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4화
컨델이 지크의 말을 이해하는 데에는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그의 이해력이 딸려서가 아니었다. 그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싫은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크의 말을 이해했을 때 분노가 차올랐다.
“이 자식이이이!”
쿠웅!
상대하는 그렌을 큰 공격으로 잠시 물러나게 한 후 컨델은 급히 지크를 쫓았다.
그에게 있어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연인의 시신이다. 생채기 하나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확실히 자신의 영역인 탓일까. 지크가 쫓을 때보다 컨델의 육체능력은 월등히 상승해 있었다. 그는 순식간에 지크를 따라잡았다.
“죽어어엇!”
하나부터 열까지 그의 화를 돋우던 인간. 그 모든 원한을 이 일격에 담아 컨델은 지크의 등을 공격했다.
지크가 윈두르를 움직이는 게 보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지금 반응해봤자 최소 치명상은 피하지 못한다.
컨델의 얼굴에 짜릿한 미소가 맺혔다. 그러나 그 미소는 생겨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사라졌다.
지크는 컨델의 공격을 막으려 하지 않았다. 생각조차 않는 것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윈두르에서 강렬한 검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 목표는 시아 루브렌터였다.
“끄윽!”
컨델의 입에서 기괴한 신음이 튀어나왔다. 지크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시아에게 달려가려니 몸에 부하가 걸린 것이다.
안 그래도 지금껏 받아온 울분을 가득 담은 공격이니만큼 공격을 멈추려고 했을 때 더욱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컨델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공격을 멈추고 시아 루브렌터의 앞으로 달려갈 수 있었다.
콰앙!
신경질적으로 지크가 쏘아낸 검기를 후려쳐 흩뜨린다. 급히 시아의 시신을 살폈다. 다행히 망가진 곳은 없었다.
“아, 아쉬워라. 간발의 차이였네.”
증오스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시선만으로 만 갈래로 찢어 죽일 만큼의 박력을 가지고 컨델이 지크를 노려봤다. 그러나 역시 지크에겐 통하지 않았다.
“너, 이 새끼!”
“응,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1초만 더 있었어도 그 시체가 두 동강 났을 텐데. 넌 그냥 날 계속 공격하지 왜 굳이 그렇게 허겁지겁 뛰어갔냐.”
히죽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어차피 옛적에 뒈져버린 고깃덩이잖아?”
컨델의 눈이 뒤집혔다. 그를 뒤덮고 있던 그림자가 꿈틀댔다. 마치 그의 감정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그대로 지크에게 뛰어들었다. 그의 팔에서 그림자가 쭈욱 늘어나더니 곧 날카로운 창처럼 변했다.
머리든 목이든 심장이든 관계없다. 그 어디든 지크의 몸뚱이에 커다란, 아주 커다란 구멍을 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크의 행동은 무척이나 야비했다.
한 걸음 크게 옆으로 뛴다. 공격을 피하려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시아의 시체와 자신의 사이에 컨델이란 방해물을 없게 한 것뿐이었다.
후웅! 후웅! 후웅!
이번엔 세 개의 검기가 날아간다. 지크의 훌륭한 마력 컨트롤이 일을 했다.
한 개는 바로 직선상으로 날아갔지만 두 개의 검기는 궤도를 비틀어 포물선을 그렸다.
컨델이 이를 악물었다. 직선상의 검기를 막고 그림자를 쭉 뻗어 나머지 두 개의 검기도 쳐냈다.
그때 지크가 컨델에게 접근했다.
“뒈져라아앗!”
마력을 잔뜩 머금은 윈두르가 컨델을 내려찍었다.
콰앙!
다행히 컨델은 지크의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다급하게 막아낸 터라 몸이 기우뚱거렸다.
그러나 컨델에게 위기감은 없었다. 그의 그림자 갑옷은 날카롭고 단단하며 형태가 자유롭다. 금방 중심을 잡고 지크에게 치명상을 날리려 했다.
하나, 이번에도 그의 의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익!”
이를 악물면서도 그는 몸을 뒤로 빼 다시 시아의 시체로 가는 검기를 모조리 쳐냈다.
“그래! 열심히 한다! 조금만 늦으면 네 소중한 공주님에게 상처가 생길 거야! 아니, 공주님이었던 고깃덩이인가?”
게다가 틈만 나면 지크에게서 들려오는 모멸의 말들은 컨델의 정신을 충실하게 갉아먹었다.
