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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57화 (257/628)

제257화

“아버지, 괜찮으십니까!”

밑에서 다급한 소리가 들린다. 윌위스가 아래를 내려다보자 아들 올랜드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윌위스는 다시 시선을 정체불명의 인간이 사라진 어둠 속 도심 쪽으로 던졌다.

“괜찮다.”

그의 몸이 천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콰직!

땅에 내려서자 무언가가 부서지는 느낌이 발밑에서 올라왔다. 땅을 뒤덮은 새하얀 얼음알갱이가 밟혀 부서진 것이다.

재위크가의 마당은 어느 사이에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지금까지 불꽃과 마그마, 잿가루에 뒤덮인 지옥 같은 광경은 어디고 엷게 얼어붙은 지면에서 슬금슬금 냉기를 내뿜고 있다.

올랜드의 작품이었다. 아무래도 계속 불이 타오르고 마그마가 흐르는 지형을 내버려 둘 수 없었던 모양이다.

윌위스는 올랜드를 쳐다봤다. 그의 표정이 조금 창백한 게 보였다. 윌위스가 살짝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고작 이 정도로 안색이 변하다니.’

큰 규모의 마법이긴 하지만 올랜드는 한 학파의 대표이자 말석이라지만 마탑의 최고 열 명의 마법사 중 한 명이 아닌가.

하지만 곧 올랜드가 요새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나 분을 내리 눌렀다.

‘딸 일 때문에 무리를 하는 게지.’

무엇보다 지금은 그를 꾸짖을 자격조차 없다.

“놓쳐버렸다. 면목이 없구나.”

아들에게 씁쓸하게 그렇게 말한 윌위스는 웨인에게도 사과를 했다.

“재위크가의 마당을 엉망으로 만들었소. 내 반드시 보상을 하리다. 미안하오.”

“아, 아닙니다! 오히려 정체불명의 인간이 저희 집에 침입해 있었으니 저희 쪽의 관리 소홀입니다. 제가 사과를 드려야죠.”

올랜드만큼은 아니더라도 최근의 사건들 때문에 윌위스에게 조금 까다롭게 굴던 웨인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윌위스에게 깍듯하게 대했다. 어깃장을 놓기에는 눈앞에 보인 폐허더미가 두려웠다.

“이해해줘서 고맙소.”

윌위스는 감사를 표했다.

“어떤 놈이었습니까?”

올랜드가 지크가 도망간 곳을 보며 물었다.

“잘 모르겠구나. 하지만 심상치 않은 실력을 가진 녀석임은 틀림없다.”

‘아무리 미완성이라고는 하지만 내 마법의 약점을 꿰뚫어 와해시키다니.’

그가 정확히 마력의 흐름이 어색한 곳을 노려 마법 자체를 찢어버렸을 때는 정말로 놀랐었다. 마탑주가 된 이후로 그렇게 놀란 적은 얼마 없었다.

‘거기에 투명화 마법도 사용했었지.’

마법사의 몸놀림이 아니었으니 아마도 그건 아티팩트를 쓴 것 같았다.

“엘레나의 납치에 연관되어 있는 놈일까요?”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애초에 남의 집에서 과하게 손을 쓴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이번 사건은 더 골치 아파지겠구나.”

상대 쪽에 저런 실력자가 있다니. 윌위스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 * *

지크가 돌아왔을 때, 라일라는 지크의 방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크의 모습을 본 라일라가 무척이나 안도했다.

“걱정했냐?”

“당연하지!”

지크의 태연한 태도가 얄밉다는 듯 라일라가 조금은 거칠게 대답했다.

“네가 재위크가에 들어간 이후에 갑자기 소란이 터졌으니까!”

“뭐야, 내 능력을 의심했던 거냐?”

“평소 같으면 하지도 않아! 그런데 그곳에서 느껴지는 마법력이 상상을 초월했다고!”

‘하긴, 라일라 정도면 더 민감하게 느꼈겠지.’

본인이 뛰어난 마도사인 만큼 저택에서 느껴지는 막강한 마법력을 누구보다 더 강하게 느꼈을 것이다.

“걱정 마라. 다친 데는 다 낫고 정체도 안 들켰으니까.”

“나아? 다쳤었어?”

“죽는 줄 알았다.”

그러며 껄껄 웃는다. 하지만 라일라는 웃을 수 없었다. 지크가 저런 말을 할 정도면 그 전투의 치열함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도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거야?”

“그 전에 잠깐 자리 좀 피해주지 않을래?”

