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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03화 (303/628)

제303화

‘죽은 지 꽤 된 걸로 알고 있는데 꽤 멀쩡하군.’

아마도 그녀를 받치고 있는 구조물이나 그녀의 몸을 반쯤 덮은 채 찰랑이는 검은 액체 때문일 것이다. 지크는 섬의 주변도 살폈다.

‘실종자들이 여기 있었군.’

특별 대접을 받고 있는 시아 루브렌터의 시체와는 다르게 실종자들의 시체는 섬 주변 여기저기에 버려져 검은 액체 위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쓰레기와 다름없는 대우. 아마 컨델도 그 이상으로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컨델이 지크 일행을 슬쩍 쳐다봤다. 그의 얼굴이 대번에 분노로 일그러졌다.

라일라가 말했다.

“널 정말로 환영하는 것 같네.”

“그렇지? 내가 녀석에게 베풀어준 은혜가 많거든. 도의를 아는 녀석이야.”

뒤에서 컨델에게 시선을 떼지 않던 세 사람의 시선이 일순간 지크에게 향했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에게 눈을 떼지 말라고 지크에게 본능에 각인될 정도로 훈련을 받았지만 지크의 개소리에는 어쩔 수가 없던 것이다.

그렌에게 달라붙어 있던 그림자 인간들이 지크 쪽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주변 검은 액체에서 그림자 인간들이 몇 체 더 일어섰다.

“흥!”

지크는 코웃음을 치고 윈두르를 앞으로 겨눴다. 확실히 혼자서는 버거운 녀석들이긴 하지만 그러니 동료들을 끌고 온 것 아니겠는가.

고작 저 정도의 그림자 인간들은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다.

‘여기는 주변을 신경 써서 싸울 필요도 없고!’

지크가 발을 크게 굴렀다. 주변의 검은 액체가 일시에 튕겨나가고 거무튀튀한 땅바닥이 드러났다.

공동이 크게 울리며 지크가 밟은 땅이 움푹 팼다. 그 힘을 그대로 팔까지 전달해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아!

거대한 마력의 격류. 게다가 무척이나 날카롭고 단단하다. 다가오던 그림자 인간 몇이 그 검격에 휘말려 몸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윈두르의 빛이 공동을 계속 번쩍이며 그림자 인간들을 가격했다.

스녹은 주변 땅을 일으켜 그림자 인간들의 발판을 부수고 그대로 암반을 들어 뒤덮었다.

하지만 역시 화려하고 강력한 건 마법이었다.

콰아아아앙!

화려한 불꽃이 수 놓인다. 다가오던 그림자 인간 몇 체를 한순간에 휘감아버린 불꽃.

그림자 인간들을 한 번에 처리하진 못 했지만 그것들 모두가 분명 큰 피해를 받았다. 안 그래도 휘청이는 그것들에 마지막 타격이 날아왔다.

퍼엉! 퍼엉! 퍼엉!

정확하게 날아온 몇 개의 불덩이들이 흐느적거리던 그림자 인간들을 무자비하게 불태웠다.

요새 한창 라일라에게 마법을 배우며 자신의 재능을 눈부시게 내보이고 있는 엘레나의 것이었다.

그림자 인간들이 무릎을 꿇더니 검은 액체 위로 엎어졌다.

그것들의 몸이 검게 변했다. 녹아내리는 것처럼 그것들은 그림자로 변해 검은 액체로 다시 흡수됐다.

“별것 아니네!”

지크가 들으란 듯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지크의 자신감은 너무 빠른 감이 있었다.

스으윽!

검은 액체에서 다시 그림자가 솟는다. 그것들은 서서히 형체를 잡기 시작하더니, 곧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거기까지는 놀랄 일이 아니다. 여느 그림자 인간이 만들어지는 모습과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림자 인간의 얼굴을 본 순간 지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이, 라일라. 저놈, 방금 우리가 죽인 놈 아니냐?”

“내 눈에도 그렇게 보여.”

불길한 그리고 짜증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렌이 큰 소리로 그 생각에 확신을 심어줬다.

“그놈들은 이 공간에서 안 죽습니다! 검은 액체에서 다시 되살아나요!”

“…그렇다네?”

라일라가 말하자 지크는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귀찮아졌네.”

되살아난 그림자 인간들이 다시 달려들었다. 지크가 마주 윈두르를 휘둘렀다.

“이대로 조금씩 전진한다! 일단 섬으로 올라가!”

지크 일행이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그림자 인간들이 계속해서 달라붙었다.

죽이지 못하는 그림자 인간들은 무척이나 귀찮았지만 그렇다고 지크 일행의 전진을 막지 못했다.

컨델이 그 모습을 보고 이를 갈았다.

