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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08화 (308/628)

제308화

컨델은 바로 대답하지 못 했다.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되살아난 시아가 지크의 곁에서 웃음 지으며 살아가는 상상을 해봤다.

말 그대로 심신이 뒤틀리며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거무튀튀한 감정이 머릿속 이곳저곳을 충돌하며 돌아다녔다.

‘절대 안 돼!’

그로서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얘기다.

그럼 죽여 달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연인이 다른 사랑을 찾는 게 싫다고 되살아날 수 있는 연인을 죽여 달라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여기서는 연인의 행복을 빌어야 할까?

치명적인 부상과 지크의 간교한 혓바닥 때문에 헝클어진 정신은 뚜렷한 답을 내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그리고 그것은 컨델에게 최악의 상황을 야기했다.

지크는 컨델이 답을 내리길 기다린 게 아니었다. 그가 기다린 건 지금 이어지고 있는 이 침묵이었다.

“고민하고 있구나?”

지크의 입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까는 연인의 행복에 대해 운운하더니, 지금은 자신을 따라 죽기를 원하는군.”

컨델이 당황한 낯을 보였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 본심으로는 시아 루브렌터를 죽여줬으면 하는데, 그러기엔 그 알량한 양심에 찔려서 말하지 못하는 것뿐이지. 네가 생각해도 욕심 때문에 연인을 죽여 달라 청부하는 건 무척이나 부끄러운 일이니까. 네가 사랑의 고귀함과 대단함을 떠든 만큼 말이야.”

“아, 아니야!”

“아니다? 아, 그렇군. 너의 그 사랑에 대한 찬양은 그저 자신의 행위에 면죄부를 주기 위해서일 뿐이었지? 너는 시아 루브렌터의 행복을 원한 게 아니었어. 그저 자신의 행복을 원했을 뿐. 너는 연인을 꼭두각시로 본 거야. 자신의 욕망에 대한 부속품 말이야.”

“웃기지 마!”

복부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아랑곳 않고 컨델이 지크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생명이 끝나가는 그의 몸에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의 손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하지만 컨델은 계속해서 손을 뻗었다.

지크도 막지 않았다. 날벌레의 몸부림 같은 컨델의 행동은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지크를 기쁘게 해줄 뿐.

“네가 정말로 시아 루브렌터를 사랑했다면 그녀만이라도 살아남아 새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 편히 죽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의 네 모습을 봐봐. 연인의 새 삶을 네 욕망 속에 묶고 싶어 하고, 그게 의심되니 가장 증오하는 원수인 내가 연인을 죽여줬으면 하고 내심 바라고 있지.”

“아니라고! 이 빌어먹을 새끼가!”

“아니라면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거냐. 그저 내 말을 무시하면 그 뿐일 텐데. 네 마음속에 뭔가 켕기는 게 있어서 그런 것 아닌가?”

“이 개…! 쿨럭!”

컨델이 피를 토했다. 방금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피. 호흡도 다시 가빠졌다.

지크가 슬쩍 그의 복부를 보니 상처를 덮고 있던 그림자가 무척 흐릿해져 있었다.

‘슬슬 끝인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당하자마자 숨이 끊어졌을 상처다. 그의 능력 때문에 지금껏 버텼지만 그래도 더 이상 버티긴 어려울 것이다.

지크는 컨델의 눈을 바라봤다. 아까의 모든 걸 다 내려놓은 편안함은 흔적조차 없다. 남은 건 분노와 증오, 그리고 초조와 절망뿐.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상황이다. 요하임과 이블린을 건든 놈. 절대 편안히 죽게 만들 수는 없었다.

지크는 보란 듯 시아 루브렌터를 한번 쳐다봤다가 다시 컨델을 바라봤다.

“지금 것도 말해 주마. 네 연인인 컨델은 마지막에 너의 죽음을 원했다고 말이야.”

컨델이 입을 뻐끔거린다. 하지만 더 이상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이상한 바람소리뿐. 눈도 초점이 맞지 않는 것이 그의 생명이 꺼져가는 것이 확연히 보였다.

혹시 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을까 걱정 돼, 지크는 몸을 숙여 그의 귓가에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지옥에서 볼 수 있다면 보도록 해. 나와 시아가 함께 키워나갈 새로운 사랑을 말이야. 네 말대로라면 그것도 무척이나 고귀하겠지.”

덜컥!

컨델이 몸을 튕겼다. 지크에 대한 증오로 만든 최후의 몸짓.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지크는 컨델의 얼굴을 봤다.

