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8화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시드 씨.”
지크는 컨델이 내민 손을 잡고 몇 번 흔들었다.
“그래, 지크 씨. 제게 무슨 볼일이십니까?”
“별건 아니고, 납치 사건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말입니다.”
“묻고 싶으신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시에서 나오셨다고 하니 최대한 협조해 드리죠.”
하지만 그 무서운 얼굴로 말하니 오히려 빈정대며 상대를 겁박하는 것 같다. 아직 경험이 얼마 없는 엘레나가 침을 꿀꺽 삼킬 정도였다.
하지만 지크는 태연히 질문을 던졌다.
“뒷세계와 아직 연관이 크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민감한 질문이었을까. 컨델이 특유의 삼백안으로 지크를 바라본다. 지크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곧 컨델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쉽게 인정하시는군요?”
“비밀 축에도 못 끼는 일입니다. 게다가 시에서 이번 납치 사건을 상당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섣부른 거짓말은 못 하죠.”
그러며 컨델이 웃었다. 아니, 웃는 것 같았다.
입이 살짝 벌어지며 송곳니가 반짝이는 게 두 번만 웃었다간 적어도 아이 몇 정도는 표정만으로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은 판단이십니다. 그러면 질문을 계속하죠.”
지크는 자신이 본 프로필이 맞는지 하나하나 확인을 해갔다.
‘프로필에 이상은 없군.’
지크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프로필의 항목을 다시 뇌리 속으로 접어 넣었다.
“그럼 이번엔 사건이 일어난 시각에 어디 있었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컨델의 눈이 지크에게 향했다가 뒤 쪽의 지크의 일행에게 향한다. 그리고 빙그르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지크를 쳐다봤다.
“…조금 늦은 질문이지만 제가 범인으로 의심받고 있다고 봐도 될까요?”
“걱정 마십시오. 이시드 씨가 최유력 용의자는 아니니까요.”
“걱정하지 말라고 꺼낼 말은 아닌 것 같군요.”
그러나 컨델의 태도는 담담했다. 뒷세계 거대 조직의 보스 같은 위용이 줄기줄기 뿜어졌다.
“그래, 그 날짜와 시각은 언제입니까?”
지크는 사건 일시를 말해줬다.
“집에서 혼자 있었죠. 제겐 불리한 일이로군요.”
“이시드 씨에겐 다행이고 저희에겐 유감인 게 그 시각에 알리바이가 없는 인물은 많습니다. 그 정도로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아까완 다르게 지금 그건 걱정이 덜어지는 말이 맞군요.”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시드 씨. 혹시 연인관계이신 분이 있거나 혹은 있으셨습니까? 부부관계까지 간 분도 상관없습니다.”
“없습니다.”
컨델의 말에는 단호함까지 실려 있었다.
“연인관계로 발전할 여지가 있었던 분도 없습니까?”
“없습니다. 이건 제 주변을 탐문한다 하셔도 똑같은 답이 돌아올 겁니다. 제가 원하는 건 쓰잘데기 없는 연인 놀음이 아닌 돈뿐이니까요.”
컨델이 다시 한번 그 살벌하기 이를 데 없는 웃음을 지었다.
“사랑했던 이가 아예 없으셨다고 받아들이면 될까요?”
“그렇게 받아들이셔도 무방할 것 같군요.”
단호한 대답. 정이라고는 일말도 느껴지지 않는 눈빛이 인상적이다.
지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볼 만한 건 다 물어봤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시드 씨.”
“그렇다면 최대한 범인을 빨리 잡아 주시지요. 그 사건 때문에 저희 카지노도 피해를 입고 있으니 말이죠.”
“최선을 다하죠.”
인사를 나누고 지크 일행은 방을 나왔다.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까 지크 일행을 방까지 안내했던 경호원이 이번엔 그들을 카지노 바깥으로 안내했다.
“살펴 가십시오.”
공손히 인사를 하고 경호원은 문을 닫았다.
아마 겉으로 보이는 행동과는 다르게 지크 일행이 다시는 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지 않을까. 아마 확실히 그럴 것이다.
라일라가 지크에게 물었다.
“수확은 있었어?”
“아니.”
“그래. 그럼 다음 사람을 찾아야겠네.”
이미 헛고생을 하고 나오는 건 익숙하다. 라일라는 바로 다음 사람에게 관심을 돌렸다.
지크도 다른 프로필이 적힌 종이를 꺼내 들었다. 그러다 뒤를 돌아봤다.
화려하고 커다란 위용을 자랑하는 카지노의 모습이 보인다.
‘일단 지금은 물러가야지.’
