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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91화 (291/628)

제291화

‘우리를 습격한 그놈들이 맞군.’

인간과 똑같이 생겼어도 묘하게 색채가 바랜 것 같은 어두운 외향. 무엇보다도 인간의 감정 중 그 어떤 것도 내비치지 않고 있는 얼굴.

‘어라?’

지크는 자신을 막아선 그림자 인간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내가 아는 녀석이 아닌데?’

납치 피해자는 물론이고, 아직 납치 사건이라고 정확하게 판명되지 않았을 때의 실종 피해자 초상화까지 모조리 외우고 있는 지크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그림자 인간의 생김새를 한 사람은 없었다.

여성이다. 갈색 머리에 얼굴은 꽤 아름답다. 체구는 작고 가녀려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외견이었다.

물론 겉모습만을 보고 그녀를 얕본다면 당장 얼굴이 태풍에 떨어진 과실처럼 예쁘게 뭉개질 테지만.

후웅!

그림자 인간이 덮쳐든다. 지크는 마력을 가득 담아 윈두르를 휘둘렀다.

콰앙!

그림자 인간의 팔뚝에 검이 막혔다. 날카로운 윈두르의 칼날은 그것의 피부를 뚫지 못했다.

‘쉽게 상대할 만한 녀석이 아니야.’

“한스!”

“네!”

다른 그림자 인간 하나와 격전을 벌이던 한스가 대답했다.

“너는 바로 숙소 안으로 돌입해 둘을 구해!”

안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쯤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꽤 잘 버티는 모양이야.’

그러나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회귀 전의 뱀파이어와 서큐버스가 아닌 것이다.

“라일라! 길 뚫어!”

“알았어!”

라일라가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그녀의 입술이 달싹였다. 주문들이 빠른 속도로 흘러나온다. 그녀의 옆에 있던 엘레나가 놀라서 무심코 그녀를 돌아볼 정도였다.

스윽!

마법이 발동됐다. 지팡이에서 빠져나온 마력이 그녀의 발끝부터 숙소까지 일직선으로 부드럽게 날아든다.

그러나 결과는 절대 부드럽지 않았다.

콰지직!

한순간에 모든 것이 얼어붙는다. 마치 그곳만이 이 격렬하고 터질 듯한 전투 공간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다. 라일라가 있는 곳부터 숙소의 앞까지 정적의 얼음이 만들어낸 새하얀 공간이 탄생했다.

“우와아!”

마법에 압도당한 엘레나가 탄성을 지른다. 마법사인 그녀로서는 라일라의 이 완벽에 가까운 마법에 경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한스가 움직였다. 새하얗게 얼어붙은 공간을 전력으로 뛴다. 마법 범위 안에 있던 그림자 인간들은 극도의 냉기에 얼어붙었고 다른 적들과는 거리가 있다.

콰앙!

한스가 숙소의 벽을 부수고 돌입했다.

‘일단 저기는 괜찮을 거고.’

숙소 안에서 에스텔레이드의 번쩍이는 빛을 확인한 지크는 다시 눈앞의 그림자 인간에게 집중했다.

쾅! 쾅!

계속해서 검격을 나누면서도 지크는 상대의 얼굴을 확인했다.

‘역시 모르는 얼굴이야.’

혹시 도시에서 파악하지 못한 피해자가 있는 걸까. 그럴 확률도 없진 않다. 그러나 그 파악되지 않은 피해자의 모습을 한 그림자 인간이 능력도 다른 것들보다 훨씬 월등하다?

‘그런 것보다는 이 녀석이 뭔가 특별한 녀석일 확률이 높지.’

뻗어오는 주먹을 윈두르의 나뭇가지 같은 날에 걸고 비틀었다.

쿠드득!

‘역시 뼈가 부러지거나 하진 않는군.’

부러지긴커녕 외견도 멀쩡하다.

‘더럽게 단단해!’

윈두르를 그대로 밀어붙였다. 마력을 가득 담아 날끝을 그림자 인간의 목에 박아 넣으려 했다.

쿠웅!

그림자 인간이 윈두르를 뿌리쳤다. 튕겨나간 검 때문에 생긴 커다란 빈틈을 노리고 그림자 인간이 손날을 뻗었다.

‘지금!’

순간 지크는 발에 마력을 집중, 몸을 거세게 회전시켰다. 그러며 몸을 숙였다.

후웅!