우연한 기회로 엄청난 힘과 능력을 손에 넣었지만 실질적인 전투 경험은 별로 없는 그다. 연인을 납치하는 것조차 그림자들을 시켰으니 제대로 된 전투 경험을 쌓을 수 없었다.
애초에 그의 목적은 시아 루브렌터의 부활일 뿐, 전투 경험이 필요한 인생을 살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가 지금, 지크의 행동과 말 몇 마디에 허둥지둥대는 컨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크도 결코 마음을 놓지 않았다.
쿠웅!
지크가 피한 곳에 그림자의 촉수가 틀어박힌다. 단단한 바닥에 깨끗하게 구멍을 뚫어버린 그 힘은 진짜였다. 지크라도 방심을 했다가는 치명상을 입을 것이었다.
당연히 지크는 방심을 할 생각도 없고, 컨델을 직접 상대할 생각도 없었다.
쿠웅!
다시 날아온 토르니움을 컨델이 방어했다. 컨델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그렌도 컨델이 죽이고 싶은 인물 중 하나다. 그러나 지금, 그런 사소한 원한 따위에 얽매일 여유는 없었다.
“비켜어!”
콰앙!
신경질적으로 그렌을 쳐낸 컨델이 몸을 돌렸다. 그렌이 컨델을 잡아두자 지크가 바로 시아의 시신으로 돌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이 얼마나 즐거워 보이는지 컨델은 머리털이 곤두설 지경이었다.
윈두르가 시아의 목을 향해 떨어진다. 컨델이 간신히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또 다시 주변을 울리는 굉음. 공격이 막히자 지크는 망설이지 않고 뒤로 뛰었다. 그리고 있는 대로 마력을 뿜어 검기를 날려댔다.
“뭐 해! 어서 막지 않고! 조금이라도 늦으면 네 소중하디소중한 연인에게 상처 난다? 옳지, 잘 한다! 그래, 계속 그렇게 막아! 네 사랑스러운 연인을 지키라고!”
“그만두지 못해!”
“그만두라고 그만두는 머저리가 세상에 어디 있냐! 게다가 이 재밌는 걸 왜 관둬?”
분명 상황은 사람들을 납치, 살해한 컨델 이시드를 제압하기 위해 도시에 고용된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 지크일 테지만, 누가 봐도 구도는 정반대였다.
연인을 지키려는 순정남과 그를 괴롭히는 비열한 악당으로.
결국 그렌이 한소리를 했다.
“그만하시죠, 지크 씨!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그러나 지크는 태연했다. 일단 선인의 얼굴을 한 그렌이라면 당연히 그런 소리를 꺼내야 한다고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뭘 하다뇨? 비열하고 사악하기 그지없는 악당인 컨델 이시드를 때려잡고 있습니다만?”
그 와중에도 시아의 시신을 향한 공격은 계속되고 있었다. 오히려 지크는 되물었다.
“당신이야말로 뭐 하시는 겁니까? 당장 컨델 이시드를 공격하지 않고요.”
“비열하고 사악하다니! 그건 오히려 당신이 하는 짓 아닙니까!”
‘그렇게 나오시겠지.’
지크는 콧방귀를 뀌었다.
“지금 당신과 사상의 차이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끼려면 끼고, 싫다면 빠져요!”
그리고 지크는 그렌을 무시하고 철저하게 컨델을 아니, 시아 루브렌터를 공격했다.
지크의 세련된 기술이 계속 불을 뿜었다. 하나하나는 무척이나 약한 기술이기에 방어하긴 쉽다.
그럼에도 시체를 난도질하기엔 충분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고 컨델은 정신없이 방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크는 그렇게 드러난 빈틈을 계속 활용했다.
그 모습을 그렌이 초조하게 지켜봤다.
‘젠장!’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그가 원하는 것은 명성이다. 원래는 범인의 특정부터 처단까지 모두 그가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지크라는 징글징글한 변수에 처음부터 어그러진 상황.
다행히 자신이 컨델 이시드의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긴 했지만 그를 최유력 용의자로 특정한 지크의 공도 적잖이 크다.
그렇다면 컨델을 직접적으로 끝장내 쐐기를 박아버려야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꼴이 그걸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컨델의 계획의 허점을 지적해 전의를 상실시킨다는 계획은 진작에 박살 났다.
