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09화 (309/628)

제309화

잔말피의 연속 실종 사건의 범인이 잡혔다.

그 소문은 빠른 속도로 잔말피 전체에 퍼졌다. 잔말피의 오락 사업을 말 그대로 진창 속으로 처박아 놓고 있던 이유가 사라짐에 시민들은 모두 크게 기뻐했다.

물론 실종자들의 관계자들은 크게 슬퍼했다.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고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랐지만 결국 그들의 가족, 연인, 친구가 싸늘한 시체로 돌아온 것이다.

카지노 밖으로 하나하나 나오는 관들을 보며 소식을 듣고 왔던 가족들이 울부짖었다.

몇몇은 울다가 실신까지 했다. 범인을 욕하며 그 시체라도 욕보이기 위해 컨델의 시체를 요구하는 자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의 슬픔이 도시의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는 없었고, 잔말피는 곧 빠른 속도로 안정화되었다.

다시 사람들이 밖으로 나다녔고 연인들의 웃음소리도 꽃 피웠다. 오락 사업도 차츰 예전의 수준처럼 회복될 것이다.

사건이 해결되자 영주는 굉장히 기뻐하며 사건 해결의 당사자들에게 대대적으로 포상을 했다.

그건 사건이 해결됐다는 사실을 더욱 빠른 속도로 전파하려는 의도이기도 했다.

거창한 수여식이 끝나고 일행은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번엔 일행들끼리 자그마한 파티를 열었다.

한 나라의 백작과 후작 영애가 참여한 파티라고는 지나치게 소소한 음식들을 식탁에 차려놓고 사람들은 각자 원하는 술을 담은 잔을 부딪쳤다.

“후우, 이제야 사건이 완전히 끝났다는 실감이 듭니다.”

독주를 단번에 들이킨 요하임이 한숨과 함께 말을 내뱉었다. 지크가 대꾸했다.

“상당히 마음고생을 하신 모양입니다.”

“그럴 수밖에요. 사건을 조사해도 단서는 제대로 나오지 않고, 피해자들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었지 않습니까. 납치된 사람들도 걱정되고, 앞으로 더 피해자가 나올 거라는 생각에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는 제 가문의 운명이 걸린 사건이기도 했었고요.”

그때의 심정이 떠오르는지 요하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말로 지크 님이 오셔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럼 가문은 괜찮은 겁니까?”

“당장 벼랑 끝에 떨어지려던 상황에서 겨우 중심을 잡은 정도지만. 예, 확실히 한숨은 놓이게 됐습니다.”

안개 같은 미래에 빛 한 줄기가 보이기 시작한 상황이다. 요하임으로서는 충분히 만족할 만한 상황이었다.

“이제 이걸 바탕 삼아 천천히 위로 올라가야죠.”

그리고 드라큘가의 이름을 다시 반석 위에 올려놓을 것이다.

“범인의 실력이 의외로 대단했던 것도 평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좋아하기만 할 일은 아니죠.”

그저 평범한 실종사건이었다면 이렇게 많은 피해자가 나오지도 않았을 일. 요하임의 목소리가 무거워졌다.

이블린이 요하임을 달랬다.

“그렇게 자책하지 마세요, 백작님. 백작님은 충분히 최선을 다하셨어요. 게다가 사건도 분명 해결을 하셨잖아요.”

“솔직히 그것도 양심에 걸리오. 이번 사건은 하나부터 열까지 지크 님께서 해결을 하신 거니까 말이오.”

라일라가 그의 말을 부정했다.

“꼭 그렇게 생각하실 것도 없어요. 원래 높은 자리에 서는 분들이 할 일은 인재를 뽑아 어울리는 자리에 배치하는 거니까요. 백작님이 아니었다면 지크를 고용하고 전폭적으로 밀어주진 못했겠죠. 그럼 분명 사건은 좀 더 오래 끌었을 거예요. 그렇지 않아, 지크?”

“그렇지.”

이번 사건을 해결할 때 사건의 총지휘를 맡은 요하임의 전적인 뒷받침이 없었다면 지크도 이렇게 쉽게 사건을 해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도시에 로브 놈들과 관련이 있는 놈이 있다는 정보를 제공해 주지 않았는가.

‘결국 로브 놈들을 찾진 못했지만.’

