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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00화 (300/628)

제300화

사방에서 포위되는 그림자에 라라 브라우닝의 검은 점점 힘을 잃어갔다. 컨델은 그 모습을 지켜봤다.

‘이 여자 혼자뿐인가?’

이 통로는 그의 아주 중요한 근거지로 이어져 있다. 이 통로가 발각되었을 때 그가 바로 움직인 것도 그 이유다. 지금껏 본 침입자는 지금 그를 따라오고 있는, 생살을 몇백 번을 씹은 후 내뱉어 다시 발로 지근지근 짓밟아도 분이 풀리지 않을 놈과 눈앞의 여자뿐.

선행한 자가 이 여자 혼자뿐이라면 그의 근거지가 침범당했을 가능성은 없어진다.

하지만 그걸 알아볼 시간이 없었다.

일단 지크가 계속 달려오고 있었다. 그의 실력은 절대 만만치 않다. 여기서 괜히 라라를 심문하고 있다가는 전투를 피할 수 없다. 게다가 분명 뒤이어 많은 지원병이 달려올 터.

컨델은 다시 통로를 내달렸다.

‘가는군.’

지크는 실망했다. 그대로 라라와의 전투에 집중해 발이 묶였으면 했지만, 아무래도 그 정도까지 라라에게 관심을 기울이진 않은 모양이다.

그림자에게 포위된 라라가 사방으로 검을 내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검에는 뚜렷한 마력의 빛이 엿보였다.

‘확실히 재능은 있어.’

회귀 전 지크를 죽인 용사 파티의 일원이었으니 그 재능은 확실하다. 게다가 눈에 보이는 재능도 꽤 높다.

‘하지만 아직은 개화가 덜 됐지.’

마왕 지크 모어는커녕 지금 달라붙는 그림자들도 힘에 부쳐 보인다. 지크는 그림자 하나를 공격했다.

쿠웅!

라라를 공격하는 와중에도 지크의 움직임을 눈치챈 그것은 부정형의 몸을 변형시켜 지크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그건 이미 예상한 상황이다. 지크는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다시 한번. 또 한 번.

노도와 같은 공격에 결국 그림자의 방어가 뚫렸다.

서걱!

그림자가 베여 사라졌다. 그 틈으로 약간의 공간이 생겼다. 지크는 그 빈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쿠우웅!

라라에게 향하던 공격을 막아냈다.

“다, 당신은…!”

라라가 놀라 지크를 바라본다. 하지만 지크는 라라를 보고 있지 않았다. 어째서 혼자 있는지, 그렌은 어디 있는지 등등 궁금할 만한 질문들도 할 생각이 없었다.

오로지 컨델의 기척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곧 놓칠 것 같은데.’

컨델이 라라를 보고 잠깐 머뭇거려서 거리가 조금 좁혀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좁혀진 것도 아니다. 적어도 여기서 라라를 도와 그림자들을 모두 처리한다면 녀석을 놓칠 것이다.

‘그렇게까지 해줄 필요는 없지.’

지금 지크에게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컨델을 엿먹이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그냥 내팽개칠 생각은 없었다.

“흡!”

숨을 크게 들이켠다. 그림자들에게 달려들었다.

“자, 잠깐만요!”

뒤에서 라라가 외쳤지만 지크는 무시했다. 그대로 전투에 돌입했다. 마력을 휘감은 윈두르가 엄청나게 휘둘러졌다. 방어는 거의 포기한 듯한 거센 공격으로 그림자들을 몰아붙인다. 물론 그만큼 방어가 소홀해져 그림자들의 공격에 여러 상처가 생겼다. 그러나 지크의 공격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콰직!

그림자 하나가 그대로 위로부터 두 쪽이 났다.

푸욱!

또 하나는 윈두르에 몸이 꿰뚫린 후 마력에 의해 터져 나갔다.

콰드득!

다른 하나는 지크의 마력에 말 그대로 으깨졌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컸다. 지크의 몸에 피가 줄줄이 흘렀다.

“이봐요! 당신 괜찮아요? 이, 일단 나한테 포션이 있…!”

“잘 들어요.”

라라의 걱정 따위는 무시하고 지크가 그녀에게 말했다.

“세 놈 해치웠으니 여유가 좀 생겼을 겁니다. 물론 뒤쪽에 네 놈이 더 오고 있긴 하니까 그리 오래 갈 여유는 아니지만요.”

