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1화
“어, 어이! 어디 가는 거야!”
동료 아니, 개가 자신을 향해 짖는다. 그러나 웨인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가 가는 곳은 마탑주의 책상이 있는 곳이었다.
콰앙!
신경질적으로 책상을 뒤집어엎는다. 노구에, 마법사라 평소에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산 웨인이라 완력은 쳐졌지만 극도의 분노가 원인일까. 책상을 쓰러뜨리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책상이 사라진 곳에 작고 네모난 기둥이 보였다. 아마도 책상 아래 공간에 숨어있던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고 윌위스가 눈을 꿈틀거렸다.
‘또 뭘 하려는 거지.’
그 기둥은 바로 마탑의 방위 시스템을 제어하는 장치였다. 지금 마탑에 널리 펼쳐진 마법 방어의 힘도 그것을 쿠데타 세력이 제어한 것이었다.
“뭘 할 생각이야!”
쿠데타에 몸담은 한 마법사가 외친다.
웨인이 고개를 들었다. 그를 그의 동료가 공포스럽게 쳐다봤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희번뜩한 눈동자가 웨인이 지금 정신이 나갔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포기해라.”
윌위스가 그에게 말했다.
“아무리 마탑의 방어 시스템이 있다고 해도 그건 모든 해결책이 아니다. 증원이 있으면 모를까, 너희 한줌밖에 없는 세력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더 이상 희생을 내지 말고 이제 그만….”
“닥쳐!”
웨인이 크게 외쳤다. 윌위스는 설득을 포기했다. 겁먹은 건 아니다. 웨인이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 것이다.
“모든 해결책이 아니라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충분한 위력을 갖춘 녀석은 있어!”
“최종 방위 시스템을 말하는 건가.”
윌위스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걸 어떻게 작동시킬 거지? 그건 너희에게 허락되는 힘이 아니다. 그리고 난 그 힘을 절대 발동시킬 생각이 없어.”
마탑 최고 회의에 참가할 권한을 가진 자들은 방위 시스템을 다룰 수는 있다. 그러나 최종 방위 시스템만은 오직 마탑주만이 다룰 수 있었다.
웨인이 광기어린 미소를 지었다
“아직까지도 핑계를 대는 건가! 그럼 말해 봐라! 내가 이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
웨인이 장치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제어 장치에 손을 얹고 특정한 마력의 패턴을 집어넣는다.
그건 바로 비밀번호였다.
“소용 없…!”
웨인의 헛수고를 말하던 윌위스의 눈이 부릅떠졌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그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제어장치의 중앙에서 솟아오른 작은 기둥을 쳐다봤다.
그건 바로 방위 시스템 최종 장치를 발동할 수 있는 장치였다.
“네, 네가 어찌…!”
“당신이 가르쳐 주지 않았나!”
“웃기는 소리! 내가 언제…!”
“당신이 가르쳐줬다!”
윌위스가 입을 닫았다.
“당신, 전부 당신의 탓이야! 마탑에 쿠데타가 일어난 것도! 내가 이 지경이 된 것도! 앞으로 일어날 일도 전부! 전부 당신 탓이다아아아!”
웨인이 주먹을 힘껏 들더니 발동 장치를 후려쳤다. 발동 장치가 눌렸다.
우우우웅!
마탑에 불길한 마력이 흐르기 시작했다.
* * *
‘슬슬 탈출할 때인가.’
올랜드가 주변을 둘러봤다. 그는 마탑 회의실에 갇혀 있었다. 주변에 그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보인다.
지하 감옥에 갇힌 자들과는 다르게 그들은 모두 마탑에서 명망 높은 자들이었다. 쿠데타 세력은 그들을 따로 가둬놨다.
회의실은 지하 감옥처럼 마법을 방해하는 힘 같은 건 없다.
방위 시스템이 발동한 이상 회의실도 일정 영향을 받는 건 같겠지만 적어도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 힘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차고 있는 수갑이 그들의 자유를 구속하고 있었다.
그건 윌위스가 차고 있는 것과 같은 재질의 수갑이었다. 일종의 아티팩트로 마법사들을 구속하는데 사용되는 것이었다.
딱히 마법사들의 마법 같은 걸 억제하는 건 아니다. 그저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마력을 조금이라도 사용하는 순간 폭발하는 물건일 뿐이었다.
때문에 아무리 실력 있는 마법사인 그들이라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올랜드 또한 마찬가지. 그는 조용히 주변을 관찰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 왔다. 문 너머로 조금의 소란스러움이 들렸다.