지크는 살짝 로브를 내렸다. 그의 맨살이 그대로 보였다.

“공격에 당했을 때 옷이 다 타버렸거든. 지금 입고 있는 건 이 로브 한 장이 전부라서 옷을 좀 입고 싶어. 물론 네가 내 옷 갈아입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내 기꺼이 한 겹 벗어줄 수 있….”

쾅!

지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라일라는 방문을 거칠게 닫고 나갔다. 지크는 문을 보며 웃어댔다.

* * *

“윌위스 드웨인이 있었다.”

옷을 꺼내 입은 후 다시 마주 앉은 라일라에게 지크가 가장 먼저 한 말이었다.

“윌위스 드웨인? 마탑주? 엘레나의 할아버지?”

“그래.”

“그 사람한테 걸린 거야?”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올랜드 드웨인과 함께 웨인 재위크와 애기를 나누고 있더군. 어떤 얘기인지 창틀에 매달려 엿듣고 있었는데….”

“들켰구나.”

“아무래도 투명화 마법의 아티팩트가 걸린 것 같아. 방심했지. 그 정도 수준의 마법사 곁에서 아무리 아티팩트라지만 마법 행사는 신중했어야 하는데 말이야.”

“아티팩트 때문에?”

“괜한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잠입은 어디까지나 내 판단으로 한 거니까. 상황을 얕본 것도 스누위크의 마탑주 앞에서 아티팩트를 사용한다는 오판을 한 것도 나다.”

담담하게 말한 후 지크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게다가 오히려 그 덕분에 상당한 수확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수확?”

자신 때문에 지크가 위험해졌다는 생각이 들어 잠깐 풀이 죽으려던 라일라가 물었다. 아무래도 지크의 위로 아닌 위로가 효과가 있던 모양이다.

“미래에 나 말고 마왕이 몇 더 있는 건 알지?”

“응. 모두 다 세상에 도움 1도 안 된… 아니, 하염없이 마이너스인 녀석들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어.”

지크에게 죄책감을 가지는 건 가지는 거고 평가는 평가인 모양인지 라일라의 말은 신랄하기 그지없었다. 지크도 부정하지 않았다.

“맞아. 그중 마도의 마왕을 찾았어.”

“마도의 마왕?”

라일라가 관심을 보였다. 아무래도 본인이 마법사인 만큼 마왕 중에서도 마법을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자에게 관심이 더욱 갈 수밖에 없었다.

“잠깐! 설마 윌위스 드웨인이 마도의 마왕이야?”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지금까지 모인 정보를 생각하면 쉽게 다다를 수 있는 답이다. 놀라 물은 것도 잠시, 라일라는 스스로 납득했다.

“하, 하긴. 둘 다 마법의 전문가들이니까. 마도의 마왕의 과거가 스누위크 마탑주였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지.”

그리고 자신의 추측에 대한 답변을 원하듯 라일라가 지크를 쳐다봤다.

“네 생각이 맞아. 윌위스 드웨인이 마도의 마왕이 되는 인물이야.”

“확실해?”

“마도의 마왕의 오리지널 마법을 확인했어. 분명 마도의 마왕이야.”

“그렇구나.”

지크가 확신을 갖고 말하니 라일라도 납득했다.

“손녀 걱정하는 성격 좋은 할아버지라고 생각했는데 후일 마왕이 된다니.”

그러다 그녀가 다시 놀랐다.

“잠깐! 마왕들은 전부 그렌 제너드와 그 동료들이 죽였잖아! 그렇다면…!”

“엘레나는 자기 할아버지를 죽인 게 되지.”

“…미래의 엘레나는 알고 있었을까?”

“몰라. 단, 마도의 마왕 쪽은 알고 있었을 거야. 엘레나 드웨인의 출신은 상당히 유명했으니까.”

할아버지를 죽이는 손녀라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관계다.

대체 앞으로 어떤 사건과 어떤 상황이 그들을 그렇게 몰아갔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라일라는 자신의 제자인 엘레나에게 그런 경험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바꿀 거지?”

“당연하지.”

지크가 시니컬하게 웃었다.

“마왕이라고 따로 호칭되긴 했지만 마왕도 엄연한 마인 중 하나였어. 그리고 지금 이 도시에서 로브 놈들이 발견됐지.”

“그놈들이 윌위스를 타락시키려고 하고 있던 거네.”

“뻔하지. 엘레나가 표적인 줄로만 알았는데 설마 여기서 마왕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어.”

