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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54화 (254/628)

제254화

‘재미있는 조합이군.’

전부 지크와 관계가 있는 자들이다. 윌위스와 올랜드는 엘레나의 가족이었고 웨인과는 악연으로 뭉쳐 있다.

지크는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였다.

“그러니까 당신의 이야기는 지크, 그자가 수상하다는 것이구려.”

“그렇습니다.”

‘왜 모여 있나 했더니.’

아무래도 지크에 대한 욕을 하기 위해 웨인이 윌위스와 올랜드를 초대한 모양이었다.

‘응? 웨인 재위크는 윌위스는 몰라도 올랜드와는 사이가 안 좋지 않았나?’

지크의 의문은 곧 밝혀졌다.

“고작 그런 말을 하려고 아버지를 부른 겁니까?”

“…드웨인 씨. 전 당신을 초대한 기억이 없습니다만.”

“아들이 아버지의 시중을 드는 게 이상한 건 아니죠. 게다가 엘레나의 일에 대해 말을 한다고 들었는데요. 그렇다면 저도 훌륭한 당사자 아니겠습니까.”

웨인의 얼굴에 짜증스러움이 드러났지만 그 이상 말을 하진 않았다. 여기서 올랜드를 쫓아낼 수는 있지만 그건 절대 좋은 수단이 아니었다.

‘억지로 쫓아왔군.’

지금의 대화로 지크는 상황을 확실히 이해했다.

“어쨌든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마탑주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웨인은 올랜드를 무시하고 얘기를 강행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올랜드도 가만히 있으려고 여기까지 따라온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설마 근거라는 게 아까 말한 비약은 아니겠죠.”

“비약이라니! 수상한 건 확실하지 않소!”

올랜드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따지면 거기 있던 사람들 중에 의심스럽지 않은 자들은 없습니다! 전부 다 비밀리에 인원 몇 명 정도 동원하는 건 우습지도 않죠. 당신 말에 따르면 우리 모두가 그 짓을 할 수 있단 말입니다!”

‘음! 음!’

지크는 창가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만 있다면 올랜드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물론 엘레나를 납치한 건 내가 맞지만.’

“차라리 당신이 지크 씨에 대한 원한 때문에 억지로 이 일을 밀어붙인단 게 더 설득력 있소!”

“뭐…!”

성질 더러운 웨인답게 큰소리를 내려 했다. 하지만 평소라면 흥분해서 길길이 날뛰어야 할 그가 어쩐지 이번엔 분을 내리누르는 모습을 보였다.

‘어라? 의외인데?’

지크가 제법 놀랐다. 올랜드도 마찬가지인지 뭔가 김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웨인이 큰 소리를 내면 같이 목청을 높일 셈이었던 모양이다.

“솔직히 내가 그놈을 싫어하는 건 맞소. 인정하지. 하지만 녀석의 하인이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오. 간간이 얼굴을 비치는 하인 놈을 한번 미행시켰었는데, 그자의 행적을 번번이 놓쳤소.”

“그것만으로 그를 의심한단 말입니까?”

“신분을 알 수 없는 떠돌이. 그리고 엘레나를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친분까지 있지. 그거 알고 있소? 의외로 납치는 안면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주 일어난다오.”

“그것만으로 의심할 수는 없죠.”

“뭐, 그렇긴 하지.”

웨인이 긍정하자 올랜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쨌든 난 그 작자를 분명 의심하고 있소. 그리고 이번에 그 자의 하인들을 불러들일 때 직접 확인할 거요. 그들에게 정보를 캐내든 더욱 뛰어난 미행을 붙이든 해서 말이오.”

웨인의 목소리에는 굳은 확신이 머물러 있었다. 지크도 확신했다.

‘저 녀석, 우리가 엘레나를 납치한 걸 알고 있어.’

저걸 들은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였다.

“마탑주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웨인이 윌위스를 보며 물었다. 뉘앙스가 그의 말에 동조를 해줬으면 하는 게 분명했다.

‘아니, 그것보다 조금 더 묘한데?’

저 태도는 동조를 원하는 것보다는 상대의 마음을 떠보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설마 웨인 재위크는 윌위스 드웨인이 자기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지크가 대화를 자세하게 듣기 위해 방 안으로 고개를 조금 더 들이밀었을 때였다.

