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6화
한 방을 먹였다곤 하지만 커다란 대미지를 입힌 건 아니다. 윈두르의 힘을 빌려 그림자를 뚫고 다리에 작은 구멍을 낸 것뿐.
하지만 대미지는 대미지. 게다가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컨델에게는 그것도 상당한 부담이었다. 온몸에 자상을 입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웃으며 상대에게 달려들 수 있는, 지크 같은 또라이는 세상에 얼마 없는 것이다.
“크윽!”
타는 듯한 고통에 컨델이 자신의 다리를 부여잡았다. 지크는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역시 초보야.’
만약 한스나 스녹이 저렇게 상처 하나하나에 일일이 반응을 했다면 바로 며칠간 지옥 훈련으로 굴려버렸을 것이다.
‘빈틈투성이.’
지크는 가장 빈틈이 큰 곳으로 윈두르를 찔러 넣었다. 하지만 컨델이 늦지 않게 방어를 해 공격이 막혔다. 그러나 지크는 실망하지 않았다.
‘소극적이 됐어.’
그건 컨델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전투 초보치고 컨델은 정말 용감하게 싸우고 있었다. 아마 시아 루브렌터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집착에 가까운 욕망이 그를 움직이게 하고 있을 터.
하지만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방위 본능은 맹렬한 의지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괜히 훈련을 하는 게 아니지.’
퍼억!
지크의 발길질이 컨델의 복부에 처박혔다. 컨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자기 그림자에서 커다란 송곳을 만들어 지크에게 찔러 넣었다. 하지만 지크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피했다.
‘정말로 뻔하군.’
지크는 요소요소 컨델의 빈틈을 공략하며 전투를 이어나갔다. 그러며 슬쩍 그렌의 전투를 살폈다.
‘엄청나네.’
그쪽의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시아 루브렌터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단순하고 직선적이었다. 컨델보다도 훨씬 더 초보적인 움직임이다.
그러나 파워와 스피드는 컨델을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그렌이 필사적으로 견디고 있었지만 아마 그다지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빨리 이놈을 제압해야 하는 건데….’
지크는 다시 한번 그렌을 힐끔 쳐다봤다. 그 잘생긴 얼굴이 한껏 일그러져 있었다. 지크는 눈을 뗐다.
‘조금만 더 있다가.’
지크의 마음에 사는 작은 악마가 킬킬댔다.
‘아니, 고의는 아니야. 이시드 녀석도 간단하게 해치울 수 있는 놈이 아니라고.’
점점 우세를 잡고 있지만 당장 쓰러뜨리라 하면 불가능한 존재가 컨델이었다.
‘음, 그렇지.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
지크는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그렇게 치열한 전투의 시간이 흘러갔다.
콰직!
다시 한번 지크의 윈두르가 컨델의 방어를 뚫고 그의 몸에 떨어졌다. 그림자가 출렁거렸다.
“크으윽!”
컨델은 피투성이였다. 몸에 두르고 있는 그림자 덕에 그리 큰 상처는 없었지만 대미지는 꽤 많이 축적된 상태다.
‘이러다간 정말로 당하겠어!’
컨델이 슬슬 아른거리는 패배의 기운에 이를 악물 때였다.
콰앙!
공동에 커다란 폭음이 울렸다.
“아악! 그렌!”
울부짖는 라라의 소리. 그것만으로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결국 그렌이 시아의 강맹한 공격을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컨델의 눈이 빛났다.
“시아!”
후웅!
바람과 같이 시아가 뛰어왔다. 그녀가 지크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콰앙!
지크의 몸이 길게 밀렸다. 윈두르를 든 손이 저릿저릿했다. 그가 앞을 바라봤다. 마치 컨델을 보호하는 수호천사처럼 시아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이번엔 살짝 뒤쪽을 쳐다봤다. 그렌이 검은 액체 위로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죽은 건 아닌 것 같지만 미동도 없는 걸 보니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진짜 기절한 걸까? 아니면 루브렌터를 나에게 떠넘기기 위한 연기?’
지크가 컨델을 밀어붙이던 모습을 보며 컨델을 처치하는 공을 빼앗길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 때문에 일을 꾸민 걸 수도 있다.
‘뭐, 상관없나.’
지크는 다시 전면을 바라봤다.
