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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65화 (265/628)

제265화

엘레나를 구한 건 좋았지만 그 이후 윌위스는 상당히 난감한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엘레나를 구하기 위해 도시의 전력을 너무 동원한 것이다.

물론 병력을 그렇게 시끌벅적하게 동원한 이유는 엘레나를 구하기 위한 것보다는 지크 일행을 일망타진하려는 의도가 강했지만 그게 실패한 이상 의도는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

마탑의 도시라는 특성상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분명 마탑주인 윌위스였지만 스누위크에도 다른 도시처럼 시장과 관료들이 존재했고, 그들은 윌위스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무리를 하면서 그들과 갈등을 일으켰다.

윌위스는 후회하지 않았고 똑같은 상황에 닥친다면 또 다시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었지만 지금 상황이 골치 아픈 것도 사실이었다.

한데, 안 그래도 힘든 이 시기에 마탑의 마법사들 몇몇이 윌위스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저 그런 마법사들도 아니었다. 명문가 출신에 마탑 최고회의에도 참가하는 자들이었다.

물론 그들이 무슨 쿠데타를 일으킨 건 아니었다. 그저 윌위스 보고 마탑주의 자리에서 물러나길 요구한 것뿐이다. 하지만 평소라면 충분히 무시할 수 있는 그 의견이, 정치적 입지가 좁아진 지금은 상당한 타격이 되어 윌위스를 괴롭혔다.

보통 가장 뛰어난 마법사에게 마탑주 자리가 돌아가기에 윌위스가 맡고 있지만 그렇다고 종신 자리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마탑이 마법사들의 이득을 위해 모인 단체인 만큼 마탑의 이득에 커다란 손해를 입힌 마탑주는 종종 쫓겨나기도 했다.

지금 반기를 든 사람들은 윌위스의 이번 행동들이 마탑에 커다란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지금, 마탑의 여론은 두 쪽으로 쪼개진 상태였다.

일단 주류 여론은 아무리 커다란 사건을 일으켰다고 해도 윌위스를 쫓아낼 정도는 아니라는 쪽이었지만 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반응도 분명 있었다.

원래는 수면 아래에서 조용히 도사리다가 사그라들 불만이었지만 반기를 든 사람들에 의해 그 불만은 확실히 사람들의 시야로 튀어나왔다.

“이게 지금 마탑의 상황이오.”

겉으로는 협력 관계에 들어선 만큼 올랜드는 지금 마탑의 상황을 상세히 지크에게 설명해줬다.

지크도 마치 자신의 태도만큼 신뢰가 돌아올 거라고 믿는 듯 꽤 열성적으로 그의 말을 들었다.

그러나 둘 다 서로 손을 잡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자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저 상대를 이용할 생각뿐.

“하지만 지금 마탑 상황이 아무리 좋지 않다고 해도 아버지의 권력과 영향력은 아직 상당한 수준이오. 외부에서 공격하기에는 쉽지 않을 거요.”

그렇게 말하며 올랜드는 슬쩍 지크의 눈치를 봤다.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는 지크가 올랜드에게 도움을 청한 이유는 아무래도 윌위스도 마탑주라는 막강한 신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올랜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때문에 만약 윌위스의 권한과 영향력이 폭락했다고 판단할 경우 더 이상 올랜드 자신이 필요 없다 여기고 지크가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도 있었다.

그건 막아야 했다.

‘물론 마탑의 다른 명가들도 로브 놈들, 정확히는 나와 연관이 있다는 걸 그도 알고 있으니 쉽사리 협력을 깨진 않겠지만.’

“옳은 말씀입니다.”

지크는 올랜드의 말에 동의했다.

“과연 상황을 잘 파악하고 계시군요. 젊은 나이에 마탑 최고 회의에 참여할 수 있을 정도로 능력 있고 윌위스 드웨인을 잘 알기에 협력할 대상으로서 당신을 선택했습니다만, 제 결정에 잘못은 없는 것 같군요. 당신과 손을 잡아서 다행입니다.”

올랜드를 칭찬한 것도 잠시, 지크는 표정을 심각하게 바꿨다.

“당신의 말대로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겠지요. 게다가 지금 상황이 조금 이상하기도 하니까요.”

“이상해? 어디가 말이오?”

“최고회의 참가 권리를 가진 마법사 중 반기를 든 자들이 웨인 재위크를 포함해 총 셋이라고 했었죠?”

“그렇소.”

“제가 가진 정보로는 그 이상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달랑 셋밖에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그렇소?”