그림자 인간의 손날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간다. 소리만으로도 위력적이다. 맞게 된다면 커다란 구멍 하나가 인체에 예쁘게 뚫릴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지크의 신경은 오로지 자신의 검에 들어가 있었다. 그림자 인간의 자세가 살짝 무너졌다. 거기서 보이는 작은 빈틈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드득!

그림자 인간의 앞면에 긴 상처가 생겼다. 상처 사이로 검은색의 기운이 일렁인다. 이미 그림자 인간을 베어오며 충분히 본 현상이다.

‘다음!’

고작 상처 하나로 만족할 생각은 없다. 지크가 그대로 다음 공격을 하려 할 때였다.

투웅!

그림자 인간이 길게 물러섰다. 그것은 근처에 있는 지붕에 내려섰다. 무표정한 시선이 지크를 향한다.

스윽!

그것이 등을 돌렸다. 동시에 숙소 근처에서 전투를 하던 그림자 인간들이 전부 물러나기 시작했다. 숙소 안에서 전투를 벌이던 그림자 인간들 또한 밖으로 나왔다. 한스에게 적잖이 당했는지 그것들의 몸엔 숱한 검흔이 새겨져 검은 기운을 일렁이고 있었다.

‘후퇴하려는 건가?’

두고 볼 생각은 없다. 지크는 추격했다. 최우선 목표는 그가 상처를 낸 그림자 인간이었다.

쿠웅!

그것은 지크의 공격을 막고 다시 한번 거리를 벌렸다. 지크가 다시 추격하려는 때였다.

퍼엉!

그림자 인간의 몸이 터졌다.

검은 것들이 파편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림자?’

그것들은 그림자 인간이 되기 전의 그림자들이었다.

‘다시 분리된 건가?’

다른 그림자 인간들도 모두 인간 같은 형체를 없애고 그림자로 돌아가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사람을 피해 어두운 곳으로 도망가는 바퀴벌레처럼 골목으로 향하고 있었다.

윈두르가 마력을 뿜어냈다. 사방으로 도망치는 그림자들을 향해 검기가 뻗어나갔다. 몇 개의 그림자가 검기를 맞고 터졌다.

그러나 아무리 그림자 인간보다 약하다고 하더라도 그림자 자체가 제법 강하다. 게다가 숫자도 많아진 상황.

결국 반수 이상이 살아 골목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지크는 골목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마치 어둠 속으로 숨어든 것처럼 그림자들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감각을 날카롭게 세웠다. 그러나 감지되는 건 없었다.

‘뭐, 그렇겠지.’

기척을 감지하기 극히 까다로운 녀석들이다. 이렇게 사방으로 흩어지듯 도망가면 지크라도 어쩔 수 없다.

“쳇!”

지크는 가볍게 지면을 걷어찼다.

* * *

“엉망이시군요.”

숙소로 들어온 지크가 요하임을 보며 말했다. 포션을 사용했는지 겉모습은 멀쩡했지만 엉망진창인 옷차림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악전고투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역시 거친 일은 저와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훌륭하게 지키신 것 같은데요. 백작님과 루즈 영애 두 분 모두를 말이죠.”

“하하, 반대입니다. 오히려 제가 루즈 영애의 도움을 받았죠.”

“확실히 루즈 영애도 보호만 받을 이미지는 아니군요.”

이블린의 모습도 상당히 엉망이다. 상처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머리카락에 굳어 있는 피딱지는 아마도 그녀의 것일 터.

“저분의 피도 사용하셨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더 대단한 걸 알 수 있었죠.”

“대단한 것?”

“제 능력에 대해 실험을 해봤다고 했었죠?”

“예전에 그리 말씀하신 적이 있죠.”

“남의 피를 사용할 때 제게 사념 같은 것이 스며듭니다.”

피의 지배의 정확한 부작용 같은 것은 들은 적이 없기에 지크는 요하임의 말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적의 피를 사용하면 온갖 부정적 감정들이 휘몰아쳐 제 정신을 갉아먹습니다. 이걸 악용하면 왜 미치광이가 되는지 아주 잘 알게 됐죠.”

그저 잠깐의 실험만으로도 요하임이 토악질을 하고 한동안 입맛을 잃을 정도였다. 능력을 남용했을 시 미치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아군의 피는 그나마 낫습니다만, 이것도 사념이 섞여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아무리 상대가 주군이라지만 자신의 피가 사용된다는 거리낌, 피를 내기 위해 만들어진 상처의 고통 등등. 뭐, 제 능력에 익숙해지고 상처에 익숙한 기사 같은 사람들은 부정적 사념이 거의 없긴 합니다만.”

