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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70화 (270/628)

제270화

수많은 마탑 중에서도 최고로 일컬어지는 스누위크의 마탑.

그 하늘 높이 뻗은 높음처럼 흔들림 없는 존재감으로 주변을 언제까지나 고요히 내려다볼 것 같은 그 탑의 내부는 지금, 충분히 전쟁의 범주에 들어갈 것 같은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퍼엉! 퍼엉!

계단을 중심으로 온갖 마법들이 날아다닌다. 불덩이와 물덩이가 번갈아 던져지고 간간이 번개와 바람이 마탑을 수놓았다.

서로 상쇄되는 마법들이 많았지만 튕겨나가 마탑의 벽이나 계단을 가격하는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마탑의 외벽에 흠집을 주지 못 했다.

“튼튼해서 다행이네!”

지크가 날아오는 불덩이 하나를 잘라내며 말했다. 그의 뒤에서 라일라가 한 번에 수십 개의 불덩이를 출현시켜 위층을 말 그대로 폭격했다.

비명을 지르며 몸을 위쪽 층계로 숨긴 적들에 의해 잠시 적의 마법이 끊겼다. 지크는 그대로 빈공간을 뛰어 올라갔다.

“튼튼한 것만이 아냐! 마법 위력이 줄어든 거지! 기본적으로 마법 쓰기 힘들다고!”

방금 위력적인 마법을 구사한 라일라가 답지 않게 구시렁거렸다. 그에 지크는 크게 웃었다. 그리고 막아서는 적을 베어내며 말했다.

“참아! 마탑의 방어 시스템이 작동된 거니까! 경고는 했었잖아!”

마탑의 방어 시스템. 그건 혹시 마탑이 침범을 받았을 시 작동되는 시스템을 말한다.

몇 가지가 있지만 지금 펼쳐져 있는 건 기본적인 마탑 자체의 마력으로 인한 강화와 마탑 내부에 펼쳐진 마법 방해였다.

보통은 지하 감옥에만 펼쳐져 있는 마법 방해의 힘이 일순간 폭주하여 그 영향력을 위로까지 퍼뜨리고 있다.

그 구조상 당연히 그 힘은 아래로 가면 갈수록 강해지고 위로 가면 갈수록 약해진다.

따라서 아무래도 마탑 내부에서 마법사들끼리의 싸움이 일어났을 때 발동한다면 위쪽을 차지한 마법사들이 더 유리하게 된다.

마법사들의 마탑 공략을 효과적으로 저지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의 전투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퍼엉! 퍼엉!

위쪽에서 다시 마법들이 퍼부어졌다. 평소에 그들이 사용하는 마법들보다는 확연히 약한 마법이다. 하지만 그것에 반격하는 아래층의 마법들은 그보다 한층 더 약했다.

그렇지만 분명 아래층 세력은 조금씩 위쪽을 탈환하며 밀고 올라가고 있었다.

퍼어엉!

마법 방해의 힘에도 아랑곳없이 엄청난 마법을 날려대는 라일라와.

콰지직!

날아오는 마법을 인정사정 찢어발기는 지크의 탓이었다.

물론 에스텔레이드를 휘두르는 한스와 대량의 미스릴 조각들을 다루는 스녹의 가세도 전선을 밀어올리기에 충분했다.

“으음.”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늙은 마법사, 알벤은 침음을 흘렸다.

그는 그들을 알고 있었다. 물론 잘 알고 있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마탑에 떠도는 소문만을 들은 정도였다.

마탑주의 손녀 엘레나 드웨인을 납치한 악한. 동시에 지금 마탑의 내분이 시작되게 만든 원인이기도 하다.

당연히 호감이라곤 눈곱만큼도 생기지 않았다. 솔직히 지금 협력하는 것도 무척이나 찜찜하다.

하지만 일단 웨인 재위크를 포함한 일부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마탑주를 감금하며 자신들을 감옥에 가둔 것은 사실이므로, 일단 적의 적은 아군이란 감정으로 손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그는 다급했다.

하지만 그는 과연 자신들이 그들과 손을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저들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마법 방해의 힘은 알벤을 포함한 대단수 마탑 마법사들의 힘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는 덜하지만 쿠데타 측 마법사들의 힘도 마찬가지.

그러나 지크 일행은 라일라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애초에 마법 방해의 힘에 영향을 받지 않는 자들이고 라일라도 그 힘에 극도로 강하다.

즉, 어떻게 보면 마탑의 방위 시스템은 철저하게 지크 일행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고 있었다.

자신의 편이 강한 것은 충분히 좋은 일이지만, 그게 나중에 적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라는 게 문제다.

알벤의 고민이 깊어졌다.