스윽.

윌위스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이 창밖을 쳐다봤다.

‘뭐가 있나?’

지크가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창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다시 방 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윌위스의 시선은 계속 창밖을 향하고 있었다.

‘…아니.’

지크의 등에 식은땀이 맺혔다.

‘저건 창밖을 보고 있는 게 아냐.’

벽에 발을 대 힘 있게 밀어 뒤로 뛰어내린다. 지크의 몸이 창문에서 멀어졌다. 윌위스의 눈동자가 조금 움직였다.

‘날 보고 있는 거야!’

콰아아아앙!

순간 지금껏 지크가 매달려 있던 창문을 통째로 불태우며 불기둥이 쏘아졌다. 자신의 얼굴 바로 앞으로 스치고 간 불기둥에 온 몸이 화끈거렸다.

탓!

지크는 지면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빠르게 움직였다.

‘튄다.’

정보도 얻었고 이곳은 적의 홈그라운드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윌위스 드웨인. 지금 내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냐.’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지크가 몸을 틀었다.

콰아아앙!

그가 있던 자리에 불덩이가 내리 꽂혔다. 거대한 구덩이가 새까맣게 파였다.

‘칫! 더럽게 빠르네!’

그래도 담장이 바로 앞이다. 이대로 도시에 들어가면 윌위스도 제대로 공격하지 못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의도는 막혔다.

화르르르륵!

불타오르는 벽. 그건 마치 현세와 지옥을 나누는 악마의 겁화 같았다. 사람 키의 다섯 배는 더 커다란 벽이 담장 앞에서 샘솟 지크의 퇴로를 틀어막았다.

“…젠장.”

여기서는 지크도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 가지 않아도 엄청난 열기가 느껴진다.

불의 벽에 직접적으로 닿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주변 풀과 나무들이 뿌연 연기를 내며 타들어가고 있었다.

지크는 발치에 있는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불의 벽에 던져봤다.

퍼엉!

벽에 닿기도 전에 불이 붙은 나뭇가지는 불의 벽에 들어가자마자 새까만 잔해가 되어 뿔뿔이 흩어졌다.

‘우격다짐으로 뚫고 가기도 힘들겠군.’

위로 뛰어넘어 볼까도 생각했지만 분명 그걸 시도하는 순간 뒤에서 공격이 들어올 것이다.

‘그건 막기 힘들겠지.’

지크는 한숨을 낮게 쉬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고개를 들었다.

지금은 새까만 어둠이 활개를 치는 시간이다. 오늘은 날씨가 흐려 달과 별조차 뜨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지크의 근처는 마치 대낮이라도 된 듯 환했다.

지크와 조금 떨어진 곳의 허공. 그 곳에 엄청난 불덩이 십수 개가 떠돌아다녔다.

그것도 그냥 불덩이가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사람 덩치의 두세 배에 달했다.

마치 하늘에 태양 십수 개가 등장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중앙. 마치 태양을 거느린 신의 화신처럼, 그가 공중에 떠 있었다.

“솔직히 헷갈렸다.”

그, 윌위스가 말했다.

“뭔가 마법적 기운이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딱 이거다 하는 느낌은 없었거든. 한데 설마 쥐새끼가 숨어들어 있었을 줄이야.”

‘마법적 기운이라니. 아티팩트 때문에 들킨 건가. 마법적 기운은 최대한 은폐했을 텐데.’

과연 마탑의 주인. 현 세대 최고의 마법사라고 일컬어지는 자답다고 해야 할까.

지금껏 지크의 잠입을 든든하게 지원해준 투명화 아티팩트가 발목을 잡을 줄이야.

“그 같잖은 마법을 풀어라. 어차피 더 이상 내게 통하지 않는다.”

지크는 순순히 마법을 풀었다. 윌위스가 마법적 기운으로 자신을 포착하기 시작한 이상 투명화 마법은 오히려 상황을 불리하게 만들 뿐이었다.

다만 로브를 걸쳐서 얼굴을 가렸다. 지금 윌위스에게 자신의 정체를 가르쳐줄 생각은 없었다.

로브를 쓴 지크의 모습이 드러나자 윌위스가 싸늘하게 명령했다.