“그렇습니다. 혹시 만일을 대비해 적이 전력을 숨기고 있는 걸까요?”

“그럴 수도 있지 않겠소.”

태연하게 대답했지만 올랜드는 뜨끔했다.

그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가문은 확실히 조금 더 있었다. 그저 지크의 말대로 혹시나 하는 상황을 대비해 이번에 내세우지 않았을 뿐.

“역시 그렇군요.”

지크가 조용히 넘어가는 듯하자 올랜드는 안도했다. 하지만 다음에 지크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잡은 증거가 잘못된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원점부터 조사를 재시작해야 할지도….”

지크가 조사를 원점에서 재시작한다는 소리는 윌위스를 범인으로, 올랜드를 협력자로 보는 지크의 시선마저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나도 용의자로 다시 올라가겠지.’

실제로 지크는 윌위스를 범인으로 확신하기 전 올랜드 자신도 유력한 용의자로 보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예전이라면 지크가 자신을 용의자로 본다는 사실에 코웃음을 쳤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카르위먼과 적대 관계가 되는 건 사양이야.’

만약 지크가 자신을 용의자로 본다면 지금의 이점은 사라지고 오히려 윌위스의 입장에 자신이 서게 될 것이다.

‘젠장, 어쩔 수 없이 다른 녀석들도 동원을 해야겠어.’

문제는 지크가 파악하고 있는 자신의 협력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살짝 물어보긴 했지만 지크는 그건 알려줄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만약 저 녀석이 파악하고 있는 협력자보다 적게 동원을 한다면 자신이 쥔 증거를 의심해 재조사를 하려 할 수도 있어.’

따라서 지크가 파악한 것보다 많이 동원하는 건 상관없지만 적게 동원할 순 없다. 하지만 지크가 얼마나 많은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쩔 수 없지. 협력자 전부를 동원할 수밖에.’

위험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로브 놈들이 전멸해버린 지금, 윌위스를 몰아붙일 명분이 되어줄 지크를 놓아줄 순 없었다. 그리고 지크에게 의심을 사서도 안 됐다.

머릿속에서 핑핑 계산하고 있는 올랜드를 지크는 흐뭇하게 쳐다봤다.

‘그래, 전부 동원해. 네가 갖고 있는 패를 전부 까봐.’

이번에 윌위스에게 반발을 한 자들을 추려 올랜드의 협력자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지만 지크는 그게 전부라고 믿지 않았다.

‘너 같은 놈이 초반에 패 전부를 깔 리 없으니까.’

하지만 이제 올랜드는 자신의 패 전부를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 움직이게나, 친구. 이 엉망이 된 계획에서 내 신뢰 없이 어떻게 살아가려고? 내 신뢰를 얻어야 하지 않겠어? 내가 입으로만 떠드는 날조 증거에 대해서 내가 스스로 의심해 재조사를 하지 않도록 열심히 움직여줘.’

지크는 올랜드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도록 충분히 시간을 준 후에 입을 열었다.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할까요. 며칠 더 두고 봅시다. 다른 협력자들이 얼굴을 들이밀지 모르니까요.”

“…알겠소.”

인상을 쓰고 싶지만 지크 앞에서 그럴 수 없다. 올랜드는 태연을 가장했다.

“아, 그런데 말입니다. 혹시 당신의 아버지가 당신과 엘레나를 노리는 이유를 혹시 알 수 있습니까?”

“…아직 아버지가 그렇다고 정해진 건 아니오.”

“당신의 마음도 이해합니다만, 저도 단서는 하나라도 챙겨야 합니다. 그저 가정이라도 좋습니다.”

지크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그래, 말해봐. 네가 꾸며낸, 윌위스가 너와 엘레나를 노리는 명분을 말이야.’

“…굳이 따지자면….”

올랜드는 조심조심 입을 열었다.

“나와 엘레나를 창피해해서 그러실지도 모르오.”

“창피해서 말입니까?”

“당신이 갖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는 어떻소?”

“마법사로서는 굉장히 무서웠습니다. 마탑주로서의 면은 잘 모르겠고, 그 외에는 손녀인 엘레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할아버지 같은 이미지를 받았었지요.”

“그랬소?”

올랜드의 어조에 뭔가 씁쓸함이 섞였다.

‘이건 연기가… 아닌가?’

꽤나 진실된 표정이기에 지크는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부 진심이거나, 혹은 연기가 섞였더라도 그의 진심이 어느 정도 섞인 것이라고 지크는 판단했다.

