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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60화 (260/628)

제260화

지크와 윌위스는 잠깐 동안 대화를 나눴다. 병문안을 온 사람이 으레 할 질문을 윌위스가 던지고 지크도 무난한 답을 낸다.

중간중간 윌위스가 살짝 떠보는 질문을 했지만 지크는 능구렁이처럼 의심될 만한 답을 내지 않았다.

진위를 파악하듯 잠시 지크를 보던 윌위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제의 소동에 대해서는 들었소?”

“재위크가에서 일어난 소동에 대해 말씀하시는군요. 네, 들었습니다. 그리고 보기도 했지요. 화광이 여기에서까지 보이더군요.”

“그래. 어제 재위크가에 침입자가 있었지. 내가 직접 나섰지만 아쉽게도 놓치고 말았소이다. 하지만 마법으로 적잖이 두들기긴 했지. 이런 말 하긴 뭐 하지만 나는 내 마법에 자신이 있소. 아무리 포션으로 치료를 했다고 해도 어느 정도 후유증이 남았을 거요.”

지크가 빙그레 웃었다.

“절 의심하시는군요.”

“실망이오?”

“전혀요. 회의에 참가하는 사람 중 로브를 입고 있던 시체들의 동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던 게 접니다. 여기서 제가 의심받는다고 화를 낸다면 제 꼴이 너무 우습지 않겠습니까? 시기가 공교로운 것도 사실이고 말이죠.”

“그렇게 생각해준다니 고맙소. 그럼 내친 김에 물어봅시다.”

윌위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당신이 어제의 침입자요?”

방 안에 묵직한 긴장감이 내려앉았다. 웨인은 당장이라도 지크를 체포하고 싶은 듯 손을 까딱거렸고 올랜드는 윌위스와 지크를 번갈아 쳐다봤다.

“아닙니다.”

지크가 대답했다.

“증명할 수 있소?”

“아쉽지만 증명할 순 없습니다. 제 동료의 증언은 증거라고 하기엔 부족할 테니까요. 하지만 그 시간대에 범인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적다고 생각합니다만.”

하늘에 빛이 사라진 야심한 시각.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에 있는 시간이니, 다른 사람들이 증언을 해주기 힘들다.

“흥! 핑계를 대는 게 아니고?”

“그럼 역으로 묻겠습니다. 제가 범인이라는 증거는 있습니까? 그저 우연찮게 소란이 인 다음 날 컨디션이 무너졌을 뿐입니다. 그리고 심증만으로 사람을 범인으로 몰 수 있다면 재위크 씨도 남 말할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뭐?”

“로브를 입은 시체들. 엘레나를 납치하려 의심되는 또 다른 세력인 그들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의심, 푸셨습니까?”

“무슨 헛소리를! 난 그 놈들과 관련이 없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힌 모르겠지만 저도 그 사건과 관련이 없습니다.”

“이, 이이…!”

들고 있는 지팡이로 지크를 후려치고 싶다는 웨인의 욕망이 절절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지크는 평온하게 그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웨인은 그게 더 꼴 보기 싫었다.

“그럼 당신은 어제의 일과 관련이 없다고 보면 되겠소?”

“그렇습니다.”

“그렇군.”

윌위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얘기 잘 들었소. 이 이상 아픈 사람을 붙들고 있는 것도 실례겠지. 몸조리 잘하시구려.”

등을 돌리려다 윌위스가 다시 지크를 쳐다봤다.

“지금 이런 말 묻기는 좀 그렇지만, 엘레나를 찾는 것에 대해서는 계속 도움을 받을 수 있겠소?”

“그건 걱정 마십시오. 내일이면 회복될 겁니다. 그럼 다시 찾아 나서야죠.”

“감사드리오.”

의문점은 모두 해결된 듯 윌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웨인이 끼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 종들은 언제 만나게 해줄 건가?”

“한스와 스녹말입니까? 며칠 안으로 돌아올 겁니다. 돌아오는 대로 회의에 데려가도록 하죠.”

그때 두고 보자는 듯 웨인은 독사 같은 눈빛을 한번 번들거리며 물러섰다.

“그만 가지.”

윌위스가 웨인과 올랜드를 데리고 방을 나갔다. 올랜드는 나가기 전 살짝 고개를 숙였지만 웨인은 지크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숙소를 나오자 웨인이 물었다. 윌위스가 고개를 돌려 지크의 방이 있음직한 곳을 쳐다봤다.

“적어도 발언에 이상한 점은 없었소.”

