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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87화 (287/628)

제287화

지크 일행의 의견은 요하임에 의해 도시 상부에 전달됐다. 일리가 있다고 여긴 상부는 도시를 싹 훑으며 용의자를 추리기 시작했다.

영주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시장이 관여하고 있으며 옆 영지의 영주까지 협력하는 사건인 만큼 관리들은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얼마되지 않아 기초적인 용의자가 추려졌다. 아무래도 뒷골목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거대한 집단이라는 포인트 때문에 용의자는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몇몇 녀석들을 솎아낼 수 있었습니다.”

요하임이 지크에게 서류 몇 장을 건넸다. 거기에는 총 세 명의 용의자의 신상이 적혀 있었다. 전부 뒷세계에서 목소리깨나 낸다는 자들이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한 의견과 가장 맞아떨어지는 녀석들입니다. 이 녀석들에게서 뭔가 나오면 좋을 텐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서류를 넘겨보는 지크는 별 흥미가 없었다.

‘일단 이 녀석들은 아니겠군.’

그렌이 준 정보로 쉽게 특정할 수 있는 놈이면 일단 아니라고 봐야 한다. 오히려 지크는 자신이 들고 있는 서류보다는 요하임이 가져온 다른 서류들에 관심을 가졌다.

“그 서류들은 뭐죠?”

“역시 용의자로 의심되는 인물들입니다. 다만 저희가 특정한 조건에 몇몇 개가 부합되지 않아 잠시 미뤄둔 자들이죠.”

지크가 눈을 빛냈다. 지크가 찾던 것이 바로 저런 것이다.

“봐도 괜찮을까요?”

“얼마든지요.”

요하임이 서류를 건네자 지크가 천천히 서류를 넘겼다.

요하임의 말대로 그들이 생각한 범인상과는 하나둘 정도 거리가 있는 인물들이다. 뒷세계에 관련되어 있지 않거나 단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거나 애인을 잃은 적이 없는 이 등등.

서류들을 대충 훑어본 후 지크는 책상에 종이를 툭툭 쳐 모양을 맞췄다.

“이것들을 잠시 빌려도 되겠습니까? 지금 가장 유력하게 의심되는 용의자들의 숫자를 보면 저희 전부가 동원될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저와 라일라는 이 사람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생각해보면 그것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뭔가 알게 된 게 있으면 바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요하임의 허가를 받고 지크는 라일라를 데리고 나왔다. 라일라가 지크의 어깨 너머로 목을 빼 그가 들고 있는 프로필을 살폈다.

“거기에 범인이 있다고 생각해?”

“최유력 용의자라는 놈들보다는 훨씬 가능성이 높지.”

“그렌 제너드가 진짜 위선자라면 뭔가 더 꼬아놨을 가능성도 있지 않아?”

“그럴 정도까지 치밀하게 범인을 숨기진 않았을 거야. 계속 범인의 인적사항을 숨길 필요도 없고, 어차피 도시에 충분히 공포를 증폭시킬 정도의 시간만 벌면 되니까.”

지크는 숙소로 돌아가 한스와 스녹, 엘레나를 모두 불러모았다.

“앞으로 범인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그 사람들을 만났을 때 혹시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면 그 어떤 사소한 것이라도 망설이지 말고 알려라.”

이런 건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지크의 진지한 말에 세 사람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지크의 용의자 탐색이 막을 올렸다. 아무래도 용의자를 뽑는 데 ‘뒷골목에 관련된’이라는 조건이 붙었기에 그들이 만날 사람들은 거친 사람들이 많았다. 때문에 지크 일행이 찾아갔을 때 그들은 불온한 분위기를 만들어 지크 일행을 겁박하려 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요하임이 준 신분패와 지크의 무력은 그들을 얌전하고 고분고분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지크 일행은 서류에 적혀 있는 사람들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러나 뚜렷이 의심할 만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탐색을 하고 나니 슬슬 해가 저물었다.

‘돌아가야겠군.’

오늘도 회의가 있었다. 지금 출발해야 회의 시간에 맞을 것이다.

“돌아가자.”

지크는 일행을 이끌고 숙소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돌아갈 때도 기감을 넓게 펼쳐 혹시라도 있을 사건을 감시했다. 한스과 스녹도 마찬가지였다. 지크의 명령을 받아 한스도 기감을 최대로 펼쳤고 스녹은 대지의 진동을 감지했다.

그러나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로브 놈들이라도 발견 안 되려나?’

