨어울프라는 이명이 붙은 녀석답게 주변 기척을 감지하는 게 뛰어났다.
저번 미행이야 지크의 실력도 실력이고 팀도 경계심을 높게 가지지 않았던 터라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지크가 미행할 수 있다는 사실은 팀 같은 단순한 놈이라도 충분히 떠올릴 수 있다.
놈이 정말로 도적들과 연관이 있다면 아마 지금은 날을 바짝 세우고 다닐 터. 미행은 불가능하다.
일단 지크는 팀이 어떤 정보를 가져오는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똑! 똑!
늦은 밤, 누군가 지크의 숙소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안 잠겼어.”
누군지 확인조차 하지 않고 지크는 방문객을 불러들였다. 문이 열리고 방문객이 모습을 보였다.
팀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지크는 자신의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앉아.”
팀이 의자에 털썩 앉았다. 등받이에 몸을 쭈욱 기대고 몸을 삐딱하게 기울였다. 양아치의 모범 교본이 있다면 바로 그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양아치 같은 자세였다.
“여기 왔다는 건 정보가 있다는 거겠지?”
“맞아. 힘들게 알아왔지.”
“좋아, 말해 봐.”
“이거 왜 이래? 이럴 때는 돈부터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지크는 피식 웃으며 품에서 자루 하나를 꺼냈다.
식탁에 내려놓고 보란 듯 자루를 조인 끈을 풀었다. 화려한 금전이 촛불을 반사해 반짝반짝 빛났다.
팀이 홀린 듯 자루에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그의 손이 닿기도 전에 지크가 자루를 잡아챘다.
“뭐 하는 거야!”
당장이라도 뛰어들 듯 팀이 으르렁거렸다. 지크는 주머니에서 금전을 한 움큼 꺼냈다.
마력까지 사용해 그의 손에 잡힌 금전은 자루의 절반 정도 됐다. 지크는 꺼낸 금전을 제외한 돈 자루를 팀에게 던졌다.
“일단 절반. 나머지는 얘기를 들은 다음에 내가 만족한다면.”
“만족? 그런 조건은 없었잖아!”
“그럼 시장바닥에서도 얻을 잡소문 따위로 이만한 돈을 얻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무리 세상을 자유롭게 산다고 해도 양심까지 자유로우면 안 되지.”
지크가 손을 움직여 금전들을 부딪치게 해 소리를 냈다.
“받고 싶다면 정보.”
“젠장!”
쿵!
팀이 테이블 위에 다리를 거칠게 올렸다. 무척이나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지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좋아! 말해줄게!”
그러나 큰소리를 치는 것과는 다르게 팀은 모든 정보를 풀 생각이 없었다. 조금씩 조금씩 정보를 꺼내 지크의 돈을 알겨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회귀 전, 지크의 밑에 있을 때도 머리 쓰는 건 딸린다고 유명했던 그가 지크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참고로 도적들의 근거지가 도시 안이라는 건 알고 있어.”
팀은 기겁했다.
‘뭐야, 이 자식! 그걸 어떻게!’
아직 시에서조차 알아차리지 못 한 일이 아니던가. 한데, 웬 돈 많은 뜨내기 같던 지크에게서 저런 정보가 흘러나오다니.
“그러니까 그 정보 말고 다른 정보를 말해.”
“…도적들이 도시 안에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엉겁결에 부정부터 하고 본 팀. 하지만 고작 그런 허세에 지크가 넘어갈 리 없었다.
“간단한 일이야. 나도 나름 도시 밖을 찾아봤거든. 그런데 도시 밖에는 없더라고. 그렇다면 남은 건 도시 안뿐이지.”
“도시 밖에 없어? 지금 도시에서도 병사들을 동원해 도시 밖을 뒤지고 있는데, 네가 무슨 수로 그걸 안단 말이야. 도시 밖에 있을 가능성도 충분히….”
“없어.”
지크는 딱 잘라 말했다. 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도적단이 도시 안에 있단 건 아주 기본적인 정보다. 네가 그것조차 알아내지 못했다면, 더 이상의 거래는 필요 없겠군.”
지크는 들고 있던 금화를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그리고 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가 봐. 더 이상 올 필요는 없어. 네가 갖고 있는 돈 자루까지는 줄 테니까 가져가고.”
“…….”
팀은 움직이지 않았다. 매서운 눈초리가 지크를 쏘아봤다. 그러나 지크는 이미 팀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지 시선조차 주지 않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젠장, 알았어!”
팀이 다리를 신경질적으로 내리며 외쳤다. 지크가 다시 의자에 앉았다.
“정보.”
“알았다니까, 빌어먹을!”
한숨을 한 번 크게 쉬고 팀은 입을 열었다.
“맞아! 도적들은 도시 안에 있어!”
“말했잖아. 그 정도는 알고 있어.”
“방법은….”
“그것도 필요 없어. 도시 관리 중에 내통자가 있겠지.”
팀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렇게 놀라지 마. 벰비스는 캠벨 후작령 물류의 중심지야. 아무리 경계를 허술하게 한다고 해도 뜨내기 도적들이 자기 멋대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지. 내통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해. 그 이유가 이익을 나눠 받든, 협박을 받고 있든 말이야. 그러니까 내놓으려면 그 외의 정보를 내놔.”
“…….”
팀은 이 순간, 지크에 대한 평가를 완벽하게 수정했다.
침을 한 번 삼키고 그를 쳐다본다. 심연과도 같은 눈동자가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것 같다.
팀은 이를 악물었다. 이 만만치 않은 자에게 섣불리 말려들었다간 자기가 아는 걸 모조리 토해낼 것만 같다.
“…좋아, 그 외의 다른 정보라고 했지?”
“있어?”
“물…!”
팀은 입을 다물었다. 잠시 고민을 하는 듯하더니 이를 악물었다.
“…조금만 기다려. 더 알아 올 테니까.”
“못 기다릴 것도 없지. 알았어, 알아오도록 해.”
팀이 일어서려 할 때였다.
“잠깐. 돈은 놓고 가셔야지?”
“…이건 주는 거 아니었어?”
“아, 말뜻을 잘 알아듣지 못했나? 그건 네가 내 기준을 만족하지 못했을 때 주는, 일종의 전별금 같은 거였어. 그런데 정보를 더 알아오겠다며? 나와 인연을 계속 잇고 싶다는 뜻이잖아? 그럼 그건 다시 정보료가 되는 거야. 그럼 주고 가야지. 넌 어떤 정보도 주지 못 했으니까.”
“…….”
쿵!
팀이 돈 자루를 테이블에 내던졌다.
“좋아. 하지만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일은 정말로 목숨 걸고 하는 일이거든? 그러니까 정보료 단단히 준비해 두는 게 좋을 거야.”
“물론이지. 나 돈 많아. 물건만 확실하면 돼. 그러니 부디 네가 좋은 정보를 가져오길 바라마.”
팀은 신경질적으로 지크의 방을 나갔다. 거칠게 닫힌 방문을, 지크는 복잡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