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6화
지크와 마도의 마왕의 사이는 그 어떤 좋은 말로 포장한다고 해도 좋은 사이는 아니었다.
애초에 마왕이란 작자들이 이기주의의 끝판왕인 마인들 중에서도 최고봉인 자들이다. 서로 사이가 좋다고 하면 오히려 그게 더 기괴한 일일 것이다.
당연히 지크는 다른 마왕들과 엄청나게 많이 부딪쳤다. 단독으로 부딪친 적도 있고 정말로 모든 세력을 이끌고 총력전으로 상대를 죽이기 위해 달려든 적도 있다.
이유는 다양했다. 세력 간의 자존심 때문일 때도 있었고, 이해관계가 겹칠 때도 있었으며, 단순무식하게 그냥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럴 때도 있었다.
제3자가 본다면 ‘고작’이라고 생각할 이유로도 목숨 걸고 치고받는 일상. 그게 지크가 회귀 전 살아온 마인 시대였다.
콰아아앙!
거대한 화염이 대지를 짓누른다. 범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며 범위 밖에 있는 것들도 높은 온도에 스스로 불이 붙게 만들었다.
콰앙! 콰앙! 콰아앙!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위력을 자랑하는 화염이었지만 어처구니없게도 그것들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하늘을 뒤덮으며 쏟아져 내리는 그것은 신의 분노, 혹은 악마의 침략 같이도 보였다.
그 목표가 동물이든 식물이든 물건이든 뭐든 그 공격 앞에서 결코 형태를 남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마법의 목표인 한 인간은, 그 엄청난 공격들 속에서도 무척이나 여유 있게 움직였다.
퍼어엉!
불덩이 하나가 그의 검에 잘려 폭발한다. 고온과 압력으로 웬만한 공격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불덩이였지만 지금 날아온 검격에는 너무도 허무하게 그 형태를 잃어버렸다.
불덩이 하나를 깨뜨린 그, 지크는 검을 두 손으로 콱 쥐었다. 그의 자랑스러운 애검 토르니움이 잔잔한 검명을 터뜨렸다.
지크가 움직였다.
후웅! 후웅! 후웅!
잔상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휘둘러진 토르니움이 날카로운 검기를 토해낸다.
수십, 수백 개의 검기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하늘을 향해 달린다. 그것들이 화염과 마주쳤다.
콰콰콰콰콰쾅!
하늘에 붉은 꽃들이 피어났다. 예쁘고 화려한, 하지만 공포스럽고도 잔혹한 불꽃의 잔해들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자신에게 떨어져 내리는 불똥들을 툭툭 쳐내고 가까운 땅에 떨어진 불꽃을 과시하듯 짓밟는다. 그리고 지크는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을 새빨갛게 물들이던 화염은 전부 사라져 있었다. 대신 이제 매캐한 검은 연기가 뒤덮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사람이 공중에 떠있었다.
한눈에 음침하다는 감정이 뇌리를 흔들어버리는 시꺼먼 로브와 새빨간 보석들이 일정 간격마다 붙어있는 지팡이.
둘 다 사람의 시선을 순식간에 뺏을 수 있는 개성 넘치는 것들이었지만,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건 바로 주인의 생김새였다.
하얀 머리카락과 수염. 하지만 그것들은 사람의 얼굴에 달려 있어서 그렇게 인식할 수 있을 뿐, 사람의 체모라기보다는 반쯤 썩어빠진 거미줄 같은 이미지를 풍겼다.
쭈글쭈글한 주름과 퀭한 눈. 볼살이란 건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 같이 홀쭉 들어가 뼈에 딱 붙어 있다. 지팡이를 잡고 있는 손가락도 마치 미라 같은 모습.
전체적으로 사람 뼈에 가죽만 대충 씌워놓은 모습이었다.
아이에게 보여준다면 훌륭히 울음을 터뜨릴 만한 모습. 지크도 그의 겉모습을 무척 싫어했다.
“영감! 내가 다음에 볼 때까지 적어도 얼굴 살 정도는 찌워 놓으라고 했지? 내가 저번에 고기까지 선물로 가져다줬잖아. 언제까지 그 따위 얼굴로 살 거야?”
지크에게 영감이라 불린 그, 마도의 마왕의 눈이 불쾌하게 꿈틀댔다. 그가 붉은빛을 잃고 바싹 갈라진 입술을 움직였다. 다 쉬어 바람 빠지는 불쾌한 목소리가 울렸다.
“히드라의 독을 잔뜩 묻힌 다 썩어가는 오크 고기 말이냐. 그 따위 걸 선물이라고 내놓는 네놈의 더러운 인성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나이가 몇 갠데 아직도 반찬투정이야. 영감 얼굴을 보면 그 따위 거라도 제대로 못 먹고 사는 게 뻔한데, 뭘. 그리고 양심적으로 우리 서로 인성 어쩌고는 하지 말자고. 댁이나 나나 인성 박살난 건 한결 같잖아.”