그러나 알벤을 고민에 빠뜨린 지크 일행은 아랑곳없이 쭉쭉 탑을 밀고 올라갔다.

“11층 도착!”

지크가 말하자 알벤이 지팡이로 11층의 복도가 펼쳐진 곳을 가리켰다.

“혹시라도 적들이 있을지 모른다! 방을 전부 확인해라!”

마법사들이 11층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지크는 한스와 스녹을 향해 눈짓을 하며 그들을 돕게 했다.

“그리고 말하건대 남의 연구 성과에 눈독 들이지 마라! 만약 걸리는 놈이 있다면 내 마탑 인생을 끝내는 한이 있더라도 그놈만은 마탑에서 쫓아낼 거다!”

알벤이 목소리를 높였다.

“저 사람, 제법인데?”

11층과 12층을 연결하는 층계참으로 향하며 지크의 뒤에서 라일라가 중얼거렸다. 지크도 힐끗 뒤쪽을 바라봤다.

“살짝 알아봤는데 명문가 출신도 아니고 최고 마법 회의에 참가할 정도의 마법사도 아니지만 상당히 명망 있는 마법사란다. 좋은 가문 출신도 아니고 마법의 재능도 별로지만 가문, 가족, 친구 그 외 모든 걸 포기하고 오로지 마법만 파서 마탑 최고 회의 참가 권한에 근접한 사람이라고 하더군. 지하 감옥에 갇혀 있는 자들 중 지위가 가장 높기도 하고 말이야.”

“대단한 사람이네.”

그런 사람이라면 신뢰가 갔다.

라일라가 이번엔 계단 너머 위층을 올려다봤다.

“상당히 수월하게 올라가고 있어서 다행이야. 별 피해도 없는 것 같고.”

“마탑 방위 시스템을 잘못 작동시킨 거지. 역으로 멋지게 자기들이 피해를 입고 있어.”

“이대로 계속 수월하겠지? 계획대로라면 따로 잡혀 있는 사람들도 탈출해서 호응한다고 했잖아.”

“계획대로 가면 그렇겠지.”

“…또 뭔가 꾸미는 거야?”

라일라가 의심스럽게 묻는다.

“꾸미다니. 그냥 안 좋은 상상을 한 번 해본 거야. 방위 시스템이 마법 방해 힘만 있는 건 아니거든. 조금 더 위험한 것도 있어.”

“위험한 거?”

“최종 장치를 말하는 거군.”

라일라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어느샌가 알벤이 그들의 뒤에 서 있었다.

설마 계획 운운한 걸 들은 걸까. 하지만 알벤의 표정 변화는 없었다. 게다가 아무리 지크라도 누군가 곁에 다가오는데 그런 대화를 함부로 할 리도 없다. 라일라는 표정에 동요를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물었다.

“최종 장치요?”

듣는 것만으로도 뭔가 입맛이 나빠지는 단어다. 그러나 알벤은 걱정할 필요 없다는 듯 가볍게 말했다.

“걱정 마시오. 최종 장치라는 평가답게 그건 오로지 마탑주만 작동할 수 있다오. 그리고 현 마탑주는 절대로 그 장치를 작동시키지 않을 것이오. 설령 자기 아들과 손녀의 목숨이 천칭에 올라간다고 해도.”

“…차라리 발동시켜주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군요.”

“…….”

알벤은 눈앞의 미녀를 쳐다봤다. 아마도 그녀가 엘레나를 가르쳤다는 천재 마법사일 터. 소문대로 그녀의 마법은 엄청났다.

이미 수십 년 전에 버렸다고 생각한 질투가 잠깐 다시 불타올랐을 정도로.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쌓은 수양에 그 불꽃은 곧 다시 꺼졌다.

대신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지금까지 그녀의 언동에는 종종 엘레나의 이름이 나왔다. 그리고 그 어조에는 분명 깊은 호감이 있었다.

‘…정말 엘레나를 납치한 사람인가?’

적어도 그녀만큼은 엘레나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라일라는 지팡이를 꽉 쥐었다. 지크는 엘레나의 안전을 확신했지만, 라일라도 지크가 말한 이상 그게 맞을 거라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감정은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 지크 말처럼 엘레나는 안전할 거야. 그렇다면 그 최종 장치라는 걸 작동 못 하는 편이 더 낫….’

라일라는 생각을 멈췄다. 앞에서 윈두르를 요란하게 휘두르는 지크. 하지만 그의 얼굴은 라일라 쪽을 보고 있었다.

묘한 웃음을 띤 채.

‘…설마!’

자신의 악동 같은 동료가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생각이 라일라는 갑자기 강하게 들었다. 아니, 그건 이미 확신이나 다름없었다.

