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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95화 (295/628)

제295화

언제나 있던 회의시간이었다. 매번 그랬던 것처럼 회의는 차분하고 침착하게 흘러갔다. 그러나 분위기는 꽤 무거웠다.

사건은 계속 일어나고 그들은 직접적인 습격까지 당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범인을 제대로 찾지 못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크가 말한 한마디는 엄청난 파급력을 지녔다.

“범인임이 유력한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그 때, 사람들의 표정은 볼 만했다.

전후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 라일라는 ‘드디어 말했나’ 정도의 느낌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뒤통수를 맞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크를 쳐다봤다.

그러나 지크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무시무시한 시선들 속에서도 태연히 품속에 넣어 둔 초상화와 프로필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컨델 이시드. 잔말피에서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죠. 아직은 의심 단계지만 개인적으로는 확실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의 자택과 카지노에 대한 강제 조사권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백작님.”

“어, 잠시만요.”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처럼 요하임이 일단 손을 들어 지크의 말을 잠시 막았다.

“이 사람이 범인 같다고요?”

“그렇습니다.”

요하임이 프로필을 들여다봤다.

“유력 용의자는 아니군요.”

“네, 일단 용의선상에는 올라가 있었지만 우리가 생각한 범인의 요소 중 하나가 빠져있어 유력 용의자엔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뭐가 빠져 있었습니까?”

“연인이 없었습니다.”

“흠.”

이미 동요에서 벗어난 듯 요하임은 제법 냉철한 눈으로 컨델의 초상화를 내려다봤다.

“뭐, 인상은 확실히 범인같이 생기긴 했네요.”

요하임이 컨델의 초상화를 검지로 툭 쳤다.

“하지만 지크 님이 고작 그런 이유로 이 사람을 범인으로 몰진 않았을 테니, 당연히 이유가 있을 테죠?”

“그렇습니다. 우리가 상의해서 합의한 범인상을 제쳐두고 갑자기 다른 사람을 용의자라고 말하시니 좀 당황스럽군요.”

그렌도 끼어들었다. 그의 얼굴에 곤혹스러운 감정이 가득하다. 자신만 알아야 할 범인을 들켰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의 말대로, 지크가 뜬금없이 자신들이 예상하지 못한 사람을 범인이랍시고 내세운 것에 당황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연인이 없었던 게 아닙니다. 없었던 것처럼 보였을 뿐이죠.”

“…설명을 자세히 들어봐야겠군요.”

“물론입니다, 백작님.”

그리고 지크는 천천히 자신이 왜 컨델 이시드를 범인으로 지목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약간의 양념은 기본이었다. 그렌에 대한 의심 같은 것들은 빼야 했으니까.

지크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사람들의 입이 벌어졌다.

특히 컨델 이시드가 시아 루브렌터와 함께 사랑의 도피를 했었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 이블린은 저도 모르게 탄성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지크의 설명이 모두 끝나자 방에 잠시간의 침묵이 감돌았다.

“…그러니까 지크 님의 말을 요약하자면 컨델 이시드는 시아 루브렌터 자작 영애와 사랑의 도피를 한 하인이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 루브렌터 자작 영애와 남매 행세를 했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연인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거고요.”

“사람들에게 남매라는 인식을 주입한다면, 남들 앞에서 정말 과할 정도의 애정표현을 하지 않는 이상은 사이좋은 남매라는 인식밖에 들지 않을 테니까요.”

“증거는 있습니까?”

“그걸 조사하기 위해 강제 조사권을 달라고 하는 겁니다. 단, 증거가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지크는 다시 한 장의 초상화를 더 꺼냈다. 그건 지크가 싸웠던 그림자 인간의 초상화였다.

“제가 싸운 괴물의 모습을 복원한 초상화죠. 이걸 들고 이시드 주변 사람들을 탐문했습니다. 평소에 여동생을 어찌나 꽁꽁 숨겨뒀었는지 제대로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 없었죠.”

무척 고생을 했다는 듯 지크는 과장되게 고개를 흔들었다.

“다행히 컨델 이시드의 동생이 죽었을 때 가볍게 기도를 해줬던 신관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초상화와 당시 여동생의 얼굴이 조금 비슷한 것 같다더군요. 이 정도면 강제 조사권을 충분히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요하임이 말끝을 흐렸다. 그의 얼굴에 그늘이 져있었다. 기분이 나빠 보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감정이 커 보였다.