그렇다면 컨델을 죽이기라도 해야 하는데 이놈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지크가 컨델의 약점을 집요하게 찌르며 밀어붙이고 있다.
자칫하다가는 최고의 공을 지크에게 빼앗길 상황.
‘어쩔 수 없어!’
결국 그렌도 컨델에게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하핫! 결국 당신도 제 맘을 이해했군요!”
지크가 쾌활하게 외쳤다.
“자, 이제 힘을 합쳐 저 무도한 악당 놈을 처벌합시다! 아, 그래도 당신은 찝찝한 일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크는 컨델의 공격을 은근슬쩍 흘려 그렌과 정면으로 맞부딪치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시아의 시체를 향해 뛰었다.
“즐거운… 아니, 더러운 일은 제가 할 테니까요!”
“거기 서지 못해!”
컨델은 지크에게 견제를 날렸다.
그러나 지금까지처럼 하진 못했다. 그렌이 끈질기게 달라붙어 집요하게 그의 생명을 노렸기 때문이다.
결국 지크의 검기 하나를 놓쳤다.
“안 돼애애애애애!”
컨델이 절규했다. 그에겐 다행히도 이번 공격은 팔뚝을 엷게 스쳤을 뿐이다. 하지만 그에겐 시아 루브렌터의 시체에 상처가 났다는 그 사실이 중요했다.
“시아를 지켜라!”
그가 자신의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부하들은 아까부터 부르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지크의 일행들에게 완전히 막혀 있었다.
몇몇이 억지로 전투 자리를 이탈하려 했지만 무방비로 노출된 등을 라일라의 거대한 마법 공격이 직격하면서 무위로 돌아가 오히려 전력만 낭비한 꼴이 됐다.
그 와중에 이번엔 검기가 시체의 팔뚝을 가르고 갔다. 이번 상처는 꽤 컸다.
“이 개자식들! 네놈들이 그러고도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더냐!”
컨델이 외쳤지만 지크는 콧방귀를 뀌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렌도 마찬가지였다. 이쯤 온 이상, 그렌도 컨델을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처단해야 했다.
컨델은 이를 갈았다. 이대로 가다간 남은 건 자신의 패배밖에 남지 않는다.
그 말은 곧, 그의 원대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바로 그의 연인의 완전한 죽음을 의미했다.
‘그렇게 둘 순 없어!’
그렌이 다시 한번 돌격해 들어오고 지크가 시아를 향해 검기를 뿌린 순간.
컨델의 그림자가 다시 한번 출렁였다.
콰아앙!
“크으윽!”
그렌이 뒤로 크게 물러났다. 지크도 갑자기 옆에서 튀어나온 공격에 황급히 윈두르로 방어했다.
쿠웅!
지크가 몇 걸음 물러서며 자신을 공격한 것이 무엇인지 살폈다.
‘시아 루브렌터의 그림자 인간이로군.’
예전, 요하임과 이블린을 습격했던 그림자 인간들 중 특출나게 강했던 적. 그리고 그들에게 컨델이란 용의자를 특정해준 그림자 인간이기도 했다.
‘사용하지 않는 게 이상하긴 했어.’
예전에 낸 상처 때문에 성능에 저하라도 일어난 게 아닌가 싶었지만 눈앞의 그림자 인간에 지크가 낸 상처는 없었다.
방금 전의 공격으로 성능의 저하라는 것도 의심스러워졌다.
‘그렇다면 감정적인 이유일 가능성이 크지.’
지크의 예상은 정확했다.
‘시아는 쓰기 싫었는데!’
이곳이 아니면 컨델이 다룰 수 있는 그림자들은 한정된다. 때문에 자신을 조사하는 자들을 습격할 때 어쩔 수 없이 가장 성능이 뛰어난 시아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때 시아의 그림자 인간은 꽤 큰 상처를 얻었고 기겁을 한 컨델은 바로 후퇴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그림자 인간을 다신 쓰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아직 불안한 양이지만….’
컨델은 잠시 시아의 그림자 인간을 쳐다보았다. 조금 더, 조금 더 그림자를 모으고 싶었다.
‘괜찮아.’
컨델은 자신을 다독였다.
‘난 최선을 다했어! 그리고 시아는 반드시 나한테 응답해줄 거야! 우리의 사랑은 절대적이니까!’
시아의 그림자 인간이 움직였다. 향하는 곳은 그녀의 시체가 있는 곳. 컨델은 그녀의 뒤를 지키듯 섰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