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2화
“지크 씨!”
올랜드는 지크를 무척이나 반갑게 맞았다. 하지만 속으론 욕설을 내뱉었다.
‘벌써 온 건가!’
쿠데타 세력의 지도부를 토벌한 공을 독식하고 싶어 하는 올랜드로서는 지크가 벌써 회의실에 도착한 것이 달갑지 않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했다.
‘최종 방위 시스템을 벌써 뚫었다고?’
아무리 하층부의 최종 방위 시스템이 상층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약하다고는 하지만, 그건 상층부가 엄청나게 강한 거지 하층부도 충분히 위력적이다.
그런데 지크는 그 짧은 시간 안에 그걸 뚫고 왔다. 그가 데려 온 마법사들을 보면 피해를 입은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던 그는 내색하지 않고 지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훌륭히 성공하셨군요!”
“당신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둘이 악수를 나눈다. 올랜드와 함께 움직이던 마법사 한 명이 의심스럽게 지크를 보며 올랜드에게 말했다.
“이 자는 분명 드웨인 양을 납치한 자가 아닌가. 이 자가 여기 왜 있지?”
“길게 말씀드릴 시간은 없습니다만, 그는 이번 일의 협력자입니다.”
“협력자?”
질문을 한 마법사는 물론 다른 마법사들도 의문을 표했다.
“그는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입니다.”
“명예 성기사라니. 그건 이미 가짜로 판명된 일 아닌가.”
“사정에 의해 엘레나에게는 가짜를 보여줬다고 합니다. 진짜 증표는 확인했고 카르위먼 신전에 확인까지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웅성댔다. 설마 정말로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라니. 자신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지크가 증표를 꺼내 보여줬다.
증표를 아는 사람들이 침음성을 삼켰다.
“설마 정말로….”
“그럼 어째서 드웨인 양을 납치한 거지.”
사람들이 수근거리자 올랜드가 말을 끊었다.
“궁금한 점이 많은 건 알겠지만 그건 잠시 뒤로 미루도록 합시다! 지금은 마탑의 최상층으로 올라가 적들을 잡고 사태를 안정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잠시 고민하더니 하나둘 씩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앞장서죠.”
지크가 말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나갈 순 없소. 여기까지 다른 마법사들을 이끌고 별 피해 없이 온 건 정말 대단하지만 상층부의 최종 방위 시스템은 훨씬 더 강력하오.”
“하지만 그럴 시간은 없을 텐데요. 제가 알기로 어서 최종 방위 시스템을 멈추지 못 하면 마탑 자체가 위험하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최종 방위 시스템의 끝은 마탑의 붕괴다. 마탑에 흐르는 마력을 폭주시켜 사용하는 시스템인 만큼 시간 안에 정지하지 않는다면 마탑 자체가 전괴한다.
그러니 올랜드도 섣불리 반대할 수 없었다. 애초에 그의 계획 안에는 최종 방위 시스템이란 건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리 걱정할 건 없습니다. 이런 건 제가 전문이니가요. 재위크가의 저택에서도 보여드렸을 텐데요. 마탑주의 마법을 부수는 것으로요.”
“…어쩔 수 없군요.”
올랜드도 결국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음모를 꾸민 이유는 윌위스를 쫓아내고 마탑을 차지하기 위함이다.
그런 그에게 마탑의 붕괴란 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지크 일행을 엘레나의 호위로 묶어 둘 수도 없다. 지금은 마탑의 꼭대기로 진격하는 게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둘의 대화를 듣던 다른 마법사들도 진지한 표정을 했다. 마탑이란 존재의 붕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법사는 단 하나도 없었다.
“혹시 그전에 중단하지 않을까요?”
“쿠데타를 일으키고 밀리니까 최종 방위 시스템까지 작동시킨 놈들입니다. 더한 짓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순 없죠.”
약간의 의문이 나오긴 했지만 그것도 지크의 말로 잠잠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소수정예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마탑의 분들은 드웨인 씨께서 뽑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러겠소.”
올랜드가 마법사들을 모은다. 마탑 최고 회의에서도 말석에 자리한 그가 자연스레 마법사들을 통솔하고 있다. 그 모습을 지크는 슬쩍 바라봤다.
‘능력은 있군.’
지크는 한스와 스녹을 데리고 라일라에게 향했다.
