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6화
지크는 문을 열었다. 맛있는 냄새와 함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온다.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발을 디뎠다.
그곳은 며칠 전에 들렀던, 팀에게 쓰레기란 단어를 마구 퍼부었던 그 식당이었다.
당시의 소란이 거짓말인 듯 식당은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엉망이 된 가게를 보던 주인도 지금은 구슬땀을 흘리며 열심히 주문을 받고 있었다.
지크가 주문을 하기 위해 손을 올렸다.
“네! 뭘 드릴…!”
메뉴판을 가져 온 주인이 지크를 확인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크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하긴, 가게에서 행패를 부리는 양아치의 손을 잡고 쓰레기, 쓰레기 노래를 불렀으니 오히려 며칠 만에 까먹는 것이 이상하다.
“주문 안 받을 겁니까?”
“네? 아, 네”
주인이 메뉴판을 내놨다. 무난한 음식 하나와 맥주 한 잔을 시키자 주인이 허둥지둥 메뉴판을 받고 돌아갔다.
지크는 가게를 둘러봤다.
‘없군.’
찾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크는 실망하지 않았다. 자기가 아는 그라면 아마 지크를 찾고 있을 확률이 높다.
게다가 이미 그가 어디 머무는지도 알고 있지 않은가.
다만 그가 먼저 속셈을 가지고 자기를 찾아오는 것이 앞으로 편하기에, 자신을 찾기 쉽도록 며칠 정도 그와 만난 곳에서 기다릴 셈이었다.
‘굳이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을 것 같고.’
주인의 태도가 이상했다. 마치 가까이하면 저주받는 물건을 보는 마냥, 주문만 후다닥 받고 멀찍이 떨어지지 않았는가.
그가 그럴 이유가 없다. 가게에서 팀과 트러블을 일으키긴 했지만 그건 나름 잘 풀었고 주인과 다른 트러블이 있던 것도 아니다.
혹시 괜히 지크를 손님으로 받았다가 팀이 또 행패를 부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 든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크는 다른 가능성 쪽에 더 무게를 뒀다.
‘팀이 나를 찾고 있군.’
그렇다면 가게 주인의 태도도 이해가 간다.
자신의 가게를 쑥대밭으로 만든 양아치가 찾는 사람이라니. 아마 근처에도 가기 싫을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쫓아내고 싶지 않을까.
그러나 또한 팀과 관련된 인간이라는 것으로 그 선택지도 사라졌을 것이다.
괜히 자신이 찾는 사람을 쫓아냈다는 사실이 팀의 귀에 들어간다면 다시 한번 가게를 엎어놓을 수도 있다.
그러니 주인으로선 최대한 빨리 지크가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가줬으면 싶을 것이다.
“여기 있습니다.”
지크의 추측이 맞는지 그의 음식은 다른 테이블보다 훨씬 더 빨리 나왔다.
하지만 지크는 주인의 소망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가 빵을 뜯어 수프에 푹 찍는다. 그리고 입에 가져갔다. 고소하고 짭짤한 향이 입에 감돌았다.
‘역시 제법 괜찮은 곳이야.’
며칠을 와야 할지 모르는데 음식 맛이 안 좋다면 분명 짜증이 날 것이다.
지크는 맛을 음미하며 식사를 즐겼다. 그 속도는 느렸다.
멀리서 자신을 보는 주인이 안절부절못하는 게 보이지만 지크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음식과 술을 깔끔하게 먹어치우고 식기를 내려놨다. 주인이 안도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 안도는 너무 빨랐다.
지크는 손을 들어 주인을 불렀다.
“간단한 안주랑 맥주 한 잔 더.”
주인은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를 필사적으로 삼켰다.
* * *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마음을 안고 눈치를 보는 주인을 놀리듯 지크는 홀짝홀짝 술을 기울였다. 그러면서 가게에 누가 들어오는지 하나하나 확인했다.
가게의 문이 열렸다. 지크의 눈이 반사적으로 문을 향했다.
계속 가게에 죽치고 있는 지크 때문에 몇 번의 한숨을 삼키면서도 손님을 받기 위해 움직이던 주인이 얼어붙었다. 그와는 반대로 지크는 반가움에 눈을 반짝였다.
가게로 들어온 사람은 바로 팀이었다.
여느 때와 같은 건들거리는 모습으로 팀은 가게를 슥 훑었다.
지크는 팀에게서 눈을 뗐다. 그리고 마치 그를 보지 못했다는 듯 술잔을 기울였다.
