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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96화 (296/628)

제296화

지크가 회의에서 컨델 이시드를 최유력 용의자로 짚은 다음 날, 요하임은 서류 한 장을 가져왔다.

“강제 조사권입니다.”

그가 내민 서류에는 카지노를 강제로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요하임에게 부여한다는 문장과 함께 시장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병력도 얻었습니다. 숙련된 조사관도 얻었죠. 이제 컨델 이시드와 카지노를 조사하기만 하면 됩니다.”

지크는 요하임이 끌고 온 병력과 조사관들을 쳐다봤다. 매끈한 갑옷과 날카로운 창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상당한 정예들 같은데, 시장님도 기대를 많이 하셨나 봅니다.”

“기대만큼 조사가 진척되지 않고 있었으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지크 님의 정보는 무척이나 큰 힘이 됐습니다. 뭐, 저희에게까지 알리지 않았던 것에 대해선 아직 생각하는 바가 있습니다만.”

이유가 있다고는 해도 컨델 이시드에 대한 정보를 숨긴 것에 대해 요하임은 감정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지크에게 그런 투덜거림은 통하지 않았다.

“남자의 생각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서요.”

“…루즈 영애도 저랑 비슷하던 것 같습니다만.”

“아, 이런. 여자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말을 보통 본인이 있는 곳에서 하나요?”

지크 일행을 배웅하기 위해 아침부터 나와 있던 이블린이 뾰족하게 쏘아붙였다.

“원래 이런 건 본인이 있는 곳에서 해야죠. 뒤에서 하면 음습한 뒷담화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제 앞에서 대놓고 하셨다?”

“사실은, 별 상관 없지 않을까 합니다. 당사자가 앞에 있든 없든 말이죠.”

“…지크 씨에게 빚을 졌다는 사실이 지금만큼 원통할 수가 없네요.”

빚만 없었다면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다는 분위기였다.

“하아, 정말로. 배웅 나와서까지 피곤해야 하다니.”

“그게 저란 남자의 매력이 아니겠습니까.”

“응, 넌 시끄러우니까 입 다물어.”

결국 옆에 있던 라일라가 지크의 입을 막아버렸다. 그 모습을 한심하게 지켜본 이블린이 요하임을 보며 말했다.

“지크 씨 일행은 지크 씨에게 휘둘릴 가능성이 높으니 백작님을 믿을 수밖에 없겠네요.”

“하하하! 기대가 무겁군요. 하지만 지크님도 말만 저렇게 할 뿐, 조사에 임하실 때는 진지하게 하실 겁니다.”

그렇게 지크의 편을 들어준 요하임이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저도 마찬가지고요.”

“가문과 영지를 위해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하셨죠?”

요 근래 회의에서 계속 얼굴을 맞대며 친분을 나눈 터라 이블린은 요하임의 사정을 제법 알게 됐다. 워낙에 유명한 일인 데다, 요하임 본인이 자신의 가문과 영지의 어두운 사건은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주의라서 숨길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죠. 이 일을 해결한다고 바로 예전처럼 돌아가진 못하겠지만 분명 명예 회복의 커다란 한 걸음 정도는 될 겁니다.”

그때 요하임의 얼굴은 가문의 미래를 짊어진 가주 그 자체였다.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가문과 가신, 그리고 영지민들을 위한 책임감이 완연하게 느껴졌다.

‘…역시 그 작자랑은 확연히 다르네.’

오직 자신의 출세만을 위해 약혼녀였던 이블린은 물론 그 자신의 가족과 가문마저 이용했던, 극한의 이기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그녀의 전 약혼자랑은 거의 정반대에 있는 인물이었다.

이블린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꼭 잘 풀리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요하임도 웃으며 대답했다.

“끝났습니까?”

지크가 라일라의 손을 치우며 말했다. 요하임과 이블린이 흠칫하며 서로 한 발짝씩 뒤로 물러났다.

“좋은 분위기 풍기는 건 알겠습니다만, 일단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으니 자제해 주세요.”

“그런 것 아닙니다! 게다가 그런 말을 지크 님에게서 듣고 싶진 않군요!”

“그것도 그렇네요.”

발끈한 요하임의 말에 건성으로 대꾸한 지크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가죠. 가문과 영지의 명예를 되찾으셔야죠.”

요하임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것도 컨델 이시드가 정말로 범인이었을 때 얘기입니다만.”

그렇게 한 마디 구시렁거리긴 했지만 요하임은 순순히 지크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시에서 파견한 병력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이블린은 조용히 지켜봤다.