“적어도 너보다는 낫다!”
“하하하! 요 근래 들었던 농담 중에서는 최고였어, 영감. 그렇게 안 봤는데 한 유머 하는구나?”
“네 놈이 유머라고 생각하고 싶을 뿐이겠지. 내가 아무리 썩어 빠졌어도 네 놈보다 좋은 인성을 가지고 있다는 건 사실이다. 주변 나라에 있는 인간들을 붙잡고 물어봐도 다 똑같은 소리를 할 게다!”
“착각도 이 정도면 동정심이 들 정도인데. 벌써 치매 왔어, 영감? 내 인성이 댁보다 낫다는 건 전 세계의 인간이 전부 알아!”
“치매는 네놈이 왔겠지! 어린놈이 벌써부터. 그리고 내 인성이 낫다는 건 전인간만이 아니라 저 아드로원 대수림에 있는 엘프들도 인정할 게다!”
“그럼 난 드워프도 인정한다!”
“이 세상 모든 이종족도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사라진 드래곤도 내가 낫다고 생각할 거다!”
전 세계의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인 마왕 둘의 말싸움 치고는 유치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사람이 있다고 해도 결코 비웃진 못 했을 것이다.
입에서 나오는 유치한 비난과는 다르게 그들이 만들어내는 파괴들은 그야말로 흉측하기 그지없었으니까.
콰아아앙!
마도의 마왕이 만들어낸 불길이 거대한 크레이터를 생성했다. 크레이터 중앙에는 작은 마그마의 웅덩이가 생겼다.
콰드드드득!
지크가 쏘아 보낸 검격이 바닥에 작은 협곡을 만든다. 거칠게 찢어진 모양새가 마치 커다란 거인이 억지로 지면의 틈을 찢어버린 것 같다.
“쥐새끼 같은 놈! 촐랑거리며 도망치는 폼이 네놈의 이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구나! 대체 저딴 놈이 어찌 힘의 마왕이라는 칭호를 얻었는지!”
“그런 거 붙여달란 소리 한 마디도 안 했어! 딴 놈들이 멋대로 부르는 걸 나보고 책임지라고 하는 건 어디 법이야? 뭣보다 댁이나 나나 법 같은 건 빵 먹다 떨어진 부스러기만큼이나 아무래도 좋은 것들이잖아. 그런 걸로 욕하기에는 너무 모양 빠지지 않아?”
“마왕이라는 프라이드 같은 건 전혀 없는 거냐!”
“그딴 거 키울 시간에 검이나 한 번 더 휘두르겠다!”
콰아아아앙!
둘의 공격이 다시 한 번 부딪쳤다. 허공에 검기와 화염이 춤을 추며 주변을 초토화시킨다.
“그리고 누가 도망만 다닌다는 거야, 이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쿠우우웅!
지크가 검을 휘둘렀다. 날아드는 거대한 참격. 동시에 손을 뻗어 마력을 쏟아냈다.
“크윽!”
마도의 마왕은 순간 몸을 위로 했다. 참격은 여유 있게 피할 수 있었지만 지크가 뿜어낸 마력은 그의 발치 바로 아래를 스쳤다.
게다가 그 마력은 마치 자기 스스로 의지를 가진 듯 뱀처럼 그의 다리를 옭아매려고 했다.
마도의 마왕은 급히 자신의 몸을 더 띄워 위기를 벗어났다.
‘골치 아픈 놈!’
마도의 마왕은 지크를 노려봤다. 대부분 검을 사용하는 터라 지크가 검만을 쓴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자들이 많지만 지크가 진짜 두려운 이유는 검술 때문이 아니었다.
‘터무니없는 마력량. 그리고 그 마력을 완벽하게 다룰 수 있는 컨트롤.’
하나만으로도 상대하기 힘든데 지크는 그 두 가지를 다 갖췄다. 게다가 그 둘은 서로가 서로를 완벽하게 보완해 시너지를 내는 요소다.
‘다른 것들도 평균보다 아득히 위고.’
검술, 체술, 전투 감각 등등. 아까는 힘의 마왕이 잘못 붙여졌다고 까댔지만 그는 누구보다 지크가 힘의 마왕이란 칭호를 받기 걸맞은 인물이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작 거기까지다.’
아무리 지크가 힘의 마왕이라고 불리며 마왕 중 최강이라고 평가받는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그도 마왕의 칭호를 받은 몸.
마도의 마왕이 영창을 하기 시작한다. 땅이 흔들리고 바람이 몰아치며 불꽃이 피었다.
‘이건 뭐야.’
날뛰는 지면을 보며 지크가 눈살을 찌푸렸다. 주변에서 날뛰는 바람도 솟아오른 불꽃도 심상치 않아보였다.
“뭔가 준비해둔 건 있나 보지!”
지크가 큰 소리로 물었지만 마도의 마왕은 아랑곳하지 않고 영창만을 읊었다.
