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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94화 (294/628)

제294화

다음 날, 지크는 카지노로 향했다. 라일라를 데리고 카지노의 커다란 문 앞에 섰다. 상당히 이른 시간에 나왔지만 카지노는 벌써부터 성업 중이었다.

“참 부지런도 해라.”

카지노에 들어가는 사람을 보며 라일라가 중얼거리자 지크가 말했다.

“도박에 빠진 사람에게 시간이란 사소한 문제지. 자기 목숨마저도 도박 뒤에 두는 인간들도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불쌍한 인간들이야.”

“저 사람들 중 돈을 따는 사람이 있을까?”

“절대로 없어. 만약 조금 따는 날이 있을지라도 고스란히 다시 도박에 투자하겠지. 그리고 다시 잃을 거야. 카지노의 도박은 무조건 카지노 측에 유리하니까.”

지크와 라일라는 카지노로 들어섰다. 들어서자마 욕망과 흥분에 젖은 분위기가 후끈하게 몰아쳤다.

“그럼 적당하게 놀아볼까?”

“돈을 잃으면서 말이지?”

“오늘은 딸 거야.”

“그 거짓말 정말이길 빌게.”

둘은 갈라졌다. 그리고 각자 원하는 게임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물론 도박이 목적은 아니었다. 컨델 이시드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역시 그가 운영하는 이 카지노부터 시작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요컨대 정보 조사였다.

일단 둘은 도박을 하는 척을 했다. 얼마 전처럼 지크의 돈은 차츰차츰 사라졌다. 주변에서 시뻘건 눈을 한 채 고함과 욕설을 내뱉으며 도박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과 별 차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는 도박이라는 광기에 정말로 조금의 영향조차 받지 않고 있었다. 흥분에 휩싸인 사람들과 달리 지크의 눈은 냉정했다.

어느 정도 도박이 진행되고 지크가 잃은 액수가 제법 많아졌다. 지크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사람들이 보란 듯. 그리고 잠시 쉬려는 것처럼 뒤로 빠졌다. 이동하는 중에 카지노에서 제공하는 음료 한 잔을 들고 벽까지 다가왔다.

“오랜만이로군요.”

지크가 벽에 등을 대며 말했다. 그의 옆에는 석상처럼 서서 주변을 감시하고 있는 경호원이 있었다. 낯익은 얼굴이다. 그는 예전에 지크가 컨델 이시드에게 길 안내를 시킨 그 경호원이었다.

그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누가 봐도 지크와 얘기를 나누는 걸 싫어하는 폼이다. 그러나 분명 그 표정엔 당황이란 감정도 섞여 있었다.

지크가 피식 웃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갑자기 존댓말을 사용하며 예의 차리는 게 이상한가 보군요.”

“아니, 뭐….”

경호원이 말을 더듬었다.

지크의 말은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경호원은 예전에 건들거리며 반말을 찍찍 내뱉던 지크와 지금의 조곤조곤 예의를 차리고 있는 지크의 차이에 조금 혼란스러웠다.

“저번은 일이라 그랬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위압적으로 대해야만 하는 일이 있죠. 하는 일이 일이시니 어느 정도 공감이 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뭐, 그렇긴 하죠.”

돈을 잃고 흥분한 카지노 고객들과 드잡이질을 할 일이 많은지라 경호원은 쉽게 긍정했다.

“그럼 오늘은 일을 하러 오신 게 아닙니까?”

“일을 하러 왔다면 바로 이시드 씨를 찾아갔겠죠. 그저 머리를 식히러 왔습니다. 요새 맡은 사건 때문에 머리가 폭발 직전이라서요.”

지크는 작게 웃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의심스러운 눈으로 계속 감시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크흠!”

지크를 발견한 이후 계속 감시를 하고 있던 경호원이 멋쩍음에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지크가 그다지 불쾌해하는 표정이 아니자 조금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그래도 사과는 해야 했다. 일단 테이블에서 도박을 하는 이상 지크는 카지노의 손님이다. 게다가 그가 알기로 지크는 오늘도 상당한 자금을 카지노에 바쳤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사과를 받자고 한 일은 아닙니다만, 죄책감이 있다면 잠시 말동무나 해주시죠. 지금 당장 테이블로 돌아가면 또 잃을 것 같거든요. 운을 충전하는 시간이 좀 필요해요.”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괜찮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짧게 부탁드립니다.”