지크가 왜 자신들에게 이런 중요한 정보를 말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블린은 더하고 말이야.’

눈꼬리를 세우고 전력으로 노려보고 있는 폼이 당장이라도 지크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은 걸 참는 모습이 보인다.

그녀에게서 시아 루브렌터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는 이야기도 했으니 배신감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좋습니다.”

요하임이 말했다.

“충분히 알아볼 만한 일이로군요. 강제 조사권을 요청해보겠습니다. 아마도 이 정도라면 분명 요청을 들어줄 겁니다.”

그 후, 지크와 요하임은 대화를 얼마 더 나눴다. 그렇게 컨델 이시드의 카지노를 조사하자는 의견이 끝났을 때였다.

“그럼 얘긴 끝난 거죠?”

이블린의 스산한 목소리가 들린다. 요하임이 움찔거렸다.

망하기 일보 직전인 가문을 살리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온갖 험한 꼴을 보아온 그가 움찔할 정도로 이블린의 박력은 대단했다.

이블린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러나 아름답기 그지없는 그녀의 웃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는 당장이라도 주변을 얼려버릴 것만 같았다.

‘오, 서큐버스 때의 녀석 같은데?’

다만 냉기의 목표인 지크는 그런 태평한 생각밖에 하고 있지 않았다.

“지크 씨.”

“왜 그러십니까, 공녀님.”

“우리는 회의를 하며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있죠?”

“그렇죠.”

“그런데 지크 씨는 그런 중요한 정보를 왜 저희에게 가르쳐 주시지 않았을까요?”

상당히 분노했는지 그녀의 어조가 자기도 모르게 날카로워졌다.

요하임의 시선도 지크에게 향했다. 이블린처럼 분노를 표현하진 않지만 그도 그녀의 생각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스파이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지크가 가볍게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의 무게감은 지금까지완 차원을 달리 했다.

지크는 자신 앞의 사람들을 슥 훑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런 척하며 그렌을 눈여겨봤다.

그도 무척이나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놀란 모습도 아니다.

지크의 대화를 들었을 시, 딱 저 정도 놀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정도로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은 저희를 의심한다는 건가요?”

본격적으로 이블린의 말에 불쾌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감정의 표현.

지크는 딱 잘라 말했다.

“아닙니다.”

‘그렌 빼고는.’

뒷말은 속으로 삼켰다.

다시 뭐라고 말을 하려는 이블린을 손을 들어 제지하고 지크가 말했다.

“어차피 이 얘기도 해드리려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가 습격을 받았었지 않습니까.”

“그렇죠.”

흥분한 이블린을 대신해 요하임이 대답을 했다.

“그럼 우리는 왜 습격을 당했을까요?”

“우리가 범인에 대해 캐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하지만 범인을 우리만 캐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 도시 전체가 나서서 범인을 쫓고 있죠. 오히려 우리는 외부에서 볼 때, 도시에 협력하는 협력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도 고작 사람 몇 명 모여 있는 소규모 협력자요. 그런데 범인은 왜 우리를 공격했을까요?”

생각해보면 그렇다. 요하임은 물론이고 이블린마저 얼굴을 진지하게 바꿨다.

“시장이나 도시의 병력 같은, 조사의 주 세력은 건드리기 힘들어서? 주 세력이 아닌 자들을 처리해봤자 범인 추적은 중단되지 않습니다. 조사 속도도 그리 떨어질 것 같지 않군요. 겁을 먹게 하려고? 도시의 권력자가 고작 그걸로 겁먹진 않죠. 오히려 길길이 날뛰지나 않으면 다행입니다.”

“우리가 여러 쓸 만한 의견들을 내서 그런 건 아닌가요?”

이블린이 말했다. 그녀의 음성은 어느새 평소대로 돌아와 있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범인은 우리가 의견을 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소문이….”

“그건 아니오, 루즈 영애.”

요하임이 부정했다.

“그런 소문은 퍼지지 않았소. 우리가 제안한 의견들은 우리의 이름으로 시행되지 않소. 그저 시에서 명령으로 내려질 뿐이지. 굳이 소문을 낼 이유도 없고.”

“…그럼 우리가 의견을 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얼마 없다는 말이 되네요?”

