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64화 (264/628)

제264화

지크가 로브 놈들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태연한 척했지만 올랜드는 잔뜩 긴장했다.

거기에 지크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고 했을 때는 당장이라도 공격을 하고 싶어 손을 움찔거렸다.

그가 참을 수 있었던 건 지크가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라는 주장이 사실일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크가 윌위스를 범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을 때, 그는 두 손을 들고 환호성을 내지르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얼굴 근육을 굳히고 심각한, 분노 어린 표정을 만든다. 그리고 말했다.

“아버지가 뭘 어쨌다고?”

“당신의 아버지가 로브 놈들의 협력자 같다고 했습니다.”

후웅!

올랜드가 지팡이를 지크에게 겨눴다. 지팡이에 마력이 조금 스며들었다. 하지만 올랜드의 그건 연기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말을 가려 해라! 아버지는 스누위크의 마탑주이시다!”

“그게 그 사람이 협력자가 아니라는 증거는 되지 못합니다.”

“이 자식이…!”

지팡이를 더욱 들이댄다. 하지만 결코 마법을 쓰진 않았다. 그리고 지크가 계속 말하길 기대했다.

“윌위스 드웨인만이 아닙니다. 로브들과 직접적으로 선이 닿아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웨인 재위크도 윌위스 드웨인의 영향을 받고 있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그 외에 다른 마탑 고위 마법사의 가문도 수상하고요.”

여기서 올랜드는 조금 위기감을 느꼈다. 그의 조사가 제법 정확했던 것이다.

물론 범인은 완전히 잘못 짚었지만.

올랜드는 입술을 꽉 물었다. 분에 못 이기는 척 볼을 부들거렸다.

지크는 감탄했다. 자신에게 미치지는 못하지만 올랜드의 연기도 제법이었다.

“그래, 어디 한번 네가 하고 싶은 말을 전부 말해봐. 얼마나 헛소리를 하는지 들어봐 주지!”

“좋습니다. 그럼 하나하나 말해볼까요.”

지크는 잠시 할 말을 정리하는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지크가 다시 입을 뗐다.

“처음에 이상함을 느낀 건 마윈 재위크가 질투심으로 우리를 죽이려 용병들을 고용해 습격했을 때입니다. 그때, 로브 놈들의 흔적 같은 것이 보였죠.”

“무슨 흔적 말이지?”

“놈들 특유의 기술이 있습니다. 체술에 알게 모르게 섞여 있는 건데, 마법사분이라면 잘 모를 겁니다.”

‘그러니까 의문 갖지 마. 적어도 너와는 관련 없는 설정이니까.’

지크의 생각대로 올랜드는 혹시 그 흔적이란 것이 자신에게도 붙어 있을까 잠시 긴장했다가 지크의 말을 듣고 풀었다.

‘그런 게 있었나?’

잠깐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하지만 마윈이 용병들을 고용할 때 로브들의 입김이 상당히 들어갔다는 걸 알고 있는 올랜드는 지크의 말이 그럴 듯하게 들렸다.

“얘기를 계속하죠. 그 때문에 마윈 재위크를 조금 강하게 고문했습니다. 만약 그게 없었다면 그 꼴까지 만들진 않았을 겁니다.”

“뭘 알아냈나?”

“마윈 재위크가 묘한 ‘친구’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걸 알아냈죠.”

“그 친구들이란 것들이 로브 놈들이었다는 거군.”

“제 생각엔 그랬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한 거고요. 물론 바로 재위크가에서 저를 잡아 가뒀습니다만, 제 종들을 시켜서 엘레나를 은밀히 보호하라고 시켰죠. 녀석들이 엘레나를 노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납치당하는 엘레나를 구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물론 엘레나를 바로 돌려보내지 않은 건 미안한 일이었습니다만, 엘레나를 목표로 삼은 인간들을 떠보고 싶었습니다. 분명 무척 당황했을 테니, 뭔가 움직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본인이 납치해 놓고 엘레나를 구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한 건가?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아, 회의에 보낸 협박장도 제가 보낸 겁니다. 로브 놈들의 동료가 반응하길 바라서 말이죠.”

“대담하군.”

당시 그 편지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던 올랜드는 몰래 식은땀을 닦았다.

자신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편지를 보낸 장본인이 바로 옆에서 사람들을 탐색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제가 가장 먼저 의심한 건 웨인 재위크입니다. 저희 그리고 엘레나와 직접적인 원한 관계가 있고 일부러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로브 집단에 대해서는 일단 미뤄두자고 말했죠. 하지만 확신하진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상황이 드웨인가와 재위크가가 대립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그게 적들의 의도일 가능성도 있었고요.”

