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4화
주변에서 싸움을 보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 거친 호남자는 상당히 유명한 사람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절대 좋은 쪽으로 유명한 건 아니었다. 종종 쓰레기나, 인간 말종 같은 단어가 들려오고 있었다.
“뭘 봐, 이 새끼들아!”
그가 눈을 부라리며 주변 구경꾼들을 압박한다. 구경꾼들이 급히 눈을 돌렸다.
누가 봐도 완벽한 양아치 발음. 주변을 둘러보던 그의 눈이 지크를 향했다.
지크의 눈길이 마음에 안 든 것일까. 그가 눈에 힘을 주고 지크를 노려봤다. 누가 봐도 시비를 걸기 바로 직전의 모습이다.
평소의 지크라면 뭘 꼴아보냐며 마주 노려보고, 상대가 시비를 건다면 오히려 기뻐하며 마주 주먹을 뻗었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크는 살짝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조용히 벽면에 붙어 다른 구경꾼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옆에 라일라가 있다면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냐며 당장이라도 신관이나 의사를 찾아가자고, 아주 상냥하고 걱정스럽게 제안할 그런 행동이었다.
지크를 못마땅한 눈으로 계속 쳐다보는 양아치는 곧 흥미를 잃었는지 콧방귀를 뀌며 눈을 뗐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놈들의 배를 한 번씩 더 걷어차고는 가게 입구로 걸어갔다.
“자, 잠깐…!”
우물쭈물하면서도 다급한 소리가 들린다. 양아치가 목소리의 주인을 홱 째려봤다. 말을 건 사람은 반쯤 머리가 벗겨진 통통한 체형의 중년인이었다.
양아치의 시선을 받은 그는 겁먹은 듯 딸꾹질을 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다 간신히 입을 뗐다.
“아, 아무리 자네라도 가게에 대한 보상을 해야….”
아무래도 가게의 주인인 모양이었다. 하기야, 가게가 엉망이 되어 있으니 주인이라면 어느 정도 보상을 바랄 터.
게다가 그냥 가게가 어지럽혀진 정도라면 모를까 집기가 어느 정도 파괴까지 되어버린 상태다.
아무리 상대가 무섭더라도 가게의 주인인 이상 그냥 보낼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주인의 용기는 거기까지였다.
“뭐?”
양아치가 인상을 팍 쓰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관절 마디에서 우드득 소리가 났다.
어느 정도 수련을 쌓은 사람들에게는 비웃음조차 나오지 않을 위협이었지만 평소 폭력과 그리 가깝게 살지 않은 일반인인 가게 주인에게는 충분한 위협이었다.
가게 주인이 입을 다물었다. 스르르 눈을 깔았다.
그 모습을 가소롭게 보던 양아치가 보란 듯 바닥에 침을 뱉었다. 가게 주인은 아무런 소리도 하지 못했다.
코웃음을 치며 양아치가 나갔다. 가게 안이 조용해졌다.
“우, 우리도 가자.”
구경꾼들도 눈치를 보다 곧 가게 밖으로 나섰다. 남은 건 엉망이 된 가게를 망연히 바라보는 주인과 지크뿐이었다.
지크도 조용히 다른 이들을 따라 가게를 나섰다.
저 멀리 양아치가 가는 모습이 보인다. 다른 이들은 그 양아치의 등을 보고 나지막이 욕을 하면서도 그와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지크는 그 양아치와 거리를 두고 조용히 따라가기 시작했다.
양아치는 몇 번 정도 길을 꺾으며 지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지크는 그의 뒤를 놓치지 않았다.
곧 양아치가 어느 숙소로 들어갔다. 지크는 입구 옆에 난 창문을 통해 살짝 안을 훔쳐봤다.
양아치는 익숙한 듯 계단을 올라갔다. 아마도 여기서 머무는 게 확실해 보였다. 그의 기척도 어느 방 안 쪽으로 이어졌다.
양아치의 숙소를 알아낸 지크는 다시 양아치가 행패를 부린 가게로 돌아왔다.
가게 문 앞에는 오늘 장사를 하지 않는다는 표시가 떡하니 붙어있었다.
문을 열어보니 잠겨있진 않았다. 지크는 그대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주인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가게 바닥을 닦고 있었다. 지크가 들어온 걸 눈치챈 그가 조금 불쾌하게 말했다.
“오늘 장사 안 합니다. 문에 써져 있을 텐데요.”
지크는 대꾸하지 않고 안쪽 테이블로 향했다. 주인이 인상을 쓰며 다시 한번 말을 하려 할 때였다.
툭!