* * *

지크의 눈에 카지노의 모습이 보였다. 카지노는 여느 때처럼 성업 중이었다. 얼굴은 초췌하고 눈에는 핏발이 들어선 도박 중독자들이 카지노의 문을 드나든다.

벌써 네 번째 오는 곳이라 지크는 이젠 제법 카지노의 외견이 익숙했다.

“들어갈까요?”

지크가 문을 향해 손가락을 뻗자 요하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 무리의 리더는 요하임인지라 지크는 철저하게 요하임의 의견을 묻고 있었다.

요하임의 허가가 떨어졌다. 지크는 카지노의 커다란 문에 손을 대고 힘껏 열었다.

카지노 내부의 모습이 드러난다. 카지노 특유의 열기가 훅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문 쪽을 눈치챈 사람들이 하나둘 행동을 멈춘다. 누가 봐도 온건하게 보이지 않는 많은 수의 병력에 사람들이 의문을 품고 몇몇은 겁에 질렸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평소 위압적인 눈으로 카지노를 감시하던 경호원 한 명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아무리 그가 카지노를 경호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날이 시퍼런 창을 들고 있는 무장한 무리 앞에서까지 눈을 부라릴 수는 없었다.

요하임이 앞으로 나서며 강제 조사권을 내밀었다.

“이 카지노의 주인 컨델 이시드와 카지노를 조사하러 왔다. 참고로 시장의 허락은 맡았으니 반항할 생각은 말도록.”

요하임의 위엄찬 목소리와 그가 내민, 시장의 직인이 뚜렷이 찍힌 강제 조사권을 보고 경호원은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애초에 그의 지위나 권한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사하도록.”

요하임의 말이 끝나자 뒤에 있는 병력들이 카지노 안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경호원은 ‘어어…!’거리기만 할 뿐 제지하지 못했다.

손님들이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한다. 일부 병사들이 손님들을 바깥으로 유도했다. 그리고 나머지 병사들은 조사관들의 지휘를 따라 카지노를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우리도 가 보죠.”

요하임이 말했다. 그들의 목표는 컨델 이시드였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예전에 컨델의 사무실로 간 적이 있는 지크가 안내를 위해 한 발 앞으로 나갔다. 그때였다.

“죄송합니다만, 저희는 따로 행동하겠습니다.”

목소리가 들린 순간 지크는 고개를 돌렸다. 표정은 의아하다는 듯, 하지만 눈만은 냉철하게 방금 말을 한 자, 그렌을 쳐다봤다.

회의에 계속 참여를 해왔던 그렌도 이 조사에 참가해 있었다. 그렌만이 아니라 라라의 얼굴 또한 보였다. 그렌이 그녀가 도움이 될 거라고 데려온 것이다.

“지크 씨를 포함해 다른 분들도 있는데 굳이 저까지 용의자를 만나러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요. 저는 다른 병사분들이랑 같이 카지노를 조사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의 말대로 용의자 한 명 만나러 가는데 굳이 우르르 몰려갈 필요는 없었다. 일행의 무력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지크 일행의 무력은 충분했다. 저번에 그들을 습격했던 그림자 괴물들을 퇴치한 게 그 증거가 아니던가. 게다가 전투가 벌어진다면 바로 카지노를 뒤지고 있는 병력들이 지원을 해 줄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렇군. 알겠소. 그대는 카지노를 조사하시오.”

그렇게 지크 일행과 그렌 일행은 컨델의 사무실로 돌입하기 전 헤어졌다.

그렌이 라라를 데리고 카지노 안 쪽으로 사라진다. 그 모습을 지크는 조용히 쳐다봤다.

“그럼 우린 갑시다.”

요하임이 말을 꺼내자 지크는 다시 안내를 시작했다. 계단을 올라 VIP층, VVIP층을 지난다. 그 곳에 있는 사람들도 아래층에서의 소동을 눈치챘는지 상당히 경계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단, 그게 지위든 돈이든 믿고 있는 바가 어느 정도 있는 그들은 1층의 사람들처럼 우왕좌왕하진 않았다. 그저 조용한 눈으로 컨델의 사무실로 올라가는 지크 일행을 쳐다봤다. 그러다 병사 몇이 다가와 카지노를 나가달라 부탁하자 슬슬 걸음을 옮겨 아래층으로 향했다.

“여깁니다.”

지크가 문을 가리켰다. 컨델의 사무실은 예전에 봤던 것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제가 먼저 들어가죠.”