하지만 의심을 거둔 건 아니다. 나중에 혹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바로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증거가 없이는 범인이 아니다.
‘회귀 전 같았으면 하나하나 고문해서 찾아냈을 텐데.’
찾아내지 못해도 상관없다. 용의자들을 모두 죽여 버린다면 거기에 범인이 있을 확률이 높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마왕의 길을 걷는 게 아니니 불가능한 일이다.
지크는 일행을 데리고 카지노의 앞을 벗어났다.
* * *
컨델은 창으로 지크 일행이 멀어지는 걸 쳐다봤다.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몸을 돌렸다. 텅 비었다시피 한 방을 가로질러 책상으로 다가간다.
드륵!
서랍을 열었다. 거기엔 조그마한 액자 하나가 뒤집혀 있었다. 컨델은 액자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액자에는 한 여성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살포시 웃는 어여쁜 여성의 모습.
“…로라.”
컨델은 액자를 사랑스럽다는 듯 쓸어내렸다. 방금 전까지 지크에게 보여줬던 냉막한 모습을 적어도 지금은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지나가는 시간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그는 한참 동안 액자를 쓸어내렸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그가 액자에서 눈을 뗐다. 방금 전까지 사랑스러움이 뚝뚝 떨어지던 눈빛이 순식간에 평소의 냉막한 그것으로 돌아왔다.
‘…유력한 용의자에서는 벗어났다고 했는데, 설마 이렇게 빨리 나를 만나러 올 줄이야.’
컨델은 지크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옆 영지 영주가 따로 꾸린 팀이 있다고 했지. 저 녀석이 바로 그건가.’
좋지 않다. 아직 본격적인 의심 단계는 아닌 것 같지만 혹시나 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
‘역시 지금부터는 계획을 조금 더 빨리 진행해야겠어. 그리고….’
컨델의 눈빛이 음습하게 내려앉았다.
‘일을 열심히 하는 분들에게 작은 선물을 드려볼까.’
* * *
카지노에서 컨델 이시드를 만난 지 며칠 후, 지크는 조사를 위해 길을 가다 우연히 요하임을 만나게 됐다.
“성과는 있습니까?”
지크의 질문에 요하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없습니다. 정확히는 납치 사건에 대한 성과가 없죠.”
“그럼 다른 성과는 있었습니까?”
“이번에 납치 사건을 조사하다 알게 된 건데, 최유력 용의자들 중 한 명의 범행이 드러났습니다. 바람피운 자기 연인을 죽이고 묻었더군요.”
용의자들의 죽은 연인에 대해 파고들어 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사건이었다.
중대한 사건이고 성과라면 성과였지만 나오란 납치 사건의 범인은 밝혀지지 않고 웬 살해 및 암매장 사건이 나오자 요하임은 허탈함을 숨길 수 없었다.
“일단 그놈은 납치 사건 범인은 아니겠군요. 사이좋은 연인에 대한 시기나 질투는 없을 테니 말입니다. 아니, 오히려 더더욱 시기를 불태우려나요?”
“일단 조사 중이긴 합니다만, 녀석은 아닌 것 같습니다. 뭐, 강하든 약하든 벌을 받을 건 확실합니다만.”
“꾸준히 조사하다 보면 단서는 나올 겁니다.”
“그러길 바라야죠.”
요하임을 토닥인 지크가 다시 가던 길을 가려다 멈춰 섰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제가 좀 늦을 것 같습니다. 회의는 루즈 영애, 제너드 씨와 먼저 진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크 씨는 무슨 일이 있습니까?”
“용의자 중에서 저를 살살 피해 다니는 인간이 하나 있어서 말이죠. 오늘 좀 늦더라도 끝장을 보고 갈 생각입니다.”
“알겠습니다. 다른 분들에겐 제가 얘기를 해드리죠.”
그렇게 둘은 헤어졌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해가 지고 밤이 왔다.
하지만 평소에 태양이 사라진 자리를 꿰차고 미미하나마 빛을 뿌리던 달과 별은 보이지 않았다. 짙은 구름이 하늘을 가린 것이다.
납치 사건 때문에 평소보다 인적인 드문 것도 있어 거리는 무척이나 스산했다.
그 거리를 지크 일행이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빌어먹을 놈이! 생긴 건 대량 학살자처럼 생겨놓고 뭔 놈의 겁은 그렇게 많아서!”
지크의 투덜거림이 거리에 울려 퍼진다. 그 강렬한 말투에 주변에 감도는 스산함이 옅어지는 것 같았다.
“자기가 용의자로 의심받은 거잖아. 겁먹으면 그럴 수도 있지.”
