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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15화 (315/628)

제315화

그건 요하임이 고인 피웅덩이에서 목욕을 하고 이블린이 잘생긴 시체를 찾아 목을 수집하는 장면을 보며 지크가 뒷목을 잡고 있을 때였다.

“왜 그러고 서 있는 거요, 두목.”

뒤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지크를 두목이라고 칭하는 자. 지크의 뒷골이 더 땡겼다.

뒤를 확인하기 싫은지, 오랫동안 기름칠을 하지 않은 수레바퀴처럼 잘 움직이지 않는 목을 억지로 돌려 지크가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눈처럼 새하얀 머리카락이다.

마치 세월을 한참이나 탄 것처럼 보이는 머리카락 아래로 잘생긴 얼굴이 보인다. 상당히 호쾌해 보이는, 선이 굵은 미남자.

하지만 최종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세월을 미리 맞은 듯한 머리도, 여성들의 호감을 쉽사리 살 것 같은 얼굴도 아니다.

바로 눈.

마주친 순간 평범한 사람이라면 온 몸의 털을 모조리 곤두세우고 소변을 지리며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 같이 살기 가득한, 악마의 눈을 이식했다고 주장해도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일 것 같은 그런 눈이었다.

자세히 보니 그의 몸엔 온통 피칠갑이 되어 있었다. 그의 하얀 머리카락도 붉은 염료를 뒤집어 쓴 것처럼 상당 부분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자신의 것은 아니었다. 전부 이 죽음의 공간 어딘가에 누워 있을 적들의 피였다.

그가 바로 지크의 부하 중 한 명. 웨어울프라고도 불리는 팀 플랫이었다.

그리고 부하들 중 지크의 말을 가장 들어처먹지 않는 놈이기도 했다.

요하임과 이블린의 기행에 질려 있던 지크에게 팀의 등장은 절대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저 둘보다 훨씬 더 지크에게 짜증과 분노를 안겨줄 테니까.

“저 녀석들은 뭘 하는 거랍니까?”

팀이 요하임과 이블린의 모습을 보고 혀를 차며 물었다.

“보는 대로 요하임 녀석은 피로 목욕 중이고 이블린 녀석은 미남 목을 수집 중이다.”

“하여간 변태 새끼들 같으니. 도대체 어떻게 대가리를 굴려야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요하임과 이블린도 그의 목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요하임이 빈정거리듯 혀를 한 번 찼고 이블린은 대놓고 째려봤다.

하지만 팀은 오히려 가슴을 쭉 폈다. ‘뭐, 어쩌라고’라는 하지도 않은 그의 말이 메아리처럼 주변을 떠다니는 것 같았다.

“…네 녀석이 할 소리냐?”

“제가 뭐요. 두목님이 그런 소릴 하면 무척 섭섭합니다.”

지크의 측근 중 팀은 지크와 가장 마음이 맞는 자였다. 둘 다 탐욕스럽게 강함을 추구했다.

하지만 차이점도 분명 있었다. 지크는 물욕이 적었지만 팀은 물욕이 많았다.

지크는 살인을 개의치 않는 쪽에 가까웠지만 팀은 살육을 즐겼다. 그리고 지크가 짓밟고 조롱하는 자들은 대부분이 적이었지만 팀은 자신보다 약하다 싶은 것들은 모조리 짓밟고 모욕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지크는 순수한 힘을 추구하는 자였고 팀은 힘을 휘두르는 걸 즐기는 자였다.

때문에 지크의 다른 측근들은 팀을 쓰레기라고 부르는 걸 망설이지 않았다.

하지만 진심을 다해 팀을 비난하는 자는 없었다.

애초에 마인이란 놈들이 전부 미친놈, 쓰레기들인데 뭔 놈의 비난이란 말인가. 그저 동료끼리의 놀림일 뿐이었다.

‘물론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건 진심이겠지만.’

정말로 멋진 팀워크가 아닌가. 이 골 때리는 놈들이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이라면, 지금부터 조금씩 착한 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도 싶었다.

‘그런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방법을 몰라서 지크는 바로 때려쳤다.

팀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시체들을 툭툭 걷어찼다. 살아 있는 놈이 있는지 확인이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주변에 쓰러져 있는 건 분명한 시체들뿐이었다.

퍼억!

한 시체를 팀이 세게 걷어찼다. 다른 시체와 엉켜 마치 하나의 거대한 고깃덩이인 양 존재하던 시체가 다른 시체들 위로 떨어져 도드라졌다.