이 세상 모든 부정의 감정을 모두 들이부어 만든 듯한 일그러진 얼굴이 보인다.

그러나 더 이상 움직임은 없었다. 호흡은 멈췄고 상처를 막던 그림자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죽었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불운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현 상황에 대한 절망에 몸부림친 채.

잔말피를 휘감았던 연인 실종 사건이 일단락되는 순간이었다.

지크가 일어났다. 윈두르를 등에 메고 몸을 돌렸다. 그 움직임은 가벼웠다. 얼굴에는 일종의 상쾌함마저 떠 있다. 죽은 컨델의 얼굴과 완벽히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조용히 지크가 하는 양을 보던 라일라가 그에게 걸어갔다. 다른 일행도 그녀의 뒤를 따라 지크에게 다가갔다.

“끝났어?”

“그래.”

“만족했어?”

“완벽하게.”

“다행이네.”

사람을 그렇게까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려 놓고도 만족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지크에 익숙해진 라일라라도 조금 깰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만족한 모양인지라 라일라도 한숨 돌렸다.

그녀가 컨델을 쳐다봤다. 온갖 고통을 안고 죽은 듯한 표정이 보인다. 라일라는 속으로 혀를 찼다.

‘그러니까 요하임 드라큘과 이블린 루즈는 왜 건드려 가지고.’

그것만 아니었다면 지크에게 죽는다는 결과는 같았어도 그 과정까지의 고통이 조금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잠시 컨델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생각하던 그녀의 시선이 시아 루브렌터에게 향했다.

그녀 아니, 그녀의 시체는 컨델의 숨이 멎는 순간 마치 끈 떨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의 얼굴은 평온했다. 옆에 같이 누워 있는 연인의 고통스러운 얼굴과는 전혀 달랐다.

그 모습이 더 컨델의 어리석음을 부각하는 것 같았다.

“컨델 이시드가 죽으니까 시아 루브렌터의 능력도 풀렸네.”

“쟤가 말했잖아. 자기가 죽으면 능력도 풀릴 거라고.”

지크가 천역덕스럽게 대답했다.

자기가 컨델이 죽어도 시아의 능력은 풀리지 않을 것처럼 말해놓고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식으로 대답하는 걸 보면, 지크의 뻔뻔함만은 정말로 세계 최고 수준임이 분명했다.

“그럼 컨델 이시드의 마지막 걱정은 헛걱정이었다는 뜻이네?”

“그렇지. 뭐, 그걸로 가는 길 불편하게 보냈으니 미련은 없어.”

그러면서 지크는 한 마디 덧붙였다.

“죽은 뒤까지 괴롭히는 방법은 모르니까.”

“…….”

그렇게 사람을 괴롭혀 놓고 방법이 있다면 죽은 뒤까지 괴롭힐 심산이었던 건가.

지크의 인성을 가장 오래 봐 온 한스조차 몸을 부르르 떨었다.

컨델과 시아에게 완전히 관심을 끊은 지크는 섬 아래로 내려갔다. 컨델의 능력이 끊겨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이 보인다.

이들도 이제 가족을 찾아가 안식을 찾을 것이다. 가족과 연인의 생존을 극진히 바라고 있는 사람들에겐 절망적인 일일 테지만 어쩔 없는 일이다.

시체들도 지나쳐 지크는 섬 바깥으로 발을 내디뎠다. 검은 액체 또한 컨델이 죽은 이후 모두 사라지고 대신 맑은 물이 채우고 있었다.

지크는 그렌에게 다가갔다.

“몸은 괜찮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그렌이 몸을 일으켰다. 이미 포션으로 치료를 끝냈는지 불편해 보이는 모습은 없었다. 하지만 아직 걱정되는지 라라가 그를 부축했다.

“저들을 혼자서 쓰러뜨리셨군요.”

“어찌어찌 가능했습니다.”

“힘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렌이 사과했다. 지크는 겸양의 말을 내뱉으면서도 그렌을 자세히 살폈다. 진심일까? 아니면 그저 가면을 쓴 것뿐일까?

표정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그렌이 널브러져 있는 컨델을 쳐다봤다.

“죽은 자를 살리려 하다니. 아무리 깊은 사랑 때문이라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있어선 안 되는 일이기도 하고요. 죽은 사람은 절대로 살아 돌아오지 못합니다.”

언뜻 들으면 맞는 말도 같다. 애초에 다른 생각을 모두 인정하는 지크가 뭐라 할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이 발언과 모순된다면 얘기는 다르다.

‘나는?’