이번 사건을 조사하며 로브 놈들도 같이 수색했지만 로브 놈들의 옷자락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아마도 컨델 이시드를 마인으로 만드는데 필요한 일을 끝냈으니 옮겨간 거겠지. 아니면 나머지 일을 그렌 제너드 그놈에게 맡긴 것이거나.’

어쨌든 로브 놈들을 엿먹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요하임을 도운 이유는 충분했다.

“라일라 씨의 말이 맞아요. 그리고 사실 여기서 가장 도움이 되지 않은 사람은 저니까요.”

“그렇지도 않소, 루즈 영애. 영애가 내놓은 생각도 사건 해결에 상당히 도움이 되지 않았소.”

애초에 일행에게 연인 흉내를 시켜 범인을 끌어내자는 아이디어는 그녀가 낸 것이다.

그리고 그 덕에 최초로 컨델의 그림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렇소.”

“그럼 백작님도 마음의 짐을 지실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이블린이 방긋 웃으며 말한다. 그녀의 말에 당황한 것도 잠시, 요하임도 허탈하게 웃으며 그녀의 말을 긍정했다.

“확실히 그렇구려. 루즈 영애가 도움이 됐다고 인정한 내가 나 자신이 쓸모없다고 여기는 건 안 될 테니 말이오.”

“그렇죠? 그럼 이 얘기는 끝났네요.”

한 건 해결됐다는 듯 그녀가 손뼉을 한 번 ‘짝!’ 쳤다. 그리고 술잔을 들었다. 그녀의 잔도 어느새 깨끗이 비어 있었다.

“그럼 한 잔 더 하죠!”

새로 잔을 채우고 일행은 한 번 더 잔을 부딪쳤다.

그 뒤 여러 가지 잡담이 오고 갔다.

주제는 여러 가지. 사소한 말들이 오고 가는 와중, 이블린이 식탁 한구석을 쳐다봤다.

“음, 드웨인 씨라고 하셨던가요?”

“네, 네?”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엘레나가 깜짝 놀랐다.

“뭔가 좀 불안해 보이는 눈치신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실제로 그녀는 그다지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혹시 요하임이나 이블린의 지위 때문에 얼어붙은 것일까 생각을 했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힐끔힐끔 한 사람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지크 씨의 눈치를 보고 있던 것 같은데.”

엘레나가 몸을 흠칫 떨었다. 그녀가 바로 지크의 눈치를 본다. 뭔가 지크에게 잘못한 것이라도 있을까.

대답을 한 것은 라일라였다.

“별것 아니에요. 지크가 얼마나 성질이 더러운 녀석인지는 아시죠?”

“그야 뭐….”

이블린이 말을 흐렸다.

“그런 지크가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이번 범인을 괴롭혔거든요. 그리고 엘레나는 그런 걸 처음 봤고요.”

엘레나, 더해 요하임의 시선까지 지크에게 향했다.

대체 어떤 짓을 했기에 엘레나가 그의 눈치를 볼까. 알고 싶었지만, 동시에 알고 싶지 않았다.

“이건 시간이 해결해줄 거예요. 한스나 스녹도 지금은 그러려니 하잖아요.”

이미 지크의 인성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한스와 스녹은 이번 일에도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번 컨델에 대한 괴롭힘은 그들이 본 지크의 괴롭힘 중에서도 최고로 꼽힐 만큼 대단했지만 이미 지크라면 그럴 수 있다라는 인식이 박혀 있던 것이다.

물론 엘레나의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엘레나는 시작을 너무 거창하게 해버렸다.

“엘레나도 너무 무서워하지 말렴. 이 녀석은 이래 봬도 자기가 정한 선만 안 넘으면 무해한 녀석이니까. 이봐.”

라일라가 손을 뻗어 지크의 뺨을 쭈욱 늘렸다.

“머, 햐냐.”

지크가 뭉개진 발음을 내뱉는다. 그러나 화를 내거나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굳이 분류하자면 기가 차다는 모습이랄까.

그 모습에 엘레나가 저도 모르게 ‘풉!’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러면 된 거야. 당장 익숙해지진 않겠지만 적어도 너무 무서워할 필요는 없어.”

라일라가 지크의 뺨을 놓았다. 붉어진 뺨을 몇 번 주무르던 지크의 손이 라일라의 뺨을 잡아당겼다.

이번엔 라일라의 입에서 뭉개진 발음이 새어 나왔다.