지크의 말대로 지크가 피했던 그림자가 열심히 달려오고 있었다. 저놈들이 합류를 한다면 전투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라라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라라는 절망하지 않았다.

“괘, 괜찮아요! 당신과 제가 힘을 합치면…!”

“그러니까 잘 버텨요. 당신 실력이라면 조금 정도는 버틸 수 있을 테니까.”

“…네?”

라라가 멍청하게 되물었지만 지크는 더 이상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 없었다. 그대로 그림자의 포위를 뚫고 달려나갔다. 포션 한 병을 쭉 들이켜 상처를 치료하는 걸 잊지 않았다.

“…어라?”

폭풍처럼 지나간 상황에 라라는 멍청하게 뇌까렸다. 그러나 곧 다시 덤벼드는 그림자 때문에 화들짝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자, 잠깐…!”

그런 말을 한다고 그림자들이 공격을 중단할 리 없다. 라라는 허둥지둥 검을 휘둘렀다. 다시 격렬한 전투가 펼쳐졌다. 그러나 그녀의 황망함은 가실 줄을 몰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지크를 쫓던 그림자가 본격적으로 라라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림자 네 개가 더해져 그녀가 상대하는 숫자는 아까보다 하나 더 늘어났다. 그녀의 검이 어지러워지고 슬슬 몸에 상처도 늘기 시작한다.

‘어? 설마, 나 여기서 죽는 거야?’

실감이 나지 않는다. 마치 꿈이라도 꾸는 것 같다. 그러나 덤벼오는 그림자들의 공격은 실체였고 상처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현실이었다.

물론 그렌을 따라나선 후 죽을 각오는 언제든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죽음도 그렌의 곁에서 혹은 그렌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지, 이런 어디인지도 모를 지하 통로에서 맞는 죽음은 생각해본 적 없다.

공포가 들어찼다. 숨이 가빠지고 근육이 제멋대로 날뛴다. 지금껏 쌓아온 훈련과 경험으로 전투는 계속하고 있지만, 그녀가 흐르는 검의 궤적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이를 악물고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분명한 힘의 우위는 고작 정신 좀 똑바로 차린다고 뒤집어지는 게 아니다.

이대로는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된 순간!

빛이 보였다.

비유가 아니다. 그건 정말로 눈부신 빛이었다. 지하 통로의 어둠 속을 환하게 비춘 그 빛이 눈앞의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낸다.

당장이라도 목에 그림자가 틀어박힌 것 같던 급박함이 사라지고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그 여유는 주변 땅이 일어나 그림자들을 밀어냈을 때 더더욱 커졌다.

턱!

누군가 자신의 앞에 서는 게 보인다. 라라가 그를 바라봤다.

눈부시게 환한 검을 든 그 인물은 그녀가 아는 인물이었다.

“괜찮습니까?”

그는 한스였다.

* * *

‘슬슬 구조됐을 타이밍인가.’

지크는 뒤를 힐끔 돌아봤다.

‘살아 있다면 한스, 스녹과 만났겠지.’

지크가 라라를 아무렇게나 방치한 건 아니다. 이래 봬도 제대로 그녀를 구하려 했다.

그녀의 실력을 예측하여 적어도 그를 따라오던 한스와 스녹이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수준으로 그림자들의 숫자를 줄여줬다.

‘아슬아슬하긴 할 테지만.’

하지만 더 이상 지체했다간 컨델을 놓치게 된다.

‘뭐, 난 최선을 다해줬어. 못 버틴다면 그건 녀석의 운명이지.’

더 이상 컨델은 지크를 떼어놓으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림자를 보내지도 않고 다른 방해 작업을 할 낌새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달릴 뿐이었다.

‘사용할 그림자가 동이 난 건가?’

어찌됐든 지크로서는 나쁜 상황이 아니다.

그러게 거리를 둔 둘의 기묘한 뜀박질이 어느 정도 이어졌다.

목적지에 도착한 것일까. 컨델의 속력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의 움직임이 완전히 멎었다. 지크도 컨델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몸을 멈춰 세웠다.

둘의 시선이 똑같은 곳으로 향했다.