“두건도 벗어라.”

“그건 싫은데.”

목소리를 착 깔아 바꾼다. 윌위스의 얼굴이 더욱 냉막해졌다.

“순순히 말에 따르는 게 좋을 거다. 잿더미가 되기 싫으면 말이다.”

“두 개 다 거절하겠어. 두건도 안 벗을 거고 잿더미도 되지 않을 거야. 참고로 정체도 안 알려줄 거고 잡히지도 않을 거다.”

윌위스는 기가 찼다. 이래봬도 온갖 경험을 해 본 그다. 많은 전투를 경험했었고 암살 시도도 당해봤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앞에서 이렇게 대꾸를 한 사람은 없었다. 허세를 부리는 인간들이 더러 있었지만 그 몸과 목소리만큼은 정직했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정체 모를 놈은 정말로 무례하도록 자신감이 넘쳤다.

“…뭐, 좋다. 네 얼굴의 확인은 네 사지를 태운 후에 하기로 하지.”

윌위스의 목소리는 그의 마법과는 다르게 당장이라도 주변을 냉기로 얼려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전에 하나만 묻겠다. 네놈, 엘레나의 납치와 관련이 있는 녀석이냐.”

지크는 어깨를 으쓱였다.

“몰라.”

“그래.”

윌위스가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그럼 본격적인 질문도 뒤로 미루마. 하지만 내 부탁하건데 죽지 말아라. 네놈에게 듣고 싶은 것이 아주 많으니까.”

윌위스의 주변에서 있던 불덩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크도 윈두르를 꺼내들었다. 이미 윈두르는 그 형태를 평범한 대검으로 바꾼 후였다.

후웅!

불덩이들이 덮쳐왔다.

“쯧!”

지크는 윈두르를 곧추세웠다. 아직 불덩이들은 제대로 접근조차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온몸이 화끈거렸다.

‘누가 엘레나의 할아버지 아니랄까봐 쓰는 기술도 비슷하네!’

마치 하늘에서 오만한 인간을 향해 떨어지는 신의 심판처럼 불덩이들이 지크의 위쪽에서 무차별적으로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재위크 저택의 마당이 말 그대로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땅바닥에 떨어진 불덩이들은 엄청난 규모의 폭발과 함께 크레이터를 만들어내며 지면을 태웠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지만 불덩이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면에 박힌 태양처럼 주변 것들을 모조리 불살라버리면서 지크를 따라 이동했다.

“젠장!”

지크가 검에 마력을 듬뿍 실었다. 윈두르의 힘이 지크의 마력을 강화했다.

“하아아아앗!”

평소에 여유 있는 모습이 지금은 일절 보이지 않는다. 지크가 온몸에 힘을 듬뿍 담아 윈두르를 휘두르자 마력의 칼날이 쏘아졌다.

콰드드득!

가장 앞서 오는 불덩이에 지크가 쏘아 보낸 마력의 칼날이 틀어박혔다. 평소라면 지크의 공격이 불덩이를 가볍게 잘라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퍼엉!

박살난 건 지크의 공격이었다. 불덩이의 온도와 압력을 마력의 칼날이 뚫지 못 한 것이다.

“…우라질!”

여기엔 지크도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크의 생각이야 상관없다는 듯 불덩이는 지크를 향해 무식하게 밀고 들어 왔다.

“흡!”

지크가 호흡을 깊게 들이 마쉬었다. 지면을 거세게 밟고 다시 한 번 검에 마력을 집중시킨다.

어느새 불덩이는 지크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크으으으으!”

온몸이 화끈거렸다. 로브에 불이 붙고 몸이 타들어간다. 하지만 지크는 중요 부위에 마력을 가득 넣고 버텼다. 온몸을 방어할 순 없었다. 그렇다면 뚫린다.

“하아아아앗!”

지크가 불덩이를 윈두르로 찔렀다.

푸욱!

엄청난 반발감이 느껴졌지만 결국 지크는 불덩이 하나에 검을 찔러 넣을 수 있었다. 그대로 검신 밖으로 마력을 폭파시켰다.

콰아아아아앙!

지금의 폭발은 장난이었다는 듯한 폭발이 주변을 덮쳤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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