지크가 테이블 위에 작은 자루 하나를 놓았다. 끝이 살짝 풀려 그 안의 내용물이 살짝 보였다.
돈이었다.
주인이 놀라 지크를 쳐다봤다.
“부서진 기물에 오늘 장사 망친 값을 합한 것보다 훨씬 많을 거요. 이 정도면 아무리 닫은 가게라도 밥 한 끼 정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시 모자라오?”
주인이 고개를 붕붕 저었다. 언뜻 보기만 해도 모자라다 못해 넘치는 액수다.
지크는 가까이 의자를 빼 털썩 앉았다.
“여기서 가장 자신 있는 메뉴와 술 한 병.”
“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오늘의 불행을 행운으로 바꿔줄 은인의 지시다. 주인은 당장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주인은 제법 많은 수의 요리와 척 봐도 가게에서 가격이 좀 되어 보이는 술을 한 병 내왔다. 그리고 힐끔힐끔 지크의 눈치를 봤다.
그는 돈주머니를 갖지 않은 상태였다. 의외로 양심이 있는 성격일까?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소심할 뿐일까.
지크는 피식 웃으며 술을 땄다. 그리고 돈 주머니를 가리켰다.
“가지쇼.”
“가, 감사합니다.”
주인은 급히 돈주머니를 들고 끌러봤다.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 있자 입을 헤 벌리며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주인장. 어차피 오늘 장사는 종친 모양인데 내 질문에 대답 좀 해주실 수 있소?”
“얼마든지요! 제가 알고 있는 거라곤 전부 대답해드리죠!”
“아까 이 가게를 뒤집어엎은 양아치 말인데.”
원하기만 하면 왕성 기둥뿌리까지 뽑아다 줄 것 같던 주인의 얼굴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그놈이 어떤 놈인지 궁금해서 말이오.”
“그….”
주인이 잠시 말하길 주저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그에 대해 함부로 말을 했을 때 돌아올 보복을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턱!
지크가 돈 자루를 하나 더 내밀었다. 주인의 눈이 자루로 쏠렸다.
“당신에게 들었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도록 하지.”
주인의 시선이 돈 자루와 지크를 왕복한다. 잠시 후, 주인을 마음을 굳혔는지 돈 자루를 집어 자신의 품에 넣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놈은 쌍놈의 양아치입니다!”
대번에 욕설을 내뱉었다.
안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지 그는 아예 의자 하나를 가져와 지크와 마주 앉았다. 그리고 양아치에 대한 욕을 찰지게 내뱉기 시작했다.
양아치의 이름은 팀 플랫. 이 도시에서도 꽤나 악질적이기로 소문난 양아치라 했다.
“오늘처럼 시비가 붙으면 상황, 장소 안 가리고 그냥 물건을 부수면서 싸움을 합니다. 사람도 개의치 않고 때리죠.”
지크는 빵을 수프에 가득 찍어 입에 가져가면서도 주인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원래 듣는 사람의 반응이 좋다면 말하는 사람도 기분이 좋은 법이다. 조금은 어색하게 움직이던 그의 입이 더욱 부드럽게 움직였다.
“신고는 하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했죠! 하지만 이런 골목이나 누비는 양아치 한 놈을 위쪽 분들이 신경이나 써주나요! 게다가 한 번 체포당한 적은 있는데, 무슨 뒷배라도 있는지 곧 풀려났습니다! 괜히 신고한 사람만 보복 당했죠!”
별로 놀랄 건 아니다. 도시의 관료 중 부패한 무리가 뇌물을 받고 마피아나 건달들을 봐주는 건 흔했다.
아마 팀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라고 주인은 말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웬 건달 같은 것들과 시비가 붙어가지고는! 싸우려면 제들끼리 다른 데 가서 싸울 것이지, 왜 가게에서 싸워 물건에 피해를 주냐 이 말입니다! 보상은 한 푼도 할 생각 없으면서요!”
아무래도 팀과 시비가 붙은 자들에게도 보상을 받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지크가 내어준 금전에 바로 달라붙은 거고.
그 이후로도 가게 주인은 계속해서 팀의 욕설을 내뱉었다. 지크는 간간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술과 음식을 모두 먹어치웠다.
식사를 끝낸 후 지크는 가게를 나왔다. 가게 주인이 공손히 지크를 배웅했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달이 떴지만 지크는 숙소로 향하지 않았다. 그가 향한 곳은 팀이 들어간 숙소 앞이었다.
그는 주변 옥상에 올라가 석상처럼 팀의 숙소를 쳐다봤다. 마치 소름끼치는 스토커 같은 모습이었다.