“그렇소. 그것도 이 조사에 관련된 사람들 정도겠지. 중요한 정보여서 그런 게 아니라, 굳이 퍼질 만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오.”

“그렇습니다.”

지크가 맞장구쳤다.

“하지만 뭐 대단하게 중요 기밀을 빼내는 것처럼 엄청난 스파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돈을 주고 시 내부에 흐르는 정보들을 빼먹는 정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만.”

“그 정도도 충분히 나쁜 일이오.”

요하임이 불쾌하게 말했다. 직접 가문과 영지를 꾸려나가는 그에게 돈으로 매수당하는 부하는 기생충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아니, 감정적으로는 그것보다 더 혐오스러운 존재였다.

“그랬기 때문에 비밀로 한 겁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알려줄 수도 있잖아요.”

이블린의 태도는 무척 누그러져 있었다. 지크가 자신들을 믿지 못한 게 아니라는 걸 안 까닭이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다시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숨기려면 철저하게. ‘내 주변은 믿을 만하니까 괜찮아’ 같은 소리는 멋모르는 어리광일 뿐이죠.”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뭐, 알리는 게 귀찮은 이유도 있었고요.”

“…지크 씨? 다음에 저랑 단 둘이 얘기 좀 하실래요?”

“하하하! 루즈 영애의 아름다움에 몸이 얼어붙어 어찌할 바를 모를 것 같으니 사양하도록 하죠.”

“당신은 절대 그러지 않을 거잖아요!”

“사람이란 모르는 법이죠.”

어느 샌가 회의실의 분위기는 풀려 있었다. 농담이 오고 가며 사람들의 얼굴에 옅게 미소가 가로질렀다.

그러나 단 한 명. 그렌만은 달랐다. 그도 마치 눈앞의 광경이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다.

하지만 그의 분위기는 물에 떨어진 한 방울의 기름처럼, 주변에 흐르는 따뜻함과 섞이지 못 하고 있었다.

* * *

“드디어 이 사건도 끝나겠네.”

회의가 끝나고 모두 돌아간 시간, 라일라는 매번 그랬던 것처럼 지크의 방에 남아 있었다.

“요하임이 강제 조사권을 가져 오면 바로 카지노로 쳐들어갈 거지?”

“그래. 컨델 이시드를 체포하고 카지노를 이 잡듯 뒤져야지.”

“순순히 체포에 응할까?”

“그럴 놈이 우리를 습격했을까? 우리는 몰라도 요하임과 이블린은 귀족인데 말이야.”

“하긴.”

“그리고 녀석이 쉽게 항복을 해버리면 내가 재미가 없잖아. 반항을 해줘야지.”

역시 지크의 더러운 성격은 여전했다.

“이시드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잖아.”

“그 땐 그 때지.”

정말로 시원하기 그지없는 성격이다.

“그런데 사건의 진상에 대해 굳이 말해줄 필요가 있었어?”

“왜, 그렌 제너드가 들어서?”

“아무래도 꺼려질 수밖에 없잖아.”

“어차피 강제 조사권을 얻기 위해서 요하임에게 말은 해야 했어. 그렇다면 정보 제공을 그렌 제너드에게만 빼놓고 하는 것도 이상하지.”

“하지만 그가 무슨 짓을 할지도 몰라.”

“그걸 노린 거야.”

라일라가 눈을 깜박였다. 지크는 상쾌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녀석이 범인을 잡는 공적을 노리고 있다면 지금 쯤 상당히 당황했을 거야. 결국 범인을 알아낸 건 나니까. 아무래도 자신의 공적은 떨어질 수밖에 없겠지. 그렇다면 녀석은 뭘 노릴까?”

“…범인을 체포하는 거?”

“물론.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날까?”

“…다른 정보를 토해내거나 할 수도 있겠네. 자신의 공적을 올리기 위해서라면 말이야.”

지크는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는 범인에 대해 잘 모르잖아. 그걸 잘 알고 있을 것 같은 놈이 옆에 있는데, 사용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잖아?”

그제야 지크의 계획을 모두 알게 된 라일라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말했다.

“역시 넌 무지 나쁜 놈이야.”

“하하하! 칭찬으로 받아들이겠어.”

지크의 의기양양한 웃음이 방 안을 울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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