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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69화 (269/628)

제269화

이미 마탑의 구조는 대강 알고 있다. 지크는 헤매는 기색 없이 성큼성큼 길을 찾았다.

“지하감옥? 마탑에 그런 게 있어?

마탑과는 어울리지 않는 공간에 라일라가 의문을 표했다.

“일반 범죄자가 아니라 마법사들을 전문적으로 가두는 감옥이란다. 마탑에서 죄를 지은 마법사들을 처벌할 때 사용한다고 하더군. 지금은 비어 있어.”

“마법사들을 억류할 때는 최고겠네.”

“그렇지.”

“누구냐!”

역시 사람들을 가둬놓은 곳인지라 감시를 삼엄하게 하는 모양이었다. 모퉁이를 돌아 지하로 가는 계단에 도착하자 계단 앞을 지키고 있던 인간들이 보였다.

바깥에서는 로브로 정체를 가리려는 시도 정도는 했었지만 지금은 아예 귀찮다는 듯 로브를 전부 벗어던진 상태였다.

지크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대로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적…!”

뭔가 ‘적이다!’라고 말하려 한 모양이지만 그의 말은 끝까지 울려퍼지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콰드득!

윈두르가 상대의 심장에 그대로 꽂혀들었다. 다른 한 명이 크게 놀라 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그의 몸을 환한 빛이 훑었다.

촤악!

빛의 길을 따라 붉은 핏방울이 흩어진다. 하지만 에스텔레이드에는 피 한 방울 묻지 않았다. 한스가 에스텔레이드를 갈무리했다.

“한스! 스녹!”

“넷!”

“넵!”

“귀찮은 놈들 오지 못하게 지키고 있어.”

명령을 내린 후 지크가 라일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넌 어쩔래?”

“아래 엘레나가 있어?”

“없을걸.”

라일라가 눈살을 찌푸렸다.

“잡힌 사람들은 전부 아래에 가둬두는 거 아니었어?”

“아닐 거야. 무엇보다 엘레나는 우리가 함부로 날뛰지 못 하게 보호라는 명목으로 올랜드가 떠넘길, 어떻게 보면 짐덩이지.”

짐덩이 소리에 라일라의 눈이 날카롭게 치솟았다. 하지만 지크의 말을 끊진 않았다.

“그러니까 초반부터 구출하려고 예정되어 있는 지하 감옥에 가둬두진 않았을 거야. 어떤 이유를 붙이든 조금 더 위험한 곳에 뒀겠지.”

“위험?”

라일라의 눈이 더더욱 치솟자 지크가 손을 내저었다.

“굉장히 위험한 곳에 두진 않았을 거야. 적어도 우리에게 보호랍시고 엘레나를 떠넘기기 전까지는 무사해야 하니까.”

“그럼 어디 있을까?”

“위쪽 어딘가에 있지 않겠어? 정말로 지위 높고 위험한 마법사는 따로 가둬놓을 테니까.”

“…누가 들으면 이 쿠데타를 네가 일으킨 줄 알겠어.”

“내가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걸?”

지크는 반쯤 농담 삼아 낄낄 거렸다.

“그래서 갈 거야, 말 거야.”

잠시 갈등의 기색을 보이던 라일라가 지크의 옆에 섰다.

“같이 가줄게. 혹시 네가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하핫! 그렇네! 내가 위험할 수도 있지!”

눈곱만큼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티가 목소리에서 팍팍 난다. 그러나 비꼬는 건 아니었다.

그게 설령 허튼 걱정이라고 해도 라일라의 걱정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좋아, 그럼 지하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확인해볼까. 혹시 전설의 드래곤이라도 둥지를 틀고 있을지 모르잖아.”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내려가.”

라일라가 지크의 등을 툭 밀었다.

* * *

지하감옥이라 하면 보통 어둡고 춥고 음침한 곳을 떠올리기가 쉽다. 하지만 마탑의 감옥은 보통의 감옥이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깔끔했고 관리도 잘 되어 있었다. 죄수를 위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지크의 뒤를 따르던 라일라가 인상을 썼다. 걸음을 멈추고 손을 들어 가벼운 마법을 발동했다.

화르륵!

그녀의 손에 작은 불덩이가 피어 올랐다. 하지만 그 마법은 강한 바람에 노출된 듯 끊임없이 흔들렸다.

“마법을 사용하기가 힘들어.”