* * *

마탑의 꼭대기 층. 마탑주만을 위한 그 공간은 마탑의 최고 회의 등의 특별한 행사가 아니라면 외부인의 출입이 그다지 많은 곳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마탑 꼭대기 층은 웨인을 비롯한 여러 명의 마법사가 굉장히 많았다.

그들이 바로 쿠데타의 주역이었다.

그들의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마탑주와 다른 여러 명망 있는 마법사들은 물론 스누위크의 시장과 고위 관료들마저 사로잡았다. 이렇게 수월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계획이 착착 맞아떨어져 갔다.

하지만 계획의 성공은 마무리가 가장 중요한 법이다. 찢고 베고 들쑤신 상황을 곱게 봉합해서 자신들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

아무리 계획을 잘 실행했다 해도 마무리가 박살난다면 그 계획은 그 자체로 실패나 다름없다.

지금 상황에서의 봉합이란, 윌위스가 지금의 쿠데타를 이용해 정적을 제거하고 웨인을 포함한 쿠데타 세력을 중용하는 걸 뜻한다.

그랬기에 악역도 떠맡았고 준비도 해왔다. 불안감도 있었지만 곧 떨어질 달콤한 과실을 위해서였다.

게다가 얼마 안 됐지만, 자신들을 이끌던 정체 모를 자가 마탑주라는 언질마저 받았다.

그때, 웨인이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설마 가장 힘들게 쓰러뜨려야 할 마지막 상대라고 판단한 자가 자신들의 편이었다니. 그 머리와 배짱에 탄성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계획의 성공은 확신으로 변했다.

마탑에서 반발하는 두 세력의 상층부가 사실 손을 잡고 있다고 누가 알까. 그걸 생각하는 것만으로 웨인은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지금 박살나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콰앙!

웨인이 지팡이로 한 의자 옆의 바닥을 크게 내리쳤다. 무척이나 비싼 그의 지팡이는 고작 그걸로 부서지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지팡이를 소중히 하는 마법사의 특성상 지팡이를 그렇게 함부로 다루는 사람은 얼마 없다.

웨인이 지금 얼마나 화가 났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 모습을, 은빛 수갑을 차고 의자에 묶인 윌위스가 냉담하게 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보는 거야!”

웨인이 윌위스의 멱살을 잡았다. 거기에는 일종의 광기마저 섞여 있었다.

“당신이 암호를 보냈잖아! 당신이 모든 계획을 짰잖아! 당신이 우리를 이끌었잖아!”

더럽고 추한, 그러나 필사적인 고함이 들린다. 하지만 윌위스는 여전히 냉담했다.

“대체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윌위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난 이 쿠데타를 주모한 적이 없다. 너희들에게 암호문을 보낸 적도 없고. 너희들이 오해를 했거나, 아니면 다른 자에게 놀아난 거겠지.”

“우, 웃기지 마아아아!”

쿠당탕!

웨인이 윌위스를 내던졌다. 의자와 함께 윌위스가 땅바닥을 굴렀다. 어딜 부딪쳤는지 머리에 피가 흐른다. 하지만 윌위스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우릴, 우릴 버리려는 거냐.”

웨인이 저주하듯 말했다.

“그냥 쓰고 버리려는 거지! 그래, 너는 권력을 우리와 나눌 생각이 없었던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윌위스는 웨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난 아니다. 혹 내가 그럼 음모를 짰더라도 너희 같은 저급한 것들과 손을 잡았을 것 같나.”

“이익!”

퍼억!

웨인이 윌위스를 걷어찼다. 노구에 대미지를 입고 윌위스가 신음했다. 하지만 웨인은 몇 번이나 더 걷어찼다.

“이, 이봐! 어쩔 거야!”

다른 마법사가 웨인의 어깨를 잡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분명 마탑주가 우리 편이라고 했잖나! 그래서 이 계획을 짰던 거 아니었나!”

“이 봐! 대답해, 웨인 재위크!”

다른 동료 아니, 쓰레기들이 짖는 소리가 들린다. 이미 자신이 윌위스의 정체를 알려 주기 전부터 정체도 모르는 자의 말을 충실히 듣고 있던 자들이 이제 와서 자신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헛웃음이 나왔다. 그토록 바라던 마탑주의 꿈이 날아가고 있었다. 아니, 이제는 마탑주 운운을 넘어 자신의 생명과 가문이 문제인 상황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날 수 없었다. 음모에 빠진 채 자신만 당하고 있을 순 없었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쓰레기들을 떨쳐내며 웨인은 윌위스를 노려봤다.

“당신이 음모의 주체가 아니라고?”

“그래, 맞다.”

웨인이 히죽 웃었다.

“그럼 말해 봐. 내가 이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

웨인이 어딘가로 걸음을 뗐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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