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01화 (301/628)

제301화

지크가 컨델을 따라잡아 놓고도 일단 조용히 대기를 하고 있던 이유는 과연 그렌이 어떤 식으로 나오는지를 보기 위해서였다.

지금 지크는 그렌을 거의 위선자에다가 자신과 같이 회귀를 한 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요새는 그가 한 회귀가 어쩌면 좀 더 많을 거라고까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틀렸을 거라는 의심을 놓진 않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그렌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계속해서 확인을 해야만 했다. 게다가 컨델의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러모로 지크는 눈앞의 대화에서 정보를 알아내려 했다.

그러나 그게 눈앞의, 무슨 질 낮은 삼류 소설 같은 상황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아니,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잖아.’

회귀 후 그렌과 잘 엮이지 않아 잠시 까먹고 있었지만, 자신을 쓰러뜨렸을 때 악행을 읊어준다며 나댄 놈이다.

저런, ‘잘못된 길을 가는 악당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주인공’ 같은 행동을 충분히 할 만한 놈이다.

‘응? 잘못된 길을 가는 악당?’

지크는 이제는 반쯤 연극을 구경하는 관객의 자세에서 눈앞의 상황을 바라봤다. 분노에 찬 컨델이 그렌을 공격하고 있다. 그렌은 토르니움을 휘둘러 그림자들을 막아냈다. 하지만 아무래도 작정하고 몰아붙이는 그림자들을 그가 당해내기란 힘들었다. 이미 그를 둘러싸고 있는 그림자만 30이 다 되어간다.

그러나 그렌은 개의치 않았다. 안타까운 표정을 하고 필사적으로 그에게 호소를 했다.

“믿기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실험을 해보세요! 시아 루브렌터가 눈을 뜨긴 하겠죠! 하지만 그건 당신이 아는 연인이 아닙니다!”

“닥쳐어어어어!”

“이런 빌어먹을!”

그렌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림자 몇 개를 튕겨낸 후, 철문을 쾅 열었다. 그리고 토르니움으로 방 안쪽을 가리켰다.

“그럼 당장이라도 그 개 같은 실험을 해 보라고!”

지금껏 예의 바른 어투로 그를 설득하던 그렌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 박력에 컨델이 주춤거렸다. 그림자들도, 방 안쪽을 가리키느라 빈틈투성이가 되어버린 그렌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당신의 노력은 헛고생일 뿐이야! 당신의 연인은 살아나지 못한다고!”

“그딴 거짓말을…!”

“그럼 그 헛소리에 정말로 한 점 의심이 없었단 말이야!”

“…….”

컨델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도 내심 그런 의문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자그마치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방법은 어렸을 적 동화 속에서밖에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이 방법을 행할 수밖에 없었다. 오직 그것만이 일찍이 잃어버렸던 그의 연인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물론 고작해야 적의 말 몇 마디에 과장되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만약 다른 이가 이런 말을 했다면 컨델도 이렇게까지 반응하진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 말을 하고 있는 그렌이 그의 능력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것.

멋도 모르는 놈들이 ‘죽은 자를 살릴 방법이 있을 것 같냐!’ 같은 판에 박힌 말을 했다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겠지만, 그의 능력을 알고 있는 그렌의 말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부여되었다.

그 심정을 안다는 것처럼, 그렌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압니다. 알아요. 당신은 오직 당신의 연인의 부활만을 위해 노력해 온 사람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연인도 그걸 바랄까요?”

‘얼씨구?’

이제는 폭소가 터져 나오려고 한다. 지크는 입 밖으로 삐져나오려는 웃음을 이를 악물어 참았다.

“묻죠. 시아 루브렌터란 사람은 악녀였습니까?”

“무슨 소리를! 그녀처럼 천사 같은 인물은 없었다!”

일개 하인인, 그것도 어렸을 때부터 험악한 인상 때문에 다른 하인들에게도 백안시되던 자신을 자상한 미소로 감싸 안은 여자다. 그녀가 악녀라면, 그 대단한 카르위먼의 천사들도 모조리 악마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당신의 생각처럼 그녀가 살아났다고 칩시다. 그걸 그녀가 좋아할까요? 당신의 생각처럼 둘이서 손을 잡고 웃으며 이 세상을 살아갈 거라고 생각합니까?”