“으흐흐흐, 으하하하하하하!”
컨델이 광소를 터뜨렸다.
“봤느냐! 이것이 시아의 힘이다! 우리의 사랑의 힘이야!”
그가 외쳤다.
“우리의 사랑을 방해하는 빌어먹을 놈들! 사랑이 있다면 우리는 그 어떤 고난도 벗어날 수 있다! 사랑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강한 힘이다!”
‘그건 아니다만.’
저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지크는 회귀 전에 나름대로 만나 봤다. 연인 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부부간의 사랑, 부모 자식 간의 사랑. 추억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명예 같은 감정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믿는 사랑을 앞세워 지크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전부 짓밟혔지.’
힘이란 그저 힘일 뿐. 사랑이란 감정을 안는다고 해서 파워 업을 해 감당할 수 없는 고난과 시련을 넘어서는 건 그저 허구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 사실을 컨델에게 자근자근 심어주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힘이 부족했다.
‘아쉬운 일이야.’
하지만 지금은 지금대로 좋은 선물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콰앙!
시아가 지크에게 마구잡이로 공격을 가했다. 단순한 주먹과 발길질이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무시무시하다. 지크는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방어도 간신히 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컨델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사기꾼은 시아가 처리를 했고, 개자식도 곧 처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컨델은 만족하지 못했다. 지크를 한시라도 빨리 치우고 싶었다. 그래서 그도 지크에게 덤벼들었다.
컨델과 시아의 합공.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갖춘 둘의 공격은 지크를 한층 더 궁지로 몰아넣었다. 윈두르의 속도가 공격을 따라가지 못하고 몸놀림은 공격들을 피하지 못한다. 서서히 지크의 몸에 상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비틀!
순간 지크가 다리를 헛디뎠다. 최고의 기회다. 컨델은 만면에 미소를 지은 채 주먹을 내질렀다.
“죽어어어어!”
퍼억!
소름 끼치도록 황홀한 감촉. 지크의 옆구리가 움푹 뜯겨나갔다. 드디어 지크에게 치명상을 입혔다는 생각에 컨델은 극도의 기쁨을 느꼈다.
그게 실책이었다.
텁!
지크가 자신의 옆구리를 뜯어낸 컨델의 팔을 잡았다. 컨델이 당황했다. 얼른 몸에 힘을 주려고 했지만 너무 이른 승리의 확신이 부른 방심은 그의 몸을 굼뜨게 만들었다. 게다가 지크가 입혀 놓은 상처도 작지만 그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때문에 그는 ‘어, 어…!’ 하며 지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저 그림자로 몸을 덮어 혹시나 하는 일을 방어하는 게 전부.
하지만 컨델은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고작해야 한순간이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지크가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힐 순 없다는 것은 이미 조금 전까지의 전투가 증명했다.
그러나 그에게 날아온 공격은 지크의 것이 아니었다.
퍼어어억!
“커억!”
복부를 꿰뚫는 고통에 컨델이 입을 크게 벌렸다. 극도의 고통에 비명조차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비명을 지르면 오히려 고통이 심해졌다.
울컥!
피를 토하면서 컨델은 자신의 복부를 꿰뚫은 것을 쳐다봤다. 그의 단단한 그림자 방어를 뚫어버린 그것은 손이었다. 무척이나 곱고 아름다운, 그 주인조차 미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그런 손.
컨델의 시선이 그 손을 따라갔다. 피투성이의 고운 손을 지나 가녀린 팔뚝을 거쳐 하얀 목덜미 위로 보이는 그 얼굴은…,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것이었다.
“…컨델?”
“커헉!”
자신을 향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아를 보며 컨델은 다시 한번 피를 토했다.
턱!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잡는다. 컨델이 고개를 돌렸다. 지크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척이나 인자한 표정으로.
“원래 협공에서 가장 주의할 점 중 하나가 동료의 공격이야. 그래서 협공도 연습과 경험이 필요하지. 아니면 지금처럼 적에게 이용당해 아군의 손에 치명상을 당할 수 있거든.”
지크가 손에 힘을 줬다. 컨델의 몸이 기울며 시아의 팔에서 빠져나왔다.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그의 복부에는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흐음, 네가 치명상을 입으면 자동적으로 멈추는구나. 다행이야. 난 네가 죽어서도 이 녀석들이 움직이지 않을까 걱정했거든.”
