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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78화 (278/628)

제278화

지크와 요하임이 마주 섰다. 요하임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던 지크가 빙긋 웃었다.

“다행히 건강하신 모양입니다.”

키는 크지만 비쩍 곯은 모습을 하고 있던 게 요하임이다. 그러나 지금 요하임의 모습은 예전과 달랐다.

마른 체형인 건 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살이 붙었다. 병자 같던 예전의 이미지는 많이 벗어나 있었다.

그 때문에 순간 알아보지 못할 뻔도 했다. 지크가 그를 알아본 건 회귀 전 많은 시간을 함께해 그의 모습이 무척 익숙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먹고 운동을 했죠. 예전처럼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니까요. 아, 물론 그 능력 덕도 큽니다.”

“사용하진 않았죠?”

“물론입니다. 써봤자 제 피를 움직인 정도입니다. 위험도를 알기 위해 타인의 피를 조금 움직이긴 했습니다만 그것도 몇 번 정도죠. 저도 피에 미친 인간이 되고 싶진 않습니다.”

그러며 그는 장난스레 말했다.

“그러니 다행히 지크 님이 절 처단하러 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예전, 요하임이 피의 욕망 때문에 폭주해 괴물이 된다면 지크 자신이 끝장내주겠다는 말을 언급한 것이다.

지크도 마주 웃었다.

“그거 다행이군요.”

착한 일을 한답시고 회귀 전 부하를 죽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지크 님은 이 도시에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지크 님도 정보를 접하신 겁니까?”

“정보? 백작님이 어떤 정보를 듣고 오신 건진 모르지만 전 단지 여행을 온 겁니다. 잔말피는 유명한 오락 도시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까.”

요하임은 조금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지크가 자신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이 도시에 왔다면 협력과 정보의 교류를 요청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요하임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 정보를 지크에게 말해도 되나 고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결론을 내렸다.

“굳이 지크 님에게 숨길 이유는 없겠군요. 오히려 지크 님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말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로브를 쓴 자들. 이 도시에서 포착됐다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뭐라고요!”

요하임의 말에 반응한 건 지크가 아니었다.

지크와 요하임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그곳엔 마차에 내려 무슨 일인지 다가오던 이블린이 서 있었다.

* * *

지크와 이블린은 도심의 제법 비싼 숙소에 짐을 풀었다.

지크는 돈이 궁하지 않고 이블린은 자그마치 후작 영애다. 숙소의 가격 따위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상당히 좋은 곳이군요.”

지크의 방으로 요하임이 들어왔다. 그의 뒤를 본 적 있는 기사, 브로드가 뒤따르고 있었다.

지크는 준비된 의자에 요하임을 앉혔다. 요하임의 뒤로 브로드가 우뚝 섰다.

“이 정도는 백작님에게는 그다지 대단한 곳이 아닐 텐데요?”

“저희 영지 사정 아시지 않습니까. 이래저래 돈 들어갈 곳이 많아 지금은 한 푼이라도 아끼고 있습니다.”

요하임의 형인 비욤이 워낙에 난리를 쳐 놓은데다가 선대 드라큘 백작의 업보도 지금의 드라큘 영지를 조이고 있었다.

‘영지의 사정만 안 좋은 건 아니겠지.’

아마 주변 귀족들과의 관계도 썩 좋진 않을 것이다. 아니, 주변 귀족만이 아니라 나라의 귀족들 전체에게 백안시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영지를 버린다면 모를까 가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교적 노력도 같이 해야 할 것이다.

“힘드십니까?”

“어떻게든 꾸려나가고는 있으니 괜찮습니다. 다행히 전하에게 백작으로서 인정도 받았고 다른 귀족들과도 조금씩 대화가 되고 있으니까요. 점점 빛이 보인달까요. 위급한 건 제게 시집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다는 정도죠.”

귀족에게는 정말 좋지 않은 얘기지만 요하임은 그걸 농담조로 말했다. 그가 해결해야 했던 다른 일들에 비하면 그건 정말로 사소한 문제였으니까.

그걸 알아챈 지크도 약간의 미소와 함께 농담조로 대답했다.

“그거 안 좋은 얘기군요.”