“둘 다 표적인 걸까?”

“그럴 수도 있고.”

“그럼 빨리 로브 놈들의 협력자를 찾아내야겠네. 그놈들은 꼭 현지 협력자를 두고 있었잖아.”

“찾았어. 아마도.”

“찾았어?”

라일라가 놀라 물었다.

“적어도 엘레나를 표적으로 삼는 놈은 말이야.”

그리고 지크는 의자에서 일어나 한 쪽 벽으로 움직였다. 그의 움직임을 라일라의 눈동자가 천천히 따라간다. 지크가 벽에 기대어 세워져 있는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얼음?”

그것의 정체를 라일라가 중얼거렸다.

“맞아.”

지크는 그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그건 사람의 팔뚝만 한 크기의 얼음 송곳이었다. 마치 칼로 거칠게 깎아낸 듯 울퉁불퉁한 표면을 갖고 있었지만 송곳의 끝만은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잘못해서 손가락을 가져다댔다가는 바로 구멍이 뚫릴 것 같았다.

라일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거네?”

“역시 한눈에 알아보는군.”

지크는 다시 자기가 앉았던 의자에 앉았다.

“내가 도망칠 때 올랜드 드웨인이 쏘아 보낸 거야.”

‘거기에 올랜드 드웨인도 있었다고 했지.’

라일라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눈앞의 얼음 송곳을 손가락으로 한번 슥 쓸어봤다.

잘 만들어진 송곳이다. 내구성도 뛰어나고 냉기도 얼어붙을 듯 차갑다.

생성된 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음에도 그 형태를 무너뜨리고 있지 않은 것만 해도 마법사의 경지를 알 수 있었다.

‘다음 대 마탑주가 될 사람이니 이 정도는 당연하겠지.’

이번엔 손 전체를 얼음에 대봤다. 그리고 가볍게 마력을 주입했다.

“…어?”

라일라의 눈이 커졌다. 그 모습을 보고 지크가 씨익 웃었다.

“역시 너라면 금방 알아낼 줄 알았다.”

“잠깐! 그럼 이거 정말로…!”

라일라가 송곳을 통째로 들었다. 그리고 더더욱 마력을 뿜어 올렸다. 얼음 송곳이 마력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그 모습을 보며 지크가 입을 열었다.

“처음 엘레나의 마력이 해방되지 않은 걸 봤을 때부터 의문이었어. 그녀가 마력을 해방시키지 못한 게 외부의 조치 때문이라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조치를 한 걸까.”

라일라가 얼음 송곳에서 눈을 떼고 지크를 쳐다봤다.

“그저 앞으로 로브 놈들이 일을 진행하는 데 그녀가 마법을 깨우치지 못한 편이 유리하기 때문에 그런 조치를 취해놓은 걸까. 그렌 놈이 정말로 이 일의 원흉이 맞다면 엘레나를 자기 파티에 수월하게 맞아들이기 위해서 그런 거라는 상상도 충분히 되거든. 겸사겸사 엘레나가 다른 사람과 동료가 되는 걸 막기도 하고.”

말만 들어도 피가 거꾸로 솟는 이야기다. 만약 정말 지크의 말이 맞다면 라일라는 그렌의 얼굴을 몇 번이고 갈길 수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어. 미래를 위한 것뿐만이 아니라 그 조치 자체에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그리고 그 가능성은 노웸의 마력이 자꾸 상실되는 걸 알아차림으로서 높아졌지.”

“설마….”

“그녀의 마력, 마법력, 혹은 재능 그 자체. 그 조치는 엘레나의 그것들 일부, 혹은 전부를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 거야.”

그래서 계속적으로 노웸의 마력을 이용해 엘레나가 마법을 연습하도록 했다.

지크가 얼음 송곳을 쳐다봤다. 라일라의 시선도 그를 따랐다.

“올랜드 드웨인은 원래 별 시답잖은 마법사였다고 했지?”

“…그래. 그리고 학파를 옮기고 대성했다고 했어.”

가벼운 지크의 말과는 달리 라일라의 음성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재미있네. 그 작자는 대체 자신의 딸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건 좀 궁금하긴 하다.”

지크의 비아냥에 라일라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있는 얼음 송곳만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거기에는 정말로 살짝 스며들어 있었다. 항상 스녹, 노웸과 같이 다니던 그들만이 느낄 수 있는, 무척이나 미약한, 하지만 확실한 대지의 기운이.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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