만만치 않은 게 온다. 직감한 지크도 입을 꾹 다물고 주변을 돌아봤다. 이미 주변은 불과 바람과 암석에 포위된 상태.
급히 검격 몇 개를 날렸지만 그것들은 마도의 마왕 앞에서 막혔다.
“죽어라, 지크 모어!”
마도의 마왕의 마법이 발동했다.
불과 바람과 돌덩이가 날아다닌다. 하나만으로도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는 것들이 연합해서 지크에게 달려든다. 경험 많은 지크에게 있어서도 이런 마법은 보기 힘들었다.
‘삼 속성 융합이라니.’
지크는 혀를 찼다. 과연 마도의 마왕이라고 해야 할까.
애초에 속성을 세 개나 사용하는 마법사들은 손에 꼽힌다. 그리고 그런 마법사들조차도 대부분 한 개의 속성을 전문으로 쓰고 다른 두 속성은 보조에 그친다.
물론 마도의 마왕도 주로 쓰는 마법은 화염계 마법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디까지나 화염 마법을 즐겨 사용할 뿐, 다른 속성의 마법을 사용하는 게 미숙한 것이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세 속성의 마법을 모두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다 해도 융합마법을 만드는 건 얘기가 또 다르다.
속성간의 상성 문제가 가장 먼저 걸렸고, 상성이 아니라 해도 속성간의 균형을 잘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눈앞의 마법도 그랬다. 만약 바람이 강하다면 불꽃은 바람에 휩쓸려 사라질 것이다.
불꽃이 강하다면 돌덩이는 녹아내리고 바람은 불꽃의 상승기류를 못 이겨 와해될 것이다.
돌덩이가 강하다면 바람이 제대로 그것들을 날리지 못 해 위력이 죽을 것이다.
그것들의 강점이 가장 높아지고 약점은 가장 낮아지는 그 절묘한 점을 찾아야 한다.
말인 즉슨, 그 가장 낮아지는 약점을 찾는다면 의외로 이런 마법은 와해시키기 쉽기도 하다.
특히 지크 같은 강대한 마력에 뛰어난 마력 컨트롤을 자랑하는 이라면 더더욱.
‘근데 없는데?’
시각도 좋고 안목도 있으며 마력의 감각마저 높은 지크지만 이 마법의 어긋난 곳은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마법의 취약점을 찾느냐!”
마도의 마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대한 바람 속에서도 아주 잘 들리는 걸 보니 마력을 사용한 모양이다.
“그딴 건 없다! 내가 이 녀석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시간과 노력이 얼만데 그런 걸 두고 볼 것 같으냐! 처음엔 바람의 강도가 약해서 대지 속성과의 균형이 틀어졌다만, 그딴 건 해결한 지 오래다!”
‘하여간 저 영감도 말하는 거 좋아 해.’
지크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검을 고쳐 잡았다.
마도의 마왕의 마법이 옥죄어 온다. 하지만 그걸 보는 지크의 눈은 평온했다.
‘분명 약점은 보이지 않아.’
그건 인정한다. 마도의 마왕의 마법은 완성도가 무척 뛰어났다.
‘그런데 딱 그뿐이지.’
지크의 몸에서 엄청난 마력이 용솟음쳤다. 마력이 토르니움에 모인다. 지크가 눈앞의 마법을 노려봤다.
‘약점이 보이지 않으면 힘으로 때려 부수면 그만이야!’
콰아아아아앙!
지크의 검격이 엄청난 마력을 토해냈다. 하늘이 울리고 땅이 꺼질 것 같은 강맹한 위력. 그 힘 앞에 마도의 마왕의 마법이 사라졌다.
* * *
‘그래 딱 이 표정이었어.’
여간 자신만만한 마법이 아니었는지 인페르노를 깼을 때 마도의 마왕의 경악한 표정을 떠올리며 지크는 윌위스를 쳐다봤다.
그의 경악한 얼굴이 보인다. 예전 봤던 마도의 마왕의 표정이 윌위스의 표정에 겹쳐 보였다.
“어, 어찌….”
정확히 마법의 약점을 찾아 무효화시켜버린 지크를 윌위스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지크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고 바로 담장 너머로 뛰었다.
“거기 서라!”
저 멀리서 누군가 외쳤다.
‘올랜드 드웨인이군.’
곧 뒤에서 살기 어린 무언가가 날아왔다. 상당히 날카로운 일격이었지만 지금껏 윌위스를 상대한 지크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위협적인 것도 아니었다.
턱!
지크는 피하지도 않고 그것을 맨손으로 잡았다.
‘얼음 송곳.’
올랜드의 공격이었다. 그 뒤를 이어 마법 공격이 몇 개 더 날아왔다. 올랜드와 웨인의 공격이었다.
윌위스도 곧 정신을 차리고 마법을 날렸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피하고 지크는 유유히 도시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남은 건 허탈한 표정을 하고 있는 세 명의 남자와 완전히 초토화된 재위크가의 마당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