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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73화 (273/628)

제273화

“범인이라니….”

대체 왜 엘레나를 납치한 자가 마탑의 다른 마법사들과 같이, 그것도 이 시기에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의 언동도 불길했다.

마치 이번 쿠데타의 주역이 자신이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저자가 왜 여기 있는 게냐.”

“저분은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십니다. 이번 쿠데타 진압에 무척이나 큰 도움을 주셨죠.”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라니. 그건 가짜가 아니었느냐!”

“진짜가 맞습니다. 예전 가짜 증표를 보여준 건 아직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 이르다는 생각에 엘레나를 속인 겁니다. 저분이 진짜인 건 이미 카르위먼 신전에 확인이 끝난 상황입니다.”

“…확인을 했어?”

신전에 확인까지 했다면 올랜드의 말은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네, 그렇습니다. 저분은 오랫동안 엘레나를 처음으로 납치했었던 그 로브 집단을 쫓고 있었답니다. 그러고 이 도시에 그 협력자가 있다는 걸 확인했죠.”

마치 자신이 행한 위업을 자랑하는 것처럼 올랜드가 말한다.

지크는 별 말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에 어깨를 으쓱해 긍정할 뿐이었다.

“저분은 그 협력자로 아버지를 지목했습니다.”

“뭣!”

“그리고 아버지가 이번 일의 죄를 저에게 뒤집어씌우려고도 했었다고 하더군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대체 내가 왜!”

“그렇죠. 전 아직 아버지를 믿습니다. 네,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말이죠.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가 하는 말입니다. 조금은 의심들 수밖에 없죠. 그래서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만약 천분의, 만분의 일이라도 아버지가 쿠데타의 주역이라면 어째서 그랬을까.”

올랜드의 눈이 무겁다. 마치 도저히 믿기 싫은 사실을 눈앞에 들이댔을 때, 어떻게든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 하는 눈이다. 그걸 보고 지크는 속으로 감탄했다.

‘저놈 정말 연기 잘하네.’

“지금의 아버지는 정말로 흠잡을 곳 없는 사람입니다. 마탑주로서도, 마법사로서도 말입니다. 하지만 예전엔 그러지 않으셨죠.”

“…사람은 바뀔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변했다.”

윌위스에게도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닌 듯 그의 음성은 낮았다. 하지만 음성에 담긴 의지만은 강렬했다.

“네, 그러셨죠.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말이죠. 아버지가 변하지 않으셨다면?”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게냐.”

“아버지의 지금 모습은 모두 연기이고, 아버지의 진짜 모습이 예전 그대로라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란 얘깁니다.”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핏발 선 눈으로 윌위스를 노려보던 웨인조차 놀라 올랜드를 쳐다볼 정도였다.

“예전 아버지는 냉혹하고 가족보다 가문의 일을 우선하는 사람이셨죠. 그만큼 권력에 대한 야망도 컸습니다. 만약 그때의 아버지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면 아버지가 원하는 건 하나겠죠. 마탑의 권력.”

올랜드가 윌위스를 내려다본다.

“아버지가 마탑주가 된 이유 중에는 변한 성격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옛날의 그 독선적인 모습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면 아버지가 아무리 마탑 최고의 마법사라고 해도 반발할 사람들이 있었을 테니까요.”

아무리 마법 우선인 마탑이라도 사람들이 모인 곳인 이상 감정이란 것이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위장을 한 것이라면, 아버지의 성격이 지금처럼 바뀐 것도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성격을 너무 유약하게 바꿔 의외로 아버지의 권력을 알음알음 무시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한 겁니다. 독선적인 아버지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았겠죠. 그래서 이번 일을 계획한 겁니다. 친위 쿠데타로써 말이죠.”

“쿠데타를 핑계 삼아 내가 정적을 제거, 마탑의 권력을 확고히 함으로써 말이냐?”

“바로 그렇습니다.”

윌위스의 말에 올랜드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가 그 죄를 너에게 뒤집어씌우려 했다고? 아들인 네게 말이냐!”

결국 참을 수 없었는지 윌위스가 고함쳤다. 하지만 올랜드의 표정 변화는 없었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망신이자 오점이었던 제게 말이죠.”

“너….”

“그리고 혹시 엘레나도 그랬던 것 아닙니까? 그래서 엘레나를 납치시킨 거죠. 엘레나가 납치된다면 아무래도 모두 당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쿠데타를 준비하는데 아주 수월해졌을 겁니다. 겸사겸사 당신의 오점인, 마법을 아예 사용하지 못하는 무능한 손녀를 치우고 말이죠.”