다가오는 발소리. 두 발이 지크의 테이블 옆에서 멈췄다.
지크가 고개를 들었다. 팀이 그의 옆에 서 있었다.
지크가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나 기억 안 나?”
“납니다. 그래서 묻는 겁니다. 우리가 사이좋게 잡담을 나눌 사이는 아닌 걸로 알고 있으니까요. 혹시 그때 일의 앙금이 전부 풀리지 않았습니까?”
“풀렸지. 풀렸고말고.”
팀이 누런 이를 드러내면서 웃었다. 그가 지크의 맞은편 의자를 빼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주인에게 외쳤다.
“여기 맥주 한 잔!”
주인이 형언 못 할 표정으로 그를 쳐다본다. 하지만 고개를 푸욱 늘어뜨리더니 포기한 듯 술을 준비하러 움직였다.
“설마 그것도 돈을 안 내려는 건 아니겠죠?”
“응? 무슨 소리야? 나 돈 많아. 고작 이런 술 한 잔 정도 훔쳐 먹지 않는다고.”
하지만 지크는 계속 의심스럽게 쳐다봤다.
“나중에 내가 먹은 음식값에 은근슬쩍 얹어두면 안 됩니다.”
“알았어, 알았다고. 이 술은 내가 선불로 결제하지. 그러면 되지?”
팀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맥주 한 잔 값보다 많은 액수였다. 주인이 맥주를 가져오자 그 돈을 건넸다.
“여기 먼저 계산하지. 잔돈은 가져.”
“아, 네….”
혹시 이 돈을 받았다고 나중에 해코지하지 않을까 주인은 떨떠름했지만 술값을 주는 데 거부할 수도 없다.
주인은 돈을 받고 급히 그들의 테이블에서 멀어졌다.
“그래, 무슨 일입니까? 좋게 해결됐다고 해도 트러블이 있던 상대의 테이블에 아무런 용건 없이 앉진 않았을 것 같은데.”
“뭘 그렇게 딱딱하게 굴고 그래. 나는 뒤끝 없는 사람이야. 그때의 일은 다 잊었어.”
거짓말이다. 지크는 확신할 수 있었다.
팀은 뒤끝이 더러우면 더러웠지 없는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아무리 눈앞의 팀 플랫이 그가 아는 웨어울프가 아니라지만, 지금껏 봐 온 그의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거짓말임을 간파할 수 있었다.
지크는 피식 웃으며 맥주를 마셨다. 지크가 팀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충분한 행동이었다.
당연히 성질이 개 같은 팀은 기분이 나빴다.
“뭐야, 내 말을 못 믿는 거야?”
“너 같으면 믿겠어?”
지크가 반말로 대답했다. 그나마 억지웃음을 짓고 있던 팀의 표정이 싹 굳었다.
둘 사이에 흐르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멀리서 사태를 보고 있던 가게 주인의 표정도 덩달아 굳었다.
“…이 자식이 좋게 말해주니까!”
“내가 갖고 있는 돈이 탐나냐?”
지크가 화를 내려던 팀의 말을 끊었다. 팀이 입을 다물었다.
지크가 자신의 속내를 알아채 당황했다. 긍정해야 할까 부정해야 할까. 계속 화를 내야 할까, 아니면 다시 친근하게 이야기를 이어가야 할까.
지크가 말을 끊은 타이밍이 너무 좋았기에 팀의 생각이 헝클어졌다.
‘귀여운 자식.’
이럴 때 보면 딱 덜 여문 티가 난다.
“뭐, 좋아. 더 줄 수도 있어.”
결국 계속 화를 내기로 결정하고 소리를 지르려던 팀의 말이 다시 한번 막혔다.
“하지만 대가는 있어야지.”
“…대가?”
“그래, 대가. 그때는 내가 실례를 해서 그 보상을 한 거잖아. 보상치고는 꽤 많았지만. 하지만 지금은 내가 네게 보상을 할 이유가 없어. 그런 상황에서 돈을 원한다면 당연히 그 대가가 있어야지.”
“…어떤 대가를 말하는 거야?”
“장소를 옮기지. 여기는 듣는 이가 많거든. 게다가 누구 때문에 이목도 집중된 것 같고.”
팀이 주변을 살폈다. 그의 시선이 닿자 사람들이 급히 고개를 떨궜다.
팀이 인상을 팍 쓰고 그들을 노려본다. 소리까지 치려고 했지만 지크가 일어서는 바람에 이번에도 타이밍을 놓쳤다.