그 시체는 다른 시체들과는 달리 꽤 좋은 무장을 하고 있었다. 흉갑에 박힌 선명한 문장이 꽤 신분이 높은 인물임을 짐작케 했다.

“뭔 놈이냐?”

지크가 물었다.

“기억 안 납니까? 아까 이놈들 가장 앞에서 정의가 어떻고 심판이 어떻고 떠벌리던 놈 아닙니까.”

“…아, 그놈이었나?”

그런 놈들이 한둘이 아니라 지크는 저런 틀에 박힌 말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편이었다. 다만 눈앞의 시체가 된 놈이 한 말은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흐릿하게라도 기억이 났다.

“그런데 그놈, 가장 먼저 너한테 뒤졌잖아.”

“그렇죠.”

팀이 껄껄 웃었다. 그러더니 시체에 발길질을 했다. 마력을 사용하진 않지만 이미 신체 자체가 흉기인 그다. 시체가 점점 짓뭉개졌다.

“하여간! 입만! 산! 새끼! 같으니라고!”

발길질을 하며 비난을 퍼붓는다. 팀의 입가에 가학적인 미소가 맺혔다.

이블린이 슬그머니 지크에게 다가와 물었다.

“저 변태 새끼는 뭘 하는 건가요?”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같이 팀의 뒷담화를 하고 싶은 지크였지만 그녀의 허리춤에 주렁주렁 매달린 머리들을 보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하늘을 쳐다봤다가 이번엔 요하임을 쳐다봤다.

그는 두 손에 피를 가득 담은 후 하늘에 뿌리고 있었다. 그 피가 다시 비처럼 쏟아지자 그걸 맞으며 해맑게 웃었다.

‘…착한 일, 진짜 한 번 알아볼까?’

답이 없는 자신의 부하들을 보며 지크는 또다시 그 생각을 떠올렸다.

* * *

잠깐의 옛날 생각에서 빠져나온 지크는 다시 한번 눈앞의 인간을 확인했다.

용모, 성격, 목소리 그리고 특유의 찌푸린 인상까지. 완벽히 웨어울프 팀 플랫의 모습이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지금껏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는가. 피를 다루는 능력으로 뱀파이어라 이명을 갖게 된 놈은 혈액공포증을 가지고 있지 않나, 남성들의 정기를 짜내 죽게 만들어 서큐버스란 이명을 갖게 된 놈은 남성공포증을 갖고 있지 않나.

때문에 폭력적인 성향의 팀 플랫은 비폭력주의자나 겁쟁이가 아닐까 추측했었다.

한데, 팀 플랫은 정말로 회귀 전 그대로의, 완벽한 쓰레기의 모습으로 자신의 앞에 나타났다.

이 어찌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처음에 시비를 피하길 정말 잘했어!’

지크가 처음 팀의 시비를 조용히 넘긴 것도 그가 정말로 쓰레기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하루 동안 그를 관찰한 바, 팀 플랫은 분명한 쓰레기였다.

마치 외지에서 동향 사람을 만난 것 같은 기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크의 감정일 뿐. 영문도 모른 채 손을 잡히고 면전에서 쓰레기 소리를 연거푸 들은 팀은 당연히 화를 냈다.

“뭐야, 이 미친 새끼는!”

거칠게 손을 뿌리치고 주먹을 휘두른다. 상당히 기분이 나빴는지 그의 주먹엔 상당한 위력이 실려 있었다.

아무리 지크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했다지만 너무 쉽게 손을 잡혔다는 위기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크는 그 주먹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팀은 놀랐다. 설마 자신의 주먹을 피할 줄이야. 이번엔 다른 건달들을 상대할 때처럼 힘을 많이 빼지도 않은 상태지 않은가.

그러나 놀란 건 팀만이 아니었다. 지크도 적잖게 놀랐다.

‘이 녀석, 벌써 꽤 강해!’

그러나 이해가 가기도 했다. 지크의 네 명의 측근 중에서도 전투력이 가장 강한 자가 바로 팀 플랫이었다. 보통 지크의 세력과 타세력이 대규모 충돌을 한다면 가장 앞장서서 뛰어갔던 것도 그였다.

팀의 눈이 가라앉았다. 어느새 그의 건들거리던 자세가 사라졌다. 발을 움직여 무게 중심을 바로 세우고 주먹을 들었다.

‘진지하게 싸우려는 건가.’