“…….”

컨델은 말이 없었다. 어느새 그가 조종하던 그림자들은 몸을 낮추고 마치 패잔병처럼 바닥에 붙어 있었다.

“이제 이런 짓은 그만두세요.”

그렌이 조용하게 말했다.

“그녀는 부활하지 않고, 혹 그녀가 부활한다 해도 당신의 행동을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

컨델은 말이 없었다. 그저 멍하니 땅을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보고 지크는 눈살을 찌푸렸다.

동정은 당연히 아니었다.

‘이야, 저런 게 진짜 통하는 놈이 있네?’

한 거리를 주름잡는 뒷세계의 보스가 사실은 개찌질이인 걸 안 것처럼, 컨델을 보는 지크의 눈은 차게 식었다.

착한 주인공의 정의로운 일갈에 악당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죄를 뉘우친다.

‘아니, 그것까지는 아니야. 저건 악당의 의지를 상실시키는 건가?’

물론 그것도 상당히 곰팡내 나는 전개이긴 하다.

지크는 그제야 그렌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뭔 깡으로 먼저 쳐들어갔나 했더니, 저런 수를 가지고 있었군.’

현재의 컨델은 지크조차 까다로운 놈이었다. 한데, 지금의 지크보다 훨씬 딸리는 그렌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그렌이 이미지대로 정의로운 인물이라면 그런 것 따위 상관하지 않았겠지만, 지크의 추측대로 꿍꿍이가 있는 인물이라면 뭔가 생각해둔 대안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게 그 대안일 테고.’

마치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듯 그렌은 컨델에게, 지크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같잖은 충고를 했고 눈치를 보니 그게 통하는 듯 보였다.

컨델 이시드라는 놈이 정신 나간 놈처럼 보이긴 했지만 지크는 나름 납득했다.

‘그만큼 시아 루브렌터에 대한 사랑은 진짜였다는 거겠지.’

하지만 지크가 안은 상념은 딱 그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뭐?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남에게 피해를 입혀도 돼?’

그게 자신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자신이 추구한 힘보다 컨델이 추구한 사랑의 가치가 더욱 커서?

‘개소리지.’

어쨌든 원하는 걸 얻기 위해 타인에게 피해를 끼친 건 동일하다. 즉, 지크 자신과 컨델은 같은 인종이다.

‘그리고 나는 악당이지.’

자연스레 컨델도 악당이 된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그런 머리 아픈 생각도 필요 없다. 컨델은 요하임과 이블린을 죽일 뻔했다.

‘그런 놈을 저런 식으로 끝낸다고?’

절대로 용납 못 할 일. 그래서 끼어들었다.

짝! 짝! 짝!

지크가 박수를 쳤다. 무척이나 힘을 넣어서 쳤기에 그렌도 컨델도 듣지 못할 리 없었다.

“이야, 재미있는 장면 잘 봤습니다.”

그렌이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컨델을 ‘설득’할 때 가만히 있어 잠시 마음을 놓았었는데 그가 다시 움직이자 경계심이 생긴 것이다.

컨델의 반응은 조금 더 격정적이었다. 방금 전까지 짓고 있던 허망한 표정은 어디론가 가고 증오 어린 시선이 쏘아졌다.

“훌륭합니다, 제너드 씨. 과연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라고 할까요? 범죄자를 말만으로 설득하다니. 같은 명예 성기사로서 자랑스럽습니다.”

‘같은?’

그러고 보니 예전에 돈을 먹여 정보를 전해주던 자 한 명이 알려준 정보에 그런 게 있었다. 저 빌어 처먹을 개자식과 지금 자신에게 말을 한 사람은 똑같이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라고.

“설마 그런 정보를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정보의 독점이라면 저도 할 말이 있습니다. 컨델 이시드를 먼저 알아낸 사람은 지크 씨가 아니십니까? 그것도 다른 사람 몰래요.”

“물론입니다. 그것 가지고 뭐라 할 생각은 없습니다. 게다가 그 정보를 무척 잘 사용하시기까지 하셨는데요. 저렇게 컨델 이시드를 개심시키지 않았습니까.”