지크는 잔을 들어 남은 술을 한 번에 들이켰다.
쿵!
거칠게 잔을 내려놓고 그는 테이블에 음식값을 놓고는 가게를 나갔다.
그 바람 같은 행동력에 팀은 지크가 나간 문을 멍청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에이, 썅!”
자기의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그런지 욕설을 한 번 내뱉은 팀이 지크처럼 남은 맥주를 급히 마셨다. 그리고 서둘러 지크의 뒤를 따라갔다.
근처에 유명한 양아치가 조용히 물러갔다. 게다가 그게 설령 술 한 잔이라도 돈도 받았다.
주인은 오늘의 행운에 감사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 * *
팀은 지크의 뒤를 건들건들 따라갔다. 날카로운 눈빛이 지크의 몸 여기저기를 훑었다.
‘조질까.’
지크의 추측대로 팀은 지크의 돈을 노리고 찾아왔다.
저번엔 지크의 만만찮은 기세에 보석 하나만 받고 곱게 물러났다.
하지만 숙소로 돌아와 생각해보니 그런 자잘한 시비에도 거금을 선뜻 주는 호구를 고작 보석 하나만 받고 놓아주기에는 너무도 아쉬웠다.
상대의 실력이 제법인 것 같긴 했지만 팀은 자신의 실력이 꿀린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력을 쓰는 건 나중 일이었다. 일단은 친해져서 돈을 긁어낼 방안이 없는지 알아봐야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팀은 지크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이 큰 도시에서 사람 한 명을 찾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지크는 도적을 찾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도시 바깥에서 지내지 않았는가.
때문에 팀은 그나마 지크와 접점이 있던 가게를 정기적으로 방문한 것이다.
그 노력이 결실을 맺어 팀은 지크를 찾을 수 있었다. 역으로 지크가 팀의 생각을 추론해 자신을 찾게 한 것이지만, 팀은 알지 못했다.
지크를 쓰러뜨릴 수만 있다면 그가 가진 재산은 모두 자신의 것이다. 팀의 손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결국 팀은 습격을 포기했다.
‘여간내기가 아닌 건 확실한 것 같으니까.’
그의 본능이 이 사내는 위험하다고 경고를 울리고 있었다. 자기가 지리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쉽게 이기지도 못할 것이다.
‘습격을 한다고 해도 도시 안에서는 아니야.’
전투가 길어지면 방해할 것들이 너무 많다.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렇게 생각하고 팀은 복잡한 생각을 털어낸 채 속 편하게 지크를 따라 걸었다.
‘포기했군.’
지크는 팀의 생각을 모두 예상하고 있었다. 때문에 시선은 앞을 보면서도 대부분의 감각은 팀에게 쏠려 있었다.
뒤에 따라붙은 후 계속 보이던 불온한 기색이 어느 시점으로 사라졌다. 일단 대화를 하기로 한 모양이다.
지크에게도 다행이었다. 당장 자신의 옛 부하의 목을 치지 않아도 됐으니까.
지크가 팀을 데리고 간 곳은 허름한 뒷골목이었다. 불빛도 없고 인적도 없다.
‘아무도 없군.’
혹시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게 아닐까 날을 세우던 팀은 느껴지는 기척이 없다는 걸 알고 긴장을 조금 풀었다.
“슬슬 말해주지? 사람이 없는 곳을 찾는다면 여기도 충분할 것 같은데.”
“확실히 그렇군.”
지크가 빙글 몸을 돌렸다. 팀이 어깨를 으쓱였다.
“얼마나 중요한 용무길래 이런 곳까지 끌고 온 거지? 이쯤 되면 없는 호기심도 생기겠어.”
“그렇겠지. 하지만 네가 원하는 건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보다는 이게 아닐까?”
지크가 보석 하나를 품에서 꺼냈다. 팀의 눈에 욕심이 떠올랐다.
‘역시 이 녀석, 상당한 부자야.’
“맞아. 나에 대해 잘 아는군.”
“역시 좋아할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지크는 보석을 다시 품속에 넣었다. 팀의 눈이 찌푸려졌다.
“뭐야? 그걸 왜 다시 넣어?”
“내가 말했잖아. 이건 대가라고. 내가 원하는 걸 줘야 이걸 주는 거지.”
“…뭘 원하는데?”
지크는 마음속에 기대와 우려를 품고 팀에게 물었다.
“이 근처에서 활개치고 있는 도적들에 대해 뭐 아는 거 있냐?”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