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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75화 (275/628)

제275화

“되는 대로 지껄이는군!”

“되는 대로가 아냐. 엄연한 사실이지.”

지크가 턱을 들고 말한다. 거기에 거짓이라곤 한 톨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크의 말에 뚜렷한 주어는 없었지만 들은 사람 모두 지크의 얘기라고 생각했다. 찔리는 게 있는 한스는 괜히 에스텔레이드를 만지작거렸다.

“그런 일을 겪었으면서도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가 됐다고?”

올랜드가 추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지크의 말은 명백히 그에 대한 비난이었다. 비슷한 성장환경을 겪었으면서도 한 쪽은 반역자가, 한 쪽은 명예 성기사가 되어 있다. 이 확연한 차이에 올랜드는 침이라도 뱉고 싶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아니, 그놈도 쓰레기가 됐어. 그것도 너 같은 소악당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대악당이 됐지.”

“이 자식! 나를 놀리는…!”

“하지만!”

지크는 분노하는 올랜드의 말을 끊었다.

“적어도 그 결과에 남 탓을 하진 않았다.”

그건 마왕이 아주 작은 소악당에게 하는 조롱이었다.

“분명 과거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혹시 그 인생 자체를 누군가에게 조종당했을 수도 있어. 하지만 적어도 거기까지 가는 선택은 오로지 자신의 것이다.”

설령 그 길을 누군가에게 유도당했다 해도다.

“그러니 과거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

물론 자신의 인생을 멋대로 조작한 인간이나 자신을 엿 먹인 자들을 족치는 건 별개의 문제다. 지크는 그것만큼은 확실히 구분했다.

“…네 말은 내가 틀렸단 거겠지?”

사람은 자신의 의견이 부정당하는 걸 싫어한다. 하물며 부정당하는 게 자신의 삶의 방식이라면 더더욱 반발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올랜드의 심사가 뒤틀렸다.

그러나 지크는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대답도 그의 눈치를 본 것은 절대 아니었다.

“아니? 난 그냥 내 심정 운운하기에 알려준 것뿐이야. 마치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해!’ 같은 말을 하고 있었잖아. 그게 착각이란 걸 정정해 준 것뿐이지.”

마왕의 길을 걸은 자신이 누군가의 길에 충고 운운하는 것 자체가 웃기다.

“나는 다른 사람이 걷는 길에는 별 상관을 하지 않는 주의야. 그러니까 넌 네 식대로 계속 살아. 네가 어떤 심정을 가지든, 쿠데타를 하든 안 하든 난 거기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다. 단, 나도 내 식대로 계속 살 거고, 네가 로브 놈들과 협력을 한 이상 우리 길은 자연스럽게 부딪칠 수밖에 없었어. 뭐, 주절주절 떠들어댔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요약하면 이거야.”

지크는 올랜드에게 윈두르를 겨누고 공격 자세를 갖추며 말했다.

“피차, 멋대로 하자고!”

콰앙!

지크가 쏘아졌다. 온갖 마력을 담은 지크의 검이 올랜드의 심장을 향해 날아갔다.

투웅!

지크의 검이 튕겨 나왔다. 어느새 올랜드의 앞에 무형의 막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 너도 제멋대로 한다는 거 아니냐!”

“누가 뭐래! 서로 자기 불행 자랑을 열심히 해 봤자 얻을 게 뭐 있냐는 거지! 지금 상황에 일절 필요 없는 것들이니까! 나는 네 사정 따위 알 바 아니고 너도 다른 사람이 자기랑 비슷하게 살아왔다고 눈물 흘릴 감성 같은 것 갖고 있지도 않잖아!”

콰드득!

지크가 손목을 회전 시켜 튕겨나간 검을 다시 한번 휘둘렀다. 무형의 막에 윈두르가 반 쯤 파고들었다.

“칫!”

올랜드의 지팡이에 마력이 요동쳤다.

콰드드득!

주변의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지며 올랜드를 중심으로 커다란 얼음기둥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주변에 걸리는 것들을 모두 꿰뚫으며 영향력을 확장해갔다.

“마, 막아!’

다른 마법사들이 허둥지둥 지팡이를 움직이며 올랜드의 마법에 대응했다. 그들 전부 상당한 수준의 마법사들이었지만 지금은 올랜드의 마법을 힘껏 막아내는 정도가 전부였다.

‘흐음, 역시 지쳤나.’

아무리 지크가 선두에서 방위 시스템을 해제하고 왔다 하더라도 마법사들도 방위 시스템을 뚫기 위해 나름 고생을 한 것이다.

그것도 익숙하지 않은 저가 지팡이로 계속 마법이 방해되는 상태에서 움직였으니 지친 것도 당연한 일.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녀석의 마법력이 확실하게 강해졌어.’

말석이라지만 마탑 최고 회의에 참가 권한을 가질 정도의 마법사가 올랜드다. 거기서 마법력이 더 강해진다면 성가셔질 수밖에 없다.

“지크! 저거 설마…!”

