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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53화 (253/628)

제253화

“자, 추측을 한번 해보자고. 엘레나는 분명 재능이 있어. 그것도 엄청나게 끝내주는 재능이. 하지만 아직 마력조차 개화시키지 못했지. 뭔가 외부적인 조치가 있는 게 분명해. 그런데 그녀가 노웸의 마력을 이용한 순간, 그 때문에 우리가 그녀의 몸에 뭔가 이상함이 있다고 알게 된 순간, 급작스럽게 사건이 시작됐어.”

“그리고 엘레나가 노웸의 마력을 이용해 마법 수련을 하자 그걸 느끼고 우릴 감시하기 시작했단 말이지?”

“바로 그거지.”

“흑막이 엘레나의 몸에 노웸의 마력이 흐르는 걸 느낄 수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네.”

“엘레나가 여지껏 마력을 쓰지 못하게 조치를 한 놈이야.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던 라일라의 몸이 순간 멈칫했다.

“잠깐. 흑막이 우리를 특정할 수 있다는 건 우리가 노웸의 마력으로 엘레나를 교육시켰다는 걸 알고 있다는 소린데….”

“너도 떠오르는 사람이 있지?”

라일라의 눈이 깊어졌다.

“…윌위스 드웨인. 그리고 올랜드 드웨인.”

엘레나의 몸에 뭔가 이상이 있는 것 같다. 그걸 해결하면 엘레나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크가 그 사실을 알린 단 두 사람이다. 엘레나의 가족이니 그들은 당연히 알 권리가 있었다.

“물론 그 둘이 아닐 수도 있어. 우리가 엘레나를 가르치는 건 유명한 일이었으니까 충분히 추론 가능한 영역이야. 하지만 그 둘이 더 의심스러운 것도 사실이지.”

라일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크가 그 둘을 계속해서 의심하는 것을 보면서도 그 둘이 흑막이 아니라면 좋겠다고 계속 생각했었다.

‘엘레나에게 큰 상처가 될 텐데.’

그렇다고 내버려둘 순 없다. 엘레나에게 마력을 쓸 수 없도록 한 자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을 거라곤 생각할 수 없다.

“이젠 어쩔 거야?”

“당분간은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지크는 창밖을 내다봤다. 그리고 미행인들이 숨어 있는 곳을 살짝 쳐다봤다.

“내가 엘레나를 찾아가지 않는다면 분명 뭔가 움직임이 있을 테니까.”

* * *

“그러고 보니 자네, 종들은 어쨌지?”

드웨인 저택에 모여 하는, 이제는 거의 정기적이 되어버린 회의에서 웨인이 물은 말이다.

지크가 그를 쳐다봤다.

“제 종들 말입니까?”

“그래. 자네가 종이라 칭하는 사람 둘을 데리고 있는 걸로 알고 있네. 한데 그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던데.”

“이봐. 이제 좀….”

또다시 웨인이 시비를 거는 게 아닌가 싶어 옆의 동료가 말렸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게 그도 웨인의 행동에 상당히 짜증이 난 것 같았다.

하지만 웨인은 흥분하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시비 거는 게 아니네. 아무리 나라도 지금 와서까지 시비를 걸진 않아. 이건 어디까지나 의문이야.”

“음.”

말리던 동료가 조금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면서도 말리던 걸 멈췄다. 웨인이 계속 지크에게 질문을 이었다.

“자네와 자네 동료, 라일라 양이라고 했던가? 어쨌든 둘은 참 열심히 도시를 뒤지고 있는 것 같더군. 하지만 자네의 종들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아. 그나마 한 명은 얼굴을 내미는 것 같지만 다른 한 명은 전혀 얼굴을 비치지 않더군.”

“꽤 잘 알고 계시는군요. 뒤라도 밟았습니까?”

“뒤를 밟다니. 그 무슨 무서운 소리란 말인가. 난 그저 조금 더 세심한 조사를 했을 뿐이네. 자네도 말하지 않았나. 이 자리에 그 로브를 쓴 시체들의 동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건 그렇죠.”

“그 말은 곧 이 자리에 드웨인 양을 납치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 아닌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지크가 웨인을 쳐다봤다. 웨인은 능청스럽게 계속 말했다.

“여기에 시체 즉, 엘레나를 납치하려던 것 같은 용의자들의 동료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면, 엘레나를 납치한 본인이나 동료도 있을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네.”

