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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55화 (255/628)

제255화

“커헉!”

폭발의 범위에서 간신히 벗어난 지크의 모습은 처참했다. 온몸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진물이 흘러내린다.

아예 탄화된 곳은 부스러져 뼈까지 드러났다. 하지만 새하얘야 할 뼈조차 검게 타 있었다.

‘죽겠네.’

지크는 급히 포션을 들이켰다. 고통이 사라졌다. 역시 카르위먼 표 최상위 포션은 그 약발이 달랐다.

‘아, 갑자기 루벨라가 겁나 보고 싶네.’

그녀가 있다면 이 정도의 상처도 금방 치료해줄 것이다.

평소에는 좀비 메이커 취급을 하는 루벨라가 그리워질 정도로 윌위스의 공격은 무지막지했다.

‘일단 지금의 라일라는 비교가 안 되겠군.’

물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다면 라일라가 충분히 따라잡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누가 봐도 윌위스가 위였다.

그러나 지크가 그런, 반쯤 도피성 생각을 하는 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후웅!

불덩이들이 다시 지크를 노렸다. 지크는 얼른 새로운 로브를 꺼내 몸을 가렸다. 그가 입고 있던 로브는 물론 옷까지 전부 한줌의 재가 된 상태였다.

그나마 마법 상자를 지키는 게 고작이었다. 다행히 폭발 때문에 일어난 먼지가 시야를 가리고 있어 지크의 얼굴이 노출되진 않았다.

콰앙!

지크가 있던 곳에 불덩이가 다시 틀어박혔다.

‘정면 승부는 피해야겠어.’

불덩이 하나를 깨뜨리는 것만으로도 목숨이 날아갈 뻔했다. 여기서 다시 정면승부를 택하는 건 머저리 짓이었다.

지크는 뒤쪽에서 오는 불덩어리를 다시 피했다. 하지만 계속 피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불덩이의 속도도 빠른데다가 숫자도 한두 개가 아닌 것이다.

스윽!

지크는 단도 몇 개를 꺼내 공중에 떠 있는 윌위스에게 집어던졌다. 하지만 윌위스 주변에 아직 남아있는 불덩이가 움직여 윌위스의 앞을 가로막았다.

화르륵!

불덩이에 가로 막힌 단도들이 급속도로 녹아내리는 게 보였다.

‘공방일체의 마법이군. 어설픈 공격 따위로는 흠집조차 나지 않겠어.’

상황이 조금 더 암울해졌다. 하지만 본격적인 공격은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울! 크로! 신! 윈! 클! 워엔!”

윌위스가 영창을 시작했다.

‘여기에 마법을 더 추가하겠다고? 너무하네, 진짜!’

혹시 영창 중에는 불덩이들의 움직임이 멈추거나 적어도 굼뜨게 되지 않을까 희망을 품었지만 부질없는 희망이었다.

불덩이들은 여전히 날쌘 움직임을 보이며 지크를 덮쳐댔다.

스윽! 스윽! 스윽! 스윽!

허공에서 새로울 불덩이들이 생성된다. 그것들의 크기는 지크를 실시간으로 덮치고 있는 불덩이들에 비하면 무척 작았다. 고작해야 성인 주먹만 한 크기였다.

그러나 안심할 순 없었다. 크기가 작은 대신, 그 작은 불덩이들은 그야말로 엄청난 숫자를 자랑했다. 말 그대로 하늘이 새빨갛게 물들었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아, 제발. 내가 생각하는 그게 아니라고 해 줘.’

하지만 적어도 이 전투가 시작된 후 희망이란 존재는 지크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었다.

후웅!

윌위스의 지팡이의 움직임과 함께 하늘을 물들이고 있는 작은 불덩이들이 일제히 땅으로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그건 멀리서 보면 무척이나 아름다운 광경일 것이다. 하늘에서 아름답게 선을 그리는 유성처럼 혹은 지상으로 내려앉는 커다란 반딧불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크에게 있어 그 광경은 욕설을 몇 시간 동안 때려 박아도 시원찮을 빌어먹을 광경이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충돌음과 폭발음이 정말로 쉬지 않고 생겨났다. 지면에서 붉은 섬광이 마치 수명 짧은 붉은 꽃처럼 수없이 피어났다가 사라졌다.

이미 재위크 저택의 정원은 상식적인 판단만 할 수 있다면 도저히 정원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초토화됐다.

폐허도 아니다. 땅이 녹아내려 작은 마그마의 호수까지 생성된 그곳은 인세에 강림한 지옥의 전초기지 같았다.

콰앙!