“하지만….”

“그러나 시기가 공교로워 의심스러운 것도 사실이지.”

웨인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요! 의심스럽죠! 이제야 마탑주님도 제 마음을 알아주시는군요!”

“그가 범인이라고 정해진 건 아니요. 하지만 조금 더 살펴볼 필요는 있는 것 같소.”

“그럼요! 그럼요!”

윌위스의 곁에 붙어 웨인이 열렬하게 동의한다. 윌위스가 지크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 무척이나 기쁜 모양이었다.

웨인은 윌위스의 옆에서 지크의 험담을 조잘조잘 늘어놨다. 그리고 뒤에서 올랜드가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 * *

윌위스와 그 무리가 방을 나가자 지크는 잠시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의 기척이 숙소에서 멀어져 가자 벌떡 일어났다.

“회복 축하해.”

라일라의 영혼 없는 축하 말이 의미 없이 들렸다.

“고마워.”

지크도 무성의하게 대꾸해준 후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 모습은 지금껏 지크가 한 말과는 달리 어디 아픈 곳 따위는 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몸을 움직이지 못해 찌뿌둥해 하는 모습이었다.

“아프고 난 다음이라 배가 고프네.”

“능청스럽긴.”

배를 쓰다듬는 지크를 보며 라일라가 야유했다. 지크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팠던 사람에게 너무한 거 아냐?”

“네가 진짜 아팠다면 나도 태도를 달리했을 거야.”

하지만 지크는 아프지 않았다. 아주 건강 그 자체였다.

지크는 침대에 털썩 앉았다. 라일라의 시선이 그를 쫓았다.

“그런데 정말로 괜찮은 거야? 얘기를 들으니 상당한 위력의 마법에 당한 건 맞는 것 같던데.”

“고작 그 정도로 후유증이 남기엔 내 몸이 너무 튼튼하거든.”

지크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윌위스 드웨인이 널 의심하는 것 같더라.”

라일라가 말했다. 사실이라면 그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어 내뱉은 라일라의 말은 정반대였다.

“네 계획대로 말이야.”

“시기가 이렇게도 공교로우면 당연히 없던 의심도 생겨나지.”

“정말로 괜찮은 거야? 이건 분명 올랜드를 돕는 일이야.”

“맞아.”

지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게 내가 의도한 거고.”

“굳이 일을 어렵게 돌아가려고 하네.”

“뭘 새삼스럽게. 원래 난 그런 놈이잖아. 착한 일은 분명히 할 거지만 과정은 내 취향대로 해야지.”

지크는 올랜드를 생각하며 웃었다. 그에 비해 라일라는 한숨을 쉬었다.

“일단 난 너를 돕는다고 했어. 그러니 네가 생각한 대로 움직일게. 하지만 엘레나의 고통은 최대한 줄여줘. 그 아이는 별 상관없잖아.”

“노력은 하겠지만 불가능하다는 건 알지? 흑막이 아버지인 만큼 사건을 아예 은폐하지 않는 이상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어. 자기가 고통 받은 이유가 아버지 때문이었고 할아버지를 몰락시키려고 했으며 엄마까지 이용한 후 죽였을지도 모르는데.”

“…그건 그렇네.”

총명한 그녀로서도 앞으로 다가올 파국을 막을 방도는 생각이 나지 않는지 고개를 안타깝게 저을 뿐이었다.

“지금 엘레나에게 해줄 만한 건 지금까지 일그러진 것들과 앞으로 일그러질 것들을 바로잡아 주는 수밖에 없어. 그러니 엘레나를 위한다면 너도 각오 단단히 해.”

지크의 진지한 말에 라일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지크는 말한 대로 다음 날 회의에 복귀했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한스와 스녹을 회의에 불러 소개시켰다.

웨인이 둘에게 날카롭게 추궁을 했지만 둘의 대답에서 별 다른 소득을 얻을 순 없었다.

여러 가지 질문을 변화시켜 유도를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애초에 둘의 대답 자체가 무척이나 단순했다.

그들은 그저 성 바깥에서 노숙을 해가며 의심스러운 지점을 찾아다녔다고 했다.

도시 주변 지형지물을 바탕으로 떠보는 시도도 했었지만 근처에서의 지형에 대해 둘은 곧잘 대답했다.

그리고 도시에서 조금 더 떨어진 지형에 대해서는 웨인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결국 웨인은 그들을 놓아줬다.