올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속으로 적이 놀랐다. 지크는 정확하게 상황을 꿰뚫고 있었다.

“하지만 재위크가에 진입했을 때 묘한 광경을 보게 됐습니다. 재위크가에서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와 웨인 재위크가 대화를 나누는 광경을요.”

“그게 무슨 묘한 광경이지?”

“정확히 말하면 웨인 재위크가 윌위스 드웨인을 떠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올랜드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 웨인 재위크에게 일부러 자기가 윌위스인 듯한 뉘앙스를 조금씩 풍기지 않았던가.

그 때문에 웨인 재위크는 그의 아버지에게 계속 무언가를 떠보는 언사를 보이고 있었다.

“그때 느꼈습니다. 엘레나가 너무 쉽게 자기 자택에서 납치당한 것도 그렇고 혹시 당신들 드웨인가가 이 일에 연루된 것이 아닐까 하는 걸 말입니다.”

“난 아니네.”

“압니다.”

지크는 신뢰 가득한 눈으로 올랜드를 쳐다봤다. 라일라가 본다면 진저리를 치며 고개를 돌릴 그런 눈이었다.

“남은 건 당신의 아버지인데, 그러면 의문이 생깁니다. 왜 자신의 가문과 자신의 협력자인 재위크 가문을 충돌시키려는지 말이죠. 하지만 그간의 행동으로 추측은 가능합니다. 한창 드웨인가와 재위크가가 갈등을 빚고 있을 때, 당신의 아버지는 드웨인가의 가주이면서도 중립적 태도를 견지했죠. 마탑주라는 이유 때문에 말이죠.”

“그건 마탑주로서 충분히 취할 수 있는 태도였다.”

“그렇긴 하죠. 하지만 만약 당신의 아버지가 그 사건에서 중립적 태도를 취한 것처럼, 드웨인가와 재위크가의 충돌에 자신은 끼어들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어떨까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즉, 두 가문의 충돌은 실상 재위크가와 당신 그리고 당신 딸의 충돌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아마도 목표는 당신 혹은 당신과 당신 딸 둘 다겠죠.”

“헛소리!”

올랜드는 거칠게 말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입이 찢어질 것마냥 웃고 싶었다. 지크가 자신이 짜놓은 시나리오를 완벽하게 따라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은 다르게 움직였다.

“아버지가 나와 엘레나를 노리고 음모를 짜고 있다고? 내가 아무리 아버지와 사이가 그리 좋지 않더라도 그딴 일을 아버지가 하실까 보냐!”

“믿지 않으시면 당신과 엘레나가 당합니다.”

지크는 계속해서 담담하게 자신의 주장을 내뱉었다.

“증거는? 증거는 있어서 나불대는 거겠지!”

“있지만 밝힐 수는 없습니다.”

당연히 증거 따윈 없었다.

“그런 말을 내가 믿을 거라고 생각한 거냐!”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은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걸로 증거를 삼는 건 어떨까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할 수 있다고?”

“제가 가진 증거를 바탕으로 한 추측으로는 확실하게 일어날 일들입니다. 그러니 앞으로의 상황이 제가 한 말과 비슷하게 흘러간다면 어느 정도 신뢰는 얻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올랜드가 눈을 꿈틀거린다. 바로 거절의 뜻을 밝히지 않는 걸로 봐서는 상당히 고민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뭘 고민하냐, 멍청아!’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지크는 속으로 야유했다.

‘머리 굴리지 말고 미끼나 물어. 어차피 로브 놈들이 몰살당한 것으로 네 계획은 대부분 어그러졌잖아? 여기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라는 끝내주는 배경을 가진 녀석이 네 편을 들어준다 이거야. 그러면 네 잘난 계획도 어느 정도 수정이 가능하겠지?’

지크는 올랜드의 계획이 윌위스에게 누명을 씌워 쫓아내고 자신이 마탑주가 될 음모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올랜드가 정말로 그런 음모를 갖고 있다면, 지금 지크의 협력 제의는 무척이나 달콤할 게 뻔했다.

“…좋아. 네가 보여준, 그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의 증표를 봐서 한번 정도는 속아주지.”

“대단히 감사합니다.”

지크는 고개를 숙였다.

올랜드는 지팡이를 거뒀다.

“그럼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거냐.”