분명 요하임은 로브 놈들의 목격담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크는 지금까지 도시를 수색하며 로브 놈들의 흔적을 보지 못했다.

발견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정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경우일 수도 있었다.

‘녀석들이 임무를 끝낸 경우.’

마인을 만드는 녀석들인 만큼, 마인이 완성되었다면 손을 뗐을 확률이 있다.

‘그러면 일이 복잡해지는데.’

지크의 힘은 굉장히 강력해졌다. 하지만 모든 마인을 간단하게 처단할 수 있느냐면 그건 아니다.

‘마인에도 급이 있으니까.’

힘이 강할 수도 있고 무척이나 특이한 특수능력이 있을 수도 있다.

‘조금 골치 아플 각오도 해야겠어.’

그러나 마인이 완성됐다고 확정할 수도 없다.

‘지금 이 납치 사건이 자신의 힘을 얻기 위한 과정일 수도 있지.’

어쨌든 만약 범인이 로브 놈들이 만드는 새로운 마인이 맞다면 빨리 발견하면 발견할수록 좋았다.

‘그래도 오늘 조사는 끝이야.’

조급함에 안절부절못하며 허둥지둥 일을 진행하다가는 오히려 천천히 가느니만 못하다. 지크는 손을 쭉 들어올려 기지개를 펴며 남색으로 물드는 하늘 아래를 걸었다.

* * *

다음 날. 지크 일행은 계속해서 조사를 진행했다. 여러 거리를 돌며 몇 명의 인물을 만난 후, 한 건물 앞에 늘어섰다.

“너….”

라일라가 눈을 가늘게 뜨고 지크를 노려본다. 그럴 만했다. 그들이 늘어선 곳은 지크가 데이트랍시고 라일라를 데려왔던 그 카지노였으니까.

지크가 어깨를 으쓱이며 해명했다.

“그렇게 보지 마. 내가 아무리 쓰레기라도 이런 사건 사이에 도박을 하러 갈 리….”

지크가 말을 흐렸다.

“…생각해보니 난 그런 쓰레기가 맞잖아? 시간도 많은데 한 판 땡기고 갈까?”

“…….”

“…….”

“…….”

“…….”

라일라는 물론이고 한스, 스녹, 엘레나가 지크를 무감정하게 쳐다본다.

쿠우….

노웸마저 거들었다.

“농담이야.”

지크는 피식 웃고 라일라의 어깨를 툭 쳤다.

“들어가자고. 한시가 바쁘잖아.”

“하여간 너는.”

라일라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여기엔 어떤 사람을 만나러 가시는 겁니까?”

한스가 물었다.

“이 카지노의 주인이다.”

지크가 주섬주섬 품에서 종이를 꺼내 지금 만나야 할 사람의 프로필을 읊었다.

“이름은 컨델 이시드. 뒷골목에서 사채업을 하다 이 카지노를 세운, 그 바닥에서는 나름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하더라고.”

“그럼 뒷골목에 제법 인연이 있겠네?”

라일라가 말했다.

“그렇지. 충분히 뒷골목에 상세한 인물인 데다가 세력도 상당히 컸다고 하더라. 어느 모로 보나 우리가 의심하기 딱 좋은 사람이지.”

“그럼 왜 최종 용의자에서 빠진 거야?”

“연인의 유무.”

“연인이 없어?”

“없대. 최근은커녕 예전부터 쭈욱. 주변인 말로는 워낙에 인색하고 잔인해서 연인이 있어도 돈을 받고 팔아먹을 인간이라나 봐.”

다른 이들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정상적인 감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좋아할 인간상은 아니다. 물론 지크의 기준으로는 어쭙잖은, 악인 축에 끼지도 못할 인간이었지만.

“그 때문에 최유력 용의자에서는 빠졌지. 하지만 혹시 알아? 남몰래 비밀 연애를 하고 있었고 그 애인을 위해서는 목숨까지 내던질 로맨티시스트일지 말이야.”

그렇게 말하고 지크는 카지노의 문을 열었다.

안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도박에 열중하고 있었다. 한숨과 욕설이 사방에서 울리고 간간이 환호가 터져나오는, 일반적인 도박장의 모습.

하지만 평소같이 욕하고 환호하며 도박에 끼어들던 것과는 달리 지크는 도박판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어이!”

지크는 카지노 벽면에 붙어 혹시 난동을 부리는 사람이 없는지 감시를 하고 있던 경호원을 불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 카지노의 주인을 만나야겠는데 말이야.”