“개심이 아닙니다. 저분의 마음 속에 한 조각의 양심이 남아 있었고, 전 그걸 믿어 본 것뿐입니다.”

“뭐, 어떤 수를 썼건 간에 확실히 효과는 뛰어났습니다. 보니 전의를 잃은 것 같군요.”

‘…어떤 수를 썼건 간에?’

컨델이 턱을 조금 들었다.

하지만 그렌은 지크를 경계하느라 그런 시선을 보지 못했다.

“상당히 강한 녀석이라 어떻게 쓰러뜨릴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말 몇 마디로 설득이 돼서 다행입니다. 이제 곧 제 동료들도 도착할 테고요. 적어도 시간은 확실히 끌었군요.”

“전 그런 뜻으로 말을 한 것이…!”

그렌이 뭔가 말을 했지만 더 이상 컨델에게 다른 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설득? 동료들도 도착?’

컨델의 머릿속에 지크가 한 말들이 천천히 재조립된다.

둘은 똑같은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다. 즉, 두 놈이 뭔가를 짰을 가능성이 있다.

‘내가 방금까지 말싸움을 하고 있을 동안 녀석들의 동료들이 도착할 정도의 시간이 흘렀어. 즉, 녀석이 시간을 끌고 있었다는 말인가?’

게다가 지크가 한 ‘어떤 수를 썼건 간에’란 말도 걸렸다. 말 그대로 그 시간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말 같지 않은가.

정당한 수를 썼다면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당하지 않은 수란 무엇일까.

‘…내게 한 말.’

바로 떠오른 건 그것이었다. 하지만 전투를 할 때 대화를 했다고 그런 말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말 중에 정당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뜻.

‘…거짓말?’

그 소름 끼치는 단어에 컨델의 의식이 닿았다.

그러고보니 어느새 자신은 모든 걸 포기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불리한 상황에 시간까지 죽여가면서. 그리고 그건 자신의 능력을 모조리 알고 있는 인간 하나의, 근거 따윈 없는 세 치 혀 때문이었다.

‘설마!’

컨델의 시선이 작게 말다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둘에게 향했다. 한 명은 자신을 말리려 한 자. 그리고 또 한 명은, 자신은 물론이고 그의 연인까지 끌어들여 온갖 모욕을 한 자.

그때 다시 한번 지크의 말이 들렸다.

“그러니까 명예 성기사라는, 당신과 같은 입장으로서….”

그 뒤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두 놈 다, 똑같은 놈들?’

순간 텅 비었던 컨델의 머리가 확 맑아졌다.

“흐, 흐흐흐….”

그의 입에서 옅은 웃음소리가 흘렀다. 지크와 그렌이 컨델을 돌아봤다.

“흐흐흐, 흐, 흐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소름 끼치는 폭소.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그렌이 당황했다.

“왜 그러…!”

“이런 병신 같은 놈!”

퍼억!

컨델이 주먹으로 자신의 뺨을 후려쳤다. 그렌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부풀어 오른 뺨과 입가에 피를 흘리면서도 컨델은 계속 웃었다.

“내가 어리석었어! 고작해야 처음 본, 내 시아를 쓰레기 취급한 놈과 똑같은 놈을 믿다니!”

컨델의 눈에 핏발이 섰다.

“감히 허튼 말로 날 농락해!”

“아니, 아닙니다! 당신을 농락한 게 아니에요! 정말로 당신은 시아 루브렌터를 부활시킬 수 없…!”

“닥쳐라! 네놈의 말 따위 믿지 않는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건, 어떤 희생을 치르건 간에 난 내 연인을 되살릴 것이다!”

“혹 당신의 연인이 살아난다 해도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그렌이 다급하게 외쳤지만 이미 컨델에겐 통하지 않았다.

“숨어 살면 돼! 어차피 우린 도망자 신세였으니! 내가 일으킨 사건의 소문이 닿지 않는 먼 곳으로 가 숨어 살면 우리의 행복을 방해할 자는 아무도 없어!”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걸 직감한 그렌이 입술을 깨물었다.

컨델이 미친 듯 웃으며 그림자를 뽑아낸다.

그리고 지크도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미친 듯이 웃어댔다.

‘암, 그래야지! 누구 맘대로 자기 속죄로 퉁 치고 넘어가려고 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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