지크는 경호원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신변잡기나 도박, 카지노에 오는 손님들에 대한 이야기 등등. 그리고 잠시 후, 지크는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당신네 사장님 말입니다.”

경호원의 눈빛이 달라졌다. 지금까지 그는 귀찮은 태도가 언뜻 보이긴 해도 대답은 꼬박꼬박 잘 해줬다. 그들의 사장을 조사할 수 있는 지크의 신분과 그를 감시했던 행위 때문에 책잡히기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장의 신변에 대한 화제가 나온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장님께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긴장하지 마요. 말했잖습니까. 오늘은 머리 식히러 온 거라고. 그저 개인적으로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뭡니까?”

“여기의 사장님. 애인을 사귀지 않는 이유가 뭡니까?”

“예?”

사건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경호원에게 지크의 질문은 사건과는 하등 관련 없는, 무척이나 사적인 질문이었다.

떨떠름하게 대답하는 경호원에게 지크는 마치 가십을 찾아다니며 소문을 좋아하는 수다쟁이처럼 물었다.

“솔직히 여기 사장님 정도면 충분히 잘난 사람 아닙니까? 관광 도시인 잔말피에서 이런 카지노를 운영하려면 보통 능력 갖고는 안 되잖습니까.”

“그렇긴 하죠.”

“그 정도면 여자 하나둘쯤은 충분히 끼고 있을 것도 같은데 말입니다.”

지크의 질문에 경호원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도 갖고 있는 의문이었다. 만약 그가 이런 카지노의 사장이라면 아주 멋지고 화려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아는 컨델 이시드란 사람은 어떻게 보면 금욕적이라고까지 느껴질 정도의 사람이었다.

“숨겨진 애인 같은 건 없죠?”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

“참 대단한 사람이야. 그 정도로 사업에 정열을 쏟는 건가? 하긴, 그런 사람이 종종 있긴 하지. 아니면 가족에 대한 정이 깊어서 연인이 없나? 그런 경우도 있던데….”

지크가 중얼거리다 슬쩍 질문을 던졌다.

“사장님이 가족을 아끼셨습니까?”

“사장님은 가족이 없으십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여동생분이 있었는데 그분도 얼마 전 돌아가셨더군요. 그 여동생분이 돌아가시기 전의 이야기를 묻는 겁니다.”

“글쎄요.”

조금 너무 깊이 들어왔을까. 지크가 살짝 말을 돌리려 할 때였다.

“그러고 보니 그런 말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경호원이 입을 열었다.

“지금이야 거의 카지노에서 살며 일만 하시는 것 같지만 당시만 해도 자택이 따로 있었고, 거의 칼같이 퇴근을 하셨었거든요. 그 이유가 여동생분을 돌보기 위해서라고 들었습니다. 여동생분은 외출도 자주 하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약하신 분이었다고 하니까요. 뒷골목 출신의 거친 분이긴 하지만 남매간의 우애는 정말로 좋은 것 같다고 선배분들이 말씀하셨죠.”

“그렇습니까?”

원하던 대답이 나왔다. 지크는 속으로 만족스럽게 웃었다.

얼마 간의 잡담을 더 나누고 지크는 벽에서 등을 뗐다.

“바쁜 분을 모시고 너무 시간을 끌었네요.”

“아닙니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경호원의 표정에는 드디어 해방됐다는 느낌이 묻어났다. 그러나 지크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운 표정으로 도박 테이블로 돌아갔다.

그리고 하루 종일 지크는 그 행위를 반복했다. 도박에서 어느 정도 돈을 잃고 간간이 주변 직원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별다른 정보를 얻을 수 없던 사람도 있었지만 좋은 정보를 내놓는 사람도 있었다.

슬슬 저녁때가 되자 지크는 라일라와 함께 카지노를 나왔다. 그들이 나올 때까지도 카지노는 여전히 북적였다.

“뭔가 얻은 정보 있어?”

지크가 물었다.

“아무래도 컨델 이시드가 자기 여동생이란 존재를 극도로 아꼈다는 건 사실 같아.”

