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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63화 (263/628)

제263화

“늦지 않게 왔네.”

라일라는 들고 있던 지팡이를 내렸다. 조금 전까지 그녀의 지팡이는 창문 밖을 향하고 있었다.

“잘 썼어.”

지크가 라일라에게 순간이동 아티팩트를 던져줬다.

“많이 왔어?”

“드글드글 해.”

라일라의 옆에 선 지크가 창밖을 쳐다봤다. 숙소 근처에 무장 병력이 그녀의 말대로 드글거렸다. 그들이 든 무기, 걸친 갑옷이 햇살을 반사해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짐은 다 챙겼지?”

“어제 밤에 끝내 놨어.”

“빠뜨린 건 없고?”

“내가 애야?”

라일라가 핀잔을 주며 마법 상자를 들어보였다. 이미 거기 다 집어 넣어놨다는 뜻이었다.

“그럼 이동하자.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가 없어. 조금 더 있다가는 위험한 사람들이 올지도 모르고”

두두두!

창밖으로 소란이 일었다. 숙소를 포위하고 있던 병력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숙소의 정문을 거칠게 열고 돌입하는 모습이 보였다. 얼마 안 돼 지크와 라일라가 있는 방에 돌입할 것이다.

라일라가 지팡이를 들었다. 그녀의 몸에서 마력이 흘러나와 지크와 그녀의 몸을 감쌌다. 라일라가 영창을 하며 마력을 다뤘다.

후욱!

지크와 라일라의 몸이 사라졌다. 공간에 약간 남은 잔향마저 사방으로 퍼지면 그들이 있었던 흔적은 깔끔하게 사라졌다.

콰앙!

잠시 후, 방문의 경첩이 떨어져나가며 문이 안쪽으로 날아왔다. 그리고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하지만 그들을 반긴 건 텅 빈 방 안뿐.

가구들을 뒤집어엎으며 방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어디서도 사람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동 시각, 한스와 스녹이 있는 오두막에도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하지만 그들을 맞은 건 오두막 한 구석에 뻥 뚫린 땅굴뿐이었다. 그것도 중간이 막혀있어 누구도 그들이 어디로 도망쳤는지 몰랐다.

마지막 지크 일행마저 허망하게 놓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수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도시에 알려라.”

병사들을 지휘하던 지휘관이 부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엘레나 드웨인 양을 찾았다고.”

* * *

지크 일행을 노린 일제 기습. 하지만 시민들의 불안과 불만, 그리도 도시의 병사 대다수를 동원한다는 초강수를 썼음에도 지크 일행을 잡는다는 임무에는 완전히 실패했다.

아무리 상대의 능력이 자신들의 생각보다 높았다 하더라도 실패는 실패다.

이 작전을 강행한 것이 마탑주인 윌위스 드웨인인 이상 그의 입지는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게 뻔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만큼은 윌위스에게 그런 정치적 입지 같은 것은 상관이 없었다. 멀쩡하게 돌아온 손녀의 모습에 그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앞으로 윌위스가 해결해야 할 일이 많지만, 적어도 사람들은 지금만큼은 그를 방해하지 않았다.

“드웨인 씨는 저기 안 끼시오?”

마법사 한 사람이 올랜드에게 물었다. 윌위스가 엘레나를 껴안으며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살펴보고 있었지만 그녀의 아버지인 올랜드는 몇 걸음 물러서 있던 것이다.

“아버지가 물러난 다음에 가볼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같이 살고 있으니 더 애틋하시겠죠.”

“그렇소?”

납득할 만한 말이었기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났다.

올랜드는 자리를 지키고 계속 윌위스와 엘레나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길 잠시. 약간의 한숨을 쉬고는 조용히 말했다.

“아버지가 나한테도 저러셨으면….”

나직한 한탄. 다음에 이어진 건 약간의 의문성이다.

“그런데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가 있는 건가?”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변하셨으니까 저렇겠지. 설마 저게 연기일 리 있겠어.”

그리고 올랜드는 앞으로 나갔다. 슬슬 윌위스와 엘레나의 상봉이 끝나가는 것 같으니 자신도 끼기 위해서였다.

올랜드의 중얼거림은 작았지만 그렇다고 일단 입 밖으로 내뱉은 이상 누군가는 들을 수 있다. 이번에 그의 말을 들은 이는 그와 가장 가까이 서있던 웨인이었다.