지금껏 동네 건달들을 상대할 때와는 다르다. 팀이 뿜어내는 기세에 주변 사람들이 숨을 삼켰다.

지크의 손도 움찔거렸다. 당장이라도 등 뒤에 멘 윈두르를 뽑고 싶어 손이 근질거렸다.

하지만 팀과는 다르게 지크는 일단 착한 일을 하려 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 많은 가게에서 싸울 순 없다. 그리고 애초에 팀과 싸우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이거 미안하군.”

지크는 싸울 의지가 없다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아는 사람과 닮아서 말이야. 내가 착각을 했어.”

“…미안하면 살기 좀 죽이지그래.”

손을 들어 올렸지만 지크는 당장이라도 전투를 위해 달려나갈 것 같은 살기를 뿜고 있었다.

“여기서 긴장을 풀어버리면 네가 바로 달려들 것 같아서 말이야.”

“내가 그런 놈으로 보이나?”

“스스로 아니라고 생각하나?”

지크가 아는 팀이라면 백이면 백 그런 기습을 할 놈이었다.

팀이 지크를 노려봤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달려들어 지크를 묵사발 내고 싶었지만, 그가 보기에 지크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손을 들고는 있지만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게 긴장된 근육과 주변을 묵직하게 누르는 위압감. 그리고 뒤에 멘 괴상한 형태의 검까지.

하지만 팀은 물러서지 않았다. 지크는 그 이유를 쉽게 짐작했다.

‘얕보이는 걸 엄청 싫어하는 놈이야. 여기서 물러났다가 겁쟁이 취급을 받으면 어쩌나 고민하는 거겠지.’

그렇다면 상대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게 최고다.

“정말로 미안해. 너에게 쓰레기라 한 것에 대해서는 정중히 사과하지.”

그리고 지크는 보석 하나를 꺼내 팀에게 던졌다. 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거면 사죄의 보상으로서 충분할 거야.”

“…….”

보석을 살핀 팀이 지크를 쳐다봤다. 탐욕이 뚝뚝 떨어지는 눈길이 지크의 짐을 통째로 빼앗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과연 지크를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은 들지 않는지 덤벼들진 않았다.

“…좋아! 이렇게 보상까지 했으니 내가 관대하게 넘어가 주지.”

팀이 보석을 품에 넣었다.

“운 좋은 줄 알아, 당신.”

그리고 팀은 가게를 나갔다. 지크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개념 없는 게 아주 보기 좋군.’

정말로 그다운 감상이었다.

* * *

팀과의 즐거운 재회로 지크는 기분이 무척 좋았지만 할 일을 잊진 않았다.

그는 성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최대한 멀리 기척을 느낄 수 있도록 감각을 북돋운 뒤 도시 주변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투명화 아티팩트를 썼다. 괜히 도시 주변에서 미친 듯 뛰어다니는 놈이 있다는 소문이 돌게 둘 순 없었다.

뻔뻔한 지크인 만큼 주변의 시선 따위는 상관없지만 괜히 도적놈들의 귀에라도 들어가 이상한 위기감을 줄 수도 있었다.

몇 날 며칠을 지크는 도시 주변을 수색했다. 빠르게 뛰어다닐 수 있는 지크가 수일이라는 시간이 걸렸으니 그 탐색 범위는 말 그대로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걸리는 건 없었다. 간간이 도시 바깥에서 사는 사람들을 발견하긴 했지만 모두 도시에서 밀려난 빈자들이었다. 숫자도 그렇고 움직임도 도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인간들이었다.

오늘도 성과는 없다. 지크는 도시 주변 들판에 주저앉았다.

‘어려워지는군.’

적어도 이 근방에 도적들의 근거지는 없다.

‘이젠 어떻게 할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계속 도시 주변을 뛰어다니며 도적이 사람을 습격하는 현장을 덮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너무 운에 기대는 계획이었다. 게다가 요 며칠 도적들에 대해 수소문을 했을 때, 도적들의 활동 반경이 절대로 작지 않음을 알게 된 터라 더더욱 현실성이 떨어졌다.

하지만 지크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예 생각하는 바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상황은 도시 바깥을 아무리 뒤져봐도 도적들의 근거지가 없는 상황이다.

‘간단한 거야. 밖에 없으면 안에 있겠지.’

지크는 뒤를 돌아봤다. 벰비스의 두터운 성벽이 마치 도시 안의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회색빛 장막처럼 보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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