“오, 알아냈어? 제법 정보 빼내는 솜씨가 좋은데?”

지크는 경호원들의 경계를 풀기 위해 이리저리 말을 꼬았던 경험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러나 라일라의 말은 예상과 달랐다.

“그냥 물어보니까 말해 주던데?”

“…….”

지크는 라일라를 쳐다봤다. 인간을 초월한 것 같은 극상의 미모. 그저 길을 걷는 것만으로 주변의 시선을 독차지한다. 아무래도 경호원들도 남자인 이상 라일라의 이 치명적인 공격을 방어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하여간 이놈의 세상은 불공평하다니까.’

경계를 낮추고 정보를 얻기 위해 했던 자신의 온갖 노력이 의미가 없어진 느낌이었다.

‘어쨌든 정보의 확실성은 올라갔으니 됐어.’

그날 이후로도 지크는 꾸준히 정보를 모았다. 카지노와 뒷골목 주변을 탐문하며 컨델 이시드의 정보를 캤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여동생을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아꼈다는 정황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이 녀석이 맞는 것 같은데?”

라일라도 컨델 이시드가 범인일 가능성을 높게 쳤다.

“슬슬 강제 조사를 들어가도 될 것 같지 않아?”

“아직이야.”

“뭔가 또 해야 할 게 있어? 시아 루브렌터라고 추정되는 그림자 인간의 초상화도 준비됐잖아.”

그들이 목격한 그림자 인간의 모습을 통해 그녀의 초상화도 이미 그려놓은 상황.

“해야 할 거, 있지. 그것도 무척 중요한 게.”

“뭔데?”

지크가 중요하다고 언급까지 하는 것이라니. 라일라가 긴장하며 물었다.

“그놈을 괴롭힐 준비.”

“…뭐?”

순간 라일라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러나 지크는 뻔뻔하게도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이시드 놈을 괴롭힐 준비 말이야. 설마 내가 적을 그냥 두리라고 생각한 거야?”

“…아니지.”

지크의 고약한 취미는 이미 익히 알고 있지 않던가. 정말로 꾸준하다면 꾸준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라일라가 그렇게 생각한 것도 잠시. 지크의 얼굴을 본 라일라는 이번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크.”

“왜?”

“혹시 화났어?”

라일라가 살짝 눈치를 본다. 지크의 표정은 평소와 별다를 바 없어 보였다. 쾌활하고 자신만만하다. 그러나 약간의 이질감이 그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티가 나나?”

지크가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문질러 봤다.

“그렇게 티가 나진 않아. 그냥 내가 그렇게 느낀 것뿐이니까.”

“그래?”

지크는 얼굴에서 손을 뗐다.

“화가 난 건 맞아? 뭐 때문에?”

“요하임과 이블린.”

지크의 입에서 두 명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라일라는 눈치챘다.

“아, 그 두 명이 습격을 받은 것 때문에?”

“맞아.”

“…하지만 지금 너와 그 두 사람의 인연은 그렇게 깊은 게 아니잖아.”

“알아. 지금 그 두 사람은 마왕 지크 모어의 부하가 아냐. 뱀파이어와 서큐버스가 되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마인이 아닌, 백작 요하임 드라큘과 후작 영애 이블린 루즈로서 인생을 살아가겠지. 나와 엮이는 일도 별것 없을 거야. 관계를 아무리 좋게 표현해봤자 은혜가 있는 지인 정도겠지.”

거기까지 말한 지크가 웃었다. 라일라는 침을 삼켰다. 평소의 장난기 많은 웃음이 아니다. 라일라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마왕 지크 모어. 그 웃음에 가까웠다. 만약 한스와 스녹이 주변에 있었다면 바로 경계도를 최대한으로 세우고 지크의 눈치를 봤을 것이다.

“하지만 열이 받는 걸 어떡해. 그리고 내가 굳이 참을 필요도 없잖아?”

지크는 뒤쪽을 돌아봤다. 저 멀리 그들이 나온 카지노가 보인다. 그 안에 컨델 이시드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조져야지. 내 마음에 들 때까지 듬뿍!”

라일라는 본능적으로 지크에게서 한 걸음 떨어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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