“무척이나 비약적인 이야기입니다만,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죠. 한데 그건 본인에게도 고스란히 돌아올 말인 건 아시겠죠?”

“당연하지. 자네도 날 얼마든지 조사해도 되네. 하지만 그 전에, 자네의 종들이 어디 있는지, 왜 자네 근처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지 물어봐도 되겠나?”

마치 쥐를 구석으로 몰아넣는 독사처럼 웨인이 눈을 번뜩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내 부하 중에 우려를 표하는 녀석이 있어서 말이야. 자네가 드웨인 양을 납치하고 어디다 가둬 놓은 후, 자네의 종들을 시켜 감시를 하고 있다고 말이야. 그렇다면 자네 종들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한 명은 드웨인 양을 감시하고 한 명은 그 연락을 맡는다. 그렇게 볼 수도 있지 않겠나.”

“그렇군요.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웨인이 눈을 꿈틀거렸다.

능글맞게 말하는 지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준다니 다행이군. 그럼 자네의 종이 어디서 어떤 일을 하는지 말해줄 수 있겠나?”

“녀석들은 도시 바깥을 수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발견이 안 됐을 것 같군요.”

“도시에 단 한 번도 들어오지 않고 말인가?”

“아시는 대로 저희는 여행자입니다. 노숙엔 이골이 났죠. 괜히 도시를 왔다 갔다 하면서 시간을 소비하느니 아예 성 바깥에서 취사를 하며 엘레나를 찾고 있습니다.”

지크는 앞에 있는 찻잔을 들어 느긋하게 차 한 모금을 마셨다. 그리고 웨인에게 미소 지었다.

“답이 되었습니까?”

“그렇네.”

웨인도 마주 미소 지었다.

“자네의 말이 사실이라면 말이야.”

“아쉽게도 이 이상 제 무죄를 주장할 방법이 없군요.”

“그렇다면 자네의 종들을 만나게 해줄 순 없겠나?”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 드리죠.”

둘의 미소가 마주쳤다.

그 기묘한 압력에 사람들이 침을 삼켰다. 하지만 웨인의 말이 어느 정도 먹혀들었는지 지크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미심쩍음이 머물렀다.

애초에 지크는 외부인이다. 지크와 웨인, 둘 중 한 명의 말을 믿어야 한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웨인의 말을 믿을 것이다.

그러나 지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눈앞의 웨인에게만 초점을 맞췄다.

‘잡았다!’

* * *

“웨인 재위크가 수상하다고?”

“그래.”

숙소로 돌아온 지크는 바로 라일라에게 오늘 있던 일을 말했다.

“미행해도 뭔가 나오는 게 없으니 정면으로 압박하는 거야. 아들놈도 로브 놈들과 관련이 있던 것 같으니 더 수상하지.”

“그럼 그 자가 흑막인가?”

“그건 조사를 해 봐야지. 내게 악감정이 듬뿍 있는 웨인 재위크를 통해 찔러보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어쨌든 웨인 재위크에게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는 건 확실하네. 어떻게 할 거야?”

“본인이 의심해달라잖아. 그럼 확인해야지.”

지크는 아티팩트 하나를 꺼냈다. 그건 예전에 꽤 덕을 봤었던 투명화 아티팩트다.

지크는 창밖을 쳐다봤다. 그곳엔 얼마 전부터 그랬듯 미행인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내 알리바이는 저 녀석들이 증명해줄 테니까.”

지크가 악동 같은 미소를 띄웠다.

* * *

지크는 어느 저택 앞에 서 있었다. 마탑주가 살고 있는 드웨인 저택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눈앞의 저택도 충분히 거대했다.

바로 재위크가였다.

‘으리으리한 곳에서 사네.’

재위크 부자의 짜증나는 얼굴이 생각난다.

‘나올 때 조금 부숴놓을까?’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하자. 나중에. 하려면 확실히 해야지.’

어차피 재위크가는 흑막과 관련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그때 명분을 만들어서 부수면 돼. 철저하고 확실하게.’

하지만 지금은 참을 때다. 지크는 가볍게 담을 넘었다. 경비들은 지크를 발견하지 못했다.

지크는 저택 안으로 숨어들었다.

‘요즘은 뭐 잠입만 하는 것 같네.’

회귀 전, 이런 좀스러운 짓 따위는 쳐다도 보지 않고 막는 건 시원시원하게 힘으로 때려눕히던 시절이 떠올라 조금 허탈해졌다.

‘쯧! 조금만 참자.’