지크는 올랜드에게 설명했다. 올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라. 그리고 며칠 뒤에 다시 와라. 널 믿을지 믿지 않을지는 그때 정하마.”

“알겠습니다.”

지크는 창틀에 발을 올렸다. 아마 들어올 때도 그렇게 창문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한 가지만 물어보자.”

“뭡니까?”

지크가 고개를 돌렸다.

“왜 엘레나에게 가짜 증표를 보여줬지?”

“로브 놈들 때문이죠. 로브 놈들과 카르위먼의 사이는 무척이나 안 좋습니다. 그 사실을 로브 놈들의 협력자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죠. 때문에 숨겼습니다. 진짜 제가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라서 자신들을 쫓고 있다는 생각을 줄 필요가 없으니까요.”

물론 아니다. 지크는 철저하게 올랜드의 뒤통수를 칠 환경을 만들기 위해 신분을 숨겼다.

지크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칼은 갑자기 튀어나와야 그 위력을 다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지크가 검은 그림자가 되어 순식간에 저택 밖으로 사라지는 것을 올랜드는 창밖으로 조용히 바라봤다.

탁!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환호성을 작게 토했다.

“좋았어!”

죽어 나자빠졌더니 로브 놈들보다 훨씬 더 쓸모 있는 녀석이 손에 들어 왔다.

‘설마 진짜로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일 줄이야!’

윌위스를 철석같이 범인으로 지목한 그의 도움을 받는다면 계획은 무척이나 수월해질 것이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올랜드는 계획을 위해 움직였다.

* * *

지크는 그들이 새로 거처로 삼은 은신처로 돌아왔다. 근처 산에 스녹이 굴을 파 만든 것으로, 대지의 환수의 능력 덕에 은신처는 굴답지 않게 상당히 아늑했다.

일행과 인사를 나눈 뒤 지크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모포에 누웠다. 그리고 히죽히죽 웃었다.

‘앞으로 죽어라 굴러야 할 거다, 올랜드 드웨인.’

지크가 올랜드에게 얘기해준 미래는 별거 없다. 예측을 한 건 아니다. 그게 실제로 일어날 일이라고 별로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내가 올랜드에게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말이야.’

만약 지크의 계획이 맞아들어 간다면, 올랜드는 지크가 얘기해준 미래를 사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지크의 말을 믿을 명분이 생기고 그래야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라는 신분을 가진 사람을 동료로 둘 수 있으니까. 겸사겸사 자신에 대한 의심도 피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지크가 올랜드의 신뢰를 얻으려 노력하는 상황이 아닌, 올랜드가 지크의 신뢰를 얻으려 노력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난 그 와중에 정보나 캐내면서 상황을 컨트롤해야지.’

성공한다면 올랜드는 지크의 완벽한 꼭두각시가 될 것이다.

* * *

며칠 뒤, 지크는 올랜드의 방으로 다시 숨어들었다. 이번엔 방에 올랜드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카르위먼 신전에 당신에 대해 확인해봤소.”

“뭐랍니까?”

“명예 성기사가 맞다고 하더군.”

“이걸로 제 말의 신뢰가 더 올라가겠군요.”

얼마 전 이 도시에 있는 카르위먼의 신전에 지크는 부탁을 해놨다.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정하되, 올랜드에 대해서만 사실을 알려주라고. 명예 성기사의 부탁에 신전의 최고 신관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었다.

“확실히 예전보다는 믿을 만해졌지.”

“그럼 제가 말한 예측은 어떻게 됐습니까?”

“고스란히 맞았소.”

올랜드가 심각하게 말했다.

“마탑의 몇몇 가문들이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었소.”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로브와 연관된 가문이 분명 반기를 들 거라고 했지요?”

“하지만 왜 아버지에게? 둘은 같은 편이 아니었나?”

“분명 짜고 하는 일일 겁니다. 어쨌든 앞으로 제게 협력하겠다는 약속은 지키시겠지요?”

“아직 완벽히 믿음이 가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상황이 돌아간다면 믿지 않을 도리가 없지.”

올랜드가 한숨을 쉬었다.

“믿겠소.”

“잘 생각하셨습니다.”

지크는 만면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제 어떤 미래를 추측해볼까?’

그게 어떤 미래든 윌위스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미래라면 대부분은 올랜드가 이뤄줄 것이다. 지크의 신뢰와 자신의 계획을 위해서.

‘큭큭! 소원을 이뤄주는 요정을 얻은 기분이야.’

지크는 심란한 표정을 연기하고 있는 올랜드를 보며 속으로 히죽히죽 웃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