“네가 생각하는 게 맞을 거야, 라일라.”

만약 폭주 같은 것이라면 올랜드의 마법 어딘가에서 빈틈이나 어색함 같은 것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올랜드에게 그런 낌새는 없다.

‘자기 힘을 폭주시킨 건 아니고 원래 자기 힘은 더더욱 아니겠지.’

그러면 생각나는 것은 하나. 어디서 새로운 힘을 가져오는 것.

“너, 엘레나한테서 뭔가 빼앗고 있구나.”

엘레나의 재능은 엄청나지만 지금 당장은 마법력이라고 말할 무언가를 갖고 있진 않다. 빼앗고 있다면 다른 것일 것이다.

생명력이라든가.

“저 자식 당장 죽여버려!”

라일라가 고함쳤다. 그녀도 지크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이 빌어먹을 자식! 아버지한테 상처받았다고 난리를 치더니 넌 대체 엘레나에게서 얼마나 빼앗으려는 거야!”

“시끄러! 난 아버지완 달라! 평소에 녀석에게 좋은 아버지였다고! 꿈도 응원해주고 지원도 해줬지! 이쯤에서 조금 돌려받는다는 게 뭐가 나쁘단 말이냐!”

“크! 그 망설임 없는 쓰레기 선언! 완전 내 취향이야!”

“지크!”

“걱정 마, 라일라. 나도 더 이상 시간을 끌 생각은 없어.”

지크가 윈두르를 고쳐 들었다.

“이래 봬도 엘레나는 라일라가 상당히 애지중지하는 제자라서 말이야. 네가 지금 엘레나에게서 무언가를 빼앗는, 엘레나에게 손해가 되면 됐지 도움이 되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짓을 용납할 순 없어. 그러니까 웬만하면 빨리 죽는 게 어때? 네 딸 그만 괴롭히고 말이다!”

지크가 올랜드를 향해 달려간다. 그 뒤를 라일라의 마법이 지원했다. 한스와 스녹도 지크를 도와 올랜드를 공격했다.

퍼엉! 퍼엉!

라일라의 마법이 올랜드를 가격했지만 올랜드는 그것들을 능숙하게 막았다. 하지만 그 뒤를 따라오는 지크의 공격에 마음을 놓을 시간은 없었다.

다른 마법사들도 공격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능력이 있는 듯 그들은 올랜드에게 바짝 붙은 지크를 요리조리 피하며 올랜드에게 공격을 가했다.

“이, 자식들이이이이!”

퍼어엉!

다시 한번 올랜드의 마력이 흘러나왔다. 올랜드에게서 엄청난 마법들이 쏘아졌다.

“이봐! 그 정도까지 쓰면 네 딸은 괜찮은 거냐?”

“그러니까 네놈들이 얼른 죽으란 말이다, 개자식들!”

콰드득!

얼음 하나를 깨부수며 지크가 눈살을 찌푸렸다. 확실히 아까보다 더 반동이 크다.

‘정말로 작정하고 빨고 있는 모양인데.’

콰드득!

이미 바닥은 올랜드가 만들어낸 얼음 가시들로 덮여 있었다. 하나하나가 살상력을 갖추고 있어서 성가시기 짝이 없다.

“하아앗!”

쿠웅!

지크의 공격이 거대한 얼음 벽에 막혔다. 반투명한 얼음 너머로 비뚤어진 미소를 짓고 있는 올랜드의 얼굴이 보였다.

콰지지직!

자신을 감싸는 냉기를 피해 지크가 뒤로 뛰었다. 그가 있던 곳이 순식간에 얼음으로 둘러싸였다.

“하앗!”

한스가 그 얼음덩어리를 베어내려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에스텔레이드도 그 차가운 방벽을 쉽게 잘라 낼 순 없었다.

“노웸!”

쿠!

스녹이 미스릴 덩어리들을 쏟아보낸다. 그러나 그것들도 강렬한 냉기에 얼어붙어 만족스러운 움직임을 내지 못했다. 몇 개는 아예 얼음 속에 갇히기도 했다.

‘조금 짜증나네.’

지크가 올랜드의 빈틈을 찾을 때였다. 누군가 아래에서 올라왔다. 회의실에 남은 마법사였다.

“이, 이게 무슨…!”

그는 자신의 예상과 다른 모습에 잠시 말을 잇지 못 했다. 지크가 외쳤다.

“무슨 일입니까?”

“아, 그게! 드웨인 양이! 뭔가 발작 같은 걸 하고 있습니다! 무척 위험해 보여서! 방위 시스템이 사라진 걸 보아 싸움도 끝난 것 같아 도움을 청하러 왔습니다만…!”

원인이야 넘치도록 예상이 간다. 지크가 혀를 찼고 라일라가 얼굴을 험악하게 구겼다.

“위험해 보입니까?”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지크는 바로 다시 올랜드에게 몸을 날렸다. 윈두르의 칼날이 다시 얼음에 막혔다.

“당장 항복해! 딸의 목숨이 걱정되지도 않는 거야!”