그는 올랜드의 등을 모호하게 쳐다봤다. 시선을 윌위스에게 돌렸다가 뭔가 생각이 드는 게 있는지 살짝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올랜드의 얼굴에 그가 지은 것과 비슷한 미소가 스쳐지나갔다는 걸, 그는 알지 못했다.

* * *

엘레나를 구한 것이 무척이나 기뻤지만 그것도 잠시. 윌위스는 그녀가 납치당했을 때와 그 후의 이야기를 물었다. 이젠 뒤처리를 할 시간이었다.

엘레나의 이야기를 듣고 처음 윌위스는 안도했다. 의외로 그녀가 험한 꼴을 당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뭔가 묘해졌다.

납치범들은 그녀에게 별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 그저 바깥에 나가지 못하게 할 뿐 행동에 대한 제약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마법 공부까지 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줬다고까지 했다.

그 때문인지 엘레나의 어조에도 그리 적대감은 없었다.

납치당한 엘레나가 그런 분위기를 풍기니 자연히 윌위스도 지크 일행에 대한 적대감이 조금 누그러졌다.

하지만 그뿐. 그들이 엘레나를 납치하고 자신을 농락한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계속 수색은 해야 했다.

그 때, 윌위스는 엘레나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라고?”

윌위스는 물론 다른 사람들도 크게 놀랐다. 마법사들의 도시라는 이 스누위크에도 카르위먼의 신도는 많다.

그 정도로 강대한 세력을 이루는 게 바로 카르위먼이라는 곳이다. 게다가 그곳은 명예 성기사 직위를 함부로 주지 않는다. 한데, 그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가 납치범이라니.

만약 사실이라면 이건 어떤 의미에서건 커다란 사건이다.

윌위스가 다급하게 물었다.

“그게 사실이니?”

“네. 스녹이 지크 씨에게서 받았다고 명예 성기사의 증표를 보여줬어요.”

“혹시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나니?”

“네.”

엘레나가 종이에 자신이 본 증표를 그렸다. 그림에 소양이 있는 건 아니라 자세하게 그리진 못했지만 원본을 알고 있다면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이런 모양이 확실하니?”

“네.”

자신도 놀라 몇 번을 확인한 일이기에 엘레나는 확실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윌위스가 한숨을 쉬었다. 그건 뭔가 고민이 있을 때 내뱉는 한숨이 아니라 안도의 한숨이었다. 윌위스와 같이 그림을 보았던 한 마법사가 피식 웃었다.

“가짜로군요. 그럼 그렇지. 납치범 따위가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일 리 있겠습니까?”

“네? 가짜요?”

엘레나가 눈을 끔벅였다. 윌위스가 엘레나가 그린 그림을 치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의 증표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단다. 내가 본 적이 있으니 확실해.”

엘레나가 입을 벌렸다. 자랑스럽게 보여준 스녹에게 배신감이 들었다.

하지만 엘레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무척이나 안도했다.

“역시 그렇지요.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는 정식 성기사가 되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하던데요. 그런 자가 납치 같은 무도한 짓을 할 리 없지요.”

“아무래도 아직 경험이 적은 드웨인 양을 얌전하기 만들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 모양입니다.”

“다행히 드웨인 양에게 별 험한 짓은 하지 않은 것 같지만 뭔가 나쁜 생각을 한 건 확실합니다. 반드시 잡아서 그 죄를 묻죠!”

사람들이 떠든다. 엘레나는 아무렇게나 떨어진 자신이 그린 그림을 봤다.

정말로 지크 일행이 나쁜 마음을 먹고 자신을 철저하게 속인 것일까. 그녀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 * *

엘레나가 무사히 구출되고 며칠 뒤. 올랜드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엘레나를 구출한 후 대대적인 수색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범인이 아직 잡히지 않아 아직까지 완벽히 일상으로 돌아가진 않은 상태.

엘레나의 아버지인 그도 여전히 윌위스를 도와 지크 일행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피로감을 느끼며 방에 들어온 그는 평소대로 로브를 벗고 지팡이를 두고는 촛불을 켰다.

멈칫!

뒤를 돌아본 그가 움직임을 멈췄다. 누군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침입자가 자신의 방에 침입한 것도 놀랍지만 침입자는 그가 익히 아는 자였다.

모를 수가 없었다. 지금 그들이 애타게 찾아다니고 있는 자였으니까.