어느덧 주변에 즐거운 분위기가 감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아직 지크의 눈치를 보고는 있지만 다시 웃음을 터뜨린 엘레나도 섞여 있었다.

그렇게 작은 파티는 점차 무르익어 갔다.

* * *

지크 일행은 잔말피를 바로 떠나지 않았다. 애초에 그들은 이곳에 놀기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니었던가.

컨델 이시드란 존재는 그들에게 철저히 예상외의 존재였다.

하나의 사건을 해결한 후의 피로감도 있어 그들은 잔말피의 오락을 열심히 즐겼다. 말하긴 뭣하지만 사건 때문에 줄어든 관광객 수가 아직 회복되지 않아 그들은 더욱 쾌적하게 오락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일행이 모두 다 놀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크는 도시 숙소에서 늘어지게 뒹굴고 있었다. 한스와 스녹, 엘레나는 도시로 놀러 나간 상황.

누군가 문을 노크한 후 벌컥 열어젖혔다.

감히 지크의 방을 이렇게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다.

“아주 팔자가 늘어졌네.”

라일라가 두꺼운 책을 팔에 끼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누운 채 팔을 축 늘어뜨린 채로, 바위 위에 말라붙은 진흙처럼 있던 지크가 손을 들어 올렸다.

“왔어?”

“다른 애들은?”

“놀러 갔지.”

“넌 안 갔어?”

“아무리 좋다 해도 노는 것도 질리더라. 역시 젊은 놈들의 체력은 따라가질 못하겠다니까.”

“헛소리 내뱉을 체력은 있는 모양이네.”

라일라가 의자에 털썩 앉아 탁상 위에 두꺼운 책 하나를 올렸다.

“차라리 잘됐어. 이리 와서 이것 좀 도와봐.”

“난 쉬는 중이다만. 체력이 달려.”

“헛소리는 한 번만이라면 농담으로 봐줄 수 있지만 두 번째부터는 그냥 짜증 날 뿐이야.”

지크가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나 터덜터덜 걸어 라일라의 맞은편에 앉았다.

누가 보면 일도 안 하고 집안에서 식량이나 축내는 백수로 볼 만한 모습이었다.

“뭘 하는데?”

“클로원의 문자 해석.”

지크가 눈을 반짝였다. 그것이라면 충분히 흥미가 동했다.

“뭘 도우면 되지?”

“이 문자들이 들어간 문장이 있는 페이지를 표시 좀 해줘.”

라일라가 클로원의 문자 몇 개가 쓰여 있는 쪽지를 건넸다.

단순 노동. 썩 좋아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분명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도우면 클로원의 실체에 더욱 빠르게 들어갈 수 있다.

지크는 순순히 라일라가 내미는 두꺼운 책을 받아 펼쳤다.

알아듣지 못할 문자의 향연이 페이지를 빽빽이 채우고 있다. 지크는 라일라가 건넨 쪽지를 보며 천천히 페이지를 훑기 시작했다.

“성과는 있어?”

“아직은.”

“천하의 라일라도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문자를 해석하는 건 힘든 건가?”

“아니, 해석을 위한 최소한의 자료는 모두 갖춰졌어. 어렵긴 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건 아니야. 다만, 시간이 너무 부족했어.”

라일라가 작게 한숨 쉬었다.

“사실 이 도시에서 엘레나가 마음을 추스르는 동안 난 문자의 해석에 전념할 생각이었거든.”

“근데 이시드의 등장으로 계획이 어그러졌다는 건가?”

“그렇지.”

라일라가 책에서 눈을 떼고 지크를 바라봤다.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한동안 이 도시에서 지내는 게 어때? 솔직히 문자를 해독할 시간을 갖고 싶어.”

“난 상관없다.”

자신의 회귀, 그렌의 정체, 로브들의 정체 등을 알아내는 것의 첫걸음이라고 생각되는 클로원의 정체를 알아내는 건, 지금 지크가 가진 최대의 목적 중 하나다. 그 단서를 발견하기 위해 머문다는데 굳이 다른 도시로의 이동을 주장할 필요는 없다.

다른 목적인 착한 일도 이 도시에서 할 만한 일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지크는 라일라의 제안을 흔쾌히 승낙했고, 일행은 한동안 이곳 잔말피에서 머물기로 결정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