지크는 포션을 꺼내 들어 상처 부위에 뿌렸다. 옆구리에 새살이 돋아났다.
포션 병을 아무렇게나 집어 던진 후, 지크는 컨델의 옆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피투성이의 그에게 말했다. 잘못 듣는 일이 없도록 무척이나 또렷하게.
“어쨌든, 너희의 사랑의 힘은 잘 봤다. 상대를 피투성이로 만드는 사랑. 세상에서 무척이나 희귀한 사랑이지. 인정하마.”
마치 악마가 속삭이는 것처럼 지크는 낄낄댔다. 그건 컨델의 속을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시…아…. 쿨럭! 이…놈을 죽…여….”
하지만 그의 명령에도 시아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주인이 어느 정도 기력이 있어야 조종할 수 있는 모양이군.’
지크의 생각을 긍정하듯 라일라를 포함한 지크의 일행과 라라를 공격하던 것들도 모두 움직임을 멈춘 후였다.
“안됐네. 네 연인은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모양이야.”
“젠…장….”
컨델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느낀 것이다. 그의 계획은 결국 실패했다는 것을. 시아를 포함한 부하들은 움직이지 않고 자신은 복부를 꿰뚫려 죽어가고 있다.
그가 팔을 들었다. 피가 잔뜩 묻은,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지크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마치 그게 지크의 멱이라도 되는 듯 힘을 줬다.
“너… 때문이…야.”
“맞아. 나 때문이지.”
지크가 상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저… 시아를… 다시 한번 보고 싶…을 뿐이었는…데….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을… 뿐이었는데…. 네놈의 방해 때…문에…!”
그의 증오 어린 시선이 지크를 향한다. 하지만 지크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건 컨델의 증오 어린 눈을 무시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너를 위해 준비해둔 게 있었지.”
지크는 마법 상자를 꺼내 그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종이 뭉치였다. 크기가 제각각인 그것들은 지크의 손에서 힘없이 나풀거렸다.
지크는 그중 가장 앞면에 있는 것을 읽었다.
“네드가 나에게 드디어 고백을 했다.”
지금만큼은 조롱도 분노도 없이, 그저 담담하게 눈앞의 글씨들을 읽어갔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그가 읽는 내용을 강조했다.
“기쁘다. 내 사랑이 드디어 이뤄졌다. 하늘에 계신 카르나시여, 정말 감사합니다. 아아,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이게 현실인지 믿기지 않는다. 도저히 여기에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내 사랑과 행복은 가슴이 터져나갈 듯 부풀었는데 이 감정을 표현할 글귀를 모르겠다. 그저, 그저 기쁠 뿐이다.”
지크는 종이를 넘겼다. 조용한 공동에 종이 스치는 소리만이 무겁게 울렸다.
“드디어 내일 그녀에게 청혼을 할 생각이다. 내일의 막중한 의무를 생각한다면 당장 침대에 뛰어들어야 하지만 긴장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 내 청혼을 받는다면 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기쁨에 활짝 웃을까? 감동에 눈물을 흘릴까? 설마 거절하진 않겠지? 만약 거절을 당한다면 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쨌든 남은 건 실행뿐이다. 제발 내일의 청혼이 성공할 수 있기를….”
다시 한 장을 넘긴다.
“이런 식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건 처음이라 조금 긴장되네. 하지만 말로 하는 것과 글로 쓰는 건 다르다고 생각해 펜을 들었어. 너란 존재가 나에게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는 알고 있니? 아니, 아마 넌 모를 거야. 네가 내 감정을 얼마만 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적어도 내 감정은 그것보다 분명히 수십, 수백 배는 더 클 테니까. 장담해. 그래서 나는 너를 이 땅에 존재하게 해준 모든 것에 감사해. 그리고 나에게 와 준 너에게도 감사하고. 앞으로도 너와 보낼 순간이 내게는 너무나….”
지크는 읽기를 멈췄다.
그것들은 이번 사건의 피해자들이 썼던 일기나 편지들이었다. 한눈에 봐도 두툼해 보이는 종이를 지크는 컨델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리고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해 봐. 이 일가와 편지들 앞에서,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었을 뿐이라고 다시 한번 지껄여 봐.”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