“나는 엘레나를 구하려 했다!”

“엘레나를 납치한 게 아버지의 협력자가 아니었으니까요. 오히려 그들은 모두 죽었죠. 그래서 위기감을 느낀 게 아닙니까?”

“올랜드!”

두 부자의 눈이 살벌하게 섞였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숨도 못 쉬고 바라봤다.

물러난 것은 올랜드였다.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피곤한 듯 눈가를 누르며 말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상상일 뿐입니다. 그리고 전 제 말이 꼭 틀리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돌려 마탑의 마법사들을 쳐다봤다.

“체포하죠.”

“제가 하겠습니다.”

지크가 나섰다.

“아무래도 다른 분들은 같은 마탑의 동료이시니, 제가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마탑의 일은 마탑의 사람이 마무리하겠다고 하시면 양보해드리겠습니다만.”

“…아뇨. 지크 씨가 해주시죠. 우리가 마무리 짓겠다고 요구하기엔 당신의 도움을 너무 많아 받았으니까요.”

반대하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럼 체포하겠습니다.”

지크가 다가왔다. 올랜드는 하늘을 쳐다봤다. 그러나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건 마탑의 천장뿐.

사람들은 아버지가 체포되는 모습을 보기 싫어 그가 시선을 옮긴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가슴에 급격하게 치밀어 오르는 기쁨을 억누르기 위해, 그리고 혹시나 자신의 눈에 차오른 기쁨이 누군가에게 들킬까 얼굴을 올린 것뿐이다.

‘성공이다!’

그는 환희했다.

‘아버지를 끌어내렸어!’

이제 자신이 몰래 준비해 둔 증거들로 여론을 선동하기만 하면 윌위스는 마탑주에서 끌려 내려올 수밖에 없다.

물론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그의 목표는 다음 마탑주이지, 윌위스의 몰락만이 아니다.

‘그리고 뒤처리를 해야지.’

예상치 못한 상황이 터지며 계획을 엄청나게 끌어당겼다. 그 때문에 계획이 무척이나 헐거워졌다. 빈틈이 생겼다.

게다가 지크가 가지고 있는 증거란 것도 확인해야 하고, 웨인이 최종 방위 시스템의 암호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올랜드는 자신 있었다.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끝낸 이상, 나머지는 내가 어느 정도 컨트롤 할 수 있다.’

쿠데타를 막아낸 공적. 거기에 그와 같이 쿠데타를 막아낸 사람인 데다가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라는 신분이 있는 지크의 지지가 있다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결국은 내 승리다!’

올랜드가 그렇게 감동에 빠져있을 때였다.

툭!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올랜드가 시선을 내려 앞을 봤다.

지크가 윌위스의 포박을 잘라낸 후 수갑까지 풀어낸 모습이 보였다. 방금 들은 소리는 수갑이 땅에 떨어진 소리였다.

올랜드가 놀랐다. 아무리 다치고 지팡이도 없다지만 윌위스의 포박을 풀어버리다니.

다른 이들의 감정도 올랜드와 마찬가지였는지 웅성거림이 느껴진다. 하지만 지크의 표정은 편안했다. 그는 등을 돌려 올랜드에게 다가왔다.

“지, 지크 씨. 아버지의 포박을 대체 왜 푸…!”

후웅!

다급하게 말하며 윌위스를 견제하려던 올랜드의 목에 날카로운 검이 들이대어졌다. 언제 봐도 기괴하게 생긴 검, 하지만 날카로움만은 진짜다.

방에 정적이 들어찼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숨을 삼켰고 갑자기 풀어진 포박에 당황하고 있던 윌위스도 놀랐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놀란 것은 당연히 올랜드였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내가 할 일을 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담담하게 아니, 느물거린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어조로 지크가 말했다.

“로브 놈들의 협력자이자 쿠데타를 주도한 자를 체포해야죠.”

“그런데 왜 나에게 검을 들이미는 거요! 저기 있는 아버지를 체포해야지.”

“윌위스 드웨인은 범인이 아니니까.”

“…뭐?”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올랜드는 잠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그를 딱하게 여긴 듯 지크는 조금 더 설명을 해줬다.

“아직 이해를 못 하겠습니까? 쿠데타를 주모하고, 엘레나를 납치하고, 로브 놈들과 협력한 범인.”

지크는 올랜드의 목에 조금 더 검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그게 니 새끼라고, 등신아.”

존댓말조차 던져버리고 지크는 경쾌하게 말했다.