그들을 감시하고 있던 병력이 방금 들어온 자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누더니 잠시 웅성거린다. 그러고는 우르르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올랜드는 주먹을 꽉 쥐었다.
‘왔다!’
지크가 본격적으로 움직인 것이 분명하다. 그 말은 곧 그 자신도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었다.
‘당장은 아니야!’
올랜드는 힐끔힐끔 입구의 상황을 지켜봤다. 감시자들의 숫자가 극단으로 줄어 있었다. 아마도 전력으로 소집됐을 터.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좋아, 그럼 나도 나가볼까.’
마탑의 마법사 구속 수갑 열쇠의 형태는 총 다섯 개. 올랜드는 미리 그 열쇠들의 복사본을 전부 이 회의실에 가져다 놨다. 그리고 아까의 소란에 몰래 손에 넣는 것도 성공했다.
감시자들의 눈길을 피하며 그는 자신의 수갑을 풀었다.
‘됐다!’
몸을 웅크려 수갑을 벗었다는 걸 숨긴다. 그리고 몰래 영창을 했다.
벌떡!
올랜드가 일어섰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감시자들도 그의 이상 행동에 검을 뽑아든다.
하지만 늦었다.
콰다드드득!
감시자들이 일거에 얼어붙었다.
“자, 자네!”
자신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마법사들이 보인다. 그의 눈에 희망이 섞여 있는 걸 확인하며 올랜드는 속으로 웃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남들이 자신을 우러러보는 기분을 느끼는 건 언제나 끝내준다. 하지만 속마음을 숨기고 그는 다른 자들의 수갑을 풀어줬다.
“이야기는 나중에 해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이 무도한 사태를 끝내는데 집중하죠.”
마법사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 순간, 암묵적으로 리더는 올랜드가 되었다.
그는 열쇠와 같이 숨겨놓았던, 지크가 감옥에 가둔 사람들에게 제공한 것들보다 한층 더 고급스러운 지팡이를 꺼내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엘레나!”
엘레나는 그와 같이 갇혀 있었다. 괜히 자신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게 아닌가 하고 계속 풀 죽어 있던 엘레나가 고개를 들었다.
“너는 여기서 기다리거라! 곧 너를 지켜줄 사람이 올 게다!”
엘레나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올랜드는 마법사들을 이끌고 회의실을 박차고 나갔다.
이제 이 상태로 쿠데타 세력을 쓰러뜨리고 그 죄를 윌위스에게 덮어씌운다면 음모는 성공한다.
하지만 계획은 그의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전혀 예상치 못 한 시련이 그를 덮쳤다.
“이건…!”
마탑을 싸고도는 거대한 기운. 올랜드와 다른 마법사들은 그게 무엇인지 알았다. 때문에 얼굴을 딱딱하게 굳힐 수밖에 없었다.
“드웨인!”
옆에 있던 한 마법사가 외쳤다.
“최종 방위 시스템이 작동됐네!”
* * *
지하감옥으로부터 솟아올라 마탑을 뒤덮은 마법 방해의 힘이 사라졌다. 하지만 쿠데타를 막으려는 사람들은 그걸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것보다 더한 것이 그들을 방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엎드려!”
알벤이 소리치자 계단에 있던 모든 마법사들이 그대로 엎드렸다.
후웅!
그들의 위로 날카로운 얼음덩어리들이 날아가다 사라졌다. 마법사들이 듬성듬성 고개를 들었다. 그들의 귀로 알벤의 날카로운 소리가 꽂혔다.
“최종 방위 시스템이 발동했다! 마법은 무조건 방위에만 사용해라!”
마법사들이 분분이 지팡이를 들어 자기 몸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마법은 지크 일행에게도 날아왔다. 윈두르가 휘둘러지며 마법이 두 동강 났다.
“이게 방위 시스템의 최종 장치야?”
“맞아.”
지크는 고개를 끄덕여 라일라의 말에 긍정해줬다.
“능력은 심플해. 마탑 안으로 엄청난 마력의 폭풍이 불어 닥쳐. 그리고 그 폭풍 속에서 온갖 마법들이 튀어나오는 거야.”
서걱!
자신에게 쏘아진 돌덩이를 잘라내며 지크가 계속 말을 이었다.