“쯧!”

혀를 차고 손을 한번 휘둘렀다. 순간 지크 일행과 그렌 일행을 공격하고 있던 그림자 인간 중 일부가 뒤로 물러났다.

여유가 생겼다. 지크 일행은 빠르게 섬으로 올라왔다. 자연스레 그렌 일행과 가까워졌다.

“여, 반갑습니다. 시도한 설득은 잘 통하지 않은 모양이군요.”

지크의 조롱에 그렌은 그를 쏘아봤다. 그러나 지크는 이미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건 뭘 하는 걸까.”

물러난 그림자 인간들이 뿔뿔이 흩어져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뭘 찾는 것 같은데?”

“이보쇼. 저건 뭡니까?”

라일라는 정말로 지크가 존경스러웠다.

철문을 지나기 전에 한번 다투고 방금도 조롱기 다분한 말로 그의 속을 긁었으면서 이번엔 태연스레 그에게 질문을 한다. 대체 얼마나 뻔뻔한 것일까.

아무리 성격 좋은, 혹은 성격 좋은 척하는 그렌이라도 이번 건 속이 좀 뒤집힌 것일까. 토르니움을 휘두르면서도 날카롭게 지크를 노려봤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봅니까?”

“당신이 저 녀석의 능력을 잘 안다면서요? 그럼 저것도 알 것 아뇨.”

“그걸 왜 당신에게 가르쳐줘야 하죠?”

“설마 천하의 카르위먼 명예 성기사씩이나 돼서 개인적 감정으로 공적인 일을 그르치려는 건 아니죠?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겠습니까.”

이게 설득인지 비꼼인지 모르겠다. 아니, 지크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명백히 후자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지크의 말이 그렌의 약점을 제대로 파고든 것도 사실이었다.

“…아마도 시체들에 그림자들을 넣으려는 걸 겁니다. 자신의 시체에 깃든 그림자들은 훨씬 더 강해지니까.”

“과연….”

‘그냥 쓰레기처럼 방치해놓은 게 아니었나.’

처리하지 않은 이유가 있는 모양이었다.

“다만 시체들이 많이 움직이진 않을 겁니다. 그림자가 깃들려면 죽은 지 일정 시간이 지나지 않은 시체여야만 하니까요.”

그렌은 슬쩍 시아 루브렌터의 시체를 쳐다봤다.

“적절한 처치를 하지 않은 이상 말이죠.”

그렌의 말처럼 그림자 인간들이 하나둘 검은 액체 위로 뒹굴고 있는 시체에 가까워지더니, 무릎을 꿇고 손을 시체에 갖다 댔다.

시체에 닿은 그림자 인간의 손끝이 검은색으로 변한다. 그러곤 마치 메마른 흙에 흘러드는 빗물처럼 스르르 시체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번뜩!

그림자 인간이 완전히 깃든 시체가 눈을 뜬다. 창백한 안색에 부릅뜬 눈동자는 그 모습만으로도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줄 수 있었다.

철퍽!

검은 액체를 튀기며 시체가 스르르 일어났다. 움직임 자체가 절대로 사람의 움직임이 아니다. 일어나는 시체들이 점점 늘어났다.

지크가 다시 물었다.

“이봐요, 제너드 씨. 혹시 저것들도 안 죽습니까?”

“제가 알기론 그렇습니다.”

크아아아악!

시체들이 크게 포효하더니 마치 이성을 잃은 동물처럼 돌진하기 시작했다.

퍼엉!

그것들이 높이 뛰었다. 검은 액체가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마치 하늘에서 사냥감을 향해 날아드는 매처럼 그것은 지크 일행을 향해 내려앉았다. 아니, 내려 꽂혔다.

콰아앙!

윈두르가 녀석의 몸뚱이를 쳐낸다. 에스텔레이드와 토르니움도 각각 시체들의 공격을 방어했다.

‘강하군.’

윈두르를 쥔 손이 욱신거렸다. 저런 것들이 죽지도 않고 공격한다면 분명 엄청난 위협이 될 것이다.

‘방법은 하나뿐인가.’

지크는 고개를 돌렸다. 섬의 중앙부에서, 시아 루브렌터의 시체를 떠받치고 있는 인공물의 수호자처럼 서 있는 컨델이 보인다.

‘능력의 주인을 쳐야지.’

그렌도 지크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그도 컨델을 쳐다보고 있었다.

“생각이 같은 모양이군요.”

“아무래도요.”

지크는 자신의 일행을 쳐다봤다.

자신의 가르침을 충실히 받은 한스와 스녹. 마법 재능에 있어서만큼은 자신의 재능과 동급이라고 생각되는 라일라.

그리고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라일라의 교육을 듬뿍 받은 불세출의 천재 엘레나까지.