시간이 흘러 어둠 저편에서 조금씩 빛이 세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지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슬슬 사람들이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지크는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 후, 지크가 바라보고 있는 숙소의 문이 열리고 팀이 나왔다. 지크의 눈이 빛났다.
툭!
지크는 가볍게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팀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팀은 가게 주인의 말대로 그림으로 그린 듯한 양아치였다.
남들 보기 위협스럽게 걸어 다녔고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으면 성질을 내고 욕설을 내뱉었다. 시비가 걸리면 당장 주먹부터 날아갔다.
그 모습을 지크는 주의 깊게 살폈다.
* * *
그날 밤, 팀은 어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을 먹기 위해서인 모양이었다.
지크도 시간을 두고 가게 안으로 따라 들어가 식사를 시켰다. 맛은 괜찮았다.
나온 스튜를 퍼먹으며 지크는 꾸준히 팀을 살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찾았다, 이 자식!”
누군가 가게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낯이 익은 자들이었다.
‘어제 팀에게 쳐 맞은 놈들이군.’
아직 몸 여기저기에 남아있는 상처자국이 그 증거였다.
지크야 루벨라를 통해 얻은 포션을 물 쓰듯 쓰며 다니고 있지만 원래 포션은 무척이나 귀한 물건이다.
뒷골목 건달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저들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정확히 팀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마도 복수를 위해 찾아온 모양이었다. 쪽수도 어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툭!
팀이 숟가락을 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섰다.
“아, 빌어먹을 놈들. 왜 하필 밥 먹을 때만 지랄을 하는 거야.”
거친 말을 내뱉으며 그가 돌아섰다.
건달들이 움찔했다. 어제의 공포가 떠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자신들의 쪽수를 생각해 용기를 냈다.
“저 새끼 조져버려!”
그렇게 가게는 혼란에 빠졌다.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던 손님들이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 벽면에 달라붙는다.
건달들이 그 큼직한 몸으로 입구를 막고 있는 터라 밖으로 도망가지는 못했다.
가게의 주인은 이 난리통에 어쩔 줄 모르고 가게가 파괴되는 걸 보며 비명만 지르고 있었다.
오직 한 사람. 지크만 느긋하게 식사를 계속했다. 오히려 흥미로운 연극의 관람객인 마냥 그 모습을 느긋하게 지켜봤다.
“끄엑!”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건달 한 명이 지크 쪽으로 날아왔다. 지크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퍽!
“꺽!”
건달이 방향을 바꿔 바닥에 거세게 처박혔다. 그러나 지크는 신경쓰지 않고 여전히 눈앞의 싸움에 집중했다.
싸움은 금방 끝났다. 장내에 펼쳐진 상황은 어제와 같았다.
상대의 쪽수가 많아졌지만 마지막에 서 있는 것이 팀 플랫인 건 똑같았고 가게 안이 엉망진창이 된 것도 똑같았다.
“내, 내 가게….”
주저앉아 중얼거리는 주인을 위협스럽게 한번 째려봐준 후 팀은 가장 가까이 쓰러져 있는 건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사정없이 발길질을 했다.
“내가! 한번! 봐줬으면! 운 좋은 줄 알고!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야지! 어딜! 또! 덤벼!”
사정 봐주지 않는 발길질에 건달이 몸을 최대한 웅크린다. 그 잔인한 장면에 주변 사람들의 안색이 창백해질 때였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쩌렁쩌렁한 웃음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웃음소리가 난 쪽으로 향했다. 팀의 발길질도 멈췄다.
웃음소리의 주인공은 지크였다. 그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새낀 뭐야?”
난데없는 상황에 팀이 인상을 찡그렸다.
지크가 터벅터벅 팀에게 다가갔다. 팀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가 주먹을 험악하게 쥐며 지크에게 말하려던 때였다.
“넌 뭐…!”
덥썩!
지크가 그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이 쓰레기 자식! 너는 확실히 쓰레기구나!”
팀의 얼굴이 괴상망측하게 변했다. 그러나 지크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반가움을 표하기 바빴다.
“정말로 반갑다, 이 쓰레기! 네가 쓰레기라서 내가 얼마나 기분 좋은 줄 아냐?”
당황하는 팀에게 지크는 계속 쓰레기를 연발했다.
“그럼! 너는 쓰레기여야지! 천하의 팀 플랫이 쓰레기가 아닐 리가! 쓰레기 중의 쓰레기! 최강 쓰레기! 쓰레기의 왕!”
“뭐, 이 새꺄!”
팀이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고함쳤지만 지크는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게 대답했다.
“왜, 이 쓰레기 자식아!”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