경호원의 눈이 찌푸려졌다. 간혹 이런 인간들이 있다. 다짜고짜 카지노의 주인을 만나야겠다는 사람이. 그리고 그런 인간들 대다수는 카지노에 돈을 잃어 악감정을 품거나 아니면 어떻게든 카지노 주인과 친해져 돈을 울궈먹으려는 사람 등등 제대로 된 손님들이 아니었다.

경호원은 몸을 부풀리듯 어깨를 폈다. 인상을 험상궂게 굳히고 그들을 위압하듯 섰다. 대부분은 이런 압박만으로도 해결이 된다.

“죄송하지만 사장님은 함부로 만나 뵐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어투는 공손하지만 음성은 낮게 깐다. 옆을 지나던 사람이 움찔하며 거리를 벌릴 정도였다.

그러나 지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건 네가 결정할 바가 아니고.”

지크의 말에 손을 써야 하나 고민하던 경호원의 앞에 패 하나가 들이밀어졌다.

“현재 도시에서 벌어지는 연쇄 납치 사건 때문에 볼일이 있으니까 곱게 안내해. 만약 내가 너네 보스를 만나지 못해서 너네 보스가 불이익을 받으면 너, 책임질 수 있어?’

패를 본 경호원의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도시 시장의 인장이 선명한 그 패는 감히 그 같은 쫄따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패가 아니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방금 전까지의 기세가 어디 간 듯 경호원은 예의 바르게 말을 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그 곳은 카지노의 VIP 혹은 VVIP가 도박을 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위층으로 카지노 주인의 방이 있을 것이다.

일행은 그 경호원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라일라는 힐끗 지크를 살폈다.

언제나 이 근처에 올 때마다 도박도박 노래를 불렀던 게 지크다. 하지만 지금 지크는 도박판에 일절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역시 할 때는 하네.’

평소에는 도박에 중독된 도박광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역시 지크는 지크였다.

‘하긴, 미래의 마왕이라고까지 불리는데 고작 도박판에 정신을 못 차릴 리는 없지.’

라일라가 그렇게 생각할 때 경호원이 헐레벌떡 계단을 내려왔다.

“사장님께서 뵙자고 하십니다. 절 따라오십시오.”

일행은 경호원의 안내에 따라 붉은 카펫이 화려하게 수놓은 계단을 천천히 밟아 올라갔다. 2층의 VIP공간을 지나고 3층의 VVIP공간이 나왔다.

3층에 들어섰을 때 한스와 스녹, 엘레나가 낮은 탄성을 흘렸다. 카지노의 1층도 분명 고급스러웠지만 이곳 3층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웬만한 고위 귀족의 저택과도 비견될 만한 장식이었다.

하지만 그곳도 목적지는 아니었다. 1층의 도박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칩이 쌓인 테이블을 가로지른 그들은 한 층을 더 올라갔다.

4층에 다다르자 분위기기 변했다. 도박판의 화려함은 완전히 사라지고 진중한 인테리어가 그들을 반겼다.

계단 끝에 바로 문 하나가 보였다. 경호원이 문을 두드렸다.

“사장님! 손님분들을 모셔왔습니다!”

“모셔라!”

방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호원은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지크 일행을 보며 팔을 안쪽으로 향했다.

“들어가시죠.”

지크 일행이 방 안으로 들어가자 경호원이 바깥에서 조용히 문을 닫았다.

지크는 가장 먼저 방 안을 살폈다. 인테리어는 문 바깥 4층의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진중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가구는 얼마 없었다. 좋게 말하면 간결하고 나쁘게 말하면 황량했다. 공간이 굉장히 넓어 더더욱 그런 분위기가 풍겼다.

지크는 정면을 바라봤다. 멋진 인테리어의 커다란 책상이 공간 중앙에 있었고, 거기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당신들이 납치 사건 때문에 시에서 온 사람들입니까?”

“그렇습니다. 지크라고 하죠. 뒤에 있는 자들은 제 일행입니다.”

상대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지크는 상대를 살폈다.

머리를 전체적으로 올백으로 넘겼고 눈썹은 얇다. 거기에 삼백안까지. 왼쪽 눈 옆을 세로로 길게 가르고 있는 흉터는 덤이다.

누가 봐도 뒷골목 폭력단의 보스 같은 분위기를 가진 자가 천천히 지크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이 카지노의 주인인 컨델 이시드라고 합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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