혹시나 하는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 지크가 윈두르를 꺼내 들었다. 지크를 따라 다른 이들도 자신의 무기를 꺼냈다. 요하임은 뒤로 물러났다.

쾅!

지크가 거세게 문을 열었다. 다행히 문이 열리자마자 갑작스럽게 공격이 날아올 기미는 없었다.

활짝 열린 문으로 내부의 풍경이 들어온다. 예전에 봤던 때와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 방의 모습은 물론이고 방의 주인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위협스러운 외모를 지닌 컨델이 책상에 앉아 지크 일행을 보고 있었다.

“손님이 오셨군요.”

분명 칼을 든 사람들의 흉흉한 모습이 보이지 않을 리 없건만, 컨델의 태도는 여유로웠다. 아니, 단순히 감정 표현을 밖으로 잘 하지 않는 사람일 뿐인지도 몰랐다. 그가 스윽 일어섰다.

“아마도 아래층의 소란도 손님들의 탓인 모양입니다.”

컨델이 사람들을 쭉 훑어보다 지크 일행에게서 시선이 멈췄다.

“예전에 한번 뵀던 분들도 있군요. 그래, 여긴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요하임이 앞으로 나섰다. 그가 강제 조사권을 보여주며 나직이, 하나 또렷하게 말했다.

“자네를 체포하러 왔네, 컨델 이시드.”

“무슨 연유로 말입니까?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이 정도 규모의 병력이 들이닥칠 정도로 커다란 죄를 지은 적도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번에 도시에서 연쇄 납치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건 알 걸세.”

“그렇죠. 예전에 저분들이 찾아왔을 때도 그 일로 오셨기도 하고 말이죠.”

“자네는 그 최유력 용의자일세.”

“…저번에는 최유력 용의자는 아니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만.”

“아, 그건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지크가 끼어들었다.

“당신을 의심할 만한 증거가 나와버렸거든요.”

“재미있는 말씀이군요. 혹시 여기서 들을 수 있을까요?”

“당신, 여동생이 있죠?”

자신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흥미가 없다는 것처럼 행동하던 컨델의 움직임이 멎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것 같지만, 생전에는 무척 사랑했었던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어렸을 적, 더러운 뒷골목에서부터 부모도 없이 서로 의지하던 관계였으니까요. 나름 성공을 해서 이제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죽어버려 너무도 안타까웠지요.”

컨델의 얼굴이 슬픔에 젖어든다. 그렇다고 펑펑 눈물을 흘린 건 아니다. 표현된 슬픔의 감정은 미미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애통해하고 있는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컨델을 경계하던 사람들조차 일순 동정의 감정을 품을 정도였다.

물론, 지크는 예외였다.

“그 동생이 이렇게 생기시지 않았나요?”

지크가 그림자 인간의 초상화를 보여줬다. 컨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지크가 먼저 못을 박았다.

“부정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이미 당신 동생이 죽었을 때 기도를 해주었던 신관에게 확인을 받은 상태이니까요.”

“…꼼꼼하신 분이군요. 그 초상화를 어디서 구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맞습니다. 몇 년 전에 죽은 제 여동생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얼마 전에 저희가 습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을 겪으셨군요. 다치신 곳이 없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걱정 감사합니다. 한데, 그때 저희를 습격한 괴물들 중 하나가 당신의 여동생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참 이상한 일이군요. 제 여동생은 분명 몇 년 전에 죽었습니다. 신관에게 확인도 했다면서요? 그런데 제 여동생이 갑자기 살아나서 당신들을 습격했단 겁니까?”

“저희를 습격한 건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방금 말한 것처럼 괴물이었죠.”

컨델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순전히 괴물이 제 여동생을 닮아서 이러시는 겁니까?”

“이유가 몇 더 있긴 합니다만, 따지자면 그렇죠.”

“그렇군요. 한데, 여러분을 습격한 괴물들 전부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다른 괴물들의 신분은 알아내지 못한 겁니까?”

지크가 웃었다.

“꽤 자세하시군요.”

“나름 유명한 사건이 아니겠습니까? 저도 이리저리 조사를 해봤죠.”

컨델도 입꼬리를 뒤틀었다.

“방금 전까진 모르는 척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괜히 아는 척하다가 덤터기를 쓸지도 모르니까요. 뒷골목 출신이라 제 몸 사리는 데는 이골이 났거든요.”

둘이 잠시 서로를 쏘아봤다.

그러다 지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시아 루브렌터.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지 않습니까?”

컨델의 표정이 확연히 굳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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