“지크.”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린다. 지크가 빙긋 웃으며 일어섰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자네와 자네 동료들 때문에 그다지 잘 지내지 못했네.”

그러며 올랜드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지팡이를 흘끗 쳐다본다. 맨손으로 마법을 펼쳐야 할지 아니면 조금 늦더라도 지팡이를 잡아야 할지 계산을 했다.

하지만 지크는 손을 펼쳐 보이며 적대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오늘은 대화를 하기 위해서 온 겁니다. 싸울 생각은 없어요.”

“내 딸을 납치했던 자가 집에 몰래 숨어든 상황에 내가 그런 말을 믿을 것 같나?”

“엘레나에게 들었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라고 말이죠.”

올랜드는 코웃음을 쳤다.

“들었지. 그리고 증표랍시고 보여준 게 어디 싸구려 공방에서 만든 것 같은 조악한 가짜라는 것도 말이야.”

“그렇겠죠. 엘레나에게 보여준 건 가짜니까요.”

지크가 무언가를 던졌다. 본능적으로 잡은 올랜드가 흠칫했다. 혹시라도 자기가 잡은 것이 위험한 물건이 아닐까 얼른 바닥에 내던졌다.

다행히 해를 끼치는 물건은 아닌 모양이다. 그것은 바닥에 부딪쳐 둔탁한 소리를 냈다. 올랜드가 그것을 자세히 살폈다.

“이건…!”

당황한 그가 그것을 다시 들어 올려 촛불 빛에 자세히 비춰봤다.

“그건 분명 진품입니다만, 당신의 판단은 어떻습니까?”

“…똑같군.”

그건 분명 카르위먼이 명예 성기사에게 주는 증표였다.

“확인하셨으면 돌려주시겠습니까?”

올랜드는 지크에게 증표를 던졌다. 그리고 물었다.

“어떻게 얻었지? 그건 함부로 주는 게 아닐 텐데.”

“카르위먼이 가장 싫어하고 증오하는 적을 짓밟았죠.”

“…밸리드에게 뭔가 상당한 타격을 줬나 보군.”

그 정도 이유라면 충분히 명예 성기사의 자격을 줄 것이다. 물론 그 타격이 보통 규모가 아니라야 하겠지만.

“하지만 그것만으로 믿진 못한다. 그게 가짜일 수도 있으니까.”

“물론 이것만으로 믿어달라고 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대화를 할 정도는 되지 않겠습니까?”

올랜드는 지크를 의심스럽게 쳐다봤다. 하지만 약간의 생각을 거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단, 난 지팡이를 잡겠네. 그리고 거리는 계속 이 정도로 유지하지. 대화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테니 말이야.”

“그러도록 하시죠.”

지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올랜드는 지팡이를 잡았다. 손에 단단한 감촉이 느껴지니 조금은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 머리도 조금 전보다 더 수월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조금 전보다는 여유 있게 올랜드가 말했다.

“그럼 말해보게. 무엇 때문에 날 찾아왔는지 말이야.”

“저는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왔습니다.”

“도움?”

“그렇습니다. 얼마 전, 그러니까 엘레나가 납치된 날 성 밖에 로브를 입은 시체들이 나타났던 걸 아실 겁니다.”

“그래. 엘레나를 납치한 자들 말이지.”

그들이 엘레나를 저택에서 납치한 후 성 밖으로 데려갔고 그 후에 한스와 스녹이 그들을 전부 죽이고 엘레나를 재납치했다는 사실은 엘레나가 이미 말한 사실이었다.

“그들은 제가 쫓고 있는 자들입니다. 아주 사악하고 나쁜 자들이죠.”

“그래?”

“엘레나를 납치한 것에 대해서는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만 그건 그녀를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로브 놈들을 죽인 걸로는 안전하지 않아요. 그들은 반드시 협력자를 만들어두거든요. 그녀를 보호한 상태로 그 협력자를 찾으려 했습니다.”

“적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그럼 적어도 나나 아버지에게는 말을 했어야 하지 않았나!”

올랜드가 강하게 말했다. 그에 지크는 묵직하게 대답했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전 엘레나의 할아버지인 윌위스 드웨인 그리고 아버지인 올랜드 드웨인, 당신들 둘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뭣!”

“그리고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 협력자를 알아냈습니다.”

올랜드의 손이 꿈틀거릴 때, 지크가 말했다.

“협력자는 엘레나의 할아버지, 윌위스 드웨인이 분명합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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