“마법사들을 가둬두는 곳이잖냐. 당연히 특수 처치를 해놨지.”

라일라가 벽면을 쓸어봤다. 금속 특유의 감촉과 함께 묘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지하 자체에 마법 시전을 방해하는 뭔가가 펼쳐져 있는 건가?”

“오리할콘, 미스릴 등 온갖 희귀한 금속들을 듬뿍 들이부어서 뼈대를 만들고 마력을 흐르게 해 마법의 완성 자체를 방해하는 공간을 만들었다고 하더군. 웬만한 마법사들은 분명 마법을 사용하기 무척 힘들겠지만….”

지크는 라일라를 힐끔 쳐다봤다.

“너라면 별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별문제가 없을 리가 있나.”

라일라는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하지만 뒤에 이어진 말은, 감옥 안에서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일반 마법사들이 들으면 두 눈을 부릅뜨고 멱살을 잡지 않을까 하는 말이었다.

“무지 귀찮은데.”

“그 정도 반응이면 됐어.”

역시 라일라에게 이 지하의 구조는 그저 귀찮은 것 이상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지크는 계속해서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이 끝나는 곳이 오자 감시자 두 명이 더 보였다. 다만 그들이 감시하는 건 안쪽이었다.

지크의 발소리가 말 그대로 사라졌다. 라일라가 지크를 동그란 눈으로 쳐다봤다. 눈으로는 분명 보인다. 하지만 지크의 기척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지크가 대놓고 감시자의 뒤로 접근한다. 하지만 감시자들은 일절 지크를 눈치채지 못했다.

지크가 검을 휘둘렀다.

서걱! 서걱!

두 개의 머리가 마치 원래 그런 능력을 갖고라도 있는 듯 둥실 떠올랐다.

머리가 떨어지고 몸체가 무너진다. 거칠게 뿜어지는 피가 웅덩이처럼 고여 세력을 확장해나간다. 지크는 덤덤하게 시체를 넘어 문을 통과했다.

“응?”

“뭐지?”

사람의 몸이 쓰러지는 둔탁한 소리에 감옥을 지키고 있던 적들이 일제히 지크를 쳐다봤다. 그들의 눈이 지크를 스쳐 시체로 변한 그들의 동료에게 닿았다.

“저건…!”

“적이다!”

그들이 무기를 꺼내든다. 지크도 윈두르를 다시 들었다. 하지만 라일라가 지크의 옆으로 다가오자 그는 한 걸음 물러났다. 라일라가 지팡이를 적에게 겨눴다.

적들이 비웃음을 머금는 게 보인다. 마탑의 감옥에서 마법 구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그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들은 라일라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불행하게도 라일라는 보통 마법사가 아니었다.

쩌저적!

영창도 없다. 라일라의 지팡이 근처에서 얼음 송곳 여러 개가 생성됐다. 마법이 발동되는 걸 본 적들이 당황했다. 하지만 라일라는 그들을 무심하게 노려본 채 마법을 발사했다.

푸욱! 푸욱! 푸욱!

날카롭기 그지없는 얼음 송곳은 적들을 사정없이 꿰뚫었다. 뛰어온 기세보다 더 빠르게 적들이 뒤로 튕겨나갔다.

팔뚝만 한 얼음이 곳곳에 꿰였으니 살아남기는 그른 게 확실했다.

“그렇게 강한 녀석들은 아니네.”

“로브 놈들의 협력이 있었다 하더라도 마법사 가문에서 칼질하는 인간들을 키우는 건 어렵지. 그리고 그렇게 강한 놈도 필요 없었을 거야. 그저 이런 잡일 같은 걸 할 수 있는, 싸움 좀 하는 말단들이 필요했을 뿐이겠지.”

지크와 라일라는 그런 대화를 하며 감옥 안을 훑었다.

단단해보이는 창살 너머로 꽤 많은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하나같이 로브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끌려 올 때 험하게 다뤄진 듯 머리나 옷이 헝클어지고 얼굴에 멍이나 핏자국이 보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전체적으로 심하게 다친 사람들은 없는 모양이었다.

“…당신은 분명….”

지크를 알아본 한 늙은 마법사가 놀라 말했다.

“저 사람, 엘레나를 납치한 사람 아냐?”

“그런 것 같은데….”

몇 명이 더 지크를 알아본다. 그리고 그 몇 명이 내뱉은 말에 지크를 본 적 없는 사람들도 그를 알아봤다.