라일라가 오늘 그들의 발품을 팔게 만든 인간에 대한 변호를 했지만 지크는 콧방귀를 뀌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뒷세계에서 사람 패던 놈들이 그딴 짓을 하니까 문제지!”
그러며 지크는 진정한 악당이란 어떤 존재인지 설파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말을 귀담아 듣는 자는 없었고 곧 라일라가 그 말을 자르며 지크의 목소리는 끊겼다.
그렇게 일행이 서로 실없는 소리를 해대며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가장 앞서가던 지크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느리게 한스와 스녹도 발걸음을 멈췄다.
“왜 그래?”
엘레나가 당황해 옆에 있던 스녹에게 물었다. 하지만 지크와 상당한 기간 동안 알고 지낸 라일라의 반응은 달랐다.
그녀는 당장 지팡이를 세웠다.
“엘레나. 지팡이 들렴.”
“네, 네! 선생님!”
엘레나가 허둥지둥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이미 지크와 한스는 검을 뽑아 든 뒤였고 스녹도 상자에서 미스릴을 일부 꺼냈다. 노웸도 이미지답지 않게 스녹의 어깨에서 으르렁거렸다.
라일라가 물었다.
“범인이야?”
“그런 것 같아.”
지크가 근처에 있는 건물 옥상으로 뛰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잠시 거리를 가늠하는가 싶더니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전부 따라와! 스녹! 너는 엘레나를 데려오고!”
“네!”
지크의 명령에 스녹은 노웸을 커다란 짐승형으로 변화시켰다. 노웸의 크기는 두 명이 충분히 탈 수 있는 크기였다.
스녹이 노웸의 등에 올라탄 후 엘레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이, 이거 괜찮은 거지?”
엉거주춤 노웸에 올라타면서 엘레나가 불안해했다.
“걱정 마. 절대로 떨어뜨리지 않을 거니까. 그렇지, 노웸?”
쿠우우우!
작았을 때의 귀염성 있던 것과는 다르게 지금의 울음소리는 무척이나 우렁찼다. 하지만 오히려 그 묵직함이 지금은 퍽 믿음직하게 느껴졌다.
“…그럼 부탁해.”
엘레나가 스녹의 허리를 꽈악 잡았다.
“가자, 노웸!”
쿠우!
쿠웅!
노웸이 지크가 달려간 곳을 향해 뛰었다.
두 발로 건물 옥상들을 뛰어가는 지크와 한스, 날아가는 라일라 그리고 노웸의 등에 탄 스녹과 엘레나까지.
평범한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기동력으로 그들은 빠르게 기척이 느껴지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기 있군.’
지크는 현장을 목격하고 혀로 입술을 핥았다.
골목에 남성 한 명이 쓰러져 있다. 죽은 건 아니었다. 단순히 정신을 잃은 것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그림자 하나가 꾸물대고 있었다.
웅크려 있는 듯한 그림자의 표면으로 가느다란 팔 하나가 빠져나와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마치 깊은 늪 속에 빨려 들어가듯 손이 스르륵 빨려 들어갔다.
탓!
지크는 골목에 내려섰다.
‘이번엔 방해꾼 없지?’
그렌에게 방해받은 기억이 생생해 일단 주변을 살폈다. 기감을 좁혀 세세하게 탐색한다.
‘없어.’
지크는 윈두르를 꽉 쥐고는 일행에게 말했다.
“포위해! 이번엔 놓치는 일 없도록!”
한스와 스녹이 그림자를 중심으로 지크와 반대되는 쪽에 내려섰다. 라일라와 엘레나는 지붕 위에 남아 지팡이를 그림자에게 겨눴다.
‘좋아!’
포위망도 갖춰졌다. 지크는 그림자에 뛰어들었다.
그대로 그림자를 향해 윈두르를 휘두르려던 순간, 그는 달려드는 속도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뒤로 물러섰다.
쿠웅!
지크가 있던 곳에 무언가가 내리꽂히며 큰 소리를 낸다. 어둠 속으로 지면에 새겨진 작은 크레이터가 보였다. 좀 전의 충격으로 생긴 것이다.
‘이건 또 뭐야.’
지크가 자신에게 달려든 녀석을 쳐다봤다. 검은 것이 꾸물거리는 게 여간 징그러워 보이지 않았다.
“…그림자?”
그건 방금 사람 한 명을 삼키고 꾸물대고 있는 그림자와 똑같이 생긴 녀석이었다.
지크가 그것을 인식한 순간, 주변 어둠 속에서 또 다른 그림자들이 일제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