지크의 충격적인 발언에 주변 사람들이 굳었다. 하지만 마치 거대한 화염 마법이 폭발을 하듯, 사람들의 반응이 터져 나왔다.

눈을 동그랗게 뜬 자, 입을 막은 자, 주변을 돌아보는 자 등등 각자의 반응은 달랐지만 혼란에 빠져있다는 것 하나만은 한결같았다.

“…뭐라고?”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말을 들은 윌위스조차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가장 극단적으로 반응한 건 웨인이었다.

“웃기지 마!”

그가 울부짖었다.

“쿠데타를 주도한 건 윌위스 드웨인이다! 올랜드 드웨인이 아니라고!”

“네가 그렇게 믿도록 유도한 거야, 멍청아.”

피를 토하는 웨인의 감정을 지크는 너무도 간단하게 짓밟았다.

“암호문만으로 그렇게 유도당하다니. 대체 얼마나 멍청한 거야? 아니, 올랜드가 그만큼 뛰어나단 건가? 어쨌든 올랜드가 너보다 위라는 건 확실한 모양이군.”

“이, 이이이익!”

웨인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손가락을 꿈틀거리는 게 당장이라도 마법을 사용하고 싶은 모습이다.

그의 주변에 서 있는 마법사들이 움찔했다. 만약 지금 웨인이 마법을 써서 수갑이 폭발한다면 그들까지 피해를 입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웨인도 그 정도까지 분별이 없진 않았다.

“그럼 대체 어떻게 내게 최종 장치의 비밀번호를 알려줬단 말이냐!”

“아,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지.”

지크는 윌위스를 보며 말했다.

“일단 최종 방위 시스템을 멈춰주시지 않겠습니까? 이러다간 마탑이 붕괴하겠습니다.”

“아, 그렇지!”

윌위스가 허둥지둥 제어 장치로 달려갔다. 그리고 얼른 마력 패턴을 밀어 넣어 붕괴를 막았다.

“저걸 보라고!”

웨인이 고함쳤다.

“윌위스가 아니라면 대체 저걸 누가 가르친단 말이냐!”

“내가 가르쳤어.”

“뭐?”

웨인의 입이 헤 벌어졌다. 다른 사람들도 눈을 부릅뜨고 지크를 바라본다. 그러나 고작 그 정도 시선으로 지크의 얼굴 근육을 움직이기엔 턱도 없었다.

“내가 올랜드가 보낸 암호문 아래에 써 줬다고.”

입을 뻐끔거리는 웨인에게 윙크를 한 번 해 준 후 지크가 올랜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설마 네가 다 잘 해서 저 녀석들이 마탑주가 쿠데타의 주역이라고 믿었을 거라고 생각해? 아무리 저 녀석들이라도 의심은 계속 하고 있었어. 내가 암호를 주지 않았다면 네 명령서를 그렇게 맹목적으로 따르진 않았을 거야. 내가 도와줬으니까 그렇게 된 거지.”

그러다 지크는 무언가를 떠올렸다.

“아, 그러면 아까 네가 웨인 재위크보다 위라고 했던 말은 취소해야겠네. 녀석은 충분히 믿을 만한 근거가 있었으니까. 으음, 그러면 누구를 더 위로 쳐줄까.”

하지만 곧 지크는 고민하는 걸 포기했다.

“생각할 필요도 없나. 둘 다 내 손에 놀아난 멍청한 장기 말인데 말이야.”

“이…!”

퍼억!

올랜드가 지크의 칼을 쳐냈다. 그리고 지팡이를 지크의 얼굴 앞까지 가져다 댔다. 그의 지팡이에 마력이 소용돌이쳤다.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된 모습이지만 지크에게 동요하는 모습은 없었다. 반항할 수 없던 게 아니라 반항하지 않는 모습에 가까웠다.

“장난도 정도껏 하시오! 아무리 당신이 나를 도와 쿠데타를 진압한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라고 해도 이 이상의 모욕을 참을 순 없소!”

“장난이 아니다, 올랜드 드웨인.”

지금까지와는 달리 웃음기를 쫙 뺀 채 지크가 올랜드를 향해 말했다.

“내가 너에게 마탑주가 의심스럽다고 한 것도, 너와 협력한 척을 한 것도, 전부 이 쿠데타로 인해 너와 연결되어 있는 로브 놈들의 협력자를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똑똑히 들어라, 올랜드 드웨인.”

점점 일그러지는 올랜드의 얼굴에 지크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 쿠데타의 주모자는 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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