지크는 안 좋은 쪽이긴 해도 도시에서 유명인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마탑에 긴장을 불러온 대립의 원인은 어떻게 보면 지크가 아니었던가.

당연히 지크를 보는 시선이 안 좋아졌다. 가장 먼저 지크를 알아본 늙은 마법사의 눈도 날카로워졌다.

“설마 이 일에 네 놈도 끼어있었던가!”

지크를 쿠데타 세력과 한 편이 아닌가 싶어 소리를 쳤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니라 늙은 마법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지크가 쿠데타 세력과 같은 편이었다면 자신들을 가둬둔 사람들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지크는 의심스럽게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그 말 한 마디에 감옥 안 분위기가 바뀌었다.

“…도와주러 왔다고?”

“그렇습니다. 일단 여러분을 꺼내드리죠.”

지크는 감옥의 한 쪽 벽에 걸려 있는 열쇠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가까운 감옥부터 하나하나 열어갔다.

마법사들이 걸어나온다. 아직 지크에 대한 의심을 버리지 못하면서도 사람들은 일단 해방된 것에 안도했다.

지크는 해방된 사람들을 쭉 훑었다. 역시 윌위스를 포함해 마탑에서도 특히 중요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엘레나가 없어.”

라일라가 조금 실망한 어조로 말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엘레나를 찾고 있던 모양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엘레나는 위에 갇혀 있을 거야. 이제 구하러 가야지.”

지크가 라일라를 얼렀다.

“잠깐! 마치 드웨인 양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는 말투인데, 혹시 지금 상황에 대해 아는 게 있소!”

자신들을 풀어주긴 했지만 아직 지크에 대한 의심을 떨치지 못 했는지 마치 지크를 감시라도 하듯 옆에 붙어 있던 늙은 마법사가 날카롭게 물었다.

그래도 일단 지크가 도움을 준 터라 늙은 마법사는 지크에게 반존대를 사용했다.

“물론 압니다. 지금 마탑에서 일어난 쿠데타에 대해서라면 아주 잘 알고 있죠.”

“잘 알고 있다니! 대체 어떻게!”

하지만 지크는 늙은 마법사의 말에 대답해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마법 상자에서 지팡이를 꺼냈다. 마법사의 지팡이이긴 하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값싼 지팡이다.

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지크는 그걸 늙은 마법사에게 건넸다. 마법사가 복잡한 눈빛으로 그걸 쥐었다.

“지금 당장은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생각도 없고요. 당신들은 그저 정하면 됩니다.”

지크는 마법 상자에서 계속 지팡이를 꺼냈다. 그리고 다른 마법사들에게도 그걸 쥐여줬다.

“이대로 조용히 마탑에서 나갈지 아니면 그걸 들고 마탑의 질서를 흐트리려 하는 자들을 토벌하는데 힘을 빌려줄지 말입니다.”

마법사들의 눈빛이 변했다. 회의 도중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변변한 저항조차 못 하고 마탑의 감옥에 갇히는 굴욕을 겪었다.

게다가 그들을 습격한 대상이 자신들의 동료라고 생각하던 자들이니 그 배신감은 더욱 컸다.

늙은 마법사가 지팡이를 꾸욱 쥐었다.

“…당신의 정체에 대해 의심을 푼 건 아니요. 하지만….”

늙은 마법사의 눈빛이 살벌해졌다.

“일단은 감히 멋대로 마탑의 권력을 쥐려 하는 배신자들을 먼저 때려잡아야 한다는 생각은 일치하는 걸로 알겠소.”

“저, 정말 저 사람을 믿어도 되겠습니까?”

다른 마법사가 늙은 마법사에게 말을 걸었다. 늙은 마법사는 고개를 저었다.

“믿는 게 아니다. 누구든 이 두 사람에게 눈을 떼지 마라. 하지만 우린 지금 당장 마탑주님을 구해야 한다. 다른 일들은 마탑의 질서를 바로잡은 후에 할 일이다.”

“바로 그겁니다.”

지크가 손을 내밀었다.

“잠시간의 동맹이 될지 아니면 앞으로 쭈욱 계속될 인연이 될지는 모릅니다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잘 지내 봅시다.”

“내 하나만 물어보겠소.”

늙은 마법사가 지크의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꾸미는 일, 당신 일행 혼자서 꾸미는 일이오?”

지크는 웃으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자신을 협력자라고 믿는 멍청이가 하나 있긴 했지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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