회귀 전, 지크는 분명히 죽었다. 그러나 회귀라는 기적 같은 현상으로 인해 새 삶을 받았고 젊음과 새로운 가능성까지 주어졌다.

어떻게 보면 죽은 자가 부활하는 것보다도 더 엄청난 현상.

그리고 그렌은 그 현상을 계속해서 일으켰다고 지크가 의심하는 상대다.

‘이 녀석, 생각보다 더한 쓰레기일지도.’

쓰레기 중의 쓰레기인 자신이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상대라니. 생각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쓰레기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크 씨.”

안쓰러운 시선으로 컨델의 시체를 보던 그렌이 지크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좋지 않은 것이 썩 유쾌한 화제를 입에 담을 것 같진 않았다.

“꼭 그렇게 마지막까지 이시드 씨를 조롱해야 했습니까? 이미 승부는 났었을 텐데요.”

지크는 어깨를 으쓱였다.

“꼭 그렇게 할 필요는 없었죠. 그저 제가 하고 싶은 일이었을 뿐입니다.”

“…좋은 취미라고는 할 수 없군요.”

“원래 취미라는 게 자신이 좋으면 그만인 일 아닙니까? 남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다면 뭘 좋아하든 자기 마음이죠.”

“그게 죽음을 앞둔 사람을 조롱하는 건가요?”

“고작 목숨 빼앗는 걸로 용서될 정도로 녀석의 죄가 가볍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서요. 아마 피해자나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제 행위를 봤다면 무척이나 기뻐하셨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주변의 분위기가 내려간다. 전투가 끝난 후에 일어난 두 집단의 리더 간의 다툼에 다른 사람들의 분위기도 어색해졌다.

그 순간 통로 쪽에서 많은 수의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물을 밟아 첨벙거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지크가 그렌의 얼굴에서 눈을 떼고 통로가 있는 곳을 쳐다봤다.

“지원군이 온 모양입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지크는 개의치 않았다. 그 덕에 컨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아름다운 가시밭으로 꾸며줄 수 있었으니까.

지크는 다시 그렌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렌은 아직 반항적인 눈빛으로 지크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크는 그렌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우리는 서로 생각이 많이 다릅니다. 뭐,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니 새로울 건 없겠죠. 그냥 서로 상관하지 말고 갈 길 갑시다. 당신의 생각도 전 인정하니까요.”

그리고 지크는 등을 돌렸다. 달려오는 지원군에게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지크가 발을 떼기 전에 그렌에게서 말이 들려 왔다.

“제가 당신의 생각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면요?”

두 집단 간의 긴장감이 일순 팽팽하게 당겨졌다.

한스가 에스텔레이드의 검자루에 손을 가져가고 스녹은 딛고 있는 대지에 정신을 집중한다.

라일라는 냉정한 눈으로 사태를 살폈다. 라라와 엘레나는 긴장감에 휩싸인 채 사람들의 눈치를 봤다.

철퍽!

지크가 그렌 쪽으로 발을 내딛었다. 천천히 그가 이동한다. 사람들의 긴장감을 머금은 시선이 지크의 동선을 따랐다.

철퍽!

지크는 그렌의 바로 앞에서 멈췄다. 무기를 들진 않았지만 약간의 자극으로도 바로 칼부림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다.

그렌을 빤히 바라보던 지크가 웃었다.

“내 생각과 상대의 생각이 충돌한다. 그리고 상대의 생각을 난 인정할 수 없다. 그러면 당장 생각나는 방법은 두 가지죠. 하나는 설득. 상황을 온건하게 끝낼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난 당신의 설득에 넘어갈 생각이 없어요.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죠.”

지크가 그렌 앞에 손을 뻗더니, 손가락을 천천히 오므려 주먹을 만들었다.

“힘.”

지크의 미소가 사라졌다.

“내 생각을 인정할 생각이 없고 내가 하는 행위도 탐탁지 않다면 제지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입니다.”

“…잘 알았습니다. 다음번에도 이런 일이 생겼을 때, 꼭 당신의 조언을 기억하죠.”

잠시간 시선이 엇갈린다. 지크가 다시 미소 지었다.

“내 조언이 꼭 도움이 됐으면 좋겠군요.”

그리고 지크는 이번에야말로 등을 돌려 지원군들에게 다가갔다. 지크 일행이 지크를 뒤따랐다.

그렌은 그 자리에 남아 멀어지는 지크의 등을 쳐다봤다.

그렇게 잔말피에서 일어난 연인들의 연쇄 실종 사건은 막을 내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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