그의 마력은 성공적으로 풀리는 중이다. 곧 예전 같은 미래가 다시 올 거라는 걸 상기하고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간간이 마주치는 사용인들을 피해가며 그는 저택을 헤집었다.

방은 무척이나 많았다. 대부분은 빈 방이거나 손님방으로 중요한 게 있는 것 같진 않았다.

그러다 지크는 인기척이 있는 방 하나를 발견했다. 방에 가만히 있는 것이 사용인 같진 않아 보였다.

지크는 옆 방을 통해 창문 밖으로 나가 옆 창문으로 뛰었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창문에 매달려 방 안을 들여다 봤다.

‘마윈 재위크로군.’

그는 침대 위에 멍하니 걸터앉아 있었다. 초점이 흐린 것이 이지가 제대로 박혀 있는 것 같진 않다.

‘반폐인으로 방에 쳐박혀 있다더니, 저런 꼴이었나.’

지크는 다시 옆 방의 창문을 통해 건물로 돌아왔다.

마윈 재위크의 모습을 봤지만 그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분노도 동정도 없다. 이미 그에게 마윈 재위크라는 존재는 그 어떤 의미도 없었다.

‘저런 쓸모없는 것 말고 좀 도움이 되는 것 없나?’

지크는 다시 저택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가 맨 꼭대기 층에 도달했을 때였다. 그의 민감한 청력에 짐승의 작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지크는 조용히 어떤 방으로 들어갔다.

‘전서구를 보관하는 방이군.’

전서구들이 가볍게 울어대며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인다. 지크는 방 안을 둘러봤다.

‘여긴 볼 게 없겠어.’

동물 특유의 악취와 전서구들의 배설물. 그리고 모이 그릇과 물통 정도밖에 없는 곳이다.

천장에 매달린 횃대들에 앉아 있는 전서구들을 위한 곳에 뭔가 중요한 정보가 있을 것 같진 않았다.

푸드득!

그때 지붕 위 뚫린 공간으로 한 마리의 전서구가 내려앉았다.

‘응?’

무의식적으로 그 전서구를 본 지크가 눈을 빛냈다.

전서구의 다리에 종이가 매달려 있었다. 누군가 저택에 편지를 보낸 것이다.

‘당연히 확인해야겠지?’

지크는 투명화를 풀었다. 전서구들이 놀라 조금 날갯짓을 했지만 도망가진 않았다. 훈련의 성과였다.

지크는 조심스럽게 전서구의 다리에서 편지를 빼 펼쳤다.

손바닥만한 종이에는 본 적 없는 문자가 적혀 있었다.

‘암호로군.’

지크는 마법 상자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그것을 고스란히 베껴 썼다. 그러고는 편지를 돌돌 말은 후 전서구의 다리에 다시 조심스럽게 묶었다.

잠깐 날개를 푸드덕거리던 전서구는 지크가 다리에 종이를 묶고 물러나자 다시 얌전해졌다.

‘일단 수확 하나로군.’

뭔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단서일 수도 있다. 지크는 전서구 방에서 조용히 몸을 뺐다.

저택 수색은 계속됐다. 하지만 그 이후로 중요해 보이는 건 발견되지 않았다.

웨인의 방인 듯한 곳을 발견하고는 비밀 방 같은 것이 없나 뒤져봤지만 발견된 건 없었다.

‘성과는 편지 하나로 끝인가.’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실망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지크가 슬슬 이 저택에서 나갈까 생각을 할 때였다.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응접실인 것 같은데.’

밤에는 이미 땅거미가 지고 완연한 어둠이 뒤덮고 있었다.

이런 시간까지 있는 손님이라니.

‘확인해야겠지?’

응접실의 문을 열고 들어갈 순 없다. 마윈의 방에 침입할 때처럼 그는 창문으로 침입하기로 했다.

응접실 옆의 방을 이용해 창으로 나갔다. 응접실은 2층에 있는지라 그는 창틀에 매달렸다. 그리고 가볍게 옆으로 뛰었다.

턱!

작은 소리가 났지만 응접실의 대화는 끊기지 않았다. 들키지 않았다는 뜻이다.

지크는 팔에 힘을 줘 머리를 창문 위로 올렸다.

응접실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웨인이 두 명의 손님을 맞고 있었다. 지크가 아는 자들이었다.

‘윌위스 드웨인. 그리고 올랜드 드웨인.’

웨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자들은 그 둘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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