“하지만 루즈 영애는 아니죠?”

“아니죠. 그런 그녀의 피에서 느껴진 사념이 뭔지 아십니까?”

“뭡니까?”

요하임이 미소 지었다.

“공포, 불안. 하지만 꺾이지 않으려 하는 의지.”

“대단하군요.”

아무래도 이블린은 저번 사건으로 커다란 성장을 이룬 듯했다.

“네, 대단합니다. 정말로.”

요하임은 진심을 담아 그녀를 칭찬했다.

* * *

요하임과 대화를 나누고 지크는 이블린에게 다가갔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요. 고생은 드라큘 백작님께서 더 하셨죠.”

이블린이 밝게 말한다. 그러나 그녀의 창백한 안색과 조금 떨리는 음색은 아직 그녀가 전투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말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당장은 진정을 위해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옆에서 이블린에게 꽉 붙어 있는 호위기사들도 눈으로 지크에게 물러날 것을 종용하고 있었다.

“당분간은 푹 쉬십시오. 따뜻한 음식도 먹고 잠도 푹 주무세요. 진정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감사해요.”

지크가 이블린의 앞에서 떠나려 할 때였다.

“백작님은 어떠신가요?”

이블린이 물어왔다.

“괜찮으십니다. 지금은 현장 파악과 수습을 위해 움직이고 계시죠.”

“강한 분이시네요.”

이블린도 도왔다지만 일단 전투의 주체는 요하임이었다. 이블린보다 다쳐도 몇 배는 다치고 고통도 그만큼 받았을 것이다. 게다가 특이한 능력을 사용할지언정 그는 기사도 아니었다. 싸움도 그다지 익숙하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도 벌써 전투의 후유증을 털고 일어나 움직이고 있다니. 조금 유약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분명 다르다.

“책임감 있으신 분이니까요. 가문의 영광을 재현해야 하는 의무도 있고 말이죠. 무엇보다 선량한 분이기도 하시고 말입니다.”

요하임의 칭찬을 하면서 지크는 피부에 소름이 오돌토돌 솟았다.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회귀 전 요하임의 모습이 아직 생생한 지크에게는 등허리가 오싹해지는 말이기도 했다.

“그렇군요.”

이블린은 자신의 앞을 막아서던 요하임을 떠올렸다.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로 인해 목숨을 구했다.

“네, 확실히 그분은 대단한 분이신 것 같아요.”

이블린이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 * *

전 부하 두 사람을 만나고 나온 지크는 숙소 밖으로 나왔다. 그곳은 지원병들이 도착해 상당히 북적거렸다. 그들은 시체를 수습하고 부상자들을 옮기며 피해를 확인했다.

그 사이를 지나는 사람이 있었다.

“이제 오셨군요, 제너드 씨.”

“좀 늦었습니다. 지크 씨는 먼저 도착해 계셨군요.”

그렌의 몸과 옷차림은 전투로 인해 여기저기 상해 있었다. 그러나 커다란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드라큘 백작님과 루즈 영애님은 괜찮으십니까?”

“네, 다행히도요. 제너드 씨도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적들을 얼마 유인해 가셨다고 들었는데 말이죠.”

“그럭저럭 상대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갑자기 도망가는 바람에 모두 처리하진 못했지만요.”

그렇게 몇 마디를 나눴다. 친분이 깊지도 않고 속으로는 서로 깊이 혐오하는 사이이기에 둘의 문답은 짧았다. 그저 서로의 안부를 묻는 형식적인 대화.

“저 마법은 누가 한 겁니까?”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호기심은 숨길 수 없는지 그렌이 숙소 마당을 통째로 얼려버린 마법을 보며 말했다.

“라일라죠.”

“지크 씨와 같이 있던 마법사분을 말하는 거죠? 이번에 온 새로운 분 말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렌은 그 마법의 흔적을 유심히 살폈다.

‘보통 솜씨가 아냐.’

그렌의 안목은 제법 뛰어나다. 그가 보기에 저 마법은 절대 호락호락한 마법이 아니었다. 라일라의 외모로 추측한 나이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실력도 괜찮고 외모도 아름다워.’

아름다운 정도가 아니라 그가 보아온 여자들 중 최고다.

‘대체 어디서 발견한 거지?’

그러나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엘레나보다 오히려 저 여자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어.’

그가 생각하는 파티에 엘레나 대신 라일라를 집어넣어 보았다. 외견적으로 보이는 구도는 훨씬 좋아보였다.

그렌의 상념이 깊어져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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