마지막 불덩이가 내리꽂히고 마법이 끝났다.

“…살아있을 것 같소?”

저택에서 윌위스가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 마법쇼를 보던 웨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정체불명의 침입자가 저 가공할 마법 아래에서 살아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그건 올랜드도 다르지 않았다. 그의 눈이 초토화된 정원에 머물렀다가 아직 공중에 떠있는 자신의 아버지를 쳐다봤다.

평소에 마탑의 주인이란 의식을 가지고 최대한 온건하게 학파들을 조율하던 자가 윌위스다.

엘레나의 교육을 두고 올랜드와 자주 충돌을 하기도 했지만 갈등이 심해져 봐야 잠깐 큰소리가 난 정도다.

때문에 사람들은 윌위스가 편해지고 나쁜 말로 만만해졌을지도 모른다. 그가 대단한 마법사인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꽤 오랫동안 직접 실력 행사를 하는 모습을 보지는 못 했으니까.

그러나 눈앞의 광경을 보고 그들은 윌위스란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새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스누위크 마탑의 마스터. 마탑 최고최강의 마법사. 과거 ‘지옥을 강림시키는 악마의 대리인’이라고까지 불린 화염계 최강 마법 구사자.

윌위스 드웨인이란 마법사의 힘을.

하지만 뒤에 있는 두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상관없이 윌위스는 조용히 자신이 만들어 놓은 참혹한 현장을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가 적을 찾는다.

퍼엉!

땅이 폭발했다. 모락모락 연기가 나는 흙덩이들이 사방으로 퍼졌다. 꽤 깊게 뚫린 구멍에서 지크가 기어 나왔다.

“죽는 줄 알았네!”

그건 정말로 농담기 하나 없는, 지크의 진심이었다.

“…놀랍군.”

윌위스가 감탄어린 어조로 말했다.

“이 정도면 아마도 아슬아슬하게 살아있을 거라고 추측은 했다만, 설마 움직일 수도 있을 줄이야.”

“거의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이 빌어먹을 영감탱이!”

정말로 카르위먼에게 감사의 선물이라도 듬뿍 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말했잖느냐. 설마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다고. 내 예상으로 너는 온몸이 불에 타서 말 그대로 숨만 붙어 있었어야 했거든.”

그 모습에 지크가 알던, 엘레나의 미래를 걱정하며 고뇌하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일절 찾을 수 없었다. 그것이 바로 적을 상대하는 마도사로서의 윌위스 드웨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공격을 네가 버텼으니 나도 조금은 더 위력적인 마법을 사용해야겠지.”

다시 윌위스의 지팡이에 마력이 모인다.

“이번 마법은 나도 만든 지 얼마 안 된 마법이다. 어떻게 보면 실험적인 마법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적어도 방금 사용한 마법보다는 위력이 괜찮을 거다.”

“내 사지만 짓뭉개서 정보를 토해내게 만든다고 하지 않았어?”

“싸우다보니 알겠더군. 네가 꽤 재주가 많은 놈이라는 걸 말이다.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있는 마법이다만 아직은 미완성이야. 너 정도면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윌위스가 뿜어내는 마력이 말 그대로 주변을 휩쓸었다.

“내가 했던 죽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들어준 것에 대해선 감사를 표하지. 그러니 한 번만 더 부탁하마.”

쿠쿠쿠쿠쿵!

땅이 흔들리고.

후우우우웅!

바람이 분다. 그리고.

화르르르륵!

불꽃이 타오른다.

“이번에도 죽지 마라.”

그 말을 끝으로 윌위스가 다시 영창을 외기 시작했다.

라일라의 영창 속도에도 결코 뒤지 않는, 무척이나 빠른 속도. 혀를 몇 번 깨물 만도 하건만 그러긴커녕 쓸데없이 발음까지 좋았다.

주변의 이상 현상이 더욱 강해졌다. 불꽃은 더욱 커졌고 바람은 더욱 강해졌으며 대지의 흔들림은 심해졌다.

‘삼 속성 융합 마법이군.’

정말로 별짓을 다 한다. 문제는 그 별짓이 지크에게 심각한 위협이라는 것이었다.

‘어라? 그런데 이 마법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여유 있게 고민을 할 시간은 아니다. 주변 마력의 저릿거림만으로도 지금부터 날아올 마법이 보통 마법이 아님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머리 한구석이 계속 간질거렸다.

‘어디서 본 마법이지?’

윌위스는 본인이 직접 개발한 마법이라고 했다. 마법사, 그것도 마탑주까지 맡은 마법사가 마법에 대해 거짓말을 하진 않을 터.