“젊었을 적, 아버지는 지금과 같은 성격이 아니었소. 냉철하고 모든 걸 마법적 성취로 판가름하는, 어떻게 보면 지금의 웨인 재위크 씨와 비슷한 성격이었지.”

이건 꽤 놀라운 정보였다.

“지금의 아버지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엘레나를 아끼고 사랑하며 어떻게든 행복한 미래를 열어주려고 노력을 하지만, 내가 젊었을 적에는 그러지 않았소. 엘레나만큼은 아니지만 당시 내 마법 성취는 무척이나 낮았지. 그리고 당시의 아버지에게 나는 수치의 대상이었소.”

“…지금의 그 사람의 성격을 생각하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군요.”

“충분히 이해하오. 솔직히 나도 아버지가 저렇게까지 변하실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 했으니까.”

올랜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것들은 유명한 이야기요. 아마 도시에 나이 좀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누구나 알 테지. 어렸을 때 그런 아버지가 무척 싫었고 내가 아내의 학파로 갈아타게 된 이유이기도 하오. 그리고 지금도 아버지와 사이가 껄끄러운 이유이기도 하지.”

“그런 일이 있었군요.”

“만약 아버지가 정말로 음모를 꾸미는 주체이고 음모의 대상으로 우리를 대상으로 삼았다면 아마 그 이유가 클 것이오. 겉모습은 바꿨을지언정 속은 옛날과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는 소리지.”

“힘든 일이었을 텐데 얘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도시에도 유명한 이야기요. 게다가 나는 아직 아버지가 정말로 흑막이 아닐 거라고 믿고 있소. 아무리 과거가 좋지 않았다고 해도 내 아버지니까.”

“부디 그러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고맙소.”

‘그게 명분이라 이거지.’

저게 전부일 거라는 생각지 않지만 적어도 윌위스를 쓰레기로 만들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저렇게 자신하는 것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고. 그 영감도 젊은 시절엔 만만치 않았네.’

자신이 경험한 마도의 마왕과 지금의 윌위스 드웨인이 너무 달라 이질감이 느껴졌었는데 그 편린이 과거에 존재했었던 모양이었다.

“그럼 전 이제 가보겠습니다. 그 전에….”

지크가 주머니를 뒤적였다. 거기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걸 분석 좀 해주시겠습니까?”

“이게 무엇이오?”

올랜드가 종이를 펴보았다. 거기에는 글자인지 특이한 그림인지 모를 것이 쓰여 있었다. 시중에서 평범하게 사용되는 글이 아니다. 하지만 올랜드는 놀랐다. 그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것이었다.

‘내가 보낸 암호?’

그건 분명 올랜드나 로브들이 협력자들에게 지령을 내릴 때 사용하는 암호였다. 한데 그게 지크의 손아귀에 있었다.

“예전 재위크가에 숨어들었을 때 우연히 얻은 것입니다. 아무래도 암호 같은데, 혹시 이걸 풀 수 있으십니까?”

“이건… 흥미롭군요.”

올랜드는 감탄한 듯 종이를 쓸어봤다. 하지만 여유 넘치는 몸짓과는 다르게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갔다.

이게 어쩌다 지크의 손에 들어갔는지는 알게 됐다. 말을 들어보면 그는 이 암호를 풀지 못했다. 게다가 풀었다고 해도 이 암호에 자신을 의심할 만한 정보는 들어 있지 않다.

즉, 그가 암호를 들고 있다고 해도 별 위험은 없는 셈이다.

지금 올랜드가 고민하는 이유는 암호를 풀어주는 것과 모른다고 잡아떼는 것, 어느 쪽이 자신에게 유리할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암호를 해독해서 상대의 계획을 알아낼 수 있다면 상대의 정체를 폭로하는 것이 더 쉬워질지도 모릅니다.”

지크의 말을 들은 올랜드의 머리에 불현듯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암호문으로 이 녀석을 컨트롤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이 암호문을 사용해 명령을 내리는 것은 자신.

협력자 누군가에게 적당한 사건을 암호문으로 적어 보낸 뒤 지크가 그것을 탈취하면 자신이 그것을 해독하는 척한다.

그리고 옆에서 조언인 척 적절하게 그의 사고를 유도한다면….

“한번 해보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지크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의 내심은 감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 라일라가 이걸 푸는 데 힘들어하니까 네가 단서 좀 내놔 봐.’

고대 제국의 실체를 알게 해줄 수 있는 고대 제국의 문자. 그 실마리가 있는 자를 눈앞에 두고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그렇게,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웃긴 것을 넘어 허탈해 할, 어처구니없는 촌극은 계속 이어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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