회의가 끝나고 한스와 스녹은 지크가 끌고 돌아갔다. 원하던 답을 얻지 못했지만 의외로 웨인의 표정은 덤덤했다.

그는 돌아가지 않고 윌위스와 둘이 남기를 기다렸다. 이번에도 올랜드가 같이 자리를 했지만 이젠 익숙한 듯 웨인은 올랜드를 무시하고 이야기를 했다.

“지크의 종들의 뒤를 밟읍시다.”

올랜드가 인상을 썼다.

“아까 한 질문으로 끝난 게 아니었습니까?”

“누가 고작 그런 질문 한 번으로 의심을 접는단 말이오. 어차피 대답도 딱 예상대로던데. 오히려 알아볼 건 지금부터요.”

그리고 웨인은 다시 윌위스를 쳐다봤다.

“정말로 저들이 드웨인 양을 납치했다면 분명 저 둘이 감시하고 있었을 겁니다. 지금은 의심을 피하기 위해 둘 다 데려왔지만, 곧 다시 돌려보낼 겁니다. 드웨인 양을 혼자 두기에는 불안할 테니까요. 그 때 따라붙어야 합니다.”

“사람을 붙였지만 번번이 놓쳤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미행을 할 생각입니까. 동행이라도 요구하려고요?”

다시 끼어든 올랜드에게 절로 욕설이 치밀었지만 웨인은 꾹 눌러 참고 대답했다.

“동행을 요구할 순 없지. 여러 이유를 대고 거절할 게 뻔하고, 설령 허락한다고 해도 절대로 드웨인 양에게 안내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오.”

웨인의 시선이 다시 윌위스에게 향했다.

“지금까지는 도대체 어떻게 제가 붙인 미행들의 시선을 피할까 생각을 했습니다만, 저번 침입자가 지크 그자라면 이유가 어느 정도 짐작이 됩니다.”

“투명화 아티팩트.”

윌위스가 중얼거리자 웨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미행이나 추적의 전문가라도 위대한 마법에 힘을 빌린다면 속기 쉽겠죠.”

아무래도 마법사인 만큼 여기 모인 사람들은 마법에 대해 다른 기술들보다 조금 더 과한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평가를 빼고라도 웨인의 말은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그래서 감시자로 실력 있는 마법사를 파견할 생각입니다. 녀석들이 정말로 드웨인 양을 납치했다면 놈들은 우리를 그녀에게 안내해 줄 겁니다.”

“그들에게 감시자를 붙였다고 했었지요?”

“그렇습니다.”

“아직도 붙이고 있소?”

“네.”

“그럼 그 종들이 움직일 낌새를 보인다면 내게 알려주시오.”

뜻밖의 말에 웨인이 눈을 깜박였다.

“…무슨 뜻이신지.”

“추격은 내가 하겠소.”

웨인은 물론이고 올랜드도 놀랐다.

“네? 어찌 마탑주께서 그런 일을…!”

“내 손녀의 일이오. 내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서겠소.”

윌위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게다가 저번 침입자의 아티팩트는 상당한 성능을 자랑했소이다. 바깥으로 감지되는 마력이 극히 적었지. 그 때문에 두 사람도 눈치채지 못한 게 아니오.”

웨인이 무안함에 고개를 조금 숙였고 올랜드는 얼굴을 긁적였다.

둘 다 마탑에서도 수위에 있는 마법사로서 근처의 마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두 사람을 타박할 생각은 없소. 나도 간신히 눈치 챈 것이니, 그만큼 그 아티팩트의 성능이 뛰어나다고 봐야겠지. 만약 지크 씨의 종들이 가진 것이 그것과 똑같거나 비슷하다면 다른 마법사들은 눈앞에서 놓칠 수도 있소. 확실하게 하려면 내가 직접 움직이는 게 나을 거요.”

“하지만 그래도….”

“이번 사건에 대한 여론이 슬슬 안 좋은 쪽으로 가고 있다고 알고 있소.”

스누위크의 최고 유력자의 손녀가 납치된 상황이니 거의 도시를 쑤셔대며 수색을 벌이고 있는 형편이었지만 그만큼 시민들의 피로도도 쌓이고 있었다.

지금이야 순순히 따르고 있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반발이 나올지도 모른다. 이미 물밑에서는 슬슬 그런 분위기가 풍기는 중이었다.

사람들도 자신들의 삶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무슨 일을 해서라도 이 일을 빨리 끝내야지. 그러려면 내가 직접 나서는 게 나을 거요.”

웨인도 더 이상 윌위스를 말리지 못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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