따라서 지크가 이 마법을 알고 있다면, 그건 아마도 회귀 전에 알게 됐을 것이다.

‘근데 회귀 전에 윌위스 드웨인을 만난 적은 없는데.’

애초에 지크가 마탑과 본격적으로 맞붙기 시작했을 때 마탑주는 올랜드 드웨인이 맡고 있었다.

‘설마 아버지의 마법이라고 올랜드가 사용했었나?’

하지만 지크가 알기로 당시 마탑주의 마법은 빙결 계통의 마법이었다. 그건 엘레나의 말과도 일치했다.

‘그럼 대체….’

하지만 더 이상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윌위스의 영창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마법이 펼쳐졌다.

지금까지 지크는 윌위스의 마법을 지옥의 불길과 비교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마법에 비하면 지금까지 윌위스가 펼쳤던 마법은 지옥 축에도 끼지 못했다.

불꽃이 춤을 춘다. 강대한 열기가 품은 불꽃은 접촉한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릴 것처럼 격정적으로 움직였다.

그 불꽃을 바람이 돕는다. 불꽃과 손을 잡은 바람이 불꽃과 열기를 온 사방으로 퍼트리며 거대한 불꽃의 회오리를 만들었다.

거기에 대지가 끼어들었다. 흙과 암석들이 솟아올라 미친 듯 불어제끼는 바람에 제 몸을 맡기고는 불꽃과 섞여 휘몰아친다.

고작해야 인간 하나 쓰러트리려 발동한 것 치고는 마법의 규모가 너무도 크다. 웬만한 병력 집단에게 사용해도 우습게 쓸어버릴 것 같다.

‘징글징글한 영감 같으니!’

하지만 이 마법을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떠나지 않는다. 불과 바람과 땅의 결합. 마치 진짜로 지옥을 펼쳐 놓은 것 같은 광경.

‘…지옥?’

순간 지크의 뇌리에 섬광이 일었다.

‘인페르노!’

이 마법의 이름이다. 이름이 떠오르자 연쇄적으로 다른 기억들까지 떠올랐다.

이 마법을 언제 봤는지, 이 마법의 위력이 어땠는지, 이 마법을 사용한 자가 누구였는지까지.

‘하하! 설마 저 영감이 그 녀석이었어?’

지크는 웃었다. 이런 곳에서 설마 회귀 전의 인연을 만나다니. 지크는 공중에 떠 있는 윌위스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공통점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지크가 아는 그 인물은 뼈에 살가죽만 붙어 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비쩍 마르고 볼품없게 생긴 작자였다. 하지만 회귀 전 그 인간을 무시한 사람은 없었다.

그 깡마른 몸에서 터져 나오는 화력만큼은 말 그대로 절대라는 표현을 써도 될 정도로 강대한 인간이었으니까.

‘마도의 마왕!’

지크와 같이 마인시대의 정점에 올랐던 인물. 마법에 관해서만큼은 용사 파티의 일원이었던 엘레나 드웨인조차도 범접하지 못했던 인물. 그게 바로 마도의 마왕이다.

‘잠깐! 그런데 마도의 마왕과 엘레나 드웨인이 조손관계였다고?’

이건 지크도 놀랄 만한 정보다.

‘분명 마도의 마왕은 그렌 제너드와 그 동료들이 죽였다고 들었는데.’

그리고 그 동료 중에 분명 엘레나 드웨인도 있었다.

‘자기 할아버지를 죽였다는 건가.’

하지만 지크는 곧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회귀 전 마도의 마왕은 지크와 같이 마왕 칭호를 받은 사람 중 하나다. 그 행각은 지크와 비견될 정도로 악질이었다.

‘뭐, 당시 엘레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겠지.’

그리고 그건 어디까지나 회귀 전의 이야기.

‘윌위스 드웨인이 마도의 마왕이라면 로브 놈들의 협력 용의자에서는 제외해야겠군. 오히려 저 영감이 로브 놈들의 표적이었을 테니까.’

로브 놈들의 계획을 모조리 짓밟아버릴 생각이니 윌위스가 마인으로 타락해 마도의 마왕이 되는 일도, 엘레나가 할아버지와 싸우는 비극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라일라가 아끼는 제자이니 그 정도는 해줘야지.’

하지만 그것도 일단 여기서 살아나가야 한다.

‘다른 마법이라면 더 골치 아팠겠지만 인페르노라 다행이야.’

지크는 이 마법의 완성형에 당해 본 적이 있다. 때문에 그 위력에 대해서는 절절히 안다.

‘그리고 약점도 말이야.’

지크는 검을 고쳐 쥐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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