“라일라.”

“걱정 말고 갔다 와.”

라일라가 마법을 쏘아낸 후 컨델을 향해 턱짓을 했다.

“네가 저 녀석을 죽일 때까지는 충분히 버틸 수 있어.”

“좋아!”

지크가 그렌을 보고 말했다.

“갈 겁니까?”

“…브라우닝!”

“응, 그렌!”

“이분들과 함께 잠시 시간을 끌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라라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림자를 베어냈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지!”

그렌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컨델을 노려봤다.

“가죠.”

그렌이 토르니움을 크게 휘둘러 주변 그림자와 그림자 인간 그리고 시체들을 물러서게 했다.

당연히 그것들은 바로 그렌을 다시 공격하려 했지만 그 앞을 막아서는 검 한 자루가 있었다.

“이 이상은 못 가!”

마력을 담은 라라의 검이 그것들의 공격을 튕겨냈다.

“나도 간다!”

“갔다 와!”

라일라의 배웅을 받으며 지크도 달리기 시작했다.

그를 잡으려는 적들을 윈두르를 휘둘러 떼어낸다. 그를 추격하려는 적들을 에스텔레이드의 빛이 삼켰다.

‘저놈과 공투라니. 오래 살고 볼 일이군.’

지크는 그렌의 뒷모습을 봤다. 회귀 전 자신을 죽인 적과 함께 싸운다. 어떻게 보면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킬 만한 상황이다.

그러나 지크의 마음은 차게 식어 있었다.

‘사기꾼 새끼일 확률이 높은데 감흥은 무슨.’

오히려 그렌과의 공투가 짜증이 났다.

‘한스와 비슷한 수준의 놈이 무슨 놈의 나와 공투야.’

도움은커녕 방해나 안 되면 다행.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저 녀석의 진짜 모습이 선인이든 사기꾼이든 반드시 녀석은 컨델을 처치하려 할 테니까.

그와 라라 브라우닝은 그의 일행이 아니니 지시를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지크는 마음을 다스렸다.

‘좋게 생각하자고.’

컨델 놈이 아무런 방비도 없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아예 그렌 놈에게 떠맡겨 버리면 되겠지.’

그리고 자신은 진정한 목표를 노리면 된다.

‘오는가.’

컨델은 스산한 눈으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두 놈을 노려봤다.

하나는 자신과 연인에게 온갖 모욕을 퍼부은 개자식. 또 한 놈은 자신을 속이려 한 사기꾼. 둘 다 치 떨리게 증오스러운 놈들이다.

‘차라리 잘됐어. 저놈들은 내 손으로 쳐 죽인다!’

그래서 놈들의 골수가 어떻게 생겼는지 자신의 눈에 똑똑히 새길 작정이었다.

스르륵!

그림자가 컨델의 몸을 타고 올라와 갑옷처럼 뒤덮는다. 온몸에 흐르는 막대한 힘에 컨델은 삐죽이 웃었다.

컨델과 먼저 싸우기 시작한 건 역시 지크보다 앞서 달려나갔던 그렌이었다.

그는 토르니움을 높이 쳐들어 컨델을 향해 내려쳤다. 컨델도 그림자로 뒤덮인 손을 휘둘렀다.

콰앙!

굉음이 울렸다.

“더 이상 죄를 짓지 마세요, 이시드 씨! 당신의 목적은 이뤄질 수 없습니다!”

아직 지치지 않았는지 그렌은 안타까운 모습으로 외쳤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컨델에게 부아가 치밀어 오르게 할 뿐이었다.

더 이상 말을 섞기조차 싫다.

“닥치고 뒤져!”

컨델은 다른 손으로 그렌을 공격했다.

콰아아앙!

그렌이 피하는 바람에 컨델의 공격은 애꿎은 지면을 강타했다. 지면이 움푹 파이며 주변 대지가 쩍 하고 갈라졌다.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하지만 그렌은 기죽지 않고 다시 한번 달려들었다.

몇 번의 공방이 오갔을 때, 지크가 도착했다.

“오냐! 두 놈 다 한 번에 처리해주마!”

한 손으로는 그렌을 상대하며 컨델이 다른 손을 뻗어 곧 다가올 지크의 공격에 대비할 때였다.

지크가 전투 지점과 거리를 벌렸다. 컨델에게서 빙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

“……?”

그렌과 컨델, 둘 다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지크가 향하는 곳을 깨닫고 컨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저 자식, 설마…!”

지크가 향하는 곳은 시아 루브렌터의 시체가 있는 곳이었다.

달려가던 지크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빙긋 웃었다.

“어이, 컨델 이시드! 분명히 네 부인을 부활시키려면 시체가 필요했었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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