“무척 안 좋은 얘기죠.”

둘이 숨죽여 웃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온 사람은 이블린이었다.

외출복이 아닌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그녀가 조심스럽게 발을 들이밀었다. 그녀의 뒤로 호위기사인 리키가 같이 들어왔다.

“실례합니다. 조금 늦은 것 같네요.”

그리고 그녀의 뒤를 이어 라일라가 들어섰다. 요하임이 그녀를 쳐다봤다.

“저분이 바곳 부인을 죽인 사람이라죠?”

“역시 알고 계셨군요.”

“브로드 경이 상당히 놀라더군요.”

지크가 브로드를 쳐다봤다. 그의 시선이 라일라에게 향해 있다가 곧 지크에게 옮겨왔다.

주인이 대화를 나누는 자리라 입을 열진 않았지만 당장 설명을 해달라는 얼굴이었다.

브로드라면 라일라를 본 적이 있다. 당연히 의구심을 품었다.

그가 라일라를 봤을 때 그녀는 무척이나 수상한 자였다. 그것도 ‘굉장히 위험한’이라는 형용어가 붙는.

“사정이 있어 같이 여행하게 됐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입니까?”

“저로서는 충분히 그렇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저도 믿도록 하죠.”

요하임이 고개를 돌려 브로드를 쳐다봤다.

“그렇다고 하시는군.”

“알겠습니다.”

그걸로 끝이었다. 요하임은 고개를 제자리로 돌렸고 브로드는 시선을 정면으로 고정한 채 다시 호위에 힘썼다.

“그걸로 괜찮은 겁니까?”

“그만큼 지크 씨를 믿는다는 겁니다.”

“이것 참 신뢰가 무겁군요.”

지크는 너스레를 떨었다.

이블린과 라일라가 의자에 앉았다. 리키는 브로드와 똑같이 이블린의 뒤에 섰다.

둥근 탁자를 사이에 두고 네 명의 사람이 마주 앉았다. 오랜만의 재회를 안주 삼아 밤새도록 이야기를 떨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일단 자기소개가 먼저겠죠. 크로뇽 왕국 루즈 후작가의 이블린 루즈라고 해요.”

이블린이 요하임을 향해 우아하게 고개를 숙였다.

“요하임 드라큘 백작입니다.”

요하임도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모습을 지크는 조금 못 볼꼴을 본다는 느낌으로 쳐다봤다.

회귀 전, 핏물 속에서 목욕을 하던 인간과 잘생긴 남자의 목을 매달고 다니던 인간, 그 둘이서 예법을 갖추고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슬쩍 라일라를 쳐다봤다. 그녀도 지크와 같은 감정인지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둘의 인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둘이 인사를 끝내자 급히 표정을 수습했다.

“백작님이셨군요. 너무 젊어서 몰라 뵀어요.”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막상 되어보니 그다지 좋은 것도 아니더군요.”

요하임이 넉살 좋게 말했다. 그리고 라일라를 쳐다봤다. 인연은 있지만 둘은 정식으로 소개를 받지 않았다.

“라일라는 아시죠?”

지크가 라일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네, 잘 알죠.”

“그때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라일라가 고개를 숙였다.

“괜찮소. 지크 님이 당신의 신원을 보증해줬으니 뭔가 사정이 있으신 거겠죠. 괜찮으시면 나중에 사정을 설명해주시고 불편하면 해주지 않으셔도 괜찮소이다.”

하지만 지크와는 확실히 차별을 두려는 듯 그는 라일라에게는 말을 완전히 높이지 않았다. 서로의 신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서로의 소개가 완전히 끝나고 대화는 본격적인 주제로 접어들었다.

지크가 물었다.

“로브 놈들이 이 도시에서 포착됐다고 들었습니다.”

“그 전에, 루즈 영애도 이 건에 대해 들어도 되는 겁니까?”

질문에 이블린이 대답했다.

“그 놈들이 사람 한 명 찍어서 타락시키려는 놈들이라면 저도 피해자입니다.”

“백작님과 같이 공녀님도 녀석들의 표적이 됐었죠.”