라일라는 엘레나와 함께 있었다. 회의실에 엘레나가 있는 걸 확인한 그녀가 바로 엘레나에게 달려간 것이다.
라일라는 엘레나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하며 몸을 훑어보고 있었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걱정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엘레나에게 별 상처가 없었다. 마력이 없어 마법사 전용 수갑도 차지 않고 그저 묶여있던 것이 전부인 터라 상처를 받을 일이 없었다.
“라일라. 갈 시간이야.”
“알았어.”
라일라가 엘레나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절대 여기서 나가면 안 돼. 알았지?”
“아, 알았어요.”
엘레나는 라일라를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몰라 우물쭈물 거렸다. 나쁜 사람이라고 결론이 났었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또 상황이 뒤집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고민을 안 것일까. 라일라가 입을 열었다.
“걱정 마. 우리는 정말로 마탑의 적이 아니니까. 이번 일만 끝나고 모두 설명해줄게.”
“…네, 선생님.”
결국 라일라를 한번 더 믿어보기로 했는지 엘레나가 라일라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라일라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지만 무슨 생각이 났는지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마음 굳게 먹고 버텨야 해. 알았지?”
“…네.”
엘레나는 그게 쿠데타의 우두머리로 알려진 윌위스에 대한 위로인 줄 알았다. 하지만 라일라가 말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알려줄 순 없다.
“이 사건이 끝나고 꼭 다시 마법 연습을 해 보자.”
“네.”
라일라가 엘레나에게서 떨어졌다.
“끝났어?”
“그래.”
라일라가 합류하자 지크가 회의실의 입구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끝을 내러 가자고.”
* * *
퍼엉! 퍼엉! 퍼엉! 퍼엉!
마탑 상층부의 방위 시스템은 훨씬 더 강력하다는 올랜드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 말을 증명하듯 정신없이 사방에서 사방으로 쏘아지는 마법의 폭풍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질리게 했다.
그 안으로 뛰어드는 것 자체가 자살행위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다.
때문에 올랜드는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게 절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와중 상당한 피해가 나올 거라고도 예상했다.
그러나 상황은 그의 생각과는 조금 다르게 돌아갔다.
지크가 검을 한쪽으로 쭈욱 뻗는다.
후웅!
순간 마법이 발동할 것처럼 한 쪽으로 모이던 마력이 그대로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주변 마법 또한 취소됐다. 폭주하던 마력이 그 공간만큼은 잔잔해졌다.
“달려요!”
지크가 앞장서고 마법사들이 헐레벌떡 뒤따랐다.
‘…엄청나군.’
올랜드는 눈앞의 광경에 혀를 내둘렀다. 그만큼 지크의 능력은 혀를 내두를 만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최종 방위 시스템은 마탑 마력의 폭주를 근본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요소요소 불안정한 곳이 굉장히 많았다.
지크는 그 불안정한 곳을 정확히 포착, 방대한 마력으로 억지로 찢어내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괜히 아버지의 마법을 무효화 시킨 게 아니군.’
물론 회귀 전 최종 방위 시스템을 겪어본 적이 있는 터라 더욱 수월하게 마탑을 공략하는 지크였지만 올랜드가 그걸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지크의 공이 너무 높아지는 것 같아 올랜드는 조금 초조해졌다. 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지크는 마탑 관계자가 아니다. 그가 아무리 공을 세우더라도 마탑의 주인이 될 순 없다.
‘내가 마탑의 주인이 되는 계획에는 지장이 없어.’
자신의 공이 떨어져 조금 더 힘들어지긴 하겠지만.
그러나 그건 후일에 생각할 일이다. 올랜드는 다른 마법사들과 같이 지크가 다 없애지 못한 마법들을 요격하며 위로 올랐다.
* * *
콰앙!
지크가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문을 차 부순다. 순간 엄청난 마법이 지크에게 날아왔다. 하지만 지크는 이미 뒤쪽으로 내 뺀 상태였다.
콰아아아아앙!
이번 공격은 상당히 강했는지 마탑이 자르르 울렸다. 마력으로 강화된 마탑조차 이번 위력은 어쩔 수 없었는지 일부가 부서져 돌가루가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타앗!