그렌 제너드. 그가 그곳에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렌이 입을 열었다. 잔잔한 목소리가 실로 듣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컨델이 그렌을 보다가 그의 뒤쪽을 쳐다봤다.

“…들어갔었나?”

그렌의 뒤쪽엔 문이 하나 있었다. 상당히 큰 철문. 크기를 감안하면 아마 두께도 상당할 것이다.

하지만 그렌에게는 별 장애가 되지 않았을 터. 실제로 철문은 크게 찌그러져 있었다. 일단 닫혀 있긴 하지만 더 이상 외부의 출입을 막는다는 역할은 수행하지 못할 것이다.

“네.”

“그래.”

컨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지금 그가 무척 열이 받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렌이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봐도 여봐란 듯 크게.

“걱정 마십시오. 안에 있는 물건들을 건드리진 않았으니까.”

“…뭐?”

뜻밖이라는 듯 컨델이 놀랐다.

“들어가서 확인해봐도 좋습니다.”

“…무슨 꿍꿍이냐.”

컨델이 위협스럽게 말했다.

“꿍꿍이는 없습니다. 그저 안의 물건을 망치는 것에 의미가 없다고 여긴 것뿐이죠.”

컨델은 조용하게 그렌을 노려봤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아듣지 못한 게 분명했다.

“사실, 전 당신의 능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

컨델이 놀랐다.

“제가 당신의 비밀 통로를 찾아낸 것도 그 이유 때문이죠. 당신의 그림자를 이용한 은신 능력은 확실히 대단합니다. 때문에 당신은 체포되는 상황에서도 무척 당당했겠죠. 중요한 증거가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당신의 능력을 알고 있는 제게 통로를 찾는 건 상당히 쉬운 일이었습니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군.”

“그럼요. 그리고 당신의 목적도 알 것 같습니다.”

그렌은 확신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장담하죠. 아무리 당신이 노력해도 시아 루브렌터 씨는 살아 돌아오지 못합니다.”

“!!!”

컨델의 움직임이 굳었다. 그건 정곡이 찔린 것 같기도, 숨겨진 비밀을 들킨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렌의 말이 컨델에게 그다지 즐거운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당신의 힘은 그림자를 다루는 힘이죠. 그리고 그 그림자는 사람을 죽여 그 시체에서 뽑아내는 것일 겁니다.”

그렌의 말이 동굴을 울린다. 컨델은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지크는 둘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시체 하나에서 꽤 많은 그림자를 뽑아낼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시체에서 뽑아낸 그림자들을 뭉치면 예전 습격에서 봤었던 그림자 인간이 되어, 상당히 강력한 힘을 휘두를 수 있죠. 하지만 결코 생전의 사람이 살아나진 않습니다.”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컨델이 피식 웃었다. 하나, 웃음기 뒤에는 약간의 안도감이 섞여 있었다.

“그딴 건 이미 알고 있다. 헛소리 그만하고 그 문에서 나와라. 정말 네 말대로 안의 시설들을 가만히 내버려 뒀다면 죽이진 않으마.”

하지만 그렌은 움직이지 않았다.

“살리고 싶은 대상자의 그림자에 다른 그림자를 덧붙인다.”

컨델의 표정이 다시 굳었다.

“덧붙이는 그림자는 시체에서 나온 그림자의 일부일 뿐. 한 시체에서 나온 그림자를 많이 덧붙인다면 살리고 싶은 그림자의 순수성이 오염되니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이죠. 그렇게 시체의 그림자 일부를 붙이고 붙이고 붙이다 보면 그 그림자 인간은 다른 그림자 인간들보다 훨씬 더 강해집니다. 그래요, 당신이 만든 시아 루브렌터의 그림자같이. 그렇게 강해진 그림자를 장본인의 시체에 집어넣으면 죽은 자는 부활한다. 어때요, 당신이 알고 있는 정보가 맞죠?”

컨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렌이 그를 불쌍하게 쳐다본다.

“다시 한번 말하죠.”

“…닥쳐.”

“당신의 시아 루브렌터를 살리겠다는 계획은….”

“닥치라고 했다.”

“전부 헛수고입니다.”

“닥쳐어어어어어!”

컨델이 그렌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그림자와 토르니움이 서로 격렬하게 충돌한다.

그 모든 것을 지크는 조용히 지켜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미친 것들. 아주 자기들끼리 쇼를 하고 자빠졌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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