요하임이 놀란 눈으로 이블린을 쳐다봤다. 이블린도 요하임이 자신과 같은 표적인 줄 몰랐기에 상당히 놀란 얼굴을 했다.

“…같은 피해자셨군요. 그럼 충분히 이야기를 들을 만하죠.”

요하임은 본격적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기대와 다르게 시작부터 이런 말씀을 드리기가 죄송스럽습니다만, 아직 정확히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지금은 의심의 단계죠.”

“그것만으로도 들을 가치는 충분합니다.”

“그럼 좋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저는 꾸준하게 로브를 입은 자들을 찾아다녔습니다. 복수도 하고 가문의 명예도 회복해야 했으니까요. 가장 먼저 왕국의 영지 중 특이한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 없나 살펴봤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엉망인 영지를 수습하며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사건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꿋꿋이 탐색을 밀고 나갔다. 다른 귀족들의 비협조와 경계를 어르고 달래며 찾기를 얼마.

“특이한 사건을 이 도시에서 찾았군요.”

“그렇습니다.”

요하임의 뒤에서 브로드가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인다. 요하임의 성과가 무척이나 대견한 모양이었다.

“이 도시에서는 지금 실종 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실종이라. 하지만 그 정도는 어느 도시나 일어나는 것 아닙니까?”

이 세상은 평화롭지 않다. 아직 마인 시대가 오지 않았어도 세상은 충분히 험했다.

“그렇긴 하죠. 한데 지금의 실종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슨 공통점입니까?”

“연인들이었습니다.”

“연인들?”

확실히 특이하다면 특이했다.

“금전 요구나 그런 건 없습니까?”

“없습니다. 마치 땅으로 꺼진 것처럼 연인 중 한 명이 실종되는 거죠. 실종자는 남녀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저 한 명은 남고, 한 명은 사라집니다.”

“음.”

지크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래서 이 도시를 중점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이 도시가 속한 영지의 백작님은 제 아버지와 상당한 친분이 있는 분입니다. 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기회로서 이 사건의 조사를 흔쾌히 맡겨 주셨죠.”

물론 서로가 영주와 영주인 이상 일방적으로 은혜를 베푸는 건 아닐 것이다.

‘아마도 골치 아픈 사건을 떠넘기는 감정도 있겠지. 만약 요하임이 공을 세운다면 적절히 나눠먹을 생각이기도 할 테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다른 영지의 귀족에게 자신의 영지를 수색하게 두는 것이다. 그 친분이 대단한 것도 분명했다.

“그리고 최근, 로브를 뒤집어 쓴 수상한 남자를 본 것 같다는 제보가 있었습니다.”

“그 놈들이 정말 있었군요!”

이블린이 말했다. 하지만 지크와 요하임은 고개를 저었다.

“확신하긴 이릅니다, 공녀님. 백작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디까지나 본 것 같다는 제보일 뿐입니다. 게다가 로브를 뒤집어 쓴 놈들은 저희가 찾는 놈들만이 아닙니다. 원래 뒤가 구린 놈들은 로브를 뒤집어써서 신분을 감추기 마련이죠.”

지크가 어딘가 침투를 할 때마다 로브를 뒤집어쓰는 것처럼 말이다.

“지크 님의 말이 맞습니다.”

“그렇군요.”

요하임까지 동의하자 이블린이 풀이 죽었다.

“하지만 한번 살펴볼 가치는 있습니다.”

지크가 웃었다.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로브 놈들이 있을 확률이 생겼다.

‘절대로 그냥 못 넘어가지.’

놈들의 계획은 찢고 부수고 짓밟아야 제맛인 법이다.

지크가 요하임에게 말했다.

“저도 백작님에게 협력하고 싶습니다만.”

“지크 님이 도와주신다면 저야 든든하죠.”

“저도! 저도 도울게요!”

이블린이 끼어들었다. 리키가 기겁을 했지만 이블린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적어도 제가 데리고 온 호위기사들을 이용해주세요. 감히 저의 전 약혼자를 시켜 우리 가문을 위협한 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으니까요!”

“그럼 대충 얘기는 끝났군요.”

지크는 세 사람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놈들이 있는지 찾아보고, 정말로 놈들이 있다면 정성껏 짓밟아줍시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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