지크가 다시 앞으로 내달렸다. 입구를 향해 지팡이를 내밀고 있는 마법사들이 보인다. 그들이 바로 최후로 남은 쿠데타 세력이었다.
다른 이들은 전부 최종 방위 시스템에 걸려 죽거나 그나마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있을 것이다.
“이노오옴!”
웨인이 지크에게 지팡이를 들이밀었다. 지크가 더욱 가속했다.
후웅!
무영창의 바람 마법이 날아온다. 지크는 몸을 숙여 가볍게 그것을 피했다. 다른 마법사들이 우왕좌왕 하며 마법을 날려보내려 한다.
하지만 마법사는 지크 측에도 있었다.
퍼엉! 퍼엉! 퍼엉!
지크의 뒤편에서 마법이 날아왔다. 무영창으로 날리는 쿠데타 측의 마법과는 달리 완벽히 영창을 끝낸 위력적인 마법들이다.
“크악!”
“아악!”
마법에 휘말린 쿠데타 측 마법사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나자빠진다. 순식간에 서있는 적은 웨인 재위크 한 명으로 줄었다.
지크가 웨인 앞에 다다랐다.
“으아아아악!”
웨인이 악다구니를 쓰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나이 든 마법사가 휘두른 지팡이가 얼마나 위력이 있을까.
서걱!
윈두르에 의해 웨인의 고급 지팡이가 허무하게 잘려나갔다.
퍼억!
그대로 주먹을 내지른다. 볼에 정통으로 꽂힌 주먹에 웨인의 몸이 크게 날아갔다.
우당탕!
그는 초라하게 방 한쪽에 처박혔다.
그걸로 서 있는 쿠데타 측 마법사가 전부 사라졌다.
“녀석들을 포박하시오!”
올랜드가 명령하자 마법사들이 방 안으로 들어 왔다. 부상을 입고 절절 매고 있는 이들에게 그들이 가져온 마법사 전용 수갑을 채웠다.
“아버지는 어디 있지!”
올랜드가 그나마 멀쩡한 쿠데타 측 마법사의 멱살을 잡고 윽박질렀다. 하지만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저기 계시군요.”
지크의 말에 올랜드가 지크가 가리킨 곳을 쳐다봤다. 거기에는 의자에 묶여 쓰러져 있는 윌위스가 보였다.
“…아버지?”
올랜드가 의문성을 표했다. 그의 뒤로 한 마법사가 다가왔다.
“이 쿠데타는 마탑주가 일으킨 것 아니었소?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가?”
그가 혹시나 하는 희망적 관측을 내뱉는다. 올랜드가 고개를 저으며 무겁게 말했다.
“내분일 수도 있소.”
“어쨌든 우리가 이겼군.”
올랜드는 윌위스에게 다가가 의자를 도로 세웠다. 윌위스는 꽤 많이 얻어맞았는지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가 자신을 세운 올랜드를 올려다봤다.
드웨인가의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했다.
“…쿠데타를 진압했구나. 잘했다.”
윌위스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올랜드는 웃지 않았다.
“아버지가 이 쿠데타를 지휘한 겁니까?”
“그럴 리가. 내가 뭐가 좋다고 이 일을 지휘하겠느냐. 게다가 내 꼴을 보거라. 어디 저들의 두목 같아 보이더냐.”
“거짓말이다!”
윌위스의 말을 부정하는 소리가 들렸다. 웨인이었다. 수갑을 찬 채 땅바닥에 무릎 꿇려진 그가 윌위스를 보며 소리치고 있었다.
“우리는 분명 마탑주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 저건 마탑주가 연기를 하는 것에 불과해!”
“헛소리.”
“그럼 내가 대체 어떻게 방위 시스템 최종 장치의 암호를 알고 있단 말이냐!”
“…….”
그것에 대해서는 윌위스도 대답하지 못 했다. 그건 오히려 그가 더 묻고 싶었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이든 조사를 하면 나오겠죠. 하지만 아마도, 아버지에게 그리 유리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뭐?”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가 아버지가 범인이라고 여기고 있으니까요.”
올랜드가 지크를 가리켰다. 그를 확인한 윌위스가 놀랐다.
“저자는…!”
감히 엘레나를 납치한 무도한 자. 저 자가 왜 여기 있단 말인가.
“맞습니다.”
윌위스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지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짐짓 엄숙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전 범인을 알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