“마법의 종류, 위력, 발동 장소 모두가 완벽하게 랜덤이지. 그래도 한계는 있어. 정도 이상의 규모와 위력의 마법이 튀어나오진 않아.”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해!”
라일라가 근처에서 생긴 마법을 요격하며 외쳤다.
“이건 마탑주만이 발동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까? 설마 마탑주가 쿠데타 세력에 굴복이라도 한 걸까요?”
“그건 아닐 거야.”
한스의 의문을 라일라가 잘랐다. 그리고 지크를 노려봤다.
“저놈이 뭔가 수를 쓴 게 뻔하잖아.”
“하지만 음모의 주체가 윌위스임을 위장하려면 웨인에게 뭔가 증거를 줘야 했거든.”
마치 자신의 죄는 없다는 것처럼 뻔뻔하게 지크가 말했다.
한스와 스녹이 주변을 살펴 혹시 대화를 듣는 자가 없는지 살핀다.
다행히 다른 마법사들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마법을 방어하기 급급해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자들은 없었다.
“그래서 넘긴 게 이걸 사용하는 방법이야?”
“정확히는 비밀번호야. 녀석들이 받은 암호 밑에 몰래 적어 줬지. 그저 마력패턴을 적어줬을 뿐이었지만 그걸로도 충분했어. 마탑 최고 회의의 참가 권한을 가진 고위 마법사라면 그것만으로도 무슨 의미인지 알 테니까.”
지크는 윈두르를 휘둘러 이번엔 자신의 뒤에 있는 마법사들에게 날아가는 마법을 박살냈다.
“올랜드는 자신의 계략이 훌륭해서 쿠데타 놈들이 윌위스를 이 음모의 주축이라고 여기게 만들었다 믿고 있겠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준 비밀번호야. 일단 녀석들도 마탑 방위 시스템에 접근 권한은 있으니 맞나 안 맞나 몰래 확인하고 진품임을 확신한 거지.”
“그러고 함정에 완전히 빠졌다는 거네.”
“바로 그거지.”
“그걸 어디서 얻었는지는 예상이 가니까 넘어 가고, 정말로 계획을 위해서만 넘긴 거야?”
“물론이야. 난 선량한 사람이거든. 갑자기 발동한 최종 방위 시스템 때문에 올랜드가 당황하고 그의 계획이 어그러진다는 생각은 전혀 안 했어.”
“퍽이나 그러겠다!”
라일라는 다시 마법 하나를 무효화시키고는 지크의 발치를 퍽 때렸다.
“이러면 다른 사람들을 데려오면 안 됐잖아!”
“그래서 일부만 데려왔잖아. 걱정 마. 저 사람들은 이 정도 수준의 방위 시스템은 견딜 수 있는 수준이니까. 우리가 도와주면 목표 지점까지는 충분히 갈 수 있어.”
“그게 어딘데?”
지크는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회의실.”
* * *
보무도 당당하게 회의실을 나온 올랜드였지만 그의 장밋빛 전망은 갑자기 마탑을 뒤흔든 거대한 마력에 의해 박살났다.
“빌어먹을! 윌위스 드웨인 그 작자! 진짜로 최종 방위 시스템을 발동시켰어! 자기 부하들도 있는데!”
“제정신인가!”
자신들을 막으려다 방위 시스템에 박살난 쿠데타 측 마법사들을 보며 한 마법사가 절규했다.
올랜드는 정신이 없었다. 날아오는 마법들을 막는 것도 그렇지만 대체 어떻게 최종 방위 시스템이 발동됐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설마 아버지가 암호를 넘긴 건가!’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었지만 올랜드는 믿을 수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절대 그럴 인간이 아니었다.
‘내가 잘못 본 건가!’
하지만 그 이상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드웨인! 일단 회의실까지 다시 돌아갑시다! 지금 이대로 전진하는 건 자살행위요! 마탑 상층부의 최종 방위 시스템 위력은 하층부와는 격이 다르다는 걸 알지 않소!”
올랜드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머리가 핑핑 회전했다. 하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일단 물러납시다.”
아직 회의실에서 멀리 벗어나진 않았다. 귀환은 가능하다. 그리고 회의실은 최종 방위 시스템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그들은 일단 뒤로 후퇴했다.
다행히 전부 수준 높은 마법사로 이루어진 터라 부상자는 있을지언정 사망자는 없었다. 올랜드가 회의실에 다시 들어선 때였다.
“당신도 오셨군요, 드웨인 씨.”
지크가 손을 흔들며 그를 반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