“너희들이 물러나면 그만인 일이다!”

올랜드가 라일라의 목소리를 무시했다. 지크는 연속해서 윈두르를 휘둘렀다. 올랜드도 지크를 공격했다.

다시 물러 서 올랜드의 빈틈을 노리던 지크가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살짝 뒤를 돌아봤다. 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맺혔다.

지크가 다시 올랜드에게 돌진했다. 지금까지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움직임이다.

“몇 번을 해도 똑같다!”

올랜드가 얼음의 벽을 세웠다.

콰드득!

지크가 윈두르에 마력을 듬뿍 넣고 얼음 벽을 갈랐다. 약간의 틈이 생겼다. 지크는 반 쯤 억지로 그 틈에 몸을 집어넣었다.

“멍청하긴!”

퍼어억!

벽에서 얼음 송곳이 돋아난다. 그것이 지크를 덮쳤다. 급소는 피했지만 지크의 몸이 피로 물들었다.

“그 상태로 죽어라!”

희열에 휩싸여 웃는 올랜드. 입가에 차오른 피를 뱉어내고 지크도 그에게 마주 웃어줬다.

“죽는 건 너다, 멍청아!”

“뭐…?”

콰아아아앙!

그 순간 막대한 불꽃이 방을 갈랐다. 순식간에 주변 얼음을 녹여버린 그 불꽃은 그대로 올랜드의 한쪽 다리와 골반 반 쪽 그리고 그 위 쪽 옆구리를 도려냈다.

“어….”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작은 의문성을 발하며 올랜드가 바닥을 굴렀다.

콰지직!

지크는 자신의 몸을 꿰뚫은 얼음을 모두 박살냈다. 그리고 포션을 들이마셨다. 몸에 생긴 구멍들이 서서히 메워진다.

포션 병을 아무렇게나 내던진 후 지크는 조용히 옆으로 다가온 사람에게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무섭도록 인상을 굳히고 있는 윌위스가 있었다. 근처에서 주운 양산형 지팡이를 잡고 그는 올랜드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 누구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뿐.

“후우! 후우!”

올랜드가 숨을 들이킨다. 그가 얼마나 깊은 고통을 느끼고 있는지가 그 호흡으로 고스란히 느껴졌다.

지크가 올랜드의 상태를 살폈다.

‘치료하지 않으면 살긴 글렀군.’

몸의 1/3가량이 소실되어 있었다.

“…후우! 그렇군. 당신을 잊고 있었어.”

“…마탑 최고 마법사인 날 한순간이라도 잊었다는 것 자체가 네가 아직 어리석다는 증거다.”

“빌어먹을 잔소리는….”

올랜드가 욕설을 토하고 지크에게 눈을 돌렸다.

“내 눈을 돌리기 위해 공격을 일부러 맞은 건가.”

“내가 눈치가 좀 빨라서 말이야. 마탑주가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건 바로 알아챘거든.”

“칫!”

올랜드는 혀를 찼다. 그의 눈이 윌위스에게 향했다.

“뭘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아버지. 날 끝장낸 건 댁이잖아.”

“…엘레나가 위험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조금 더 온건하게 나갔을 거다.”

“멍청한 아들 따위보다 명석한 손녀라 이건가.”

“그렇게 말하진 않았다, 어리석은 아들놈!”

“아들이라. 지금은 욕지기가 나오는 단어야.”

올랜드의 눈에 서서히 초점이 사라져간다. 그가 죽음에 임박했단 뜻이었다.

“…포션이라면 있습니다만. 카르위먼의 포션 중에서도 최고급입니다.”

지크가 윌위스에게 포션을 꺼내 보였다. 하지만 윌위스는 고개를 저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이상 당장 살린다 해도 이 녀석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네. 게다가 엘레나와의 그 기묘한 연결도 그렇지. 어떤 연결인지는 모르지만 그게 계속해서 엘레나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어. 보통 그런 연결은 한쪽이 죽으면 끝나는 법일세.”

“그렇습니까.”

지크는 다시 포션을 집어넣었다.

“큭큭큭! 끝까지 아들 걱정은 하지도 않는군. 걱정 마, 아버지. 재능을 빼앗던 내가 확신하지. 엘레나는 분명 세계에서도 손가락 안에 꼽힐 수 있는 천재야. 아버지가 그토록 원하던 재능 있는 피붙이지. 그러니까 마음 놓고 기뻐하라고, 아버지.”

“…네가 그 어떤 원한과 상념을 갖고 있다고 해도 네가 한 일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네 가족에게 손을 댄 것은 더더욱.”

“더 이상의 잔소리는 사양….”

“미안하다!”

올랜드는 입을 다물었다. 윌위스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떨어지는 것이 올랜드의 흐릿한 눈에 보였다.

“정말, 정말로… 미안하다….”

“…20년은 늦었어, 빌어먹을 아버지.”

그 말을 끝으로 올랜드의 입은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스누위크의 마탑을 휘감았던 거대한 사건은 막을 내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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